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복음만을 위해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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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복음만을 위해 살아야
[열왕기상 2장 36절 ~ 46절] 2009. 10.18 주일 낮 설교 - 280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9.10.2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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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받는 목사가 되고 싶어서

저는 목회를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정말 훌륭하고 유명한 목사가 되고 싶고 남들에게 존경받는 목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목사님들은 설교를 어떻게 하는지 따라 해보려고 설교 테이프를 구해서 그분들의 설교를 하나하나 들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듣다가 깜짝 놀란 것은, 우리나라의 훌륭하고 존경받는 목사님들의 설교 내용이 거의 비슷할 뿐 아니라,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다 빠지고 그냥 교인들이 듣기 좋아하는 이야기로 일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교인들도 그런 설교를 듣기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도 제가 믿음으로 신앙을 이끌어주는 것보다는 “자매님, 믿음이 좋습니다. 형제님, 신앙을 정말 잘하십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제가 권고하기 위해서 때때로 “자매님, 이렇게 신앙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하고 이야기하면 ‘목사님은 왜 나를 미워하시지?’ 하는 마음을 갖는 것 같아서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목사가 되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못난 자신을 발견하고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를 어릴 때부터 목사로 만드시려고 작정 하셨다는 마음이 들 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는 남들에게 존경받고 덕망 있는 목사가 되길 원하지만 절대 그렇게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나는 훌륭한 목사가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우리 선교회의 다이어리를 꺼내놓고 수백 명이나 되는 목회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더듬어가면서 저보다 못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저보다 못한 사람이 있는가도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왜 나같이 못난 자를 목사로 세우셨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들이 방탕한 까닭은

얼마 전 어떤 분이 자기 아들 때문에 걱정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그 아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분에게 아들 문제의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다고 했더니, 그분이 깜짝 놀랐습니다. 왜 자기 책임이냐고 묻기에 아버지가 사업을 잘해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당신 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같이 음식도 사먹고 노는 데 돈을 쓰고 싶었을 겁니다. 만약 당신이 가난했다면 아들은 그 마음을 자제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이 사업을 해서 돈이 많으니까 아들이 돈을 쓰고 싶어할 때 그 욕망을 꺾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아버지한테 졸라서 받은 돈으로 술 마시고, 여학생들과 놀러 다니면 그렇게 되는 것 아닙니까? 아들이 그렇게 된 것에는 아버지 책임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굶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돈이 없으니까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이지, 돈이 있으면서 그렇게 하기는 참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실들을 생각해보면, 사단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마음을 높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한 것, 성실한 것, 착한 것 등 그 분야에서 잘한다는 마음을 갖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내가 뭘 좀 잘한다는 마음이 들면, 사단은 자신을 믿는 마음을 통해서 여러분을 망하게 만듭니다.

겸비하기 어려운 이유는

사람들은 얼굴이 잘생기면 다른 부분이 어느 정도 부족해도 남이 잘 봐주기 때문에 겸비하기가 어렵습니다. 얼굴이 잘생긴 것뿐만 아니라 돈이 많거나 수단이 좋거나 똑똑하다는 것들이 인정을 받을 때 마음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외모와 덕을 함께 갖추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어제 저녁 건국대에서 ‘허준’ 뮤지컬 공연을 마친 후 제가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 일보다 내 마음이 더 높으면 성실하게 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가 부족하면 ‘나 같은 인간이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좋다’ 하면서 성실하게 됩니다. 사단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마음을 높이는 일을 합니다. 여러분이 잘한 것, 성실한 것, 착한 것 등 그 일들을 통해서 자신을 믿게 만들고 그것이 결국 여러분을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을 높일 때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저에게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만 그 중 하나가 제 마음을 순간순간 붙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이 좁고 얕은 사람이라서 뭘 하나 하면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갖지 않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이 정말 감사합니다.
주님이 저를 붙들어주지 않았다면 제가 얼마나 기고만장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잘해도 그런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여자가 간음하다 잡혀 돌에 맞아 죽으려 끌려가다가 예수님을 만나 살았습니다. 그 여자가 간음하다 잡혀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 살아났는데 자신이 잘났다고 자랑했겠습니까? 아니면 똑똑하다고 자랑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에게는 부끄러움밖에 없었을 겁니다.

다윗을 저주하는 시므이

제가 제 마음을 보면 간음한 여자보다 훨씬 더 추하고 교만하고 악하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제가 마음을 높일 때마다 그 마음을 잡아주셨습니다. 지금도 몇 번씩 마음이 교만해지려고 할 때마다 주님이 제 마음을 잡아주셔서 주님의 은혜 아래 머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면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높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열왕기상 2장 시므이에 대해서 읽었습니다. 성경에는 시므이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오는데, 제일 먼저 사무엘하에서 다윗왕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갈 때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삼하 16:5~10)
 

엎드려 용서를 구하고

다윗왕은 시므이를 내버려두라고 했습니다. 시므이는 머리가 굉장히 좋아서 ‘다윗이 피난 가는 마당에 나를 죽일 수는 없을 거야. 다윗이 저런 어려움을 당하면서 백성을 죽였다는 소리를 들으면 불리하기 때문에 나를 안 죽일 거야’라는 생각으로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그 후 다윗은 도망을 갔고 다시 군인들이 모여 압살롬과 전쟁을 했는데, 그때 압살롬이 죽었습니다. 다윗이 다시 왕궁으로 돌아오자 시므이가 깜짝 놀랐습니다. ‘다윗이 죽고 압살롬이 왕이 될 줄 알고 다윗을 저주했는데 어떻게 하지?’ 시므이의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러자 재빨리 머리를 썼습니다.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왕을 맞으려 내려올 때에 베냐민 사람 일천 명이 저와 함께하고 사울의 사환 시바도 그 아들 열 다섯과 종 스무 명으로 더불어 저와 함께하여 요단강을 밟고 건너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왕의 가족을 건네려 하며 왕의 선히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가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려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의 앞에 엎드려 왕께 고하되 내 주여 원컨대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옵시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줄 아옵는고로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가로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 다윗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저에게 맹세하니라.”(삼하 19:16~23)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계획

시므이는 자기가 불리해지자 급히 머리를 굴렸습니다. 금방 베냐민 사람 일천 명을 모아 그 앞에 서서 왕에게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왕이 베냐민 사람 일천 명을 보고 시므이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이제 다시 왕이 되었는데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하니까 죽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열왕기상 2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다윗이 늙어서 죽기 전에 자기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했는데, 너는 절대로 그를 평안하게 죽게 내버려 두지 마라. 솔로몬 너는 지혜가 있은즉 저로 백발의 머리로 피를 흘려 죽게 해라”며 유언을 하고 죽었습니다.
솔로몬은 한눈에 시므이를 정확하게 보았습니다. 자기를 믿고 교만해져서 감히 다윗을 저주하고 그 후에는 수단을 써서 빠져나가는 모습을 정확히 보았습니다.

여전히 안일한 모습으로

솔로몬은 시므이를 함정에 빠뜨렸습니다. ‘저놈이 자기를 믿는 놈 같으면 내가 하는 말을 대충 듣고 소홀히 여길 것이고, 자기를 안 믿으면 내 말을 두렵게 여길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시므이를 불렀습니다.
“너는 예루살렘에 집을 짓고 살고 기드온 시내를 건너지 말고 예루살렘 안에만 거해라.” 시므이는 솔로몬왕이 불러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예루살렘 안에만 살라고 하니까 ‘예루살렘 밖으로만 안 나가면 되겠네. 뭐!’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함정인데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번에도 모면하는구나!’ 하고 가볍게 들었습니다.

자기를 믿는 자들의 모습

사역자들 중에 자기를 믿는 사람들을 보면 한눈에 그 행동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실력을 믿기 때문에 어떤 일에 문제가 생기면 정확하게 처리하려 하지 않고 대충 대충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믿는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이 시므이를 죽이기 위해 함정을 팠는데도 시므이는 자기 머리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까 자기를 믿는 마음이 점점 커졌습니다. ‘괜찮아. 또 괜찮겠지’ 하고 그 이야기를 소홀히 들었습니다.
만일 자기를 믿는 마음이 없었으면 ‘솔로몬왕이 나를 불러 기드온 시내를 건너지 말라고 했어. 건너면 안 돼. 건너면 나를 죽일는지 모르니까 절대 기드온 시내를 건너지 말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나는 잘났어. 그러니까 또 문제가 와도 잘 처리할 수 있어’ 하고 그 일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시므이의 최후

3
년 뒤에 시므이의 두 종이 블레셋 사람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도망을 갔습니다. 시므이가 그 일을 두고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내 종 둘이 가드왕 아기스에게 있다는데 내가 가면 솔로몬왕이 알겠지. 그러면 나를 불러다 책망할는지 몰라. 내가 종 둘을 잃는 게 낫지, 가드왕 아기스에게 종을 찾으러 가서는 안 될 거야. 난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면 안 돼. 기드온 시내를 건너면 안 돼.’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시므이는 자기를 믿으니까 솔로몬왕의 말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자기의 두 종을 찾으러 예루살렘을 떠나 가드왕 아기스에게 가서 그 종을 잡아 돌아왔습니다. 이미 솔로몬이 함정을 파놓고 그를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므이가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고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밖으로 나가서 어디든지 가는 날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도 내게 말하기를 내가 들은 말씀이 좋으니이다 하였거늘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와 내가 네게 이른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무릇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 그러나 솔로몬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하매 저가 나가서 시므이를 쳐서 죽게 한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왕상 2:42~46)

육체의 욕구를 이기고

어느 누구를 불문하고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먹고 마시고 즐기기를 원하고 이성에 대한 욕망도 강합니다. 여러분이 죄를 짓고 싶어도 들킬까 봐 못하지, 완벽하게 안 들킨다는 것이 보장된다면 죄 지을 사람이 많을 겁니다. 우리가 여유가 없어서 그렇지, 여유와 돈이 풍성하다면 훨씬 더 타락할 수 있는 조건이 많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는 육체의 욕구대로 흘러가고 싶은 마음이 훨씬 강해서 날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사랑하거나 주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육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 우리 안에 주님이 오셔서 어두움과 두려움을 제해주시고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 생명을 주님께 드려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귀한 복을 주셨습니다.
제 아들이 미국교회로 파송될 때 제가 그랬습니다. “영국아, 넌 평생 다른 것 하지 말고 목회하는 목사가 되어라. 대학 총장 시켜준다고 해도 하지 마라. 대학 총장이나 장관할 사람은 미국에 많지만 이 복음을 전할 사람은 없다. 넌 죽을 때까지 이 복음을 전해라.”
우리가 가진 복음이 얼마나 귀한데, 구원받은 사람들이 세상에 푹 빠져 영적인 잠을 자고 있습니까? 육신을 위해 살면서 주님을 섭섭하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삶이 점점 편하니까 적은 것도 하기 싫고 부담 없이 앉아서 말씀만 듣도록 사단이 우리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영적인 잠에서 깨어납시다!

영적 싸움을 할 때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안일한 마음을 주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게 하면서 우리 마음 안에서 복음을 흐리게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 복음을 위해서 삽시다. 이 귀한 복음을 위해 우리 자신을 드립시다.
우리는 무익한 인간인데 우리를 위하여 그 고귀한 피를 흘리신 주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고 감사하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면서 복음을 위해 삽시다. 그리하여 이 복음이 우리 아들, 우리 손자 대대로 살아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구원을 받았던 1962년 그 당시에 저처럼 구원받은 젊은이들이 “이 복음이 참 귀하다. 복음을 위해서 한평생 살자”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 사람들 대부분이 세상에 빠져서 참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복음을 위해 우리를 다 드려야

이번 가을에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집회가 있습니다. 11월 10일쯤에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누구든지 우리 선교회의 GBS방송을 통해서 순수한 복음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라위에서도 우리에게 방송 허가를 내주었습니다.
마하나임 신학교를 통해서 전 세계에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구원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자라고 있는데, 이 모든 일을 위해 우리 자신을 다 드리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 기성교회에서 하던 것처럼 형식적으로 예배만 드리면 예수 믿는 걸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구원을 받고도 그런 관념에 머물러 육체를 섬기고 자신을 위해 살기 때문에 어둡고 어렵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면서도 부족하게 여기고 육으로 흘러가는 것을 볼 때 정말 안타깝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아니하고 주님을 위해 살 때 주님이 우리를 복되게 하시며 여러분 생애의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이어질 줄 믿습니다.

- 2009. 10.18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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