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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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요한복음 6장 1절 ~ 15절] 안드레의 마음에 먼저 이루어진 믿음 - 2010.5.2 주일 낮 설교 - 30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0.05.0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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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행복한 이유

저는 목사가 돼서 참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그들이 변화되는 걸 보기 때문입니다. 어제 우리 교회에서 결혼식이 있었는데, 신랑의 부모님이 오랫동안 별거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양회 때  제가 그분들과 만나 교제를 나눈 뒤부터 그분들이 마음을 합해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어제 결혼식에서도 부모님과 신랑, 신부가 모두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그들의 행복에 참예한다는 생각이 들어 매우 기뻤습니다.
목사가 되면 좋은 것이 또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지난 한 주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과 우리 교회에서 대전도집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침 7시 30분에 식사하고 7시 50분경 체조경기장으로 갑니다. 목사님들과 신앙상담 하다가 오전에 말씀 전하고, 개인 상담 하고, 오후에 또 상담하다가 저녁 말씀 전하고, 집에 오면  밤 11시 입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돈 벌 생각을 하겠습니까, 사기칠 생각을 하겠습니까? 집회 때는 하루에 서너 시간씩 강단에 서 있으니까 다리가 부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성경이야기를 하는 동안 제 마음이 말씀으로 가득 차면서 제 속에 있던 두려움이나 염려가 다 사라집니다. 말씀이 제 마음에서 새롭게 일어나서 기쁨과 소망이 되는 겁니다.

말씀이 마음속에 있어서

여러분도 주일예배에 와서 한 시간 말씀을 들으면 교회를 나설 때는 예배 전에 여러분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던 어둠의 생각이 물러가고 빛의 생각이 그 마음을 장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주일 예배를 빠지면 세상의 염려나 근심이 여러분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기성교회에서 설교를 15분 정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속상합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듣다가 졸기도 하고 다른 생각도 하니까, 설교를 다 듣는 게 아닙니다. 설교 중에 제가 입원 했던 이야기를 하면 ‘우리 엄마가 입원했을 때…’ 하며 그 생각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군대 이야기를 하면 군에서 중대장 때문에 고생했던 일을 설교 끝날 때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 마음에 말씀이 없으면 문제만 남아 ‘이 문제 지겹다’고 하겠지만, 말씀이 여러분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 어떤 문제라도 ‘예수님이 도우시겠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실제로 문제인데도 문제가 안 되고, 고통스러운데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탈영에 이르는 ‘제대병’

제가 군 복무하던 시절에는 제대를 한 달 앞두고 탈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제대를 한 달 앞둔 사병을 ‘제대병장’이라고 부르는데, 제대병장은 아무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군대에서 일과시간에 근무하고 훈련하고 후배를 가르치면 괜찮은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24시간을 보내려면 매우 힘듭니다. 그러다가 ‘제대하면 집에 가서 뭐도 하고 뭐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만 마음이 먼저 집으로 가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군 생활을 못 견디고 도망간다고 합니다. 그걸 보고 ‘제대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군대 있을 때 휴일이 되면 중대장이 군인들을 집합시켜서 땅을 파라고 합니다. “1소대 여기, 2소대 여기, 3소대 여기” 하며 서로 경쟁을 시킵니다. 그러면 군인들이 투덜투덜 하면서 땅을 팝니다. 그 다음 일요일엔 그것을 메우라고 합니다. 군대에서는 한가한 시간이 나면 사고가 생기기 쉽습니다. 쉬면 마음이 집으로, 여자친구에게로 가니까 군대에서 못 견디고 탈영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기억하면

여러분, 마음이 거처할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우리 마음이 예수님 안에 머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성경 읽고 기도하고 예배당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 마음에 젖으면,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있어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면 잘나고 똑똑한 것 같지만, 그들의 마음이 고통과 근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수님을 기억하고 있으면 천 가지 만 가지 고민이 마음에서부터 정리가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 역사하시는데 그게 참 신비합니다.
그래서 저는 주일 예배 때 여러분에게 ‘착하게 살아라.  충성하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떤 문제가 닥치더라도 그때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기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걸 해결해 주실 거야’ 하면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문제들이 잠을 자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오는 평안이 여러분 마음을 사로잡게 됩니다.

‘마음 門’으로 말씀만 들어오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구원을 받았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聖殿)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아무 생각이나 들어오게 내버려 두지 말고, 이제 문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유혹이나 염려 등 다른 것은 못 들어오게 하고, 예수님만 자리 잡게 해보십시오 .
제 딸이 피아노를 치는데,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몇 시간씩 연습해도 실력이 느는 게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만 연습을 쉬면 대번 티가 난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월드캠프를 했을 때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는 하루 연습 안 하면 자기가 느끼고, 삼일 연습 안 하면 주변 사람들이 느끼고, 한 달 연습 안 하면 관객들이 느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속에 두려움과 근심, 유혹이 올 때,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들은 거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타락의 길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주일에  교회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이 여러분 마음속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두려움과 근심, 유혹과 죄를 물리쳐 주시기 때문에 전에 없던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빌립 vs 안드레오

오늘 요한복음 6장을 읽었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요 6:1) 갈릴리 바다는 둥근데 주변에 디베랴와 벳세다, 가버나움이 있고 건너편에는 거라사 등의 마을이 형성돼 있습니다.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는 아주 큰 경사지가 있습니다. 거기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었는데, 5천 명의 무리가 몰려들었습니다. 저녁때가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예수님이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빌립과 안드레는 예수님의 제자로 똑같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것도 보고, 38년 된 병자가 일어나 걷는 것도 봤습니다. 그런데 빌립의 마음 속에는 ‘자기’라는 존재가 꽉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천 명을 먹여야 할 문제 앞에서 자기 계산으로 해결하려니까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 마음에는 예수님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라는 존재가 컸지만, 형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을 따라 고기 잡는 것을 보면서 ‘참 놀랍다. 어떻게 저런 역사가 일어나지?’ 하며 그 마음에 예수님이 자리를 잡은 겁니다. 그래서  ‘이 오천 명이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없는 걸 예수님이 아시니까 예수님께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 속에서 먼저 이루어져

여러분, 아무리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도 먼저 재료를 다듬고 끓여서 요리를 합니다. 그것처럼 대부분의 일은 먼저 생각에서 만들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에서 도둑질을 하고, 어떤 사람은 생각에서 이혼을 하고, 어떤 사람은 생각에서 간음을 하고, 어떤 사람은 생각에서 공장을 만듭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 생각 속에서 먼저 형성된 뒤 실제로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 마음을 만드는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제 마음속에 예수님이 평안하게 거하실 수 있도록 아무 생각이나 막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때때로 저는 조용한 곳에서 의자에 앉거나 자리에 누워,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예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그러면 제 마음에 이런저런 문제나 어려움,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도, 제 마음이 예수님으로 채워져 있는 동안 예수님이 그 문제들을 이끌어가고 해결해 가시는 걸 참 많이 경험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시겠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을 받고나면 여러분을 통해 예수님이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단은 여러분을 통해 예수님이 일하시지 못하도록 여러분의 생각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유도합니다. 여러분이 ‘나는 믿음이 적어. 이 문제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자’ 하면 예수님은 일하실 수 없습니다. 만일 어려운 일이 잘 안 풀리면 그냥 예수님께 맡겨놓고 두고 보십시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는데도 오 천 명을 먹여야 하는 문제를 두고, 빌립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는 백 명쯤되고, 저기는 백 명 넘어. 남자만 한 오천 명 되겠다. 여자 수는 남자보다 많은 것 같은데 만 명. 어린아이들은 삼천 명? 한 데나리온 가지고 떡을 사면 몇 명 먹을 수 있을까? 백 명으로 잡으면 이백 데나리온으로는 이천 명. 아, 안 되겠는데. 그러면 조금씩 줘도 이백 데나리온으로는 부족하네.’ 자기 머릿속에서 자꾸 문제를 해결해 나가니까 ‘각 사람이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똑같은 입장이지만 안드레는 달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예수님이 해결하셔야지.’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 개를 손에 들고는 그 문제를 예수님과 연결하는 쪽으로 생각을 이어갔습니다. ‘우리는 보리떡 다섯 개를 하나씩 먹으면 끝나지만, 예수님은 이걸로 어떻게 일하실까?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분이라면 이것으로 오천 명 먹이고도 남을 수 있게 하시겠다’는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께 형벌을 받을까봐

예전에 이헌목 목사 아버님께 복음 전할 때였습니다. 우리 교회 다니던, 이헌목 목사 사촌형이 “작은아버지가 암에 걸려 이제 얼마 못 사신다”고 해서 복음 전하러 같이 갔습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불교를 믿다가 이제 죽음 앞에서 불교를 버리면 부처님께 형벌을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 속에 있었습니다. 그 형제가 “작은아버지, 예수님 믿고 하늘나라 가셔야 합니다” 하니까 그분이 벌떡 일어나시더니 “내가 이 자리에서 죽어 지옥을 가더라도 너 믿는 예수 안 믿어!” 했습니다. 그날 우리는 쫓겨났습니다.
그 다음날 우리가 다시 갔는데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계십니까?” 방 아랫 아랫 목에 누워계시는데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이제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지?’ 하는데, 그분이 벌떡 일어나시더니 성큼성큼 제게 걸어오시는 겁니다. 한 대 때리려는 줄 알았는데, 그분이 제 손을 덥석 잡더니 “목사님 살고 싶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했습니다. 그날 밤 그분은 죄를 사함 받고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마음에 일하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로도

저는 전도를 하면서 그런 걸 참 많이 봅니다. 한 사람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때 사단이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방해하는데, 예수님이 그 사람 마음을 바꿔주니까, 제가 한두 마디만 이야기해도 구원을 받는 겁니다. 제 마음속에 계신 예수님이 제 마음뿐 아니라 제가 전도하는 상대방의 마음에도 일하시고, 우리 가정과 교회 안에도 일하시는 게 정말 신기합니다.
안드레의 마음에도 예수님이 계시니까 그도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로 어떻게 일하실까 하고 계산해 봤습니다. ‘이 문제 가지고 예수님께 나가면 예수님은 분명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어.’ 안드레가 그 떡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갔습니다. 안드레는 “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예수님과 내게, 그 아이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는 게 아니라,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하는 겁니다.
그는 보리떡 다섯 개로 이 많은 사람을 먹이려고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예수님이 역사하신다면 이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음이 있겠다’는 마음이 이미 안드레에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안드레의 믿음처럼

여러분에게 병이 있습니까? 삶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가정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이런저런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구원 받았다면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시니까 그 문제를 예수님과 의논해 보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여러분 마음에 안드레처럼 ‘보리떡 다섯 개로도 예수님은 오천 명 넘는 사람을 먹일 수 있다’는 믿음을 일으킬 겁니다. 안드레는 그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왔고, 예수님은 안드레의 믿음대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귀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베데스다 광야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빚이 있는 사람, 양식이 없는 사람, 지혜가 없는 사람, 평안이 없는 사람 등 길이 없는 사람들에게 길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참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문제를 두고 빌립처럼 자기 생각으로만 계산하지, 예수님이 문제를 해결하실 거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이 일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외임리’까지 이끄시겠다!

제가 1968년 제대하고 어린이 전도팀을 만들어 다섯 곳의 교회에서 어린이 여름 성경학교를 열었습니다. 세 번째로 ‘남사’라는 곳의 남사중학교에서 성경학교를 하고, 그 다음 ‘외임리’라는 곳으로 가야하는데, 그곳은 남사에서 4,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튿날 아침부터 외임리에서 집회를 하려면, 남사에서 저녁집회를 마치고 그날 밤 외임리로 출발해야 했습니다.
우리 팀은 형제 둘과 자매 셋, 이렇게 다섯 명이었는데, 차가 없어서 옷 보따리와 가방을 무겁게 들고 길을 안내하는 그 동네 청년과 함께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외임리에 4년 전에 한번 가본 적밖에 없어서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그래서 길에 서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길을 인도하셔서 외임리까지 잘 가게 도와주세요.”
문득 ‘우리가 외임리에 가면 새벽 두세 시쯤 되는데, 그 밤중에 전도사님 집을 어떻게 찾아가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곧 ‘예수님이라면 능치 못하심이 없는데, 누군가 우리를 마중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예수님이 분명 누군가를 마중 나오게 하실 거야’ 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외임리에 갈 때 누군가 우리를 마중 나오게 해 주십시오.” 저는 확실히 믿었습니다. 새벽 세 시가 다 되어서 우리는 외임리에 도착했습니다. 그 밤중에 동네 입구 큰 정자나무 옆에서 청년 서넛이 놀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성경학교를 하려던 바로 그 교회 청년들이었습니다. 교회의 노인 한 분이 어제 저녁 예배를 마치자, 곧 세상을 떠나실 것 같아서 교회 형제자매들이 모두 모여 할아버지 임종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잠깐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우리를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구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또 우리가 집회하는데 장례를 치르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되어서 ‘하나님, 우리 집회 중에 제발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게 해 주십시오 ’ 하고 기도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집회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그 할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해결해

저는 마음에서 예수님을 자주 만납니다. 제 마음속에 근심과 두려움, 염려가 있을 때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문제를 풀어갑니다. 처음에는 절망하다가도 곧 ‘예수님이 이것을 해결하시겠다’는 전에 없던 생각이 일어납니다.
우리 선교회 진영우 장로가 어느 날 과학잡지에서 ‘DNA로 세포를 배양하여 택솔을 추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논문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래,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하신다면 되겠네’ 하는 마음이 들어 식물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식물줄기세포를 추출하고 배양하는 기술로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천년 전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님 안에 계셔서 예수님을 통해서 일하셨던 것처럼, 오늘 이 시대엔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마음속에 계셔서 여러분 마음에 동일하게 일하십니다. 이런저런 문제를 예수님과 더불어 해결해 보십시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내 안의 안의 예수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은 이렇게 하시겠네’ 하며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 시대에도 예수님 당시와 똑같은 역사들이 여러분을 통해 일어날 줄 믿습니다.

- 2010.5.2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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