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이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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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이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한 이유는?
[사사기 15장 14절 ~ 16장 6절] 2009. 10.11 주일 낮 설교 - 279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9.10.1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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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나환자촌 집회

저는 지금도 1980년 경북 영천 서광교회라는 나환자촌에 가서 집회를 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첫날 집회를 마치고 죄 사함 받고 싶은 사람 손들라고 했더니 50여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너무 추워 예배당에서 상담할 수 없어 제 숙소에서 밤 1시까지 복음을 전했는데, 그 방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 복음을 전해서 한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 구원받는 것입니다. 손이 끊어지고 얼굴이 흉측한 나환자들이 사람들에게 멸시와 버림을 당하면서 비참하게 살다가 그날 저녁 예수님을 믿고 기뻐하는 광경을 보았는데, 그들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특별히 기억나는 분은 지금은 세상을 떠난 김광열 장로님이라는 분인데, 그날 저녁 아들과 같이 말씀을 듣다가 구원받았습니다. 아들이 죄 사함을 받고 기뻐하면서 자기가 아버지 몰래 술 마시고 담배 피운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그 장로님은 깜짝 놀라면서도 기뻐했고 이튿날은 부인도 와서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고 기뻐하던 나환자들

그 장로님은 양계장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수천 마리 되는 닭을 절반이나판 다음, 그 돈을 가방에 잔뜩 넣고는 다른 장로님들을 찾아갔습니다. “이 장로, 잘 지내는가? 내가 죄에 얽매여 고통스러워서 새벽마다 울면서 죄를 회개해도 해결이 안 되었는데, 이번 집회에서 은혜를 입었어. 자네도 집회 한 번 하게. 박옥수 목사님을 강사로 모셔봐.” “우리 교회는 재정이 어려워서 집회하기가 어렵네.” “내 그럴 줄 알았어. 집회 경비는 내가 다 댈 테니까 걱정하지 마. 밥 먹고 살 정도만 남기고 닭 팔아서 마련했어.”그 분을 통해 저는 그 해 6개 교회를 다니면서 집회를 했는데, 많은 사람이 구원받고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얼마 후 그 장로님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분이 문득문득 생각납니다.
이듬해에는 손양원 목사님이 계시던 여수 애양원교회에 가서 집회를 했습니다. 말씀을 마치고 장로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분들이 구원받고 난 뒤에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죄를 고백하면서 죄에서 벗어나 자유와 기쁨을 얻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복음으로 달려가는 원동력

제가 복음을 전하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은 제 마음의 고통을 이기게 해주었고 다시 복음을 위해 달려가는 원동력이 되어 오늘날까지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면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사랑이 마음에서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죄 속에서 갈등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 구원받을 때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내 생명과 재산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을 겁니다.
저는 1962년에 구원받고 정말 기뻐서 감사헌금을 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그래서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는 찬송을 자주 불렀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목사가 돼? 그냥 교회 가서 신발장이나 정리하고 어린아이들 코나 닦아 주는 일만 해도 하나님이 나를 받아만 주신다면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도 정말 행복할 것 같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못나고 천하고 더러운 인간을 주님이 받으시겠나?’ 하며 마음을 졸이며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지난 뒤 주님이 이런 제 기도를 들으시고 제 삶을 이끌어 가기 시작하셨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죄에 얽매여 있다가 복음을 듣고 기뻐할 뿐 아니라 성령이 그 마음에 임하니까 그들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정말 사랑스럽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육신의 욕구는 여전하지만

누가복음 10장에서 ‘강도 만난 자’ 이야기를 살펴보면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났는데,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던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부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기름은 성령을 가리키고, 포도주는 기쁨을 가리킵니다. 여러분이 거듭나면 마음에 성령이 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생을 주관해 주시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복음을 전할 마음을 주시며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여러분이 거듭나기 전에 여러분을 이고 가던 것은 육체육체의 욕구였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싶고, 더 맛있게 먹고 싶고, 즐기고 싶고, 이성(異性)적인 생각이 나는 등 이런 것은 다 육체육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돈 벌고 싶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높은 지위 얻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에게도 똑같이 그런 육신의 욕구가 있지만 신기한 것은 구원받은 후 전에는 전혀 없었던 새 마음이 저를 이끌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한번은 잠시 후에 누구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그 사실을 잊고 성경을 읽다가 저녁때가 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주 성경을 끌어안고 잤습니다.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이 제게 힘이 되면서 산더미처럼 어려운 문제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길 힘을 주시니까

여러분이 구원을 받아도 육체육체 안에 있기 때문에 육체육체의 욕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아도 육체육체의 욕망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것은 구원받기 전에는 그런 욕망을 이길 만한 힘이 없지만, 구원받은 후에는 하나님이 그런 욕망을 이길 힘을 주신다는 겁니다.
마치 암세포가 우리 몸속에서 하루에 천 개, 만 개 정도 생성되지만 NK(Natural Killer)세포가 암세포를 다 잡아먹기 때문에 암에 걸리지 않는 것과 같이, 여러분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다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서 여러분 마음에 일어나는 육신의 정욕이나 두려움, 근심이나 불안을 다 물리쳐 주시기 때문에 기쁘고 복된새로운 삶을 은혜롭고 영광스럽게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은 삼손을 통해 ‘확실히 거듭났는데 나는 왜 육신적이지? 나는 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지? 나는 전도를 해도 구원받은 사람이 안 일어날까? 나는 왜 성경을 읽으면 잠이 올까? 헌금 하려고 하니 아깝네’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죄의 담이 무너지고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삿 15:14~16)
유다 사람들이 삼손을 새 줄 둘로 꽁꽁 묶어서 블레셋 군대 앞에 나오게 했습니다. 그때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에게로 몰려오니까 삼손에게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임하여 자기를 묶고 있던 그 굵은 줄을 불 탄 삼처럼 풀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기 전에는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죄의 담이 막혀있었는데, 십자가의 보혈로 내 죄가 사해졌다는 그 사실을 믿으면 여러분과 예수님 사이에 있는 죄의 담이 무너집니다. 전에는 ‘나는 죄를 지었으니까 죄가 많아. 이 죄는 사해지지 않았을 거야’ 하고 예수님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너의 죄를 씻었으니까 너는 의로워졌어’ 하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내가 의로워졌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네. 하나님이 내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네. 그러면 나는 깨끗하구나’ 하고 우리 마음이 바뀌면서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자유를 주는 성령

예수님의 마음이 여러분 속에 흘러 들어오는 것은 성령이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면 육신의 욕망에서 쉽게 벗어나게 됩니다.
러시아의 블라디캅카스는 마약이 판치는 도시인데,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많은 젊은이들이 구원받은 후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이유는 자기 힘이 아닌, 예수님의 힘이 그 유혹을 이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나기 전 예수님이 마음에 계시지 않을 때는 적은 것에 매여서 며칠 동안 고민하는 등 유혹과 욕망에 얽매이게 됩니다. 그러나 삼손에게 여호와의 권능이 임하면서 삼손을 묶고 있었던 굵은 줄이 불탄 삼줄처럼 두두둑 떨어져 버리듯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들을 묶고 있는 모든 데서 참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하는 말씀처럼 근심, 두려움, 염려가 마음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도록 우리 마음이 평안하고 기쁘고 자유롭게 됩니다. 하나님의 신의 권능,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 참된 자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귀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사합니까?
 

여호와의 권능이 임했지만

삼손이 적들에게 둘러싸여 동아줄에 꽁꽁 묶여 있을 때 적들이 무기를 들고 죽이러 나왔지만 그걸 이길 만한 여호와의 권능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삼손이 나귀턱뼈 하나를 손에 쥐고 치니까 금방 일천 명이 죽어버렸습니다.
삼손이 승리하자 블레셋 사람들이 다 도망갔습니다. 삼손이 목이 심히 말라 견딜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 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삿 15:18) 하나님이 ‘레히’라는 곳의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왔습니다. 삼손이 그 물을 마시고 소생하여 ‘하나님의 신이 임하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며 다시 담대해졌습니다. 그러자 삼손의 마음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사단이 삼손의 마음에 음란한 마음을 넣었습니다.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혹이 가사 사람에게 고하여 가로되 삼손이 여기 왔다 하매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종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삼손이 밤중까지 누웠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문 짝들과 두 설주와 빗장을 빼어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삿 16:1~3)

삼손을 세우신 이유

사사기의 배경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후 광야 40년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 후 하나님이 그 땅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짓게 하셔서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그들에게 복을 주고 은혜를 베풀어 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예배도 형식적으로 변하고 마음이 점점 세속으로 흘러가면서 여유를 가지고 세속에 빠져버려 나라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지니까 전쟁이 일어나 블레셋 사람들에게 노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삼손을 세우시고 그에게 권능을 주셔서 그 힘으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이스라엘 나라를 평정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 주시는 아름다운 세계를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사단의 유혹에 빠져

처음에 삼손에게는 이스라엘 백성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이끌린 것이 아니라 여유가 생기자 육신적인 욕망으로 흘러가면서 마침내 여자에게 마음이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에게 마음이 빠져들 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저는 여자들의 유혹에 약합니다. 하나님이 타락하지 않게 저를 지켜주시옵소서’ 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데, 기생과 자는 방탕한 삶으로 흘러갔습니다.
자다보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죽이려고 성문에 매복해 있는데, 삼손이 일어나 성문짝과 설주와 빗장을 빼어 어깨에 메고 앞산 꼭대기로 갔습니다. ‘너희가 이래 봐야 별거 없어. 난 힘이 있어’하며 자기를 믿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사단은 간교하게 삼손을 꼬였습니다. ‘너도 육신이 있으니까 여자 생각이 나겠지. 기생하고 하룻밤 자더라도 네가 힘이 있는데 뭐가 문제야?’ 그렇게 흘러가자 어느 새 삼손은 이성적인 유혹을 마음에서 용납해 버렸습니다.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

“이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삿 16:4) 이제 사단은 여자를 통해서 삼손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삼손이 ‘이 여자를 사랑하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하나님, 여기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저, 지금 이 여자 때문에 망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사단은 ‘괜찮아. 넌 힘이 있잖아. 지난번에 가사에 있는 기생하고 자다가도 성문을 메고 집어던졌잖아’ 하며 삼손을 설득했습니다.
‘그래 맞아. 난 힘이 있어. 블레셋 사람들 천 명, 만 명이 덤벼도 자신 있어. 그러니까 난 여자하고 좀 지내도 돼’ 하는 여유가 삼손의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들릴라에게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이기어서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일천 일 백을 네게 주리라.”
들릴라가 집요하게 삼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날 사랑한다 하느뇨 당신이 나를 세 번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면서 조르니 삼손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충대충 거짓말을 했지만 사단은 삼손이 힘의 근원을 토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결국 그는 머리카락을 베인 채 무기력한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그리스도인들

저는 구원받은 후 힘 있게 살다가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해 가는 형제자매들을 봅니다. 사단은 간교하게 여러분이 하나님을 떠나 육체육체의 쾌락으로 흘러가도록 만듭니다. 여러분 마음에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사랑이 점점 시들해지고 육신의 것이 점점 좋아지면서, 육체육체의 욕망을 위해서는 돈을 쓰고 즐기지만 복음을 위해 돈 쓰는 데는 인색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멀어지면 마음은 뻔하지만 복음을 잘 전하지 못하고 그냥 육으로 흘러가면서 서서히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을 때 정말 기쁘고 감사했던 마음이 기억납니까? ‘내 재산과 생명을 다 드려도 아까울 것 없는 이 복음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여러분에게 있었죠? 그러나 사단은 여러분을 패망으로 끌어가기 위해서 여러분을 안심시켰습니다. ‘난 구원받았으니까 천국에 갈 수 있어. 그러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그런 마음이 육신의 쾌락을 용납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을 아십니까?

회개하지 않으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간교한 사단에 의해서 육으로 흘러갑니다. 지금은 타락하지 않았지만, 복음을 생명처럼 사랑하고 주님만을 위해서 온 마음을 다 드리지 않으면 빠른 속도로 세상에 빠지면서, 삼손이 무기력하게 눈이 뽑히고 놋줄에 묶여 블레셋 사람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처럼 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기력하게 변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에게 속아서 육체육체를 용납했던 것, 주님보다 내 육체육체를 더 귀히 여겼던 것, 복음보다 내 삶을 더 귀히 여겼던 것, 예수님보다 자식을 귀히 여겼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단이 여러분을 삼손처럼 무기력한 자로 만들려고 여러분을 끌어가는 계략입니다.

복음만을 위한 삶을 살아야

우리 주위에 참 많은 사람들이 죄 속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면서  울부짖고 있지만 우리 마음이 무감각하게 흘러가면서 삼손의 길을 따라가고 있지 않는지를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예수님이 최우선이 되어있지 않았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삶의 전부가 되어있지 않았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이끌림을 받으면서 복음을 위해 살고 그 주님이 나를 이끌어 무슨 일을 만나든지 주님이 해결하는 은혜로운 삶을 살지 아니하면 우리는 육으로 흘러가 패망하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이 없듯이 신앙에도 중간은 없습니다. 오늘 아침, ‘내가 이렇게 살다가는 삼손처럼 망하겠구나’ 하며 주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복음만을 위하여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 2009. 10.11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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