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만 바라볼때 믿음이 형성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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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만 바라볼때 믿음이 형성되고
[마가복음 5장 25 ~ 34절] 2010. 1. 24 주일 낮 설교 - 294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0.01.2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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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월드캠프를 마치며

이번에 홍콩 월드캠프를 주님의 은혜 가운데 아름답게 마칠 수 있어 참 감사했습니다. 저는 월드캠프나 수양회, 대전도집회를 해마다 수차례씩 하지만, 늘 시작할 때는 암담합니다.
특히 홍콩은 물가가 얼마나 비싼지, 어떻게 이 캠프를 감당하겠나 싶을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우리 선교회에서 개척한 교회도 적고, 예배당도 조그마해서 형제자매가 기숙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번 캠프를 하면서 주님이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것을 볼 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3,500여 명 되는 분이 모였는데, 그 가운데 중국에서 온 형제자매들이 무척 감격해 했습니다. 제가 “우리 찬송 한번 부를까요?” 했더니 “예!” 하면서 목이 터지도록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한평생 중국에서 자유롭게 찬송을 부르지 못하다가 홍콩에 와서 기뻐하며 찬송을 불렀고, 또 새로 참석한 분들이 구원받는 것을 보면서 제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구나!’

저는 1968년 ‘김신조 사건’이 일어난 후에 제대했습니다. 그 당시 제대가 한두 달씩 연장되었는데, 저는 53일 제대특명을 받고 ‘제대병’이 걸릴 틈도 없이 다른 사람들보다 두 달가량 먼저 제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로 군 예배당에서 생활한 까닭에 관물반납을 앞두고 내무반에 가보니까 총과 철모만 남은 채 제 관물대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관물을 반납해야 제대할 수 있는데 무척 난감했습니다. 군대에서 복음을 전하며 은혜롭게 지냈는데, 다른 사람들 것 아무거나 가져다 반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마다 혼자 예배당에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3년간의 군생활을 은혜롭게 잘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관물반납도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하고 싶습니다.’ 일주일쯤 기도했는데 제가 제대하기 2,3주를 앞두고 새로 부임한 군목이, 어느 날 저를 보고 관물반납하는 데 쓰라며, 그 당시 병장 월급 1년치 정도인 2,300원을 주셨습니다.
제대복을 입고 나오면서 제 마음에 힘과 소망이 꽉 찼습니다. ‘내 모든 것을 알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구나. 이런 하나님이 계시면 내가 사막 한가운데서도 살 수 있겠다.’

선악을 아는 지혜가 오고 난 뒤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시고 인간적인 방법이 전혀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했을 겁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눈이 밝아져, 자신이 벗은 줄 알고 부끄러워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소나 말, 돼지가 벌거벗었다고 부끄러워하고 남의 집 음식을 훔쳐 먹었다고 양심에 가책을 받습니까? 짐승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선과 악을 구분하는 자기 판단이 없으니까 어떤 계획도 없이 하나님의 섭리대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난 뒤에 선악을 판단하는 지혜가 생겼습니다. 사단이 우리를 속여, 내 방법이 하나님의 방법보다 좋아 보이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게 좋아 보이는 것을 따라가다 보니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둠과 고통이 오고 슬픔과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열두 해 혈루증을 앓는 여자

제가 월드캠프를 하면서 느낀 것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일 년에 30회가 아니라 50회, 100회라도 하겠다. 주님이 기뻐하시면 늙은 아브라함도 아들을 낳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 갈 때, 아브라함이나 다윗, 오늘 읽은 열두 해 혈루증을 앓는 여자 등 이런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막 5:25~26)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라는 말은 이 여자가 처음에는 무언가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혈루증에 걸렸는데도 재물이 있으니까 ‘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건강해지겠지’라는 자기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효과가 없어 실망하였습니다. 그래도 ‘돈이 있는데 설마 이 병 하나 못 고치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문제는 병이 점점 더 심해진다는 겁니다. 이제 돈도 다 떨어져 먹고 살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여자 마음에서 병원에 대한 기대, ‘내 병이 낫겠다’는 기대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하기를

이번에 홍콩에서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요셉이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어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고 했고, 떡 굽는 관원장은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 위에 있고 그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고 그들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하기를, 술 맡은 관원장은 사흘 안에 전직을 회복하고, 떡 굽는 관원장은 사흘 안에 바로가 머리를 끊고 나무에 달아 공중의 새들이 그 고기를 뜯어 먹게 된다고 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포도나무만 보고, 포도즙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포도나무는 예수님을 가리키는데, 그가 예수님 뒤에 숨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죄를 지어 아무것도 내놓을 게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다 사했으니까 그 피를 보시고 나를 받아 주십시오’ 하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반면 떡 굽는 관원장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흰떡 세 광주리만 이고 가면 되는데, 그 위에 각종 구운 식물들을 잔뜩 올려놓았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지만 그게 부족하다고 느끼는 겁니다. 결국 예수님의 피를 믿지 않아 멸망을 당했습니다.

십자가의 피밖에 없어

저도 신앙생활 시작할 때 예수님의 말씀보다 제 생각이 크게 작용해서, 말씀에는 된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제가 볼 때 불가능한 것은 아예 할 생각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을 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 제 판단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헌금과 봉사를 많이 하면 마음이 편하고 싸움이나 나쁜 짓을 하면 하나님이 안 받으실 것 같지만, 그것은 우리의 행위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고 했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할 수 있지만 우리가 하는 어떤 행위도 하나님을 만족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는 우리를 구원하기에 완벽합니다. 우리의 어떤 죄든지 씻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 살인을 했습니까, 간음을 했습니까, 도둑질을 했습니까, 사기를 쳤습니까? 무슨 죄를 지었던지 간에 예수님의 피로 씻어지지 않는 죄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백’으로 죄가 씻어진다?

제가 예전에 기성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은 우리의 원죄는 씻었다. 그러나 자범죄는 우리 스스로 고백하고 씻어야 한다’는, 잘못된 설교를 들어서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히 10:26)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 속죄하는 제사는 없기에, 예수님의 피로도 우리 죄가 안 사해졌으면 그 죄는 못 씻는 겁니다. 원죄 말고 자범죄도 절대로 못 씻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씻은 죄가 우리가 고백한다고 씻어집니까? 죄는 고백한다고 씻어지는 게 아니라 십자가에서 죄의 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씻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백하는 소리를 듣고 죄를 씻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보고 우리 죄를 속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증은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사십 일 사십 야를 시내산에 함께 있으면서 하늘나라 성전을 보여주신 후 그것을 축소하여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엔 하늘나라 성전을 본딴, 모형 성전에서 양이나 염소, 송아지를 잡아 제사를 드리면서 죄를 사했습니다. 그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매일 짐승의 피가 강물처럼 흘렀고 제물을 태운 연기가 구름처럼 떠올랐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형이기 때문에 인간의 죄가 영원히 씻기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기 피를 가지고 하늘나라 성막에 올라가셨습니다. 이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제게 질문합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우리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예수님께 우리 죄가 넘어갑니까? 난 2000년 뒤에 태어나서 죄를 짓고 죽는데요.”
성경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십자가에서 죄가 씻어진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은 느낌이 아닌 말씀으로 확증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모르면 인간적인 생각에 끌려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래도 자신이 죄를 고백하면 시원한 것 같고,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그 죄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아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했다고 하십니다.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구약성경에 회중의 범죄라는 게 있습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죄를 지으면, 회중의 장로들이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60만여 명이 모두 제사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까? 제사 드리는 것도 모르고 낮잠 자는 사람도 있을 거고, 농사짓는 사람도 있을 거고, 목욕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회중의 장로들과 제사장이 회막에 와서 제사를 드릴 때, 회중의 죄가 사해진다고 레위기 4장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죄를 깨닫고 용서를 빌어서가 아니라 회중의 장로들과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그 죄가 사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 사함 받는 것은 개인이 잘하고 못하고와는 전혀 상관없이 예수님의 피와 상관이 있습니다.
레위기 16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위하여 해마다 7월 10일 대속죄일에 염소와 수송아지를 잡아 속죄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인류의 속죄를 다 끝내 버렸기 때문에 여러분이 기억하는 죄도 끝났고 기억 못하는 죄도 끝났습니다.

말씀을 거스르게 하는 사단

성경에서는 우리 마음에 죄가 기억되지만 하나님은 우리 죄를 기억지 아니하신다고 합니다.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치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6~18)
성경 말씀대로 하면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 죄의 값을 지불해서 우리는 의롭고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반대로 “아니야, 넌 죄가 있어. 다른 죄는 다 씻어져도 그 죄는 안 씻어졌어”라고 합니다.
오늘 이 시대 사람들도 떡 굽는 관원장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하고 잘한 것을 제일 위에 올려놓고 자랑하는데, 이것은 우리 신앙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모든 걸 허비한 이후

열두 해 혈루증 앓는 여자가 자기에게 있던 모든 것을 다 허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잘한 것, 선한 것 가지고 처리해 나가려고 하지만 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래도 주일예배는 안 빠졌어’ 하지만 지내다 보면 주일예배도 빠질 때가 있고, ‘난 십일조 안 떼먹었어’ 하며 큰소리쳤지만 어느 날 그 말이 부끄러울 때가 있는 겁니다.
저도 예전에 ‘난 그래도 그건 그렇게 안 한다’ 하는 것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까 제 안에 있는 것이 다 허비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교회 안에서 이런저런 죄를 지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그런 죄를 짓냐고 큰소리쳤는데 이제는 절대로 그런 소리를 못합니다. 제가 도둑질 안 한다, 간음 안 한다고 큰소리칠 자신이 없고, 제가 앞으로 어떤 죄를 지을지 자신이 없으니까 남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열두 해 혈루증 앓는 여자가 모든 걸 다 허비하고 길이 없게 된 모습이 진정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전에 ‘난 그래도 저렇게 지저분하게 안 살았어. 일은 반듯하게 했어’ 하는 것이 제게 참 많았는데, 이젠 맨손 하나 남은 것처럼 제가 주님 앞에 들고 나갈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게 술 맡은 관원장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하나님 앞에 자기가 잘한 걸 들고 나갈 게 있으면 떡굽는 관원장처럼 됩니다. 제가 목사가 되고 난 뒤에도 남들을 종종 판단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살지? 난 저렇게는 안 살거야.’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어느 날 제가 반듯하다고 믿었던 것이 형편없는 것이 되고, 제가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이 추한 것이 되고, 제가 정직하다고 믿었던 것이 거짓된 것이 돼버려서, ‘내가 하나님 외에는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는 마음으로 나가게 되니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 속에 흘러넘쳤습니다.

혈루증 앓는 여자의 믿음

열두 해 혈루증 앓는 여자가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금덩어리 하나가 남아있어. 은행에 예금한 거 이자만 받으면 돼’ 할 때는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방법으로 처리하러 갔습니다. 이제 있던 것을 다 허비하고 자기에게 기대할 게 없으니까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여자에게 은혜 받을 마음이 생기니까 마음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커져 갔습니다.
처음엔 ‘내가 기도 받는다고 낫겠나?’ 하다가 ‘내가 예수님 앞에 가서 예수님이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 한번 해주면 낫겠다’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그러다 ‘예수님은 능력이 많은데, 예수님이 날 몰라도 내가 가서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이 낫겠다’는 믿음이 여자의 마음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이제 여자는 예수님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이 병은 다 나은 거야. 이제 예수님 옷자락에 손 대는 것만 남았어.’ 아직 몸은 혈루증이 있지만 마음은 이미 다 나아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데 “좀 비켜봐요” 하며 예수님의 옷자락을 손으로 만졌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댔는데 병이 다 나았습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면

자기의 선한 것이 다 무너지고 예수님만 남으면 여러분 속에 믿음이 형성됩니다. 예수님을 안 만나도 백부장처럼 ‘말씀으로만 하시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혈루증 앓는 여자처럼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있으니까 그런 믿음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여러분이 가진 선한 것, 괜찮은 것, 자랑하고 싶은 것이 허무한 것인 줄 알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 여러분 마음 안에도 이런 믿음이 형성됩니다.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 기도해도 낫겠다. 예수님이 나를 도우시겠다. 지키시겠다. 축복하시겠다’는 마음이 여러분 속에 일어나면 그 믿음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복된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 2010. 1. 24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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