“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을 믿고 눈을 뜬 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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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을 믿고 눈을 뜬 소경
[요한복음 9장 1절 ~ 7절] 2011. 7. 10 주일 낮 예배 - 36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1.07.1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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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마음의 세계를 표현

 어느 날 제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성경은 어떤 이야기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놀랍게도 우리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면 결과적으로 어떻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의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이야기는 이런 마음의 세계를 자세히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길을 걸어가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만났는데, 제자들은 그 소경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인데 무슨 죄를 지어서 저렇게 소경이 되었지?” “자기가 죄를 지은 게 아니지. 뱃속에서 소경이 됐는데 부모가 죄를 지었겠지.” “부모가 죄를 지으면 부모가 소경이 되어야지. 왜 자식이 소경이 돼?” “아니야, 자기가 죄를 지어서 그럴 거야.” “아니야, 부모야.” 제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선생님,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났는데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다.” 이렇게 제자들과 예수님은 서로 다른 마음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똑같은 사물을 보아도 자기 마음에 따라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마음은

하나님은 요한복음 9장의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그의 마음을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어느 날,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소경이 못 봐서 그렇지, 예수님이 침을 뱉어 흙을 이겨 자기 눈에 바르는 것을 봤으면 기겁했을 겁니다.
하나님은 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는 마음의 세계를 이야기하십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는 우리가 가진 마음과 전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가졌던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구나.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입혀 주시려고 우리 마음을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가진 마음처럼 만들어 가시려고 일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돈을 사랑했던 나의 누님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구원받도록 이끄시고 참 많은 일을 통해 은혜 입기에 합당한 마음을 만드시는 것을 보고 정말 놀라웠습니다. 제 작은 누님이 구원받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지만, 작은 누님은 특히 돈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누님이 돈을 섬기는 것처럼 한 왕의 대신이 왕을 섬겼다면 그 나라가 진짜 잘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누님이 돈을 섬기는 것만큼 우리가 하나님을 섬겼으면 우리는 진짜 신령한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어느 날 제가 누님을 집회에 초청했는데 누님이 집회에 참석한다고 해서 굉장히 기대를 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굉장히 어려운 시절인 60년대 초반이라서 바닥에 가마니를 펴놓고 집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누님은 가마니 때문에 스타킹 올이 나갈까 봐 신경 쓰느라 집회에서 어떤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성경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까 누님이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너 전도하고 다니는 것 내가 안 막는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도 예수보다 돈이 먼저지 예수가 먼저 아니다. 네가 결혼해서 우리 집에 절대로 돈 빌리러 오지마라. 그땐 우리 형제 사이는 완전히 끝난다.” 누님은 안 먹고, 안 쓰고, 돈이 주머니에 한 번 들어오면 결코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악착스럽게 돈을 모았습니다.

‘이러다 내가 굶어죽겠다’

누님이 결혼할 무렵, 그때까지 군대에 가지 않았던 매형에게 영장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결혼 후, 누님이 시집에 들어가 살았는데, 저희 매형이 막내여서 시어머니가 굉장히 연로하셨습니다. 그래서 동서가 그 집 살림을 도맡아 했습니다.
동서가 항상 허리띠에 열쇠꾸러미를 차고 다니다가 광에서 쌀을 퍼 주면 누님이 그것으로 밥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쌀을 아주 적게 퍼 주어서 늘 누님의 밥이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거의 굶다시피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어느 날 밥을 퍼서 안방에 넣어놓고 부엌에서 혼자 밥그릇을 쳐다 보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앞으로 이집에서 더 살다가는 굶어죽고, 내 뱃속에 있는 아기도 죽겠다. 도망가야겠다.’ 누님은 굉장히 겁이 많았는데 밤중에 산길을 걸어서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막상 갈 때가 없으니까 제가 예전에 전도사로 일했던 거창 장팔리 교회로 갔습니다. 그 당시 저는 군에 입대하고 다른 제 후배 전도사님이 그 교회를 이끌고 계셨습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새벽 두 시쯤인데 누님이 문을 두드리자 전도사님 내외가 자다가 나와서 제 누님이 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작은 누님이 방으로 엉금엉금 기어 들어가면서 “밥, 밥, 밥 좀 주세요” 하였답니다. 자기 시집은 쌀농사를 해서 해마다 땅을 사는 부잣집이면서 사람을 굶게 만드는데, 전도사님은 아주 가난하면서도 밥을 큰 그릇으로 수북이 담아 두 그릇이나 퍼다 주는 걸 보고 누님이 두 그릇째 밥을 먹을 때는 눈물이 나서 밥을 먹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날 누님이 밥을 먹고 난 뒤에 전도사님이 복음을 전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할 때는 누님이 귀를 딱 막고 듣지 않았는데, 똑같은 복음을 전도사님이 전할 때는 누님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누님은 돈을 모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시집에서 고통을 겪으면서 진짜 자기가 어리석은 것을 깨닫고 자기 생각이 전부 무너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누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를 믿는 마음이 무너져야

하나님은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 슬픔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 마음을 낮추어서 은혜를 입도록 하시려는 겁니다.
한번은 서울역 입구에서 구두닦이를 20년 동안 한 사람이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나왔습니다. 그는 구두 밑바닥만 보면 사람들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날 때부터 소경된 자는 오랫동안 구걸하며 살아와서 ‘이 사람은 좀 더 이야기하면 돈을 주겠구나. 이 사람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돈을 안 주겠구나’ 하는 감각이 아주 발달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자기’를 믿는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이 날 때부터 소경된 자에게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할 때 소경은 “왜요? 다음에 씻으면 안 돼요? 난 실로암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 곳에 가요? 나는 지금 구걸하러 가야 해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생각이나 계획을 전혀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 생각이 말씀을 거부하여

열왕기하 5장의 나아만 장군은 이와 반대였습니다. 그는 문둥병을 고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 가서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만났는데, 엘리사가 “너는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 그러면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의 말씀이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니까 화가 났습니다.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왕하 5:11~12)라고 말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려서 그동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는 병을 고치려고 사마리아까지 왔습니다. 병이 나으면 선물하려고 금과 은, 의복들을 많이 가지고 와서 엘리사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에게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할 때 분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나아만 장군 속에 있는 그의 생각이 말씀을 강하게 거부하면서 다른 세계 속으로 그의 마음을 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말씀을 받아들였다면 문둥병에서 낫게 되었을 때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나 나아만 장군의 생각이 하나님 종의 말씀을 강하게 밀어냈습니다.

내 생각 안에서 결정하면

세상에서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 ‘유익하거나 그렇지 않은 것, 바른 것과 잘못된 것'을 판단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서 ‘이건 필요한 거야’라고 결정하면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그것이 필요하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에 잡혀 아주 귀한 복음을 아주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아주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각보다 못한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자신을 돕지 못하는 분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참 악해서 하나님만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귀한 며느리를 마음에서 나쁜 며느리로 만들어 버리고 좋은 이웃을 나쁜 이웃으로 만들어 버려서 불행한 겁니다.

말씀 속에는 기쁨과 소망이

하나님은 우리가 “이것은 좋다. 저것은 나쁘다”라고 판단하는 ‘자기 생각’을 무너뜨리려고 하십니다.  자기 생각을 따라 하나님을 무시하고 내 죄를 해결하지 못하는 하나님, 어려울 때 나를 돕지 않는 하나님, 내가 잘못했다고 징계하시는 하나님 등 자기 생각 안에서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만났을 때 “그 살이 깨끗하리라”는 엘리사의 말씀 속에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내 문둥병이 낫겠구나. 아내에게 가서 자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데려다 잔치를 해야지’ 하면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종의 말씀 속에는 길과 방법이 있고 소망과 건강, 그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말할 수 없는 소망과 기쁨, 행복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엘리사의 말씀 속에는 소망, 기쁨, 그리고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엘리사의 말씀을 무시하고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다.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 하냐”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 생각에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생각은 나아만을 문둥이로, 분노하고 원망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말씀을 거부하게 만드는 ‘사단’

우리가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과 거부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난하고 교회를 대적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 삶에 기쁨과 감사, 그리고 행복이 넘칩니다.
여러분은 나아만 장군처럼 자기 생각으로 말씀을 거스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게 하는 마음은 사단이 우리를 멸망으로 끌어가려고 주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으로 말씀을 거부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에 사단이 주는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감히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단은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계속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제 작은 누님에게는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니까 누님이 제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강하게 밀어냈습니다.  그 사단은 우리 속에도 끊임없이 역사해서 우리 생각을 믿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성경을 읽지 않거나 기도하지 않으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단이 주는 마음을 가질 때가 참 많은 것을 느낍니다.

순수한 마음만 있을 때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만들 때, 나무를 베어서 그냥 악기를 만들지 않는답니다.  나무 속에 기름기나 수분이 남아 있으면, 나무가 줄어들거나 늘어나기도 하며날씨가 더웠다 추웠다 할 때 나무가 뒤틀리고 쪼개지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기를 만들려면 나무를 베어서 바닷물에 10년, 20년, 30년 담가 놓습니다. 그러면 바닷속에서 서서히 기름기가 모두 빠져 나가고 순수한 나무만 남는다고 합니다.
그 나무를 건져서 말릴 때 햇볕에 말리면 한쪽으로 틀어지기 때문에 그늘에서 오랜 세월 말립니다. 그러면 원래의 나무 성질 외에 다른 게 전혀 첨가되어 있지 않아서 그 나무는 가볍고 순수합니다. 그 나무로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만들면 항상 악기의 모양 그대로를 유지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순수한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여서 정말 행복해질 것입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우리가 오늘 읽은 요한복음 9장 6~7절을 살펴보면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나아만 장군의 마음과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마음이 서로 비교됩니다. 나아만 장군의 마음에는 자기 주장과 자기 지식이 있어서 그것들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날 때부터  소경된 자는 예수님이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을 때, 말씀 앞에서 자기 의견을 전혀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날 때부터 소경이라 아주 가난하고 무식했습니다. 그는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동안 자기 주관이 다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이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온전히 이끌어 갈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성경은 마음의 세계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하느냐, 아니면 자기 생각으로 일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도 있고, 전혀 역사하실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나아만 장군이 자기 생각대로 행동했다면 문둥병에서 전혀 낫지 못하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속에 있는 생각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면서 자기 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 몸에 혹이 생기면 그 혹이 내 모습을 바꾸게 됩니다. 마음의 세계에서도 내 생각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대적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생각이나 주관이 없어졌을 때 하나님 앞에 복을 받게 됩니다.
나무를 베어낸 후, 아직 기름이나 수분이 빠지지 않은 나무로 바이올린을 만들었을 때는 주인이 원하는 모양이 아닌, 다른 모양으로 틀어지고 이상한 모양으로 변해 가듯이, 사람에게 자기 세계가 남아 있으면 하나님이 그 사람 속에 역사할 수 없습니다.

말씀 그대로를 따라야

성경은 우리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날 때부터 소경된 자는 예수님 말씀 그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을 수 있었을까요? 그는 수십 년 동안 가난에 굶주리고 비참하게 지내면서 자기 주장이 다 무너져 버리니까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따르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에게는 자기 주장이 없기 때문에 말씀이 그대로 그의 마음에 임하면서 그의 눈을 밝히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나아만 장군처럼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이 주신 귀한 것들을 나쁜 것으로 바꿉니다. 제가 지난 주에도 이야기했지만 한 형제는 아내에 대해 늘 불만을 가지며 ‘저 여자와 살면 아무것도 못해. 이혼할 거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날 아내는 돕는 배필이란 말씀을 들으면서 이 형제가 자신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날부터 이 형제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아내를 돕는 배필로 믿게 되자, 그 부부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도 하나님이 주신 축복들을 ‘이건 나쁜 거야. 이건 부담스러운 거야’ 하며 바꾸어 가고 있진 않습니까?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가서 씻으라”는 주님의 말씀 그대로 하여 그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았듯이, 우리 모두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우리 마음에 채우는 귀중한 삶을 살게 되길 바랍니다.

- 2011. 7. 10 주일 낮 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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