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마음의 위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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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마음의 위치는?
[누가복음 7장 36절 ~ 50절] 2011. 5. 22 주일 낮 예배 - 361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1.06.0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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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월드캠프 앞에 닥친 어려움

저는 어제 캄보디아 월드캠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인도 오리사의 김수연 선교사가 이번 인도 월드캠프를 푸네(Pune)에서 하자며 그곳에 대학이 있어서 전도하기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오후에는 김 선교사가 제게 전화해서 “목사님, 큰일 났습니다. 인도의 한 장관이 저희들에게 1천5백 명이 오리사에서 푸네까지 갈 수 있도록 기차를 허가해 주기로 약속했는데, 며칠 전 장관이 새로 바뀌자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을 틀어서 기차가 취소되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너무나 암담해서 울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네는 그런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하나님을 믿나?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그 일 왜 해결하지 못하시겠는가? 하나님을 믿게”라고 했습니다. 
오늘 새벽에 기도를 하던 중 인도 푸네 집회와 김수연 선교사가 울던 모습이 생각나서 인도 시각으로 밤 12시쯤 되었지만, 다시 전화를 해서 캠프 준비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물었습니다. “목사님, 기차 타고 40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천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을 푸네로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도 오늘 비행기 타고 푸네로 가려고 하네. 하나님 앞에 참 감사하네.” 
저는 지금까지 월드캠프를 하거나 복음 전도를 하면서 어려움 없이 시작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그 일을 마칠 때쯤은 하나님이 그 고통과 어려움을 다 잊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주시려고

성경은 너무나 신비한 책이라 제가 성경을 읽다 보면 어느새 제 마음이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을 봅니다. 마치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돌에 맞아 죽기 직전에 예수님 을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 처럼,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하나 되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예전에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믿음, 기쁨, 소망들을 우리 마음에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당면한 어떤 문제에서도 능히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렇게 지혜롭게 우리 인간에게 다가오시는지, 그 모양들을 보면 너무나 신기합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똑같이 흐르는데, 하나님이 우리 가까이 오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전에 먼저 은혜를 받을 만한 마음의 세계를 만드십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는 나사로가 죽고 나서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러 가시기 전에, 먼저 그 누이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겠다는 그 마음을 만드시려고 계속해서 대화하시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네 오빠가 다시 살 거야”라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믿음을 넣어주시지만, 마르다는 그 말을 전혀 믿지 않고 자기 주장만 계속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백부장의 마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주님의 말씀이 자리를 잡는 마음의 위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데, 누가복음 7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그 마음의 세계를 너무나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여러가지 문제는 불평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니까 그 하나님과 내 마음이 하나되면 무슨 문제에서라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기에 부족함 없는 그런 마음의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누가복음 7장에는 제일 먼저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백부장은 지위가 높은 군대의 장교입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권한을 쓰고 사람들을 대할 수 있었지만, 그는 겸손하였고 그가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의 종을 살리려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나인성(城) 과부 이야기

누가복음 7장의 두 번째 이야기는 나인성 과부 이야기입니다. 그 여자는 남편도 없이 아들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어느 날 그 의 아들이 덜컥 죽자, 예수님이 그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여자는 남편이 죽은 후 아들만 바라보고 살다가, 아들마저 병들어 죽었으니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그 슬픈 마음이 절망적인 위치까지 도달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살아야 할 의미가 뭔가?’ 예수님은 이 여자가 아무 소망 없이 절망 속에서 죽은 아들의 시체를 메고 가는 상여 뒤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여자를 찾아가서 상여에 손을 대고 사람들을 세우고 죽은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성경에는 이 과부가 얼마나 울었느냐, 진실했느냐가 아니라 은혜 입을 수 있는 마음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죄 많은 여자 이야기

누가복음 7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죄 많은 여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자는 그 동네에서 더러운 죄인으로 소문 난 여자입니다. 이여자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오신 사실을 알고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 뒤로 가서,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언뜻 보면 예수님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충성한 여자의 행위로 죄를 사함 받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죄 많은 이 여자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은혜 입기 원하는 간절한 그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서 자기가 얼마나 무익한 사람이고, 자기 머리털이 예수님의 발만 못한 것을 알고 그 먼지를 눈물로 씻고 머리털로 닦는 여자의 마음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드러난 행동만 보고 마음을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속으로 미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안녕하십니까?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선하지 않으면서 선한 척 하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밖으로 나타나는 우리의 행동이나 표현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떻게 주의 마음과 같아질까?

제가 구원을 받고 난 뒤에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참 어려웠던 것은, 어떻게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과 같아지냐는 것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지 내년이면 50년이 되는데, 지난 49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사단은 저를 부추기는 말을 제 마음에 했습니다. ‘그래도 너는 진실하게 살았잖아, 너는 복음을 위해 수고했잖아. 너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았잖아.’
때때로 거기에 속아서 어느 때는 제가 좀 잘하는 줄 알았습니다. 나는 믿음이 좀 있는 줄로 생각을 했고, 그래도 내가 진실하게 주님을 섬겼고 복음을 위해 산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한 것은 제가 그런 마음을 갖는 순간부터 거만해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일을 소홀히 하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을 대할 때도 진실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주님은 저에게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네가 잘한다고 그랬잖아. 그러면 네가 한번 해 봐.’ 신앙은 나 자신의 성실함이나 탁월한 능력, 굳은 각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볼 때

캄보디아 하철 선교사님의 딸이 결혼하여 캄보디아에서 아버지를 도와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참 감사했습니다. 작년에 그 자매가 임신을 하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태아가 100% 다운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유산하기를 권해서 이 자매가 굉장히 갈등했습니다. 그래서 작년 캄보디아 월드캠프 때 제게 와서 상담을 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이 너에게 몸이 불편한 아이를 낳게 하시면, 네가 낳아야지 어떻게 하겠냐? 네가 인위적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라”고 했는데 그 부부가 정말 하나님을 바라며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 후 하철 선교사님은 하나님이 정말 건강한 손자를 주셨다고 간증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 온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건강해도 내일 병들 수 있고, 내가 오늘 사업이 잘되다가도 얼마든지 내일 망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온전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자기가 죄인인 줄 알지만

이 여자가 예수님 발에 눈물을 흘리고 머리털로 눈물을 닦고 발에 입 맞추니까 옆에 있던 바리새인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진짜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 알고서도 그냥 내버려뒀을까?”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눅7:41~42)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 받은 자니이다.” “네 대답이 옳다.”
이 여자는 죄가 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낮추어서 진짜 예수님 앞에 은혜 입을 마음의 위치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참 많은 사람들이 죄가 있지만 이 여자만큼 죄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인 줄 알지만 은혜 받을 마음의 위치까지 내려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은혜 입을 마음의 위치

여러분,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예수님과 우리 마음이 하나 되면, 그 죄는 아무 문제가 안 되고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와도 어려움이 안 됩니다. 그런데 ‘난 저렇게 죄 짓지 않았어. 나는 저 사람보다 좀 선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깨끗하고 선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마음의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온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 온전하게 살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 38년 된 병자, 세리 삭개오, 강도 만난 자 등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겁니다.
‘죄인’인데 스스로 착하고 깨끗해서 죄인이 덜 된 사람과 ‘나는 충성스럽게 주님을 섬겨왔다’고 생각하지만 죄인인 사람들은 누구든지 은혜에서 떠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7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마음의 위치는 죄가 많아 마음이 낮아진 사람입니다.

‘자기’가 세워져 있는 마음

구원받은 사람은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해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정직해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죄를 적게 지어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헌금을 많이 해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아무것도 행한 것 없이 값없이,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노력으로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받을 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가 사해진 것처럼, 구원을 받은 뒤 남은 인생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우리에게 닥친 어려운 문제를 우리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내가 자녀를 낳았지만 내가 자녀를 키울 수 없고, 내가 가정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그 가정을 이끌 수 없다’는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일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그냥 ‘나는 구원받았으니까 어느 정도 믿음이 있어. 내가 복음을 전해 구원받은 사람도 있었어. 난 그래도 헌금 좀 했어’ 하며 ‘자기’를 세우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은혜의 세계에서 떠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같아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살아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 일하기를 원하셔서 누가복음 7장을 통해 은혜 입은 사람의 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흥부전을 보면 흥부와 놀부 모두 제비 다리를 고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비 다리를 고친 놀부 마음과 흥부 마음은 전혀 달랐습니다. 놀부가 아마 더 비싼 약을 썼을 것이고, 붕대도 더 비싼 것을 썼을 겁니다. 그렇지만 놀부 마음과 흥부 마음이 다른 것을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누가복음 7장의 죄 많은 여자와 다른 마음인, 나를 믿는 마음과 교만한 마음으로 예배 드릴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을 믿는 흉내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같지 않으면, 예수님이 우리 속에 일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성경은 정확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복음 전해야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은혜도 있지만 나를 믿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도 난 저 사람처럼 저렇게는 안 살았어. 난 그래도 반듯했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지만 주님의 은혜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사단에게 속아 자신이 한두 번 잘한 것으로 ‘나는 잘 했어’라는 마음을 가지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를 변호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어서 예수님 없이도 살 만하니까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던 여자의 마음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도달해야 예수님이 일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전해야 예수님이 역사하시는데, 사단은 우리 마음속에 계속 ‘나는 잘해. 나는 괜찮아’ 하며 나를 믿는 마음을 넣어 주어서 하나님과 멀어진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면 어떤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자기 유익과 자기 자랑을 위해서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한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그에게 전해져 마음에서 우러나는 전도를 하게 됩니다. 그냥 ‘내가 전도자니까’ 하며 복음 전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처럼

그동안 서울 시민을 위한 성경 세미나를 통해 복음을 들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들 가운데 ‘난 이 정도 믿으면 돼’ 하는 마음으로 자기 길을 간 사람들은 사단이 넣어준 생각을 따라 간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백부장이 사랑하는 자기 종이 병들었을 때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고쳐주시려고 하니까 “예수님이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말씀만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너무나 잘 아니까 자기가 예수님 앞에 서기가 부끄러운 것을 알고, 예수님께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이스라엘 백성 중에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 이방인인 군대 백부장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구나” 하시며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어느 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자기의 소망이고, 자기 인생의 전부였던 그 아들의 숨이 멎었습니다. 그 마음이 원통함과 아픔으로 간절했습니다. 구원받은 형제자매들 가운데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 가는 가족이 있는데도 덤덤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복음을 전해 보고, 교회 한번 나가 보라고 합니다. 나인성 과부가 가졌던, 아들을 향해 애통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을 우리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입을 옷 있고, 먹을 밥 있고, 쓸 돈 있으면 그냥 평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과 마음을 같이 하기 어렵습니다.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육체 안에 사는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린 이 땅에서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십 년, 삼십 년, 오십 년이 되겠지만 머지 않아 우리가 육체를 벗고 영원한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주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육체와 타협하면서 살다가 아무 의미 없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단은 우리가 세상 쾌락에 빠져 신앙의 잠을 자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이 큰 구원을 받은 후 더 이상 허랑방탕하게 살지 말고 주님만 위하고 복음만을 위해 사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켜주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남은 생애를 온 마음으로 주를 섬기며 사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을 통해 귀한 열매를 맺고,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이 여러분의 가정을 축복하시는 삶을 살게 되길 바랍니다.

-2011. 5. 22 주일 낮 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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