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이 맛본 그 하나님을 맛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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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이 맛본 그 하나님을 맛보면
[사도행전 8장 26절 ~ 40절] 우리와 달리 환난 속에서도 담대히 복음 전해 - 316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0.07.0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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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을 벗겨 준 두 말씀

저는 지난주에 읽은 사도행전의 말씀이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23장에서 사도 바울이 천부장에게 잡혀 있는데,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유대인이 40여 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천부장에게 바울을 조사할 게 있으니 부르라고 해서 바울이 지나는 길에 숨어 있다가 그를 죽여 버리자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생질이 그 이야기를 듣고 바울에게 다 고하고,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천부장이 가이사랴까지 가는 창군 200명, 보병 200명, 마병 70명으로 바울을 호위하여 죽음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사람을 지키는 방법이 너무나 지혜로운 걸 보면서 성경에 사도행전이 없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싶었습니다.
그 뒤 28장에서 바울이 탄 배가 파손되어 멜리데 섬에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날이 추워 토인들이 피워준 불을 쬐다가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불 위에 놓았는데, 그 속의 독사가 뜨거워서 불에서 나와 바울의 손을 물고 매달렸습니다. 바울이 곧 죽을 줄 알았는데  안 죽고 독사를 떼어서 불에 태워버리자 토인들이 생각을 바꾸어 “그는 신이다”며 놀라워했습니다.
그 일을 통해 바울이 토인 추장의 병든 아버지를 고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 일은  바로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초전이었습니다. 이 두 말씀을 읽으면서 제 마음의 근심과 염려가 다 물러가 버렸습니다.

어려움처럼 보일 뿐

제가 지난 시절, 김천에서 집주인이 전셋집을 은행에 넘겨서 쫓겨나게 됐던 일, 군대에서 장갑을 잃어버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일 등 어려웠던 때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이 전부 복으로 끝났고, 그때마다 하나님과 제 마음이 더 가까워지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어려움이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어려움은 어려움이 아니라 축복을 위한 밑받침이라는 걸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셔. 이건 어려움으로 보일 뿐이지 절대 어려움이 아니야. 하나님이 허락하셨으니 분명 축복으로 바꾸실 거야’ 하는 믿음이 확실히 생겼습니다.

성경을 대할 때마다

저는 어제 오전 김천 대덕 IYF 수련원에서 열리는 주일학교 교사수련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오후에는 부산으로 가서 이번에 벡스코에서 열리는 IYF 월드캠프를 앞두고 자원봉사자 교육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 교회를 처음 접하는 800여 명의 대학생에게 마인드교육을 통해 성경이야기를 했는데, 학생들이 귀 기울여 잘 들었습니다.
지난번 몽골캠프 때에도 처음엔 학생들이 “이 행사가 종교행사인가, 성경을 펴고 그래?” 하며 불평했는데, 우리가 마음의 세계를 이야기하면서 캠프를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책이 없는 학생들에게 성경책을 선물로 주어 모두 요한복음 몇 구절을 세 번씩 읽게 하고 성경이야기를 했는데, 그들이 놀라워하면서 쉬는 시간마다 성경을 봐서 제가 감격했습니다.
제가 군대생활 했을 때엔 탈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저는 성경 말씀과 함께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군대에서 제일 어렵다는 이등병 교육생으로 한평생 살라고 해도 행복하겠다 싶었습니다. 나 자신에게는 평안과 믿음, 소망이 없지만 성경을 대할 때마다 내게 없는 평안과 믿음이 일어나고, 예수님 안에 있는 소망이 내 마음에 임하는 걸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지키고 계셨구나!’

올해 우리 선교회가 30개 나라에서 IYF 월드캠프를 합니다. 비행기 스케줄이 나오면 노트에 끼워가지고 다니는데, 사람들이 빡빡한 제 스케줄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일정을 다 감당할 수 있는 건강과 힘을 주시는 게 너무나 신기합니다.
1992년부터 제가 심장이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맥박이 10초 정도 멈추었습니다. 그 10초가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고함을 질러서 아내를 불러야 하나? 병원에 연락해야 하나? 누구한테 심폐소생술을 시켜서…’ 하며 그 짧은 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문 장로님이 미국에 계실 땐데, 세계 최고의 심장 전문의가 진단하기를, 심장으로 가는 전기가 옆으로 새어 치료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999년 8월 하나님이 제 심장을 고쳐주셔서,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3장에서 유대인들이 동맹을 해서 바울을 죽이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그 사실을 바울의 생질이 알게 해서 바울을 지켜 가이사랴까지 가게 하셨습니다.
또 바울이 독사에 물려 죽을 줄 알았는데, 안 죽으니까 사람들이 바울을 신이라 생각하는 걸 보면서 ‘하나님이 이런 방법으로 지난 수십 년간 나를 지키고 계셨구나. 내가 이런 하나님과 같이 있으면 불행도 다 행복으로 바뀌는구나!’ 하며 “이젠 내게 불행은 없다”고 담대히 말할 수 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

예전에 대구 파동에 살 때 경산에 있는 조폐공사에서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버스비가 없어 걸어 다닐 때가 많았고, 점심?저녁도 못 먹을 때가 참 많았지만, 조폐공사 성경공부를 마치고 영남대학교 종점까지 걸어갈 때면 가슴이 벅찼습니다. ‘야, 옥희가 그동안 고집 부리더니 오늘 드디어 구원받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음 주쯤엔 소영이가 구원받을 것 같아.’
버스를 타고 대구시내까지 와서 다시 파동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내려서 언덕을 올라가 집으로 들어가면, 제 아내가 아기를 안고 방문 앞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겁니다. ‘저 사람 마음 안에 이런 행복이 있을까? 이런 기쁨, 다른 형제자매들에게도 있을까? 이런 기쁨이 있는데, 내가 배 좀 고프면 어때?’ 세상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기쁨과 소망을 날마다 만들어서 제 마음에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남이 뭐라 해도 문제가 안 되고 어떤 문제가 닥쳐도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

어떤 분이 10년 전에 억울한 일을 당해서 저한테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10년이 지나 그분을 다시 만났더니 “목사님, 그때 아시죠? 그런 사람이 인간입니까?” 하며 아직도 억울해하는 걸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에게도 때때로 어렵고 슬픈 일이 있었지만, 그것이 제 마음에 남아있을 틈이 없이 하나님이 다시 기쁨과 소망으로 제 마음을 채우십니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슬픈데 슬프지 않고 괴로운데 괴롭지 않았습니다.
어제 부산에서 오후 4시 반에 교육을 마치고, 길이 밀릴 것 같아서 대전까지 KTX를 탔습니다. 옆 자리에 앉은 남자 분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차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조수석에 누가 앉아 있었어요?” 그분 차에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그분이 전화기를 들더니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데 굉장히 불안해 보였습니다. 평안하게 가다가 전화 한 통화로 그분의 마음이 다 뒤집어졌습니다.
저는 대전까지 두 시간 동안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손자와 이야기도 하면서 갔는데, 옆의 그분은 KTX 타고 혼자 조용히 갈 시간을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예수님의 손을 잡으면

사도행전 8장은 빌립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내려가는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빌립이 많은 환난과 고통, 핍박 가운데서 예루살렘에 더 있지 못해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그때 이미 스데반이 죽었고 남녀를 끌어다 옥에 가두는 핍박이 있어서, 빌립의 마음에도 분명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두려움이 빌립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습니다. 그 두려움이 빌립의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면, 빌립이 사마리아 온 성을 뒤집어 놓을 정도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살아계신 예수님이 빌립과 함께 계시니까 슬픔 속에서도 슬픔에 빠지지 않고 두려움 속에서도 두려움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이 빌립의 마음에 머물러 있지 않으니까 빌립이 담대히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입니다. 두려움 속에서 두렵지 않게 하시고, 슬픔 속에서 슬프지 않게 하십니다.   다른 사람은 환난과 가난, 두려움과 슬픔, 병과 고통에 빠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잡고 있는 순간 우리는 절대 거기에 빠지지 않고 참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얼어 죽지 않게 하시겠다!’

제가 거창 장팔리에서 살던 1964년 겨울은 너무나 추웠는데, 시멘트 벽돌로 만든 집에서 이불도 없이 겨울을 났습니다. 연탄이 없어서 불도 못 땠는데, 어느 날 저녁에 잠을 자다가 너무 추워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제 마음에서 진행되어 추운 겨울에 혼자 있다가 얼어 죽는 상상을 하였습니다.
그때 열다섯 살쯤 된 선주라는 학생 자매가 있었는데, 그 어머니가 한 번씩 김치를 담아서 선주 편에 보내곤 했습니다. ‘내가 얼어 죽으면 선주가 “전도사님, 김치 가져왔어요” 하며 왔다가 인기척이 없으니까 방문을 열어보고 내가 얼어 죽은 것을 알고는 온 교회 성도들이 울겠구나’라는 상상을 하니까 죽음의 두려움이 강하게 제 마음에 엄습해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려고 냇가에 갔습니다. 얼음이 꽁꽁 얼었는데, 그 밑으로 송사리 새끼들이 다니는 것을 봤습니다. ‘저 물고기,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얼음 밑에서도 안 죽게 하셨어. 하나님이 나도 얼어 죽지 않게 하시겠다!’
그 순간 삼일 동안 제 마음을 사로잡던 두려움이 싹 사라졌습니다. 그 뒤로 제가 위험한 일에 부딪칠 때가 많았지만 그때마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달라. 내겐 하나님이 계셔’ 하며 안심이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을 다듬어 가시고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이  어떻게 제 마음을 정확히 알고 꼭 맞는 성경 말씀을 기록하셨는지 놀랄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이야. 하나님이 아니면 이런 글을 쓸 수 없어!’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제 마음속에 들어와서 예전에 제가 계획했던 마음의 길, 더럽고 가증한 생각으로 꽉 차 있는 제 마음의 세계를 날마다 다듬어 가십니다. 어두움과 두려움을 제하시고, 밝고 깨끗하고 평화롭고 사랑이 넘치는 마음으로 날마다 바꾸어 가십니다.
지금도 사단은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과 멀어지게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마음의 세계를 받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단보다 크시고, 내 마음을 당신의 마음으로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으신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내 생각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도록, 고집을 갖도록 만들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제하시고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예수님과 연결되면

어제 제가 부산에 갔다가 어떤 대학 교수님을 만나 신앙상담을 했습니다. 그분이 이혼하고 난 뒤의 고통을 이야기했는데, 그분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이 왜 자살하는지 이해될 정도였습니다. 그날 ‘이분이 예수님 만나면 금방 해결되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고양 아람누리에서 열린 칸타타 공연 때 어떤 대학교수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부인은 이혼을 했는데, 법원에서 아들을 한 달에 한 번 남편 집에 보내라는 판결이 났습니다. 아이는 매번 남편 집에 안 들어가려고 발버둥치고, 남편은 강제로 그 아이를 끌고 들어가기를 몇 번 했습니다.
남편 집에 다녀온 뒤로 아이가 자꾸 무엇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처음에는 아이를 남편 집에 보내기 하루 전부터 고통스럽다가, 그 후로는 한 달 내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시간이 없어서 수양회 때 대덕수양관으로 오라고 하여 그분에게 예수님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착한 일하는 게 예수 믿는 거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님과 연결되는 겁니다. 지금은 그분이 부천교회에 나오고 있는데, 그때의 문제도 아름답게 해결되었고 아버지, 오빠 등 가족이 구원받아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성령을 가로막는 내 생각

참 많은 사람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예수님을 모릅니다. 그저 예수님을 좋은 분, 하나님의 아들로만 압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안다면 근심에 얽매이지 않고 만족하며 살 수 있을 텐데, 예수님을 모르니까 자기 생각과 방법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악과 근심을 이기고 두려움과 괴로움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사도행전에서 빌립에게는 주님의 마음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행 8:26) 하나님의 사자가 빌립더러 남으로 가라 했는데, 27절에 “일어나 가서 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빌립은 먼저 성령의 이끌림대로 갔지만, 우리는 그게 안 됩니다. ‘주님이 거기에 왜 가라고 하실까? 거긴 험한데, 나 지금 바쁜데, 이렇게 사마리아 사람들이 많이 구원받는데 어떻게 지금 갑니까?’ 하면서 우리 생각이 주님의 이끄심을 다 막으니까 빌립처럼 안 되는 겁니다.

나와 같이 거하시는데도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사모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 복된 사람으로 만들기 원하셔서 그 아들 예수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때 하나님이 우리 속에 역사하시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루셨는데,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돕지 않고 지키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와도 내가 당하려니까 힘든 겁니다.
만일 하나님이 살아서 내 안에 일하시고 나와 같이 거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무슨 염려가 되겠습니까? 그걸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만 섬기게 될 것입니다.
제가 더 늙어서 기력이 없어 잘 걷지도 못하고 설교도 잘 못하게 되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외형적으로는 가난해지고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내 마음속에는 늘 주님이 계셔’ 하며 주님이 제 노후를 준비하실 것을 생각하니 저는 평안합니다.
참 신기한 것은 제가 요즘처럼 많은 일을 할 때도 없는데 저는 예전보다 더 건강해졌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하나님의 손길이 저를 이끌고 계신다는 걸 강하게 느낍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어려울 때마다 일하시고

중국에서 한 선교사님이 복음을 전하던 어느 날 공안이 찾아와서 몰래 화장실에 숨었습니다. 부인은 나갔다고 했는데, 어린 아들이 나타나서 “아빠 화장실에 있는데” 하며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결국 선교사님이 추방을 당해 먼 도시로 갔습니다. 이제는 공안이 너무나 두려워서 아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몇 번이나 교육을 시켰습니다. “아빠가 목사님이라고 절대 이야기하지 마. 학교 선생님이 아빠 직업이 뭐냐 하면 회사원이라고 해. 어느 회사 다니느냐 하면 컴퓨터 회사 다닌다고 해.” “예.”
어느 날 한국어 시간에 북한에서 온 중국 선생님이 한국말을 북한식으로 “하나, 둘, 서이, 너이”라고 했습니다. 선교사님 아들이 “아니에요. 셋, 넷이에요” 하니까 아이가 귀여워서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너 아빠 뭐하시냐?” “회사원이에요.” “무슨 회사인데?” “컴퓨터 회사요.” “아빠 직책이 뭐야?” “직책이 뭔데요?” “회사에는 부장님도 있고 사장님도 있잖아.” 그러니까 “목사님이에요” 한 겁니다.
선생님이 네 아빠한데 가보자며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성경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얼마 전 일요일에 선생님 60명이 학교에 모였는데, 성경과 찬송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서 두 시간 있다가 다 돌아갔습니다. 목사님, 우리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일하시는 게 분명히 보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도 빌립이 맛본 그 하나님을 맛보면 두려움이 두렵지 않고 고통이 고통스럽지 않게 느껴지는데, 바로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사람이 갖지 못한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복음을 전하며 살기를 원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를 속여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은 부담스러운 마음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위해 살기를 주저하고 주님 때문에 어려움 당하기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면 세상을 다 잃어도 예수님은 잃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알면 예수님께 모든 것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에 우리를 복 되게 하십니다. 빌립은 목사도 아니고 장로도 아니지만,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했기 때문에 환난 속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편으로 달려가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도우십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작은 예수’가 되어 이 세상을 밝게 비출 빛이 될 줄 믿습니다.

- 6월  27일  주일 낮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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