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일을 믿음으로 뛰어넘은 「다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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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일을 믿음으로 뛰어넘은 「다말」
[창세기 38장 1절 ~ 30절] 2011. 3. 6 주일 낮 설교 - 350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1.03.1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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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말’에 대해 기록한 까닭

마태복음 1장에는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3절)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오늘 읽은 창세기 38장은 그 구절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부분을 우리에게 보이길 원하셔서 다말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셨습니다.
저는 하늘나라에 가면 믿음의 사람, 다말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시아버지와 동침하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습니까만, 그 부담을 어떻게 뛰어넘었는지, 그리고 불사름을 당할지도 모르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귀한 복을 입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함을 여기리라. 그로 하여금 내가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자손을 낳고 그 씨에서 그리스도가 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나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를 구원할 당신의 뜻을 이룰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고, 그 약속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유다 집안에 생긴 일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나아가니라.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니”(창 38:1~2) 유다가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 내려가서 어떤 여자를 봤는데, 그 여자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여자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창 38:2~5)
38장 1절부터 5절까지 살펴보면 하나님이 유다에게 아내를 얻게 하시고 아들 엘과 오난, 셀라를 얻게 하시는 등 계속해서 복된 일들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6절 이하를 보면 유다의 장자 엘이 죽고, 그 후 오난이 죽고 유다의 아내 수아가 죽습니다.

주님의 섭리 속에 있었지만

이 내용은 수천 년 전 유다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을 유다를 통해 그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잇는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 백세 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셨고, 이삭이 아들이 없어 간구했더니 야곱과 에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열두 아들 중 ‘유다’ 를 낳게 하셨고, 유다에게는 세 아들 엘과 오난, 셀라를 낳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아브라함의 씨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나 인류를 죄에서 건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건축하려는 뜻을 가지신 하나님의 섭리를 자기 아들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오난아 셀라야 엘아, 너희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사람이야. 하나님이 너희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태어나는 이 엄청난 복을 주신 거야. 너희들은 그것을 명심해야 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서 아브라함 때부터 우리 후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하셨는데, 우리는 그리스도가 태어나는 귀한 일에 우리가 쓰임을 받고 있는 거야. 우리는 그냥 살지만 그 일을 하고 있는 거야’ 하며 그 사실을 정확하게 자식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욕구를 자제하지 않으면

제 아들이 어렸을 때 어느 날 목욕탕에 데리고 갔습니다. 아들이 뜨거운 탕 안에 안 들어가려고 할 때 “너는 앞으로 복음 전도자가 될 거야. 그러니까 네가 싫은 것도 견뎌야 해. 한 번 견뎌 봐” 하며 탕 안에 들여보냈습니다.
아들의 등을 밀면서도 “아버지는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어. 아버지가 너를 씻기는 것은 너를 복음 전도자로 만드는 과정이야. 아버지는 복음 전해서 사람들이 구원받을 때 제일 행복했어. 하나님이 그 직분을 너에게 주신 거야” 하며 아들을 가르쳤습니다.
아들이 복음 전도자가 된 후  힘들어 할 때는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의사가 되려고 해도 밤낮 없이 공부해야 하잖아. 그런데 의사는 환자를 고쳐주어도 나중에 병들어 죽을 수 있지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사람들을 영원히 천국 가게 하는 거야. 의사가 하는 일보다 천 배 만 배 귀한 일이니까 어려움 좀 겪어야 하는 거야. 배가 고프기도 하고 시련을 당하기도 하고 남들에게 멸시도 받고 필요하면 생명까지 희생하는 거야.”
하나님은 유다를 축복하기 위해 귀한 자녀들을 주셨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다른, 세상으로 달려 나갔던 겁니다. 우리도 세월이 흐르면서 육신의 욕구가 점점 많아지면서 삶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시간을 다 빼앗겨 버리니까 주님을 섬기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욕구를  자제하면서 성경 읽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사단의 종으로 전락하고

부모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자식들의 욕구를 제어하지 않으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이 주일에 예배당에 와서 앉아 있지를 못합니다. 컴퓨터 게임 하고 싶고 놀고 싶고 햄버거도 먹고 싶으니 예배당에 앉아 있는 걸 너무 답답하게 여기게 됩니다.
유다의 삶 속에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은 있었지만 유다와 그의 아들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대신 그들의 마음속엔 자신들의 계획만 꽉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가 나를 이끌어 가야 하는데, 내 육신의 요구가 나를 이끌어 가면,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사단이 쓰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복음 전도자가 복음 전도에 마음이 없고 육신에 젖어 자기 욕망대로 흘러가면 그 결말이 얼마나 비참하고 불쌍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복음 전도의 길을 열어 주셨는데, 그들의 마음이 육체로 흘러가 버리면 그 결과가 어떠할지 성경은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잇는 귀한 일을 위하여 유다와 그의 아들들이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지만, 사단은 그들에게 육신의 욕구를 불어 넣기 시작했습니다. 먹고 자고, 집을 사고 가구를 사고, 즐기는 것에만 마음을 다 빼앗기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없었더라면

저는 신문사나 잡지사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때 “만일 목사님이 안 됐으면 무슨 일을 했을 것 같습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주 쉽습니다. 예수님 없는 저 자신을 종종 생각해 보았으니까요. 아마도 저는 술주정뱅이가 되어 아들이 “아빠, 공책 사게 돈 주세요” 하면 “없어! 신문 팔아서 돈 벌어와. 아빠 술 마시게”라고 했을 겁니다. 이건 전혀 과장된 모습이 아닙니다.
또한 저는 구원받은 후에도 복음이 귀한 걸 알았지만, 복음을 전할 줄 몰랐습니다. 제가 선교학교 에 있을 때 저를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지금 독일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대희 선교사님 아버지가 제가 선교학생이었을 때 저와 비슷한 또래였는데, 어느 날 제가 그분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복음을 전했는데도 그분이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아이, 참. 되게 못 알아듣네’ 하면서 헤어졌습니다.
주일 예배시간에 그분이 간증하러 나오는 걸 보고 제 가슴이 떨렸습니다. ‘저 형제가 간증하러 나오는 걸 보니 어제 내가 전한 말씀을 듣고 구원받았구나! 그때는 못 깨닫더니 돌아가면서 혼자 깨달았나?’ 무척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나와서는 “박옥수 형제가 이야기할 때는 골치만 아프고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는데, 유 형제가 한두 마디 하니까 구원이 깨달아졌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세상에, 실망을 줘도 분수가 있지.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남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고….’ 

복음을 전하는 동안

저는 처음에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는데, ‘하나님이라면 무엇을 기뻐하실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는데, 그걸 모르고 죄에 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 전하는 걸 기뻐하시겠다. 그럼 내가 잘하지 못해도 이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정해지자 하나님이 저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를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들 마음에 성령이 임하자 그들의 인생이 바뀌면서 하나님이 그 삶 속에 일하시는 걸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 삶은 여전히 가난하고 어려워서 자주 굶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님이 제 삶에 복을 베푸시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복음 안에서 산 지 50년이 다 됐는데, 하나님께는 저 같이 못난 인간을 통해 제게 참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제가 세상으로 흘러가려고 할 때 저를 붙잡아 주시고, 실망해서 사역을 그만두려고 할 때도 붙들어 주셨습니다. 어떻게 전도해야 할지 모를 때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제가 너무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일을 하는 동안에 하나님이 제 삶 속에서 천 가지 만 가지를 도와주셨다는 겁니다.

처음엔 복을 받았지만

창세기 38장을 읽으면 유다의 집이 복 받을 때와 저주 받을 때가 너무나 명백하게 나와 있습니다. 1절에서 5절까지는 복을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다가 수아의 딸을 얻어서 결혼했을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내가 임신했을 때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엘과 오난, 셀라를 낳고 젖을 먹일 때 그들은 무척 행복하고 복됐을 겁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식들을 영적으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육신적 욕구가 그들을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그러면 유다가 아들들을 붙잡고 “이놈들아, 너희들은 먹고 입는 육신적인 것만 생각하느냐? 우리 집안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흐르고 있어. 너희들도 하나님의 뜻 안에 살아봐” 하며 자식들과 싸우고 가르쳐야 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귀찮고 힘드니까 자식들이 욕구에 끌려 다니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이제 유다의 아들 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없는 사람이 됐습니다. 아무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육으로 강하게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을 치셨고 엘이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왜 엘이 죽었는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오난’

만일 오난이 왜 하나님이 형을 죽이셨는지 알았다면 ‘나도 이러다가 죽을는지도 몰라. 조심해야 돼’ 하는 마음을 가졌을 텐데 오난도 영적으로 눈이 어두웠습니다. 유대 법을 따라서 형이 아들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동침해서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이 형의 후사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다가 오난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밤 형수에게 들어가 형수가 아들을 낳게 해서 그 씨를 유전케 해라.” 그 말을 듣고 오난이 생각했습니다. ‘내가 형수와 동침해서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은 내 아들이 아니고 형의 아들이 돼. 그럼 형수의 장자가 될 건데,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내 아들이 장자가 됐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형의 아들을 먼저 낳는 게 아니라 내 아들을 먼저 낳았으면 좋겠어.’
오난의 생각이 평범한 생각 같지만 그 속에는 사단의 계획이 들어있습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그의 마음을 끌어가고 있지만, 오난은 그 생각이 사단으로 말미암았고 그것이 저주를 받고 멸망을 당해야 할 무서운 죄라는 걸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형수가 아들을 못 낳게 땅에 설정을 해버렸습니다. 그러자 결국 하나님이 오난을 죽이셨습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저는 하나님께서 복음 전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안 뒤 복음을 잘 전하지 못하지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인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몇 년 전, 파라과이 대통령이 구원받을 때 대통령께서는 그전에 가톨릭 신부였지만, 아들을 두었기 때문에 죄의 가책을 아주 강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의 설교집 『죄 사함·거듭남의 비밀』을 선물로 드렸는데, 대통령이 파라과이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그 책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비서관이 그 책을 챙기지 않아서 이튿날 주한 파라과이 대사 부인이 그 책을 들고 파라과이로 갔다고 합니다. 그분은  그 책을 읽으신 뒤에 저와 개인적으로 만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한번은 IYF 케냐 월드캠프 때 케냐 경찰청장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후 그분이 한 첫마디는 “목사님, 저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제 아내도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 제 아내를 데려올 테니 제게 들려준 그 복음을 제 아내에게도 해주십시오”였습니다. 그리하여 이튿날 그의 아내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왜 은혜와 복을 주셨는가?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통해 구원받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당신의 뜻과 계획을 가지고 이 땅에서 복음을 섬길 수 있는 귀한 직분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하나님의 계획 속에 머물러 있다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크신 은혜와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 육체의 욕망을 따라 흘러가고 있습니다. 
작년에 (주)운화가 식물줄기세포 분리, 배양에 성공한 내용이 과학저널『네이처』지에 게재되고 TV와 신문에서도 그 기사가 떠들썩하게 보도되었을 때 하나님이 제게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목사야. 너는 복음만 전해.” 앞으로 (주)운화에 수백 조의 수입이 생기더라도 우리교회는 회장인 도 장로님이 개인적으로 내는 십일조 외에는 받지 않겠다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앞으로 운화가 아프리카에 병원을 세워 에이즈 환자를 치료할 겁니다. 2015년쯤이면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될 겁니다. 지금도 해마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수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을 생각하면 다른 일 다 제쳐 두고 그들을 에이즈에서 건져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가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한계를 뛰어넘는 믿음으로

저는 다말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다말 자매님, 시아버지와 동침하는 것은 정말 부담스러웠을 텐데 어떻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그 부담을 넘어서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룰 수 있었습니까?”
가장 넘기 어려운 산은 바로 내 마음의 산을 넘는 겁니다. 다말도 처음엔 ‘아들 안 낳으면 안 낳지, 어떻게 내가 시아버지를 유혹해서 아들을 낳아? 이건 정말 못할 짓이야!’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어느 날 다말이 자기 마음의 산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할 때 조금만 부담스러우면 피해버리고 어려워하는데, 다말과 같은 이런 모습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마음이 듭니다.
이런 영적인 사실을 몰랐을 때저는 다말을 음탕한 여자라고 여겼는데, 다말의 행동은 마음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족보를 잇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마 1:3)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다말에 대해 제대로 알기 전에는 ‘다말의 이름을 좀 빼면 좋겠다. 왜 하필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지?’ 하고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룻기에서도 룻이 보아스와 결혼할 때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룻 4:12)고 다말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저는 룻기를 읽으면서도 잘 나가다가 왜 “다말처럼 되기를” 하며 더러운 여자의 이름이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성경을 읽으면서 다말이 음탕한 여자라면 얼마든지 젊은 남자와 결혼해서 육체의 쾌락을 채웠겠지만, 늙은 시아버지의 씨를 얻으려고 한 것은 그리스도의 족보를 잇는 귀한 일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직분

저는 창세기 38장을 통해 불가능을 믿음으로 뛰어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은 것처럼,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그 일에 우리가 쓰임을 받을 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그 사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주신 이 귀한 직분을 버리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육체의 종이 되어 흘러간다면 비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왜 유다의 집이 축복을 받다가 후에 저주를 받았는지 깊이 깨닫고 ‘나도 복음을 위해 살지 않고 내 육체대로 흘러간다면 유다의 집처럼 되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이 귀한 직분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 2011. 3. 6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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