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믿어 멸망을 초래한‘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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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믿어 멸망을 초래한‘사울’
[사무엘상 15장 1절 ~ 9절] 내 모든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어야 - 2010. 3.21 주일 낮 말씀 - |302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0.03.2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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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참 쉽다는데…

여러분, 우리가 자꾸 이야기하는 것 중에 신앙은 참 쉽다고 한 게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신앙의 자세가 갖춰지면 신앙은 참 쉽지만, 그렇지 않을 때 신앙은 너 무나 어렵고 힘듭니다. 때때로 복음의 일을 하면 서 만난 사람들 중에 신앙 때문에 어려워 하다가도 어느 어느 단계를 넘고 나서 신앙이 쉽다고 느끼는 걸 봅니다.
제가 성경을 창세기부터 쭉 읽어가다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사실을 가르치고 싶으셨구나! 우리가 이런 것을 잘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저는 구원받기 전 장로교회를 다녔는데, 어느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선 ‘나 자신의 모습 ’을 발견 한 적이 있습니다. 그전에는 제가 정말 착하고 믿음 좋고 잘난 사람 사람 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악하고 야비한 인간임을 보여 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후 ‘내가 내 생각을 따라가면 망하겠구나’ 하는 결론이 나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저 자신을 믿지 않고 비울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부터 놀랍게도 성경이 보이고 기도가 달라지면서 제 삶도 변했습니다.

‘자기’라는 존재에 매여

제가 구원받은 1962년 그날 이후 50년 가까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그들이 공통적으로 ‘자기’라는 존재에 매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 그들 신앙의 문제는 자기 생각이나 관념에 꽁꽁 묶여서 허우적거리다가  더 깊은 신앙의 단계로 들어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잠자리가 거미줄에 걸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해 날개를 퍼덕이다가 힘이 빠져서 거미 밥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할 때면 안타까워서를  자기를 버려라, 자기를 믿지 말라’고 자꾸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읽어보니까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고 선한 일을 행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한 것을 많이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두 가지 길

오늘 읽은 사무엘상 15장을 보면 사울과 다윗이 나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야곱과 에서, 다윗과 사울, 요셉과 형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등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두 사람의 결과를 자세히 비교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우리가 지금 다윗과 같은 신앙을 한다면 앞으로 다윗처럼 살게 되고, 반대로 사울과 같은 신앙을 한다면 장차 사울처럼 된다는 걸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이 성경에서 하나님이 처음에 사울을 왕으로 택했을 때 사울은 키도 크고 인물도 잘생기고, 모든 면에서 남보다 뛰어난 상태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반면 다윗은 형제들 가운데서 가장 못났고 아무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는 형편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라고 해서 선지자 사무엘은 이새의 집에 갔습니다. 이새의 아들을 전부 다  데려 오라고 해서 그들을 보았는데도 하나님이 기름 부을 자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당황했습니다.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그를 데려 오라.” 다윗이 양을 치다 헐레벌떡 뛰어와 사무엘 앞에 서니까 하나님이 “이 아이가 맞다.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늘 부족했기 때문에

제가 구원받고 선교학교에 갔는데,  우리를 가르쳤던 쳤던 딕 선교사님이 나중에 “옥수 너는 처음 왔을 때 안 될 것 같아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냥  놔뒀다”고 하셨습니다. 선교학교를 마쳤을 때도 , 다른 사람은 전도지로 파송받아 갔는데 저만 아무데도 오라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전 처음 경남 합천 압곡동에 전도하러 갔던 기억이 나서 그곳으로 처음 사역 하러 갔습니다.
압곡동에 살면서 제 기억에 ‘내가 잘했다’ 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늘 다윗 같았습니다. 설교도 못했고, 성경도 못 깨닫고, 전도도 못했습니다. 그 후 장팔리에서 사역할 때도 구원받은 사람이 많이 일어나긴 했지만, 하나님은 제게 ‘내가 못한다’는 것을 많이 보게 해주셨습니다.
다윗은 항상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하나님이 다윗에게 보여주는 말씀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다윗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사울은 잘나고 용맹스럽고 남들 보기에 그럴 듯한 왕이었습니다. 사울이 하는 모든 것을 사람들이 인정해 주니까 사울은 자기를 믿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 대적 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 그들 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삼상 15:2~3)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대충 안다는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가진 채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하게 말씀하셨는데, 사울은 ‘대충 다 죽이라고 하셨구나’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사울의 마음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남녀, 소아, 젖 먹는 아이, 우양, 약대, 나귀를 죽이라고 하셨어’ 하고 그대로 입력되어야 하는데, 자기 생각이 있으니까 대충 입력된 것입니다. 이 여섯 가지의 ‘6’이라는 숫자는 인간, 즉  육신을 가르킵니다.

신앙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육신에서 나오는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고 로마서 8장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내가 왜 하나님의 법에 굴복 할 수 없어?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면 되지. 성경 읽고 기도하면 되지, 왜 안 돼?’ 합니다.
하나님은 육체가 없어서 종을 세워 일하시기 때문에 사울을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가서 아말렉을 진멸하라.” 아말렉은 우리 육신을 가리킵니다. 사울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세운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왔을 때 지금까지 사울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불문하고 그 말씀이 마음 안에서 왕 노릇을 해야 됩니다. 그 말씀이 자기 생각과 생활을 이끌어야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사울의 마음에 들어 왔지만, 사울의 마음 전부를 지배하지는 못했습니다. 사울의 마음 안에는 자기 생각도 존재했기 때문에, ‘이 기름진 양과 소를 죽긴 너무 아깝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다’는 자기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방향으로 사울을 끌고 갔습니다. 신앙생활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부인(否認) 거쳐야 

저는 예전에 나환자촌 집회를 하면서 많은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복음 듣고 구원받으면서 기뻐하며 말씀은 듣지만, 그 다음에 ‘나를 부인해야 한다. 내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신앙의 단계에  들어가면 다 어려워하며 저와 멀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참 많은 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했지만 죄 사함 받은 그들 속에 하나님이 일하시기 위해서는 분명히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몸 안에는 거부하는 DNA가 있다고 합니다. 신장을 이식할 때 똑같이 사람의 신장이라도 체질과 혈액형이 맞지 않으면 몸에서 거부합니다. 수혈할 때도 반드시 같은 타입의 피를 넣어줘야 삽니다. 마음의 세계도 ‘하나님의  타입’과 ‘인간의 타입’이 있는데, 이 두 가지는 서로 서로 다릅니다.
여러분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아무리 선하고 진실한 것 같아도 하나님과 원수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열심히 충성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 거든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생각 위에 말씀을 받으니까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컨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삼상 15:13) 사울은 자기의 관념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말렉을 다 진멸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사울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남녀와 우양도 죽이고, 약대와 나귀도 죽이고, 어린아이와 젖먹이도 죽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처럼 하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대로 하지 않았는데도 사울의 생각에는 ‘난 하나님 말씀대로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난 하나님 믿는데 왜 하나님은 내게 역사하지 않지?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왜 하나님은 날 돕지 않지?’ 하지만, 자기 생각을 부인하는 단계를 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같은 마음이 되지 않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깔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나 육신을 용납하지 않으시지만 여러분은 죄나 육신을 용납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나는 믿음이 없어, 그러니까 지금은 믿음으로 안 해도 돼. 난 이러니까 전도 안 해도 돼. 교회 봉사 안 해도 돼’ 하며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이 원하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없으니까, 자기 마음에 끌려가게 되는 겁니다.
 

정확히 자기 실체를 본다면

여러분이 신앙생활 하면서 정확하게 자신을 바라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에게 관대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하면 자기가 얼마나 추하고 악하고 거짓된지, ‘내가 내 생각을 따라 살면 망하겠다’는 걸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한양으로 가다가  산 속에서 해가 졌습니다. 산에 호랑이도 많아 겁이 나는데 저만치 불빛이 보여 따라 갔더니 산중에 너무나 예쁜 처녀가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첫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이 아가씨하고 결혼하면 좋겠다.’ 지나가는 손님인데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더니 아가씨가 들어 들어 오라고 하면서 밥상까지 맛있게 차려왔습니다. ‘요리 솜씨도 좋고 인물도 예쁘고, 세상에 이게 웬일이냐. 어떡하든 이 아가씨를 내 아내로 삼아야 돼. 이건 하늘이 준 기회야.’
밥을 먹고 나자 그 여자가 밥상을 들고 나가는데 치맛자락 사이로 여우꼬리가 보였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몇 백 년 묵은 여우가 둔갑해서 처녀로 변했구나. 오늘 밤 잠든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겠지. 저걸 어떻게 죽이고 내가 살아남지?’ 정확하게 그 여자의 실체를 보고 나면 아내 삼고 싶던 마음은 어느 새 다 떠나가고 살겠다는 마음밖에 안 드는 겁니다.
우리 조상 아담이 사단의 말을 받아들인 후, 사단이 우리 마음과 한마음이 되어 계속해서 추하고 악하고 교만한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그 생각을 가지고는 절대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거나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말씀과 다른 자기 기준으로

여러분은 자기 기준으로 ‘난 이래서 이 정도 정도 는 용납해도 돼’ 하는 부분이 많지만, 그 기준을 버리고 예수님이 내 인생을 주관하시고 이끄시도록 해야 합니다. 사울은 자기를 믿는 마음이 있어서 그렇게 못하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소와 양과 기름진 것을 남겼습니다. ‘난 하나님 말씀 순종했어. 소도 죽이고 양도 죽였어. 그런데 저 좋은 것은 죽이기 아까워. 하나님께 제사 드리면 좋을거야.’ 사울은 하나님도 이해하고 용납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안타까운 건 참 많은 사람이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과는 다른 기준을 세우고 자기 나름대로 신앙의 길을 닦아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도 자기 판단을 따라 사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섬겼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너무나 못난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를 다 비우고 하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다윗 속에 살아 역사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지만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으니까 자기가 옳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의 주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주관을 받아들여야 하고,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생각을 따라 살면 망해!’

우리가 성경 66권을 계속해서 읽다 보면 어느 날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 합니다. 그리고 그 성경 말씀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이 흐르는 걸 느낍니다. 그러면 너무나 행복하고, 내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아름답게 이끌어 주시리라는 믿음이 마음속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삶이 좋아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예수님의 은혜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나를 부인하거나 내 생각을 버리는 걸 싫어해서, 어떻게든 내 생각을 하나님과 맞춰 가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 생각에 내 생각을 아무리 맞춰 가려고 해도,  그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다르고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느 날 제가 너무나 야비하고 악하고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절대로 내 생각을 따라 살지 말아야지. 내 생각을 따라 살면 망해!’ 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나니까 제 삶이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 삶을 주의 손에 맡기고

예전에 제 딸이 어렸을 때, 옆집에 놀러갔다가 그 집 연탄 아궁이로 떨어졌습니다. 전도하러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와서 손에 붕대를 감고 자는 딸을 안고 아이가 상처 나지 않고 빨리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저에게 ‘네가 네 아이들 반듯하게 키운다고 했었지? 네 사랑하는 딸이 연탄 아궁이 위에 떨어졌는데 네가 무엇을 도왔어?’ 하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날 저는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내 아이를 키울 수 없습니다. 내 아이의 장래를 주의 손에 맡깁니다.’
제 며느리를 볼 때도 ‘며느리도 사람이라 약점이 있을 텐데 내가 며느리의 약점을 보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 자신이 없어져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제 노후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아파트를 하나 사둘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하나님이 ‘박 목사, 네가 노후를 위해 아파트 사 놓고 준비하네. 그럼 내가 안 도와줘도 되겠네’ 하시는 것 같아 겁이 덜컥 났습니다.
목사로서 교회를 인도하지만, 교회에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면 무슨 재주로 그 일들을  다스립니까? 표면적으로는 내가 아들과 딸을 키울 수 있고, 노후를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어느 것 하나 내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를 바라보고 주의 말씀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믿은 ‘사울’

사울은 자기가 하면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자기는 똑똑하고 잘났기 때문에 자기를 믿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못한다는 것을 사무엘상 15장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성경 구절 가운데 15장 9절을 조금 바꾸어 읽어보겠습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지 않고 진멸키를 즐겨 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더더욱 진멸하였더라.”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사울은 자기 생각을 따라 양과 소의 좋은 것과 기름진 것은 남겼고, 결국 멸망을 당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 15:10~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삼상 16:1)

다윗의 삶처럼

사랑하는 여러분, 사단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어서 하나님을 거역해도 괜찮은 것처럼 가르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생각을 가지고 교회에 불만을 품고 하나님을 등지게 됩니다.
오늘 아침, 사울처럼 나를 믿지 말고 나 자신을 깊이 살펴봅시다. 내가 얼마나 추하고 악하고 거짓된 인간인지를 알고, 다윗처럼 자기를 믿지 말고 내 생각을 부인합시다. 여러분이 몰랐을 때 육신의 생각을 즐기지, 여러분의 육신을 통해 사단이 생각을 넣어줘서 여러분을 멸망시킬 것을 안다면, 어떻게 그 생각을 따라가겠습니까? 그 생각을 따라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멸망당했습니까?
어리석게 사울처럼  살지 말고, 여러분 자신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모든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다윗처럼 여러분이 어디를 향하든지 하나님이 도우시고 높이셔서 은혜와 복을 얻게 하실 줄 믿습니다.

- 2010. 3.21 주일 낮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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