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삭)을 제물로 드린「아브라함」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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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삭)을 제물로 드린「아브라함」의 믿음
2008.11.23 주일 낮 설교 - 233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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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중에 만난 어떤 청년

지난 주 광주 집회를 하는 중에 어떤 부인이 자기 아들과 신앙상담을 하고 진로 문제를 의논하려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어떤 문제를 상담하려는지 들으려고 했더니 아들이 갑자기 “엄마, 엄마는 좀 나가 계세요” 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나 있으면 안 돼?” 했지만 자꾸 어머니를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나가고 아들과 둘이 앉았는데 아들이 저에게 “목사님, 전 에이즈에 걸렸습니다” 하며 지금까지 문란하고 방탕하게 살았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그 청년을 쳐다보면서 ‘누가 이 청년으로 하여금 못난 나에게 마음을 다 열고 이야기할 수 있게 했는가? 이 청년 마음이 정말 아름답다. 이 청년을 하나님이 축복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면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저는 사람의 마음을 봅니다. 그 청년이 자기 마음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았겠지만, 지금까지 자기 방법으로 살아온 것에 대한 한계를 느끼면서 이제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그대로 내려놓는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에이즈 그거 별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하나님과 가까운 마음

피아노나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이 있고 농사를 지어서 열매를 맺는 과정이 있듯이 저는 사람들의 마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으로 만드시는데, 그 지경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는 자꾸 청년의 마음을 더듬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문란하게 살다가 에이즈 진단을 받았을 때 얼마나 절망했을까? 나에게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자신을 내려놓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 청년의 마음이 38년 된 병자,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 귀신 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자처럼 하나님과 가까워졌다는 걸 느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자기 지혜나 비뚠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고 자기가 좋으면 좋고 자기가 싫으면 싫어하지 않는가? 남에게 인정받고 싶고 남에게 무시 받기 싫어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가?’

예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그 시간 그 청년과 저는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냥 복음을 전한 게 아니라 그 청년의 ‘마음의 손목’을 잡고 복음의 문으로 같이 걸어 들어갔습니다. 30분 지난 뒤에 그 청년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습니다.
문 밖에서 기다리던 어머니와 만났는데,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글썽하면서 변한 자기 아들의 얼굴을 보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저는 그 청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세상의 유혹에 다시 빠지지 않게 그를 지켜주십시오. 이젠 그를 주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이제 그의 문제는 모두 주의 것입니다. 그를 예수님이 다듬어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이럴 때마다 저는 제가 목사가 된 게 정말 행복합니다. 제 마음에서 그 청년은 더 이상 에이즈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음란하고 방탕한 청년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 예수님의 손에 잡힌 사람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저는 오늘 창세기 22장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생애 중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데, 아브라함의 생애는 창세기 12장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1~3)
아브라함은 하란의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를 현재 이스라엘이 있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세계 지도를 보면 육반구의 중심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교통의 요지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지중해로 나가면 대서양을 만나고 사우디아라비아 쪽으로 나가면 인도양을 만납니다.
아브라함 당시 지도가 없었으니까 아브라함 자신은 몰랐지만, 하나님은 세계 중심인 이스라엘 땅의 아브라함의 씨에서 메시야가 태어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게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곳까지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까지 왔지만 아직도 하나님과 다른 마음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는 것을 아브라함도 기뻐하고 당신이 즐거워하는 것을 아브라함도 즐거워하는, 즉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는 데 뜻을 두고 아브라함을 이끌었습니다.

비뚤고 악한 인간의 생각

오늘도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계속 이끌고 계십니다. 사업에 실패하거나 병에 걸리거나 이혼하는 등의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터전을 무너뜨리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후 사단이 이끄는 죄악 된 방향으로 인간의 사고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느끼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여러분의 판단, 주관, 철학은 비뚤고 악합니다. 결국 그 속에 하나님의 마음을 담거나 하나님의 마음과 같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면 그때부터 당신의 뜻을 위해 여러분을 쓰십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주관하셔서 장사를 하거나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교만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렀을 때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의 자세를 보면 마음이 높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뭘 했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습니까? ‘나는 40일 금식기도를 했다. 연보를 많이 해서 예배당을 지었다. 철야기도를 했다’ 하는 것이 있으면 마음이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부부가 살면서 남편이 조금만 잘나가면 아내를 무시합니다. 아내도 자신이 좀 잘났다는 생각이 들면 남편을 무시하고 남편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가정이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세상에서 평등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아들이 남의 아들과 똑같기를 바랍니까, 아니면 더 좋아지길 바랍니까? 여러분은 남과 평등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남보다 더 좋아지길 바랍니다. 남보다 잘나기 위해서 자신의 못난 것을 숨기고 잘난 것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인정받으면 마음이 교만해집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가 아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후 생긴 지혜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3~18)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와 사단으로부터 받은 지혜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함과 선함이 가득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가 아닌, 사단에게서 오는 지혜라도 자신에게 유익하면 그것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지혜는 악하거나 거짓된 데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지혜를 남을 속이고 망케 하는 데 씁니다. 그 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지혜가 아니기 때문에 그 지혜를 쓰면 결국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단의 지혜에 익숙해져 있는 마음을 끄집어내는 일을 하십니다.

자기 지혜를 버려야

간첩이 사람들을 매수할 때 먼저 돈을 준다고 합니다. 그 돈을 받는 사람이 간첩이 주는 것이라는 걸 알면 받지 않겠지요. 자기도 간첩이 되면 죽을지 모르니까요. 사단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사단으로부터 오는 지혜인 것을 정확히 모르면 그 지혜를 쓰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로 일을 했을 때와 사단이 준 지혜로 일을 했을 때의 결과를 계속 가르쳐 주십니다.
여러분이 사단이 주는 지혜로 인생을 살다보면 처음에는 잘될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불안해지고 슬퍼지고 자꾸 일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사단이 또 다른 지혜를 줍니다. ‘이 문제는 이렇게 하면 풀릴 것 같아’ 하고 뛰어들면 점점 그 속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속았구나! 내가 이런 지혜를 사용해서 정말 망하게 되었구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그때 내가 뭣도 모르고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은 생각 속에   빠졌었구나! 내가 진짜 잘못 됐네!’ 하면서 자기 지혜와 방법을 버리게 됩니다.  

셰퍼드 훈련과정을 볼 때

셰퍼드를 훈련하는 사람은 셰퍼드에게 남이 주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훈련을 시킵니다.   도둑이 개 때문에 남의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으니까 독을 먹여서 죽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셰퍼드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어 합니다.
훈련이 시작되면 셰퍼드를 며칠 굶겨서 배가 고플 때쯤 지나가는 사람이 고기를 던져줍니다. 셰퍼드가 좋아서 그것을 물면 그 안에 바늘이 있어서 입이 찢어지고 피가 납니다.  그러면 주인이 나타나서 “거봐. 왜 남이 주는 걸 먹어? 내가 주는 것만 먹어야 돼” 하며 치료해주고 음식을 줍니다.
그 다음에 배가 고플 때 음식이 있으면 ‘지난번에 한 번 당해봤으니 이건 괜찮을지 몰라’ 하며 발로 바늘이 있는지 꾹꾹 눌러봅니다. ‘없네? 괜찮네?’ 하며 먹으면 이번에는 카바이트가 들어 있어서 토하게 됩니다. 배고파 죽을 정도지만 주인 아닌 다른 사람이 주는 것을 안 먹을 때까지 그런 훈련을 계속합니다. 그래야 셰퍼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욕망과 쾌락을 따라 가기 때문에 내가 볼 때 유익하고 좋을 것 같으면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서라도 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면서 ‘난 하나님 믿어서 술도 못 마시고, 놀러 가지도 못해’ 하며 하나님이 자기를 피곤하고 어렵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를 빼앗긴 아브라함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와서 기근을 만났지만 하나님 방법과 지혜가 아닌 자기 지혜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애굽에 가면 양식이 많으니까 배고프지 않을 거야’ 하며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가다보니까 ‘내 아내가 정말 예쁘기 때문에 애굽에 가면 사람들이 아내를 뺏기 위해 나를 죽일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 제 아내가 너무 예뻐서 사람들이 저를 죽일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게 아니라 자기 지혜대로 일을 처리했습니다.
“여보, 나를 보고 오빠라고 한 번 해봐.” “왜 오빠라고 해요?” “그냥 한 번 해봐. 연습으로.” “오빠.” “듣기 괜찮네. 당신, 나를 보고 오빠라고 불러.” “아니, 왜 오빠라고 하라고 그래요? 당신이 남편인데.” “괜찮아. 앞으로 오빠라고 하는 거야.” “아니, 왜요?” “애굽에 가면 당신이 너무 예쁘니까 당신을 빼앗아 가려고 나를 죽일지 몰라. 그런데 당신이 나를 오빠라고 하면 나를 안 죽일 수 있잖아.”
그들이 애굽에 도착했습니다. “이 여자 누구예요?” “제 동생이에요.” “정말 오빠 맞아?” “예, 오빠예요.” 소문이 애굽 왕에게 전해졌습니다. “왕이여,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가나안에서 우리나라로 왔는데, 그 여동생이 정말 예쁩니다. 그 여동생이 우리 궁에 들어오면 궁이 환해질 만큼 예쁩니다.” “오라 해라.”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를 데려가 버렸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방법은 지혜로워 보이지만 인간은 사단의 지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지혜를 이용하면 틀림없이 올무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자신의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왔지만, 여전히 자기 옳은 길을 따라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일하실 수 없었습니다. 형제자매들도 주를 위해 참 많은 것을 하지만 자신이 가진 생각과 주관에 익숙해져서 그것을 벗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아브라함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뺏겼을 때 하나님이 바로에게 역사해서 아내를 돌려주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오면서  ‘정말 내 방법이 무익하구나. 하나님이 도우셔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브라함이 사라의 계집종 하갈을 자꾸 쳐다보니까 계집종이 예쁘게 보였습니다.  ‘저 여자는 젊고 튼튼해서 아기를 잘 낳을 것 같은데, 우리 마누라는 늙어서 아기를 못 낳는가봐’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사라가 눈치 챘습니다.  “여보, 더 늙기 전에 계집종과 동침해서 아들 하나 얻어야겠어요.” “그러지 뭐.”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낳은 이스마엘은 많은 재앙과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지만 인간적인 방법으로 계속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

아브라함이 99세 되었을 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람아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 해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라.” “백 세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아요?” 하나님이 여전히 자기 생각 속에 있는 아브라함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살았던 삶을 돌이켜보면서 ‘내 방법으로 잘 된 게 아무것도 없구나. 하나님은 당신의 지혜를 가지고 살기를 원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고 백 세 되었을 때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네 독자 네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려라.” 예전 같으면 하나님 말씀에 이런저런 이유를 달았을 텐데 아브라함이 자기 생각을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아들 이삭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난다고 하셨는데, 이삭을 제물로 바치면 어떻게 이삭을 통해 아들이 나겠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도저히 계산이 안 된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러면 바치자’ 하고는 이삭을 데리고 종들과 함께 나귀에 짐을 실어서 제사를 드린다고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자기가 아들을 죽이려고 하면 하인들이 못하게 할 테니까 “안 되겠다. 너희는 나귀하고 여기 머물러 있거라. 내가 아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오겠다” 하고는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고 아들은 장작 나무를 어깨에 메고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자기 생각을 다 비웠을 때

“아버지, 불과 칼과 나무는 있지만 번제에 쓸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아들아, 번제에 쓸 어린 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거다.” 산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려 놓았습니다. “이삭아, 이리 오너라. 내가 네 손을 좀 묶을게.” “아버지, 왜 그러세요?  “발도 묶는다.”  “예, 아버지.” “이삭아, 하나님이 너를 제물로 바치라고 했어. 난 이제 너를 제물로 바칠 거야.”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찌르려고 하는데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며 연거푸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겠다.” 이제 아브라함은 자기 생각, 자기 주관을 다 비웠고 그런 그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아브라함처럼 귀한 하나님의 훈련장에 앉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구 위의 수많은 사람 가운데 여러분을 선택하고 죄 사함을 받게 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같이하도록 여러분을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무엇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먼저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전부 드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 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시대의 아브라함처럼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여러분의 생각과 주관이 있으면 하나님이 능력으로 여러분 속에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마음을 갖고 있으면 하나님은 시련과 고난을 더 겪게 하여 자신을 부인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아브라함입니다. 험난한 이 세상에서 여러분의 방법으로 살다가 마지막 죽어갈 때쯤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지 말고, 하루 빨리 여러분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시대의 아브라함이 되어 어두움을 밝히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 2008.11.23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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