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 마음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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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 마음이 아니야!”
[마태복음 18장 25절 ~ 38절] 탕감해 주신 임금님의 마음을 받아야 -2010. 3.28 주일 낮 말씀 - 303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0.04.0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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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쁨을 아내도 알까?’

예전에 대구에서 사역할 때 경산 조폐공사에 성경공부를 하러 갔었습니다. 그때는 삶이 어려워서 대구 파동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반월단까지 가서, 다시 그곳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영남대학교 정문에 내려서 조폐공사까지 3km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갔습니다. 그러면 자매들이 퇴근해서 나오는데, 영남대학교 근처에 안동 수몰지구에서 옮겨온 서원이 있어서 거기서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둘러앉아서 성경을 읽고 간증도 하고 찬송도 부르다가 밤늦게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직원들이 하나 둘씩 구원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옥희가 구원받았다. 소영이도 곧 구원을 받겠구나.’ 돌아오는 길은 피곤하기도 했지만, 여직원들이 구원받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영남대학교에서 막차를 타고 반월단에 내려 다시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오면 거의 밤 12시 가까이 되는데, 아기를 안고 꾸벅꾸벅 졸면서 저를 기다리는 아내를 보면서 ‘저 사람이 내가 가진 이 기쁨을 알까? 똑같이 어려움을 겪어도 나는 밖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복음을 전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내는 힘들 거야’ 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목사로서 얻는 기쁨

사람들이 저에게 “목사님, 옛날에 고생 많이 하셨지요?”라고 하지만, 저는 고생했던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수원교도소 집회, 여수 애양원교회 집회, 부산 무궁화관 집회,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집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아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그렇게 말한 사람들에게 ‘목사가 되면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데, 우리 성도들은 목사 안 되고 무슨 재미로 이 어려운 세상을 사나’ 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
예컨대, 의사들은 환자를 몇 달, 몇 년에 걸쳐 치료하지만 낫는 사람들도 있고 잘 낫지 않아 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의사가 몸을 치료하는 것처럼 저는 목사로서 영혼을 치료하는데, 이 일은 예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의사보다 훨씬 성과가 있습니다. 의사가 밤낮 얼굴 찌푸리고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저는 구원받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난다는 기쁨의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전 세계를 다니며 집회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세계에서 제일 좋다는 관광지에 가보고, 그곳에서 제일 좋다는 요리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것들이 별로 기쁘지 않습니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 하는 찬송처럼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사했다는, 몇 마디 안 되는 짧은 말씀이 내 마음에 있는 죄의 두려움과 고통을 다 물리쳐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마음이 제 안에 살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마음은 제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손해를 보았지만

제가 대전에서 사역할 때 한번은 대구에서 집회를 마치고 밤 10시쯤 돌아가는데, 고속도로 오르막길에서 트레일러가 시속 40km로 제 앞에 가고 있었습니다. ‘내일 할 일이 많으니 빨리 가서 자야 하는데’ 하며 답답한 마음으로 한참을 뒤따라가고 있었는데, 트레일러 뒷바퀴에서 돌이 튀어 제 차 유리창을 때려 금이 갔습니다. 순간적으로 ‘저 차를 잡아서 유리창 값을 받아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트레일러를 세우고 운전수에게 “당신의 트레일러 바퀴에서 돌이 튀어서 내 차 유리가 깨어졌으니 물어내야 돼요” 한다고 해서 “얼마면 돼요? 오십 만원이면 돼요? 자, 가져가요” 할 사람은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뒷바퀴에서 돌이 튄 걸 느낄 수 있는 트레일러 운전수는 없으니까요. 돈을 받아내려다가 오히려 싸움이 될 것 같아서 그냥 가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이건 내 마음이 아니야”

다음 날 어떤 형제로부터 제가 전날 겪었던 것과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강변도로에서 8톤 트럭이 지나가다 돌이 튀어 승용차 유리창이 깨졌는데, 그것 때문에 승용차 운전수와 트럭운전수가 내려 3차선에서 “돈 내놔라” “안 된다” 하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버스가 앞에 서 있는 트럭을 피하려다 차선을 바꿨는데, 그 옆에 있던 트럭 운전수와 승용차 운전수를 그 자리에서 쓸어버려 두 사람이 즉사했답니다.
예전의 저는 남한테 지기를 싫어했기 때문에, 그날 저녁 그냥 그렇게 지나온 것은 제 마음이 아니 었습니다. 제가 구원받고 난 뒤에 자주 느끼는 것은 세상 어디에서도 느껴볼 수 없는 예수님의 사랑과 평안이 제 마음을 꽉 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이버 강의를 준비하면서

이번에 마하나임사이버신학교를 개교했는데 2,500여 명이 접수 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제 2,500여 명의 제자를 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난 한 주는 하루 3시간씩 강의를 녹화했습니다. 제가 녹화해야 할 시간이 80시간 정도이기 때문에 다음 주에도 한 주 내내 녹화해야 합니다.
이번에 제가 강의한 과목은 ‘예수학’인데, 그 제목을 붙인 이유는 신학 과목에 조직신학, 신·구약개론, 종교철학, 교회사는 있지만 ‘예수학’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이야기할까 생각하다가 제1과를 ‘예수님이 하신 비유’로 잡았습니다. 비유는 예수님이 직접 만든 이야기로 비유 속에 예수님의 마음이 가장 깊이 들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의 녹화를 하다 보면 성경 이야기와 비슷하게 흘러가는 제 마음에 대해 간증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제 마음이 예수님께 젖게 됩니다. 그리고 ‘신학생들이 강의를 들으면서 예수님을 만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행복해지기도 합니다.

나환자촌 집회를 가기 전

예전에 제가 나환자들이 모이는 경북 영천 서광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집회 초청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집회 가기 사흘 전 새벽에 잠이 깼는데, ‘나환자촌에 가면 잠을 어떻게 잘까? 같이 자자고 할까, 따로 자라고 할까? 음식은 어떻게 먹을까? 잘못하다 문둥병이 걸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염려가 제 마음에 가득 찼습니다.
일어나서 예배당에 들어가 기도를 드렸는데, 놀랍게도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 집에 가셨을 때” 하는 마가복음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 거룩하고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주님이 문둥이 시몬의 집에 들어가셨는데, 나같이 천한 인간이 무얼 주저하나. 문둥이가 따로 있나. 나도 문둥병 걸리면 문둥이야’ 하는 마음을 주님이 주시니까 나환자를 끌어안고 입을 맞춰도 아무런 거리낌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절대로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인간이야. 나는 나밖에 모르고 남들 앞에 잘나 보이고 싶은 인간이야.’ 저는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드디어 나환자촌에 가서 집회를 했습니다. 그들과 같이 먹고 자고 목욕도 했습니다. 그곳 나환자 목사님이 “문둥병 걸린 뒤에 사람 대접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박 목사님한테 처음으로 사람 대접 받았다”면서 우셨습니다.
집회가 끝나갈 때쯤 나환자들이 저도 나환자일거라며 수군거렸습니다. “목사님, 이제 솔직히 다 얘기하세요. 다 알고 있으니까요.” “뭘 이야기하라고 그래요?” “괜찮아요. 우리끼리 있을 때 이야기하세요.” “뭘요?” “목사님도 나환자 맞죠?” “문둥병은 걸린 후 3년 뒤에 나타난다고 하니 3년 뒤에 가르쳐 줄게요. 그런데 아직은 아니예요.” 나환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내 죄가 사해진 것을 믿으면 예수님은 당신이 가지신 의와 지혜,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고,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쓸 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쓰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는 예전에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고 옥에 가두고 매질했는데, 내가 어떻게 성도들을 그리워하게 되었을까? 이건 내 마음이 아니야.’ 바울 속에 예수님의 마음이 흐르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말씀이 내 생각을 이기고

저도 처음에는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치 아니하리라.”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했다”는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내 죄가 씻어졌다고? 아니야. 나는 죄가 많아. 나는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쳤어’ 하며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죄가 마음을 눌러서 신앙생활이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마음과 다른 말씀 한 마디가 제 눈에 비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는 내 죄가 눈처럼 씻어졌고 주님이 내 죄를 기억치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네.’ 살아있는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면서 제 마음에 죄인이라는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부딪혔지만, 어느 날 말씀이 제 마음을 이겨버렸습니다. ‘나는 죄를 지었고 악을 행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내 죄를 씻은 게 확실해. 하나님의 말씀에 죄가 씻어졌다고 하면 씻어진 거야. 예수님이 내 죄를 기억치 않는다고 하면 기억치 않는 거야. 내 마음에 죄가 있는 것 같고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것 같아도 죄가 씻어진 게 사실이야!’ 하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주님이 붙드시지 않았더라면

여러분이 사단의 말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마음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주님과 가까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마음이 여러분에게 생기면서 여러분이 갖지 못했던 세계 속으로 이끌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과 평안, 소망과 기쁨을 불어 넣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면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속에 흐르고 우리 마음이 하나님 속에 흐르게 된다는 거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는 사랑과 평안, 소망과 기쁨이 우리에게 흘러들어 옵니다.
제가 처음 경남 합천의 압곡동교회에서 사역할 때 하나님이 제 마음을 잡아 주시지 않았더라면 그 춥고 배고픈 데서 도망쳤을 겁니다. 그 후 경북 김천에서 집 문제 때문에 어려울 때도, 그리고 몇 년 전에 강남교회 예배당 문제로 어려웠을 때도 하나님이 저를 붙들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인간적인 방법을 쓰면서 마음이 세상으로 흘러갔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 앞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마음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참 많았는데, 저의 부족함을 아시는 하나님이 그때마다 제 마음을 지우시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덮으셔서 하나님이 의를 이루시는 것을 볼 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모든 빚을 탕감 받은 종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18장에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어떤 임금이 회계를 하는데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왔습니다. “너의 빚을 당장 갚거라.” 빚진 자가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벌벌 떨면서 “예, 갚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너는 빚을 갚을 능력이 안 되는 것 같으니 당장 네 몸을 팔고 네 아내와 아들, 딸까지 가진 건 모두 팔아서 빚을 갚거라.”
종이 빚을 졌지만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자기뿐 아니라 아내와 아들, 딸까지 팔려간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빚진 종이 “내게 참아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임금님은 빚을 받아야겠다는 마음도 있지만, 그분에게는 긍휼 긍휼 과 자비가 있기 때문에 빚진 종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임금님 마음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종의 모든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종은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는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어떻게 일만 달란트 손해를 보면서 나 같은 인간에게 빚을 탕감해 줄 수 있을까? 정말 감사하다’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그 다음에는 ‘이제 종으로 안 팔려가도 되니 아내와 헤어지지도 않고 사랑하는 자식들과 한 집에서 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지?’ 하는 마음이 들자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 소식을 먼저 말하고 이제 좋은 집 마련해서 잘 살아야지’ 하는 마음에만 사로잡혔습니다.

임금님의 마음을 받았다면

그가 탕감 받은 ‘달란트’는 무게의 단위입니다. 한 달란트가 금 42kg이니까 일만 달란트는 42만kg, 420톤이 됩니다. 빚을 탕감 받은 종은 기뻐하면서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러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길에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엄청난 양의 빚을 탕감 받았지만 자기에게 백 데니리온 빚진 동관을 붙잡았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그 당시 유대인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니까, 100일 품삯 정도 해당되는 빚이었습니다.
만약 그에게 ‘나같이 나쁜 놈을 용서해 주신 임금님이 정말 감사하다. 나도 임금님이 가졌던 저 마음을 한번 갖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네, 잘 있었는가?” “잘 있었네.” “자네, 나한테 백 데나리온 빚진 거 알아?” “그걸 모를 리가 있나?” “안 갚을 거야?” “조금만 기다려줘. 곧 갚을게.” “자네 오늘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임금님이 일만 달란트를 다 탕감해 주셨어. 내 마음 같아선 절대로 그 빚을 탕감해주지 않고 악착스럽게 받아 낼 건데, 임금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빚을 전부 탕감해 주셨어. 그분은 그런 마음을 가졌으니까 임금님이 됐고 난 나 자신 하나밖에 모르는 마음을 가졌으니까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됐잖아. 이제는 그분을 닮고 싶어. 그래서 백 데나리온 탕감이다!”
“무슨 소리야? 내가 갚아야지.” “이 사람! 나도 임금님 한번 닮아 보려는 거야.” “고맙긴 하지만…” “이 사람아, 내가 탕감이라면 탕감이야. 임금님도 탕감해 줬는데 내가 백 데나리온 탕감 못해주겠어? 날 좋을 때 우리 막걸리 한 잔 하세. 잘 가게나.”

자신을 믿는 자의 마음

그러나 일만 달란트 빚진 자는 가족들과 헤어지지 않고 산다는 게 너무 좋아서 그쪽으로 마음이 쏠린 나머지 탕감해 준 임금님의 마음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났는데, 앞으로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 백 데나리온을 받아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돈 내놔.” “곧 갚을게.” “쓸 것 다 쓰고 언제 갚아? 무덤에서 갚으려고? 당장 갚아!” “조금만 기다려 주게.” “내가 보니까 자네는 빚 갚을 의사가 없어. 그냥 미루다가 떼어 먹을 것 같은데. 안 되겠어, 감옥에 가야 돼” 하고 감옥에 처넣어 버렸습니다.
구원받은 후 우리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작용합니다. ‘내가 이 시대에 안 태어났으면 어떻게 이 복음을 들었을까? 하나님이 날 이끄셔서 이 복음을 듣게 하셨구나. 참 감사하다.’ 그러면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 안에 흘러 들어옵니다. 그러나 때때로 어떤 형제자매들이 자기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는 것을 보면 ‘저분은 아직 자기를 믿는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예수님이 나 같은 인간을 위하여 피를 흘리시고 가시관을 쓰신 걸 생각하면 내 생명을 다 바쳐 주님을 섬겨도 부족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키워나가면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육으로 흘러가는 마음을 선택한 것처럼, 참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마음을 버리고 세상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살면서 주님을 섬기려고 하면 예수님의 마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환난을 겪거나 재앙이 닥칠 때 문제가 됩니다.
예수님과 가까운 사람은 어려움이 있어도 ‘예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믿음이 생기고 주님이 도우시는 것을 보면서 믿음이 점점 자라납니다. 반대로 육으로 흘러가다 재앙을 만나면 예수님과 멀어져 있으니까 인간적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에 대전도집회가 있으니까 하루 금식하면서 기도해 보자. 다른 것은 못해도 신문 전단지로 전도 한번 하자’며 주님이 주신 귀한 마음을 키워나가십시오. 그러면 실제로 예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복음을 위한 삶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마 18:32~33) 하신 말씀은 ‘내가 일만 달란트 빚진 것을 탕감해 줬으면 그 마음을 받아 살아야 하는데, 넌 여전히 일만 달란트 빚진 마음으로 살면서 긍휼 긍휼 을 베푼 내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러니 넌 감옥에 가야해’라는 의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귀한 주님의 사랑을 잃어버리고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다가 하나님이 섭섭해 하시는 사람이 될까 두렵습니다. 먹고 쓰고 입되,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과 복음을 생각한다면 주님의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 속에 오래 머물러 주님으로부터 오는 평안, 기쁨, 사랑 속에 빠져 사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 2010. 3.28 주일 낮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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