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적을 물리친 여인 「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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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적을 물리친 여인 「야엘」
[사사기 5장 13절 ~ 31절] 2010.11.14 주일 낮 설교 - 335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0.11.1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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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전도를 하면서

저는 1968년 군 제대 후 어린이 전도 팀을 만들어 그 해 여름 5개 지역에서 어린이 성경학교를 했습니다. 하루는 ‘남사’라는 곳에서 밤 12시쯤 모든 일정을 마치고 4Km쯤 떨어진 ‘외인리’라는 곳으로 가려고 출발했습니다.
그땐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오고 있었는데, 우리를 안내하는 사람도 길이 헷갈린다고 해서 한참 헤맸습니다. 손에 가방까지 가득 들고 있어서 피곤하고 지쳐 좀 쉬었다 가기로 했습니다. 비가 와서 땅에 가방을 내려놓지도 못한 채 잠시 서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외인리에 가서 내일 아침부터 집회를 해야 합니다. 그곳에 도착하면 새벽 2,3시쯤 될 텐데 헤매지 않고 집회할 교회의 전도사님 집을 찾을 수 있도록 누군가 마중 나오게 해 주십시오.”
기도를 하면서 ‘우리가 아무런 연락도 안 했는데, 새벽 2, 3시쯤 누가 우리를 마중 나온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지만, 우리 사정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면 그대로 된다고 하셨는데, 내가 확실하게 믿으면 하나님이 마중 나올 사람을 보내 주시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들

우리는 짐을 들고 다시 걸어갔습니다. 그 동네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3시가 가까웠습니다. 어두컴컴한 길을 더듬어서 동네 입구에 도착했더니, 큰 정자나무 밑에 서너 명의 청년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보더니 가까이 와서 우리가 누구인지 살폈습니다. 그러다가 이내 우리를 안내하는 분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습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예, 주일학교 강사 선생님들을  모시고 왔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가 가려던 그 교회 청년들이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 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들이 새벽 3시가 다 되가는데 잠도 안자고 나무 밑에서 뭐하고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 봤더니, 그 교회에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저녁 예배 마치고 곧 임종하실 것 같아서 할아버지 댁에서 임종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도 할아버지가 임종하시지는 않고 집안은 답답하고 더워서 바람을 쐬려고 나왔다가 우리를 만났다는 겁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하나님, 제발 우리 집회 중에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시골교회에 초상이 나면 우리 집회 분위기가 굉장히 안 좋아지거든요. 결국 그 할아버지는 집회를 마칠 때까지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

저는 목사지만 제가 정말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마음이 듭니다. 말씀을 읽으면 그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게 아니라, ‘이게 과연 가능할까’ 하며 의심이 자주 생기는 겁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었을 때 나사로의 누이동생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하셨지만,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나 살 줄을 내가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보다 자신이 보기에 오빠가 살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하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생각에 맞을 때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이건 말도 안 돼’ 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던 겁니다.
여러분 삶에 이런저런 문제나 어려움이 있을 때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보다 ‘이게 가능할까? 이건 안 될 것 같아’ 하며 자신의 판단을 믿으면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자신의 생각을 버리는 이유

우리 교회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부인(否認)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는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상식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다, 홍해가 갈라졌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 이스라엘 60만 명이 40년 동안 살았다는 걸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생각을 우리 마음속에 계속해서 넣기 때문에 성경은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방식과 지식으로 하나님을 계산하려고 하면 도저히 계산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려면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는 절대 안 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다가

저는 지난여름 영국과 서부 아프리카에서 IYF 월드캠프를 진행했었는데, 토고에서 약간의 말라리아 증세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해야 하는데, 의료 팀이 말라리아 약을 가지고 있어서 일단 그걸 먹었습니다.
그런데 말라리아 약을 먹으니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몸은 무척 피곤한데 시차가 바뀌어서 그런지 코트디부아르에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잠을 청했지만, 잠이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도착하니 문 장로님이 저더러 피곤해 보인다며 영양제와 수면제를 주어 잠을 잘 잤습니다. 그 후 이틀 동안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자다가, 이어지는 수양회 일정 동안에는 수면제를 안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버텼는데, 새벽 1,2시가 될 때까지 잠이 안 오는 겁니다.

평안하게 잠을 자고

2주 동안 수양회를 마치고 다시 케냐 월드캠프에 가면서는 아예 수면제를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케냐에 도착한 첫날 저녁이 되니까 시차가 바뀌면서 힘들었습니다. 말라리아 약을 먹어서 그런지 낮에 잠을 안 잤는데도 밤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내일 일정이 빡빡한데 그날 밤을 새우려니 너무나 암담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성경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그 말씀대로라면 제가 하나님 앞에 기도한 후 하나님이 잠을 자게 하실 것을 믿으면 잠이 와야 되잖아요. 그런데 제 마음에는 ‘그런다고 잠이 오겠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에 배가 아팠을 때도 그 말씀으로 나았는데, 내가 거만하게도 하나님 말씀을 안 믿고 있구나.’
그래서 그날 마음을 정돈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잠을 자게 해주십시오. 내일 행사도 많고 몸도 정말 피곤한데 하나님이 잠을 자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하고 누웠는데, 나른해지면서 너무나 평안하게 잠을 잤습니다.
 
약속을 믿지 못하도록

여러분, 하나님이 목동인 다윗을 왕으로 삼으려고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 후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 눕혀 군대장관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인간적으로는  ‘이제 군대장관이 됐으니 좀 있다 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올 때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라는 여인들의 노랫소리를 들은 사울이 말했습니다.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삼상 18:8)
그날부터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자 다윗이 왕이 되기는커녕 쫓겨서 블레셋 땅으로 건너갔고, 다윗의 아내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는데도 사단은 다윗에게 절대로 왕이 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을 계속 넣어주었습니다.
사단은 다윗의 아내 미갈에게도 ‘지금은 내 남편이 왕이 되는 건 불가능해. 우리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고 하니 다윗은 이스라엘 밖으로 쫓겨나 거지처럼 방황하다가 세상을 떠날 거야. 다윗에게 미련을 버려야 돼’ 하는 마음을 주어 결국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미갈은 행복하게 살다가도 ‘다윗이 왕이 되면 어떡하지?’ 하고 불안해했을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대로 안 될 것 같은 마음을 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사단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장군 ‘시스라’와 여인 ‘야엘’

오늘 우리가 읽은 내용을 읽어보면 사사시대 가나안 땅에 ‘야빈’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이 이스라엘을 점령한 후 20년 동안 지배했습니다. 야빈 왕에게는 군대장관 시스라가 있었는데, 그는 병거 구백 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즘 말하면 탱크나 전차 정도 되겠지요. 야빈 왕이 병거 구백 승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절대 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여선지자 드보라가 바락을 불러 “하나님께서 내게 명하노니 네가 시스라와 싸우라”고 했습니다. 바락이 시스라와 싸울 때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시스라를 이기니까 시스라 수하의 군인들이 도망을 갔습니다.
시스라도 도망가다가 헤벨의 아내 ‘야엘’이라는 여자가 사는 장막에 가까이 갔습니다. 그러자 야엘이 “두려워하지 말고 어서 들어오세요” 하고 시스라를 맞았습니다. 시스라가 목이 마르다고 하니까 야엘이 아주 진한 우유를 귀한 그릇에 담아 주자, 시스라가 벌컥벌컥 마시고는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야엘이 장막의 말뚝을 쿨쿨 자는 시스라의 살쩍(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머리털)에 박아버렸습니다. 말뚝이 시스라의 살쩍에 박히니까 시스라가 일어났지만, 꾸부러져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축복과 저주의 차이는

 오늘 읽은 이 말씀은 시스라가 죽은 후에 여선지자 드보라와 바락이 노래하는 내용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된 내용은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 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삿 5:23)에서 ‘메로스를 저주하라’는 것과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삿 5:24)에서 ‘야엘을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5장 14~18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락이 시스라와 싸우러 나가는 데 같이했던 사람들과 같이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구분되어 나옵니다. 그 중 메로스 거민들은 하나님의 싸움에 함께 참예하지 않고 그냥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메로스를 저주하라”고 하신 겁니다.
헤벨의 아내 야엘은 군인도 아닌, 여인인데 장군 시스라를 죽였습니다. 연약한 여자가 장군을 죽이려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만일 이러다가 시스라가 깨면 어떡하지? 잘못 때리면 내가 죽는 거야’ 하는 두려움이 그 여자의 마음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시스라와 싸우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실 거야’ 하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부담을 피해 버린 메로스 거민

메로스 거민들은 다른 사람들이 힘 있게 싸울 때 피해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게 아니라 사단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는 건 알아. 그렇지만 우리는 시스라를 못 당해. 시스라는 병거가 구백 승이나 있어. 우리는 20년 동안 시스라와 싸우려고 해도 안 됐어. 싸워도 우리가 망하고 말거야. 그러니까 싸우는 건 어리석은 것이야.’
그러나 헤벨의 아내 야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편에 계셔. 하나님은 야빈 왕이 망하길 원하셔. 하나님이 시스라를 죽이실 거야. 나도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야 돼.’
그런데 느닷없이 시스라가 자기 장막에 온 겁니다. 야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병법에 익숙하고 건장하며 재빠른 군대장관이니까 자기가 죽일 수 없어 떨리고 두렵기도 했지만 ‘야빈 왕의 군대장관이 이쪽으로 오고 있구나. 잘하면 시스라를 죽이는 영광을 내가 차지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믿음으로 싸운 야엘

시스라가 목이 마르다고 하자 야엘이 얼른 우유를 귀한 그릇에 담아 시스라에게 주었습니다. 전쟁에서 싸우다 도망치던 시스라는 갈증이 해소되자 잠이 왔습니다. “혹시 누가 오거든 여기 아무도 없다고 하시오.” “예, 안심하고 주무세요.”
시스라가 완전히 잠에 빠져버렸을 때 야엘이 장막의 말뚝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쪽으로 말뚝 박는 망치를 숨겨가지고 조심스럽게 장막에 들어갔습니다. 시스라가 코를 골면서 자고 있는데 살쩍에 말뚝을 대고 탁 때리니까, 시스라가 벌떡 일어났지만 그대로 엎드러져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는 항상 사단의 역사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단의 음성을 들으면 그 음성이 여러분의 마음과 딱 맞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시기 때문에 우리 생각이 도저히 미칠 수 없는 능력을 우리 속에 행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려면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일을 행하실 걸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계속해서 그런 믿음을 일으키는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일할 때 실패하게 하시고 고통스럽게 하시는 건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계속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왜 참예하지 않는가?

참 많은 형제자매들이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한 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비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인간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으니까 영적인 전쟁에 참예할 수가 없는 겁니다. 자신이 볼 때 승산이 없어 보이니까 메로스 거민처럼 자꾸 피해버리고 못 보고 못 들은 척 하면서 머물러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사사기 5장에서는 전쟁에 참예한 자와 전쟁에 참예하지 않은 자를 구분했습니다. 참예한 자는 복을 받지만, 참예하지 않은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그 자체가 사단에게 잡힌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점점 그렇게 흘러가면 사단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큰 능력과 지혜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책임지시고 도우시고 은혜를 베풀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하면서 십자가를 지셔서 우리 죄를 사하셨고 우리 속에 성령을 주셨고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사단이 주는 생각을 버리고

한번은 안상백 선교사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밤늦게 들렀습니다. 안 형제가 암에 걸려 물도 잘 마시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만일 자네가 신앙생활 잘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섬겼다면 하나님께서 자네 기도를 들으셨겠지?” “예.” “자네가 기도는 하지만 부족한 자신을 보니 하나님이 안 들어주실 것 같은 마음이 들지?” “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는 말씀대로라면 하나님이 자네를 온전케 했으니 자네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 아닌가.”
안 형제가 마음에 힘을 얻어 벌떡 일어나더니 엘리베이터 앞까지 걸어 나와서 저를 배웅했습니다. “어이, 들어가게.” “목사님,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음식 먹어.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야.” 안 형제가 살아나겠다는 마음이 들어 정말 기뻤습니다.
얼마 후 다시 병원에 들렀는데, 안 형제가 예전 상태로 돌아간 걸 보니 안타까웠습니다. 안 형제는  ‘그러면 그렇지, 암이 어떻게 나아’ 하는 사단의 음성을 받아들인 겁니다. 그날 저는 안 형제에게 다시 성경을 펴서 “자네 생각 믿지 말고 말씀을 믿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었는데도 어려운 형편이 닥치면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다는 마음을 사단이 넣어주지만, 우리의 계산과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아침 여러분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사단의 음성들이 남아있습니까?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힘이 없게 하고 여호와의 싸움을 하지 못하게 하고 점점 뒤로 처지게 하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시험을 당하면 교회를 떠나가게 합니다.
사단이 주는 생각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지면 그 말씀이 여러분을 힘 있게 달려가게 해줄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을 전할 마음이 일어나고 여러분을 통해 참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과 여러분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귀하고 복된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 2010.11.14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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