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내 생각이 아닌‘말씀’을 믿고 나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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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내 생각이 아닌‘말씀’을 믿고 나아가는 것
[사무엘상 17장 31절 ~ 49절] 믿음으로 골리앗 앞에 나아간 다윗처럼 - 332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0.10.2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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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시간이 부담스러웠지만

 오래 전 대구교회에서 사역할 때입니다. 우리 교회 형제의 사촌 형이 그동안 우리 교회를 대적하다가 구원을 받고 주일 저녁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 교회 성도들이 몇 십 명밖에 안 되었는데, 그 형제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기뻤습니다.
간증하는 시간에 그 형제에게 구원간증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형제는 입이 많이 돌아갔는데 말을 할 때 더 심하게 돌아가서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안 했습니다. 처음으로 우리 교회 나왔는데 간증을 하라니까 그 형제가 굉장히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다음에 하겠다고 했습니다.
‘저 형제가 다음에 간증하려면 예배 올 때마다 간증 때문에 부담스러워 교회 오기 싫어지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간증을 오늘 좀 했으면 좋겠다며 그 형제가 간증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 형제는 처음에 한두 마디 인사만 할 마음으로 나왔지만, 어떻게 우리 교회를 만났는지부터 시작해서 25분 동안 간증을 했는데, 그날 교회 형제자매들이 모두 그 간증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후 그 형제는 예배시간마다 간증을 하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제가 말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때부터 그 형제가 누구에게든지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무척 행복했고 감사했습니다.

실험을 통해 사실을 믿듯

여러분,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실험을 통해 확실하게 믿게 됩니다. 어느 날 제가 학교에서 전자석에 대해 배웠는데, 그날 집에 돌아와 형님이 쓰는 전지가 여러 개 묶여져 있는 걸 보니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이 생각나서 얼른 못에 호일을 감아 전자석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걸 전지에 연결시키니까 자석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했지만 어느 날 형님에게 들켜서 그 다음엔 전자석에 손도 댈 수 없었습니다.
전자석에 대해 이론으로 배울 때는 그게 자석처럼 물건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줄 몰랐는데, 실제로 실험해 보니까 쇠붙이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배우지만 그 중 실험을 통해 ‘아, 이게 그런 거구나’ 하고 느끼면 그 지식이 확실히 자기 것이 됩니다.

내가 느끼는 것과 다를지라도

신앙에서도 성경을 이론적으로 알고 있다가 그걸 실제 삶 속에서 경험하면 쉽게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믿으려면 막연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구원받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내 모든 죄를 사했다는 것을 알지만 내 죄가 확실하게 사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으면 내가 죄를 범하니까 그래도 죄가 남아있을 거라는, 사단이 주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7~18)고 분명하게 기록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여전히 죄를 짓고 있고 마음에 죄가 기억나면서 양심의 가책이 일어나니까, 말씀은 그래도 마음에는 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면 혼돈이 생기면서 죄가 있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죄 사함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내 죄가 사해진 것은, 기도할 때 자신이 지었던 죄가 영화필름처럼 떠오르고 눈물이 흘렀다는 표적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를 보고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이 곧 하나님

이번 대구 대전도집회에서 어떤 부인과 신앙상담을 했는데, 그분은 자신이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죄에서 해방 받는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마음의 죄가 눈처럼 희게 씻어졌어요?”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마음에 죄가 있는데 어떻게 성령이 임하지요?” 그 부인이 대답을 못했습니다.
요즈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내 죄를 사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래도 나는 죄를 지으니까 죄인이라며 혼돈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현재 보고 느끼는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눈물이 흐르도록 기도하면 마음이 시원하고 후련하면서 ‘이 기도는 응답되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아무런 감동이 없고 냉랭하면 ‘이 기도가 응답되겠나?’라는 마음이 듭니다. 이처럼 자기가 확인해 보고 경험해 보고 하나님을 믿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게 아닙니다.
강도, 경찰관, 유명한 사격선수가 총을 쏘아도 총알이 나가지만, 어린아이가 쏘아도 총알이 나가듯이 성경 말씀 자체는 하나님이므로 성경에서 ‘죄가 사해졌다’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죄가 사해진 것을 믿으면 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내 죄를 기억치 않는다고 하셨으면 나는 기억이 나지만 주님은 기억치 않는구나’ 하며 자기의 느낌이나 생각과 상관없이 성경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겁니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 11:30)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열리고 감나무에서는 감이 열리듯이 생명나무는 생명을 맺습니다. 지혜는 생명나무인데 지혜로운 자가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지혜를 가진 자, 곧 생명을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통해서 사람들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 오라고 전도하지만, 제가 말을 잘해서 사람들이 오는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 같은 교회가 사람들에게 영적인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나오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죄 사함 받고 거듭날 수 있는 특별한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지혜인 생명나무를 우리 교회 가운데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제가 설교를 아주 잘하면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겠지요. 그런데 감동 그 자체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 자체가 사람 들 마음속에서 영적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생명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도 합니다. 지혜 자체가 생명나무인데 그 지혜는 장사 잘하는 지혜, 돈 잘 버는 지혜, 물건 잘 만드는 지혜, 살림 잘하는 지혜와는 다릅니다. 그 지혜는 영생으로, 죄사함을 통해서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말씀 한 마디를 믿는 게 중요해

예수님께서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눅 14:1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항상 말석에 앉았는데 그때마다 주님이 저를 보시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너, 말석에 앉았구나.” “예, 주님. 당신의 말씀대로 말석에 앉았어요. 주님이 저를 올라앉으라고 하시겠죠.” 참 놀랍게도 제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저를 높이지 않았는데도 주님이 저를 높여 주셨습니다.
한번은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하는 성경을 읽었는데, 그 뒤로 항상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것을 봤습니다. 때때로 제 마음에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면 두려웠습니다. 이처럼 말씀이 믿어지면 그 말씀이 정확하게 제 삶을 이끌어가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역사하시는 것을 확인해서 믿으려면 내 생각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 하실 때 내 생각에는 자리를 들고 일어나 갈 수 없지만,  주님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내 생각을 버리고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말씀을 따라 역사하시는 걸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많은 성경을 아는 것보다 말씀 한 마디를 믿는 게 더 중요합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

오늘은 다윗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블레셋에는 굉장히 큰 골리앗 장군이 나왔습니다. 골리앗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으로, 1규빗이 약 45cm니까 3m 정도 됩니다. 창 자루가 베틀 채 같다고 했으니까 길이가 4~5m 되는 창으로 한번 휘저으면 수십 명씩 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에 빠져 있었지만,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그는 창이 아닌 돌을 던져 골리앗을 넘어뜨렸습니다. 결국 다윗은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승리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없다고 했지만, 그는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지금까지 지키셔서 사자와 곰도 이기게 하셨으니 골리앗도 이길 거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시점은

 우리가 어느 시점에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나요? 그것은 믿음이 임했을 때입니다. 골리앗 장군이 나타났을 때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두려워했는데 두려워하지 않은 한 사람, 다윗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삶 속에도 골리앗 같은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빚이 있다고 해 봅시다. 지금까지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간신히 지내왔지만, 어느 단계에 와서 ‘더 이상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그때가 다윗이 골리앗을 만나는 때가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어떤 어려움을 견디다가 그 어려움의 극한 상황이 오면 아무리 믿음 없는 사람도 믿음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만한 믿음을 가졌듯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면 문제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골리앗’ 같은 문제가 있어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구원받고 거듭나게 됩니다. 구원받고 모든 죄를 사함 받았으면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함께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당면하고 있는, 골리앗 같은 문제가 여러분에게는 어렵지만 하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문제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부담을 이기려는 마음보다 부담을 피하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다윗도 골리앗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문제에 부딪치니까 하나님이 도우셔서 ‘골리앗’이라는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그처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

지난여름 서부 아프리카에서 IYF 월드캠프를 할 때 말라리아나 감기처럼 열 나고 기침하며 콧물이 나서 일단 말라리아 약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며칠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시차가 바뀌어서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수면제를 먹다 보니 약에 의지해서 잠자는 게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국내 수양회를 마치고 다시 동부 아프리카 월드캠프를 하러 케냐에 갈 때는 아예 수면제를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아 책을 보다가 ‘예전에 배가 아팠을 때 기도하고 믿으니까 나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러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땐 어쩌다 나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목사지만 성경 말씀을 안 믿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지금 이 말씀을 확실히 믿으면 오늘 밤에 잠을 잘 수 있겠다’ 라는 마음이 들면서 다시 말씀을 읽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잠이 안 오는데 잠자게 해주십시오. 잠을 잘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고 누웠는데 또렷또렷하던 생각이 다 없어지면서 잠이 와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이처럼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떠하든지 나를 믿지 않고 말씀을 믿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마음의 변화

호떡 장수가 일주일 동안 하루에 호떡 천 개를 팔면 오늘도 천 개가 팔릴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일주일 동안 하루에 천 개 팔렸다고 오늘도 천 개 팔릴 걸 기대하는 것은 인간의 계산법입니다. 우리는 그런 계산법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런 방법으로 역사해 주시길 원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백 개도 팔고, 만 개도 팔 수 있도록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경험과 판단이 실패임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사한 걸 깨닫고 믿도록 하시기 위하여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나는 의롭다’고 말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 인생에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마음의 변화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내가 네 속에 살아 일을 해. 내가 너와 함께 있어”라고 하시며 우리 속에 또 다른 일을 하십니다.

수양관 건축을 도우시고

한번은 김천에 있는 대덕수양관 별관을 짓는데 예비비까지 27억 원 정도의 예산이 나왔습니다. 그 당시 우리 선교회에 10억 원 정도의 재정이 있어서 17억 원이 더 필요했는데, 건축 담당 사역자들이 모여서 의논하기를 전국 교회에서 그 돈을 분담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형제자매들이 기도해서 응답 받아 헌금해야 하는데, 지역 교회에 부탁하지 않고 건축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프리카 전도여행을 가면서 형제들에게 수양관 평균 기온이 11월 하순에는 영하로 내려가서 얼음이 얼면 골조공사 하기 어려우니까, 늦어도 12월 초순까지는 골조공사를 마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니까 형제들이 나무만 옮겨놓고 아무 일도 안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다음 날 부천 성경세미나에서 말씀을 마치자 한 형제가 다리를 절며 제게 왔습니다. “목사님, 다리가 아픈데 기도해 주십시오.” “형제님, 어느 교회 다니세요?” “인천교회입니다.” “형제님, 무슨 일 하세요?” “목사님, 저 모르세요? 양천교회 빔 제가 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형제에게 대덕수양관 건축얘기를 했더니, 15일 정도면 빔을 제작할 수 있겠다고 했습니다. 그 형제가 와서 빔을 세우고 기초공사를 끝내니 바로 외벽이 올라가면서 건축 작업이 아주 빨리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 역사하시며 돕고 계신 것을 정확하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너는 게으르고 성경도 안 읽고 교만하잖아. 그러니까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 안 해’라는 음성을 들려 줍니다. 우리가 그런 음성의 영향을 받은 눈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판단하니까 믿음으로 달려가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믿었던 것처럼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삼상 17:45~46)
다윗은 골리앗 앞에 선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두려웠지만, 그는 ‘하나님이 분명 나와 함께하실 거야’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두려움 속에 있었지만, 다윗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에서 벗어났습니다.
두려움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윗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쳐 죽이고 이스라엘 전체에 기쁨과 소망을 주었듯이, 여러분이 다윗처럼 주님의 마음을 한가닥이라도 가지고 나아간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 이웃과 교회 안에서 여러분을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 속에 살아 계시는 주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기쁜소식선교회와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기쁜소식선교회 일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 소리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읍시다.
하나님은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슨 일을 만나건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여러분 속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만방에 보여줍시다. ‘하나님이 내 속에 살아 일하고 계신다’고 마음에 새겨 보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되길 바랍니다.

- 2010.10.24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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