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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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부족한 나를 보지 말고 온전케 하신 예수께 나아가야 2010. 3.7 주일 낮 말씀 - 300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0.03.1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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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 상태에 빠졌던 재민이

지난 1월에 홍콩 월드캠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재민이라는 대학생이 부정맥으로 밤에 자다가 심장이 멈췄습니다.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의사는 이미 심장이 멈춘 사람을 받아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누나들이 어머니 오실 때까지만 병원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의사가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습니다. 그래서 심장은 회복되었지만, 뇌는 20분간 산소공급이 안 되면 뇌사 상태가 되므로 재민이는 두 시간 동안 심장이 멈춰 있어서 식물인간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식물인간 된다고 하니까 자식을 향해서 마음이 다 녹아내리는 안타까움으로 정신을 잃을 듯했습니다. 당시 제가 굉장히 바빴지만 그 어머니의 간절함 때문에 병원에 안 갈 수 없었습니다.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 있는 재민이는 뇌사 상태로 심전도(EKG)를 보면 맥박은 정상으로 뛰고 있었습니다. “맥박은 정상이구나”라고 제가 말하자 그 어머니는 ‘목사님이 우리 아이를 정상이라고 하셨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재민이를 위해 기도해 주고 남미 월드캠프에 참석하느라 한국에 있지 않고 남미에 가 있었는데, 재민이 어머니가 아들이 깨어나 말도 한다는 연락을 주셨습니다. 저는 아직 재민이를 만나 보진 못했지만 재민이 어머니에게 “이제 정상입니다! 퇴원은 언제쯤 해요?”라고 묻고 싶었습니다.

갑작스런 세 사람의 죽음

제가 남미 월드캠프에 참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동안 암으로 고생하던 ‘진실’이를 위해서 교회 형제자매들이 기도를 많이 했었는데 그 진실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며칠 후 정일환 목사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그리고 제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고영복 장로님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세 사람의 죽음이 제 마음을 참 많이 눌렀습니다.
고영복 장로님은 암에 걸리셨지만 제가 볼 때 건강하셔서 10년은 더 사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정일환 목사는 48세의 젊은 나이로 혈압이 높아서 그동안 혈압약을 복용해 왔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진실이도 병이 중했지만 우리가 많이 기도해서 하나님이 진실이에게 은혜를 베푸실 줄로 기대했었습니다.
목사가 믿음 위에 서 있지 않을 때 교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고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을 저는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세 사람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이 제게 많은 책망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도 제게 뭐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제 스스로 ‘이건 나 때문이야. 목사가 믿음 위에 서 있지 않아서 교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고 이런 분들이 세상을 떠났을지도 몰라’ 하는 막연한 생각이 제 마음에 밀려왔습니다.

구원의 역사 속에서

최근에 저는 파라과이 대통령을 다시 만나서 은혜롭게 말씀을 나눴고, 그 다음날은 파라과이 주재 한국 대사님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유명한 ‘주먹의 황제’였던 김태촌 씨를 만났습니다.
지난번 그가 교도소에서 나온 뒤 저를 찾아와서 제가 전해준 말씀을 듣고 참 좋아했는데, 그동안 우리 교회와는 연결이 안 되었습니다. 얼마 전 그가 다시 전화를 하여 만나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자기 밑에 있는 두 동생에게도 복음을 전해 달라고 부탁해서 어제는 안성까지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최근에 구원받는 역사가 많이 일어났지만 제 마음을 들여다보니 ‘내 마음이 들떠 있어. 기도도 제대로 못했어. 하나님 앞에 목사로서 바르지 못한 부분이 참 많아’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신을 책망하게 되었습니다.

사단에게 속으면

저는 목사로서 수십 년 동안 단상에서 말씀을 전하고,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해 왔는데도 사단은 너무나 간교해서 제가 그 사단에게 속을 때가 있습니다. 사실 최근에 시차가 바뀌면서 지난 일주일 동안은 거의 밤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아침에 성경을 제대로 못 읽고 기도도 못하고 제 삶의 균형이 깨졌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내가 기도도 못하고 성경도 잘 못 읽었어. 고 영복 장로님, 정일환 목사, 진실이도 세상을 떠났는데 교회에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내가 잘못해서 그래’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 복음 전하고 말씀 읽고 기도하는 일 외에 다른 것은 하지 말아야지. 우리 교회에 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고영복 장로님이 기도 많이 하셔서 잘 넘어갔는데 앞으로 어려운 일 닥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기도해야 돼. 성경 읽어야 돼. 강남교회에 어려운 일이 닥칠는지도 몰라’ 하는 쪽으로 제 마음이 흘러갔습니다.
어제 대구에서 가진 굿뉴스코 귀국발표회를 보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저와 도 장로님, 이 장로님은 차 안에서 기도회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고 나니 흡족한 마음이 생겨서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성경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은혜로 받는 구원

성경에는 은혜의 삶과 행위의 삶이 정확히 나누어져 있는데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것과 예수님의 생명을 값없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은 거룩함과 의, 그리고 그 이름까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은 죽었고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 수 있도록 모든 걸 완벽하게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이제 ‘작은 예수’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와 사단, 두려움을 이기셨으니까 나도 내 안의 예수님으로 죄와 사단,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문제가 생겨도 ‘나’라는 껍데기는 있지만 내 안에 의롭고 거룩하며 능력 많으신 예수님이 계셔서 그 문제를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나에게 선이나 의, 거룩함이 없어도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거룩함과 의, 그리고 선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예수님과 똑같이 나를 받으셔’ 하는 게 믿음입니다.
 

행위로 하는 신앙

이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예수님처럼 되어야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줄 압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보면 우리는 추하고 악합니다. 그러므로 악하고 더러운 우리를 선하고 깨끗하게 만들어서, 즉 부정한 우리를 정결케 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 하면 신앙이 안 됩니다.
저는 목사로서 오랫동안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저를 예수 그리스도의 기준에 맞춰 기도하고 성경 읽고 형제자매들 심방하는 등 제가 일을 잘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사역을 잘하든 못하든 그냥 설교하고 형제자매들 돌아보면 목회하는 데 별 문제가 없는데, 잘하지 못하는 저 자신을 바라보면서 ‘내가 목사로서 이래도 되나. 내가 일을 잘 못해서 이런 어려움이 교회에 생긴 것 아니야? 내가 믿음이 없어서 그래’ 하며 내가 좀 더 반듯하게 서려고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잘되는 게 없습니다.

인간에게 선이 나올 수 없고

여러분, 신앙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기준으로 내가 예수님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내 노력과 상관없이 은혜를 입는 신앙입니다.
내가 율법을 열심히 지켜서 완벽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죄 안 짓고 정직하게 살면 죄가 점점 작아지고 깃털처럼 가벼워져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죄를 지으면 죄가 점점 많아져 지옥에 가니까 선을 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선을 행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다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는 로마서 3장의 말씀처럼 죄를 안 짓고 착하게 살아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경제 발전을 위해 석유가 나오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유전개발을 해 봤지만 동해안, 서해안 어디에도 석유가 안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석유가 안 나오니까 다른 나라에서 석유를 사와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안 나오듯이 인간에게서 선은 절대로 안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함을 입어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행위가 선하거나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거룩하고 잘해서 구원받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함, 지혜를 형편없는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의롭고 거룩하고 지혜롭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예수를 닮아가야 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그리스도로 보십니다.
성경은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거룩해지려고 애쓰는 사람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거룩함이 된 사실을 못 믿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구원받아서 거룩해졌는데도 구원받으려 애쓰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잘하려는 마음 때문에

사람들이 사단에게 속아서 남을 좀 도와주고 선을 행하고 기도하면 신앙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저도 그런 사단의 시험을 당합니다. ‘목사가 왜 이렇게 태만해! 왜 성경연구를 안 해! 왜 기도를 잘 안 해! 그러니까 이런 어려움이 생겼지. 이제 내가 좀 더 많이 기도하고 성경 읽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하고 싶은 것도 아주 많습니다. 무전 전도여행을 하면서 어려운 시골교회에 찾아가서 그 교회 목사님과 목회하는 이야기도 나누고 복음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형제자매들을 매일 심방하면서 신앙상담도 하고 싶은데, 요즘은 ‘심방이란 단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제가 심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인터넷선교부, 영상선교부 그리고 주간 기쁜소식 신문사 등에서 봉사하는 형제자매들과 자장면 먹으면서 하루 종일 이야기하며 놀고 싶기도 하고, 장로님들과 깊숙한 산 속에 가서 돌아가며 기도하고 말씀 나누는 시간도 갖고 싶은데, 최근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아서 그런 것 하나도 제대로 못합니다.
제가 목사로서 자신에게 점수를 매겨보면 저는 13점, 18점밖에 안 됩니다. 어느 날 이런 걸 생각하면서 점수 좀 높여 보려고 일을 하다보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행위 vs 믿음

여러분, 구원받을 때 내가 노력하고 선을 행해서 머리털보다 더 많던 내 죄를 씻고 의로워지는 것과 예수님의 은혜로 그 분의 의와 선을 받아들여서 의로워지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옳습니까?
내가 선을 행해서 죄를 씻는다면, 찬송에 나오는 것처럼 머리털보다도 더 많던 내 죄를 과연 씻을 수 있겠습니까? 내 머리털보다 더 많은 죄를 내가 노력해서 씻으려면 한평생 씻는다 해도 만 분의 일, 십만 분의 일도 못 씻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씻는다면 완벽하게 씻어집니다.
죄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피로 우리 죄를 사한 사실을 믿음으로 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흘리신 그 피가 내 죄를 씻었습니다.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내 죄는 십자가에서 끝이 났어! 영원히 해결됐어. 난 이제 의로워’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씻은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때 내가 회개하고 선을 행하면 죄가 씻어질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건 교만한 생각입니다. 만약 내가 노력해서 죄를 씻을 수 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회개나 고백으로 죄를 씻는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면 죄가 씻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회개가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피’가 죄를 사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성경은 피가 죄를 속한다고 하는데 오늘날 참 많은 거짓 신학자들이 회개나 고백이 죄를 속한다는 식으로 기독교 교리를 바꾸고 있습니다. 죄를 씻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일 등 우리의 어떤 수고나 노력도 무익합니다.
죄 때문에 매일 울부짖는다면, 그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죄에 매여 살므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기독교인에 불과합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내 죄를 사한 것을 믿지 않는 것은 십자가를 부인하는 것으로, 악이요 저주받을 만한 일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써만

한번은 제가 국방부 장관과 면담 신청을 한 후 기다리다 군목 한 분과 얘기했습니다. 어느날 IYF 출신 장병들이 그분의 설교를 듣다가 “저 목사 구원받았어?” 하며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단이 너무나 간교해서 이 귀한 복음을 흐려놓아, 십자가의 피를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회개나 노력으로 죄 사함 받으라는 쪽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사람들이 십자가의 피를 힘입고 나아가면 금방 죄에서 자유를 얻는데, 십자가의 피는 제쳐놓고 자기가 철야기도, 금식기도, 새벽기도를 통해 회개해서 죄를 씻으려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의롭고 깨끗하게 만드신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죄를 씻으려고 애씁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피로 못 씻는 죄가 있는데 그 죄를 씻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예수님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히브리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우리 죄를 씻지 못했다면 다른 방법으로 죄를 씻을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 죄를 씻는 것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밖에 없으니까 그 피로 말미암아 내 죄가 씻어진 것이고, 만일 씻어지지 않았으면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 안에 머무는 동안

구원받고 난 뒤 주님 안에서 살면 삶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받아도 육체를 갖고 있어서 육체 안에서 기껏해야 30년, 50년, 60년, 70년 삽니다. 그동안 육체는 계속해서 우리 마음 안에서 육체를 세우려고 합니다. 좋은 것 먹고 싶고 마시고 싶고 즐기고 싶은 마음은 육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위에 서서 완벽하면 좋은데,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주 흔들립니다.
피아노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기분이 좋든 안 좋든 두드리면 소리가 나고, 그냥 놓아두면 하루 종일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육체 안에 있는 동안 잘 먹고 마시고 즐기고 싶어하며, 음란한 쪽으로 흐르는 육체의 욕구를 쉴 새 없이 마음 속에서 뿜어냅니다.
우리가 이런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기대하지 않고 예수님의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우리의 선이 아닌 예수님의 선과 거룩함, 지혜와 능력을 덧입으면 우리도 선해지고 의로워지며 거룩해집니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인간은 때론 선하고 정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해져서, 아름다워져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절대로 못 나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예수님의 옷을 입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
예수님은 우리의 제사장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 추함을 아시고 그런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를 쳐다보지 말고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예수님이 나를 이미 온전케 해 놓으셨다. 거룩하게 하셨다. 그래서 내가 기도 드리면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갈 때, 하나님이 여러분 속의 믿음을 보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 2010. 3.7 주일 낮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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