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복을 받는 것은‘행위’가 아닌 오직 ‘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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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복을 받는 것은‘행위’가 아닌 오직 ‘은혜’로
[창세기 27장 1절 ~ 23절] 2010.12.5 주일 낮 설교 - 33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0.12.1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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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했던 딸의 서울 전학

 제가 딸, 아들을 낳아 키우는 동안 하나님께서 참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뜻하지 않은 일이 딸에게 일어났습니다. 제가 1984년에 서울에서 복음의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제 딸은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칠 때 쯤이라  대구에서 중학교 1학년 입학 배정을 받았습니다. 그때 이사 갈 사택은 강남 8학군인 대치동 은마아파트라 딸이 전학 오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 손윗 동서가 과학기술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과학기술처 장관이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죽고 과학기술원 원장이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승진해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할 때, 그 아들은 전학이 안 되어 3년 동안 대전에서 학교를 다닌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장관과 대통령이 친구 사이고 문교부장관과도 가까운 사이였지만 전학이 불가능했다며, 아예 딸 은숙이는 서울로 올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서울로 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저는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사한 지 23일 만에 때마침 개포중학교가 개교하여 은숙이가 개포중학교로 전학 올 수 있게 되자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실험실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실험실에서 알코올램프 위에 있던 염산이 폭발하여 제 딸 머리 위로 염산이 튀었습니다. 양호교사가 대충 물로 씻은 후 소독하고 거즈를 붙여놓았는데, 한 달 가량 지난 뒤에 아내가 딸의 머리를 살펴보다가 살이 썩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의정부교도소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오성균 목사님과 같이 돌아오던 길에 오 목사님이 ‘한양대학교병원에 형제가 입원해 있는데, 잠깐 들러서 기도 좀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한양대학교병원에 도착하여 막 차에서 내리는데 제 아들이 제게 뛰어왔습니다. “여기 왜 왔니?” “지금 누나가 수술 받고 있어요.” “그래?” 10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이 병원에 올 생각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퇴근하려는 의사를 붙잡아 딸이 수술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딸은 두피에 남아있는 염산을 모두 긁어내는 아주 힘든 수술을 받은 후, 머리를 붕대로 잔뜩 감고 퇴원했습니다.  제 딸이 열흘 동안 학교에 못 가자, 교장선생님이 죄송하다면서 학교에서 잘못한 거니까 병원비를 전부 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장선생님, 병원비 별로 안 들었으니 걱정 마세요. 저는 목사인데 하나님께 보상받고 싶습니다. 그 반 학생이 72명인데 하나님께서 왜 제 딸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하고 교장실을 나왔습니다.

믿음을 만들어 주시려고

열흘이 지난 후, 딸이 등교해야 하는데, 머리에 상처가 있는 애를  복잡한 통학버스에 태울 수 없어서 제가 한 달 동안 승용차에 태워 등교 시켰습니다. 제가 목사지만 그동안 제 딸과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한 달 동안 딸과 개인적으로 신앙 교제를 했습니다. 아침마다 딸을 태우고 학교 가는 시간에 목사로서 성도를 대하듯 차근차근 교제했습니다.
물은 100°C가 되면 끓기 시작하고 0°C가 되면 얼듯이, 사람의 마음도 어느 때 믿음이 형성되며 어떤 마음 상태가 되면 아무리 믿음을 가지려해도 가질 수 없는지 제 딸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인 딸이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된 후부터 삶이 아주 달라졌습니다. 학교에서 전도해 구원받는 학생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 주님과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볼 때 무척 감사했습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이 제 딸에게 이런 믿음을 주시려고 염산을 머리에 뒤집어쓰게 하셨구나. 한 방울도 얼굴에 떨어지지 않고 머리카락에 떨어져 흉터를 가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 아픔을 통해서 믿음을 만들어 주시려 하셨구나’ 하며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믿음의 깊이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살고 싶어서 교회도 다니고 성경도 읽습니다. 마치 두부를 만들 때 콩을 갈아 그 콩물을 받아 내린 후 간수를 뿌리면 그 물에서 두부가 엉겨나기 시작하듯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 마음속에 말씀이 뿌려졌을 때 믿음이 엉기면서 터전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엉겨진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세계들은 정말 신비하고 거룩하며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내 죄가 사해졌다는 사실을 믿어도 구원받은 이후에 나타나는 믿음의 삶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받은 후 자기 생명과 재산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감사하며 기뻐하는데, 왜 어떤 사람은 분명히 구원받았는데도 그렇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은 구원받은 후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에게 무시 당하거나 욕 먹어도, 손해 보거나 빚을 져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구원받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기를 섬기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몸은 몹시 피곤했지만

저는 2주 전에 나갈랜드 집회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바로 주한 파라과이대사관에 들러 대통령 비서실장과 법무부장관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주일예배를 마치고 미얀마 양곤으로 가서 집회했는데, 이틀 동안 건강이 안 좋아서 식사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래서 양곤에서 다른 도시로 4시간 동안 차를 타고 가야 할 때는 도저히 건강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계속 탈수 증세가 오고 굉장히 고통스러워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배 아픈 것을 낫게 하시겠다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여전히 배는 아팠지만 저녁 집회를 마친 후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참 많은 나라에서 집회하면서 건강한 몸으로 다녔구나. 수십 년 동안 복음을 위해 살다 보면 아플 때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아주 평안했습니다.
밤이 되어 밖으로 나가 처음으로 미얀마 하늘을 쳐다봤는데, 저는 그처럼 아름다운 밤하늘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별들이 너무나 화려해서 사랑하는 주님께서 마치 제게 ‘저 별들이 아름다우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내가 네게 보여주려고 만들었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미얀마 집회에서 몸은 굉장히 피곤하고 지쳤지만 마음은 아주 행복했습니다.

우리 마음을 이끄는 두 영(靈)

저는 지난 서울 대전도집회 때 두 명의 부인을 만나 신앙 상담을 했는데, 그분들이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두 분 모두 많은 빚을 지고 어려움 가운데 곤고해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빚더미 위에 앉아서 고통스러워했지만, 저는 ‘하나님이 왜 증권에 투자한 이 분을 빚더미에 오르게 했을까? 하나님께서 이 부인을 참 사랑하셨구나. 이 부인에게 이런 어려움이 없었으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사람은 형편이 어렵고 망해야 구원받기가 좋을까요?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는 잘났어. 나는 똑똑해’ 하며 자기를 믿는 마음과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높아진 우리 마음을 낮추시려고 어려움을 주십니다.
똑같은 배추로 김치를 담아도 사람이 어떻게 김치를 만드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맛을 내듯이, 신앙은 절대로 그냥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을 이끄는 영(靈)에는 하나님과 사단이 있는데, 사단은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 수 없도록 계속 이끌어 갑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계속 이끌어 가십니다.

성령이 일할 수 없는 사람

 서울 대전도집회를 하면서 선지자 생도의 아내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선지자 생도의 아내는 자기가 잘나고 똑똑하며 괜찮은 여자인 줄 알았습니다.  참 잘나고 똑똑한 사람일지라도 마음은 겸손한 사람이 있고, 부족한 사람인데도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 전도자들이 어느 날 ‘나는 잘해’라는 생각을 한 번 가지면 그때부터 말하는 자세, 걸음걸이, 기상 시간, 성경 읽는 자세, 기도하는 자세 등 여러 가지가 달라집니다. 전도자들이 한번 그런 교만한 마음을 가지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높아져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해도,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해도 사단이 그냥 순수하게 살도록 내버려두질 않고 이상하게 끌어가서 성령이 일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자기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성경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에 대해서 기록하셨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임금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제 아들, 딸과 아내마저 팔아 빚을 갚겠습니다” 하자 임금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 빚을 탕감해줬습니다. 그런데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종은 주인의 마음을 들여다 볼 틈 없이 ‘임금이 일만 달란트 탕감해줬으니, 이제 우리 아들 딸과 한집에 살아도 돼. 마누라가 안 팔려가도 돼. 앞으로는 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났는데, 백 데나리온 받을 빚쟁이 자세는 나오지만,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의 자세는 안 나왔습니다. 그가 ‘나는 일만 달란트 탕감 받았는데,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게 내가 이렇게 했다는 걸  임금이 알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살다 보니 주인의 마음이 그의 삶에 묻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빚 탕감 받은 것은 다 잊고 ‘자기’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빚이 없는 자신을 믿고 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목을 잡아 감옥에 넣을 수밖에 없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도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같습니다. 우리가 값없이 모든 죄를 눈과 같이 희게 씻음 받았다면  천국 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나 옷을 살 때, 월급을 탈 때도 날 위해 생명을 버리신 주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지 않고, 그냥 내 인생을 산다면 어떻게 믿음이 형성될 수 있겠습니까?
포도원 농부나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멸망 당한 이야기는 ‘지금 구원받았다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지만, 네 마음이 교만하면 포도원 농부처럼 될 수 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처럼 자기를 믿는 마음을 가지면 자기 욕망을 따라가다가, 결국 구원받기 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어’라고 정확하게 가르쳐 줍니다.
성경은 자기를 믿는 사람들이 자기를 믿다가 망한 이야기를 여러 번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포도원 농부나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같은 마음을 가지면 현재는 좋아보이지만 결국 망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습니다.

선한 행위로 복받기 어려워

창세기 27장의 ‘야곱과 에서’이야기에서 아버지 이삭이 에서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창 27:2~4)
에서는 자기가 사냥을 잘하기 때문에 ‘야곱은 꾀만 부리지 아버지의 복을 받을 조건이 하나도 없어. 나는 사냥을 잘하니까 그걸로 금방 요리를 해 드리면 아버지가 내게 축복해 주실 수밖에 없어’ 하며 자신이 복 받는 데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야곱은 자신을 에서라고 아버지를 속였는데 복을 받았고, 여호수아 2장 기생 라합도 정탐꾼을 여리고 성에 숨겨놓고는 숨기지 않았다고 거짓말했는데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한 야곱이 왜 복을 받았느냐고 질문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정직해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복 받는 것은 우리가 거짓말하거나 정직한 것, 잘나거나 못난 것, 선하거나 악한 것과 전혀 상관 없습니다. 잘못된 종교는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미 인간은 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인간의 선한 행위로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만 복을 받습니다. 십일조를 많이 냈거나 새벽기도를 많이 한 것, 주일을 잘 지키고 구제를 많이 해서 복을 받는 게 절대 아닙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에서는 자신이 야곱보다 선하고 진실하며 사냥을 잘한다는 조건으로 아버지 앞에 나아가서 복을 받으려고 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기도를 잘해. 성경을 잘 깨달아.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했어. 지금까지 열심히 주님을 섬겼어. 그러니까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실 거야’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창세기 27장을 좀 읽어보라고 하실 것입니다.
복은 ‘은혜’로만 받는 겁니다. 마치 경품권 추첨에서 누가 라식수술 받았거나, 비싼 구두를 신은 것이나 잘생긴 외모와 상관없이 번호만 맞으면 상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추첨자가 ‘3716번’라고 불렀을 때 자신이 가진 그 번호와 같으면 경품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사단에게 속아 잘못된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려면 성실함이나 똑똑함, 또는 옷을 잘 입거나 얼굴이 예쁜 것, 좋은 가문과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께 긍휼이 여김을 받아야 됩니다. 야곱은 사냥을 잘하지도 못했고 성실하지도 않아서 은혜 입을 조건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불쌍히 여겨서 은혜를 입혀주려고 에서처럼 꾸며 주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세계

IYF 극단 ‘허준’ 공연 팀이 제게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해서 모임 장소에 가보니 관을 쓴 유의태, 두루마기 입은 허준, 유도지와 조양태도 앉아 있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유도지가 허준을 무시하며 싸우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둘이 아주 친했습니다. 그리고 유의태가 유도지에게 “그러고도 네가 내 아들이라 할 수 있느냐. 당장 떠나거라!”하며 무대 위에서는 호령했지만 무대 아래서는 전혀 다릅니다.
이처럼 인간의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는 전혀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긍휼을 입기에 합당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나는 사냥을 잘해. 아버지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 수 있어’ 처럼 에서와 같이 자신을 믿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로 은혜를 입기에 합당한 마음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은혜를 입을 수가 없습니다.

부족한 자가 되었을 때

우리는 ‘나는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는 우월감을 아련하게 느끼고 즐깁니다. 자기 자식이 남의 자식보다 참 잘났다 싶을 때 느끼는 쾌감, 겉으로는 말 안하지만 그런 즐거움을 인생들은 다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남모르게 즐기는데 무슨 문제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절대로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나는 성경을 좀 많이 읽었어. 기도를 좀 잘했어. 내가 전도해서 구원받는 사람이 일어났어.’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종류의 마음 가운데 자신을 인정하고 높이는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게 됩니다. 그런 마음이 생기면 은혜를 입을 수 없기 때문에 계속 어려움과 고난을 겪지만 ‘나는 잘났는데. 왜 잘 안 되지’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우리 마음에서 그 마음을 내쫓으면, 야곱이 아버지 앞에서 형 에서로 속이고 복을 받으러 나갔듯이, 레아가 야곱의 침실에 들어갈 때 레아라고 떳떳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라헬인 것처럼 속여서 시집을 갔듯이 부끄러운 자가 됩니다. 레아는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천대받던 여자였습니다. 성경에서는 ‘총이 없다’고 기록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못생겨 남의 눈길을 끌 만하지 못했지만, 결국 축복을 받아서 야곱과 같은 무덤에 묻혔습니다.

자신을 높이는 조건을 버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은 세상의 기준과 다릅니다. 허준이 유도지와 무대 위에서 싸우지만 무대 아래서는 둘이 서로 사랑하는 친구이듯이, 하나님의 무대와 우리 생각의 무대는 전혀 다릅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삶을 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 여러분의 마음을 더듬어 보세요. ‘나는 그래도 반듯하게 살았어. 난 뒷정리 깔끔하게 해’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나를 높이는 것은 여러분 신앙을 다 죽여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일을 못하시게 됩니다.
제가 군 생활을 할 당시만 해도 ‘이’가 참 많았습니다. 더구나 군 내의가 ‘이’ 색깔과 비슷해서 진짜 잘 안보였습니다. 그러나 일단 이를 잡으면 불타는 난로 위에다 올려놓았습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의 마음을 더듬어서 마음속에서 자신을 높이는 모든 조건은 전부 뽑아서 던져 버리십시오. 그리고 자랑할 만한 것 없는 미련하고 못난 자가 되어서 2011년에는 여러분 모두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 2010.12.5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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