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도 믿음을 가진 사도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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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도 믿음을 가진 사도 「바울」
2008.11.16 주일 낮 설교 - 232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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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단의 음악을 들으며

저는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노래를 듣다 보면 정말 행복합니다. 한번은 그라시아스 합창단과 같이 전도여행을 하는 중에 다음 비행기를 타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합창단에게 연주를 하라고 했습니다. 공항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니까 사람들이 백 명 정도 모인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또 한번은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서 합창단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하고 시작하는 ‘고향의 봄’을 불렀는데 여든 가까이 된 한국인 노부부가 그 노래를 듣고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분들은 상당히 오래 전에 한국을 떠난 분들 같았는데 그 노래를 들으면서 무척 감격스러워했습니다.
제가 단원 중에 이혜림 자매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피아노 반주를 하는 제 딸에게 “은숙아, 혜림이 바이올린 연주 참 잘한다” 했더니 바이올린 연주는 피아노 반주 없이 박자를 맞추며 연주하기가 굉장히 어려워 혜림이도 박자가 조금씩 떨어지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피아노도 하루만 안 치면 실력이 떨어지는 표가 금방 난다고 합니다.
성악을 하는 단원들도 교수님에게 노래를 배울 때는 음이 아주 예리하고 깔끔하게 나오는데, 단원들끼리 부르면 음이 흐려져서 매일 배워야 한답니다. 우리가 볼 때는 그냥 노래를 부르는 것 같지만 성악가들은 같은 노래를 수십, 수백 번 불러 보고 무대에 서는 것입니다. 이런 감각들은 그냥 유지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익혀야 유지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음을 보는 눈이 어두워져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떻게 하나님과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 하고 신앙에 비추어 생각해 봅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벼나 배추를 길러내는 농사를 짓듯이, 신앙도 우리 마음 안에서 예전에 없던 새로운 마음을 만드는 삶과 육체의 욕구를 따라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은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쉽게도 마음의 세계를 보는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신들이 벌거벗은 것을 보고 부끄러워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지기 전에는 벌거벗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후에는 허물과 문제,  슬픔과 악을 보는 눈이 밝아졌습니다. 반면 하나님 마음의 세계를 더듬어 보는 눈은 굉장히 어두워졌습니다.
다리를 못 쓰는 사람은 다리가 해야 할 일을 모두 팔로 처리해야  합니다. 팔로 휠체어를 돌린다거나 클러치를 잡기 때문에 다리를 못 쓰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팔이 굵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의 세계를 보는 눈이 어두워지는 만큼  상대적으로 눈으로 보는 세계에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눈을 뜨게 되면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은 보는 게 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불편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더러운 옷을 입어도 더러운 줄 모르고, 비뚠 길을 가도 비뚠 줄 모릅니다. 만약 다리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건강한 사람을 보았다면 ‘나도 저렇게 두 발로 땅에 서 봤으면 좋겠다’ 는 소망을 가지게 될 겁니다.
그처럼 여러분이 마음의 세계를 보는 눈이 뜨인 사람과 산다면 ‘저 사람은 나와 달리 정말 행복하고 기쁘게 사는구나. 그런데 나는 마음의 세계를 보는 눈이 없어서 저 사람처럼 살지 못해. 나는 왜 마음의 세계를 볼 만한 눈이 없지?’ 하면서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가운데 어느 누구도 마음을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줄 압니다.
그러다 여러분이 성경을 통해 믿음을 가지면 지금까지 흘러갔던 마음의 세계와 다른 마음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의 세계가 얼마나 어둡고 더럽고 추하며 성경이 보여주는 세계가 얼마나 밝고 아름답고 소망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좋은 아파트, 좋은 차 같은 재물이나 국회의원, 장관 같은 권세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는 새로운 세계 속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겁니다.  

사고 소식에 근심했지만

마음의 세계가 육체에 국한되어 있어 다른 세계를 볼 만한 눈이 없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금같은 청춘을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년에 아프리카 가나에 굿뉴스코로 봉사활동을 하다가 척추를 다친 문혜진 자매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혜진이가 다쳐서 척추가 손상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신경이 눌려서 하반신 마비가 되어 한평생을 누워 지낼 혜진이를 생각하니 정말 암담했습니다. 제 마음이 근심으로 가득 차면서 ‘아프리카 같은 위험한 곳에 대학생들이 가서 이런저런 일들에 부닥치면 내가 어떻게 해야 되지? 다행히 지금까지 잘해왔지만 굿뉴스코 파견 더 이상 못하겠다. 혜진이 부모가 예수님을 믿는지 모르겠지만 그 부모를 만나서 당신이 사랑하는 딸이 척추를 다쳐서 한평생 누워서 살아야 된다고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해?’ 하는 생각에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혜진이가 낫겠구나!’

그러나 다시 그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가나교회가 예배당 공사를 하면서 마침 여학생들이 발판에 올라가 줄눈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감독하는 형제가 발판이 약하니 두 명 이상 올라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여학생들이 조잘거리며 이야기하다가 4명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 뚱뚱한 형제가 올라오기에 “여기 올라서면 안 돼요”라고 했지만 형제가 괜찮다며 올라가자 발판이 내려앉으면서 혜진이가 떨어져 다치게 되었습니다.
‘그 발판이 무너질 것을 주님은 아셨는데 왜 가만히 계셨을까? 주님이 악당이어서 혜진이가 다치는 것을 좋아하셨을까?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떨어질 때도 척추 안 다치게 떨어지게 하실 수 있는데 왜 그냥 두셨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이 일은 하나님이 혜진이에게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그러면 혜진이가 나아서 걷게 되겠구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부담스럽고 근심스럽던 마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혜진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세요. 문혜진 어머니세요?” “예, 목사님. 저예요.” “혜진이가 가나에서 예배당 공사하다가 떨어져 척추 1번 뼈가 부러졌어요. 한국으로 데리고 오려는데 비행기편이 안 돼요….”
숨을 죽이고 혜진이 어머니한테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저 수양관에 와 있어요.” 우리 교회 자매다 싶어 안심이 되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저보다 안 낫겠습니까. 목사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저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울면서 소리를 쳤을 건데…. “자매님, 고맙습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다

그러고 나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권오선 선교사에게 전화를 해서 혜진이가 독일에 도착하면 바로 수술을 받도록 공항 가장 가까운 곳에 척추 수술 가장 잘하는 병원을 찾아보고 앰뷸런스를 공항에 대기시키도록 했습니다. 혜진이를 태운 비행기가 도착하면 아무도 내리지 못하게 하고 혜진이를 먼저 내리도록 항공사에 연락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그 후로는 하나님이 모든 과정을 돕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두 차례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가슴 쪽 수술을 할 때는 갈비뼈를 잘라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고맙게도 독일 의사들이 그런 상황에서도 혜진이가 웃음을 잃지 않는 걸 보고 천사라며 갈비뼈를 자르지 않고 수술을 하려고 고생을 많이 했답니다.
수술을 마치고 의사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다했어요. 이제 하나님이 하실 일만 남았어요”라며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빠른 수술 덕분에 혜진이가 앉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고

혜진이가 한국에 도착하는 그 시간에 저도 아프리카에 갔다가 두 시간 후에 인천에 도착해서 혜진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갔습니다. 혜진이를 처음 보고 발을 잡아보았습니다. 똑같은 발인데 신경이 끊어지니까 발이 움직이지 않고 감각이 없었습니다. 제가 참 궁금했던 것은 혜진이의 마음이었습니다.  
“혜진아, 네 마음은 어떠냐?” “목사님, 정말 감사해요.” 그 말에 눈물이 나오려고 했습니다. “뭐라고? 감사하다고?” “목사님, 전 가나에서 믿음으로 살지 않았어요. 이제 저를 믿음으로 살게 하려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 같아요. 저 나을 줄 믿어요.” 하나님이 저에게 준 마음을 혜진이에게도 주신 것입니다.

기적적으로 신경이 살아나

그 후 15개월이 흘렀습니다만 저는 형편이 어떠하든지 혜진이가 침대에 한평생 누워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의사들은 혜진이에게 허황된 생각을 버리고 지금이라도 불구의 몸으로 살아갈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제게 새 마음을 주신 후로는 근심과 걱정이 다 물러가면서 혜진이에 대해 걱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혜진이는 대소변도 마음대로 못 보고 음식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마는,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고 있습니다. ‘난 절대 환자가 아니야. 다 나을 거야. 이건 과정일 뿐이야’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혜진이에게 책을 쓰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조금만 어려움을 당하면 죽으려고 하고 실망 속에 빠지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새로운 마음의 세계로 이끌림을 받기 때문에 전혀 다른 세계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 달 전에 혜진이가 제게 “목사님, 다리가 너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척추가 손상되면서 신경을 눌러 배꼽 아래로 모든 기능이 마비되어 하반신이 움직이지 않는데,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로 아프다는 것은 신경이 살아났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지난주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에는 혜진이가 방귀를 끼었답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제 혜진이가 대소변도 보고 걸어 다닐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

열왕기상 17장에서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를 만났을 때 그 과부는 성문 어귀에서 마른 나뭇가지 몇 개를 줍고 있었습니다. 가루 한 움큼으로 빵을 만들려면 나뭇가지가 많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 불을 피워서 가루 반죽으로 빵을 만들어 먹은 다음에는 먹을 게 없어 죽어야 하는 것이 그 과부의 형편이었습니다.
엘리야가 그 여자에게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물이 귀했습니다.
과부가 물을 뜨러 가는데 엘리야가 불렀습니다.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 오라.”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계집종의 집에는 떡이 없고 다만 통의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이제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내가 내 아들과 더불어 떡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우리가 죽으리이다.”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작은 떡 한 덩이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라. 주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 땅에 비가 내리는 날까지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소망의 마음으로 변하고

여러분, 엘리야의 입에서 나오는 말 속에는 소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남은 가루를 아끼고 아꼈다가 이제 그것을 먹으면 그 후에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처절하고 암담한 마음에 빠져 있었는데, 엘리야의 말이 그 여자의 마음에 소망을 일으켜 주었습니다.
‘내가 이 가루를 가져다가 떡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주면 가루 통에 가루가 또 생기겠구나. 그 가루로 빵을 만들면 내 아들과 친정 식구들이 먹을 수 있겠구나. 하나님이 종을 보내셨구나.’ 가루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여전히 예전 그대로였지만 그 여자의 마음은 예전 그대로가 아닌 새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교회 가서 열심히 기도하고 착한 일 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마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여 그 마음으로 자신을 채우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와 그것이 여러분 마음에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하늘나라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모든 고난, 슬픔, 두려움, 근심을 내쫓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그러한 것들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

우리는 오늘 사도행전 16장을 읽었는데, 바울이 매를 맞아 온 몸이 찢어지고 쇠고랑에 매여 깊은 옥에 갇혔습니다. 매를 맞고 기절했다 깨어나서 ‘여기가 어디야? 지하 감옥 같아. 어떻게 여기서 나가지?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 사람들이 너무 심하게 때리더니….’사도 바울의 마음에 그런 마음이 일어났을 겁니다.
등은 찢어지고 팔 다리와 얼굴에는 채찍 자국이 나고 손발은 쇠고랑에 매인 채 쇠창살로 된 컴컴한 지하 감방에서 밤을 맞이했을 때 바울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슬프겠습니까?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울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온 새 마음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감옥에 들어왔는데 하나님이 없었다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제가 전에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핍박했는데도 하나님은 저를 미워하지 않고 구원하셔서 저와 함께 계시는군요.’

기쁨으로 찬미하며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여전히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어깨는 쑤시고 등은 아프고 따갑지만, 하나님의 마음이 그에게 임하면서 모든 생각을 이기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할렐루야! 주를 찬양합니다. 저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을 섬기고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감옥에 있지만 제 마음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당신이 나와 함께 계신데 제가 옥에 갇히면 어떻고 매여 있으면 어떻습니까?’
죄수들이 찬송 소리를 듣고 “쯧쯧쯧, 불쌍하지. 그렇게 매를 맞고 안 돌 수가 있어? 말하는 걸 봐서는 많이 배운 사람 같은데, 참 불쌍하다”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형편이 어떠하든지

여러분,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 마음 안에서 산, 강, 바다, 나무, 그리고 사람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로 만드는 것을 ‘천지 창조’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보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마음에서 먼저 이루어졌고 그것이 땅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먼저 평안과 소망을 채우십니다.  우리 마음이 소망으로 채워졌을 때 우리 형편도 평안과 소망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르밧 과부의 가루 통에 가루가 채워지기 전에 먼저 사르밧 과부의 마음 안에서 가루 통의 가루가 채워지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눈에 보이는 형편으로 마음을 채우는 보편적인 사람이었다면 감옥 안에서 슬퍼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했겠지만,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더 큰 하나님의 세계를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능히 옥문을 여실 수가 있다는 믿음이 그 안에 가득해서 하나님께 찬양하고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자기 눈에 보이는 형편을 믿는 사람은 바울처럼 감옥에서 찬송할 수 없습니다. 찬송할 형편이 되어야 찬송하고, 어렵고 근심스러운 일이 있으면 근심하는 사람은 세상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형편이 어떻든지 주를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사해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눈 뜰 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를 흘리고 못 박혀 죽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죄 속에 살다가 어느 날 그 마음을 받아들이면서 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믿음이 우리 속에 일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하나님의 세계를 마음에 받아들이면 슬퍼도 기뻐할 수 있고, 두려워도 찬송할 수 있고, 근심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감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감사함으로 채워지면 감사할 형편이 오고, 주의 풍성함으로 채워지면 삶도 풍성하게 되고, 기쁨으로 채워지면 기뻐할 수밖에 없는 형편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을 잠시 감고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뜨게 되길 바랍니다. 내가 느끼고 내 판단으로 살던 삶을 접고 예수님께서 내게 행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눈을 뜨면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세계로 가득 찰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형편도 그렇게 채워질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을 위해 사는 삶에 종지부를 찍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뜨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을 가득 채우시고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시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일꾼이 될 줄 믿습니다.  

- 2008.11.16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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