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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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마가복음 11장 20절 ~ 22절] 2009.9.20 주일 낮 설교 - 276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9.09.2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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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마가복음 11장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신 이야기입니다. 나귀새끼를 타고 들어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 나뭇가지를 흔들며 말하기를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며 환영했습니다. 그 이튿날 베다니에 오셨다가 다시 성으로 들어가셨는데, 길가에 잎이 아주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굉장히 시장하셔서 그 열매를 구하려고 가까이 가셨는데 잎만 무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니까 다음날 그 무화과나뭇잎이 다 말라 버렸습니다.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0~23)
이 말씀은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무화과나무의 비유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나무는 잎도 무성하지만 열매도 있고, 어떤 나무는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합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헌금도 하고,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봉사도 해서 신앙을 잘하는 것 같은데 열매가 전혀 없는 사람의 삶을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마음

여자가 결혼해 살면서 어떤 사람은 자식을 다섯이나 낳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아기를 낳지 못하기도 합니다. 또 부부가 살면서 싸우다 보면 남편이 ‘저 여자하고 한평생 어떻게 살지?’ 싶을 때도 있고 ‘내가 어쩌다 저런 인간한테 걸려서…’ 하고 속으로 욕할 때가 있지만 ‘내 아내가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며 아내가 귀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영적 삶에서도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면 하나님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열매가 우리 삶에서 맺힙니다. 아주 드물게 일생에 한두 번, 더 잘 맺는 사람은 일 년에 몇 차례씩, 또 어떤 사람은 매일매일 열매 맺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과 함께하게 되면 예수님으로부터만 흘러오는 마음의 세계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구원의 열매를 맺으려면

대전도집회를 하면 수천 명이 모이는데, 처음 오시는 분들이 먼 데서 집회 장소까지 와서 참석하는 것을 보면 매우 고맙습니다. 대전도집회를 통해 그분들을 구원으로 이끌려고 설교를 하면 구원받는 사람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설교가 참 은혜롭다고 하면서도 구원의 선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목사로서 한계를 느낍니다. 좀 더 설교하고 싶어서 후속집회를 하면 그때 구원받고 거듭나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구원의 선에 가까이 왔는데 결국 구원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제가 대전에서 목회 할 때, 충청도 사람들은 굉장히 느긋해서 “3년 전에 포스터를 봤는데 이제 집회에 왔다”고도 했습니다. 대전도집회에 참석했다가도 교회는 안 나오고 세상에 빠져 살다가 5년 후, 10년 후에 와서 구원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집회 포스터를 붙일 때 그 당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3년, 5년 뒤를 위해서 붙였습니다. 우리 영혼의 구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도 예수님의 열매가 그렇게 나타납니다.

두 가지 마음의 영역

다윗은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된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오랫동안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울 왕은 40년의 재위 기간 동안 다윗을 죽이려 군대를 거느린 채 수없이 쫓아다녔고 다윗은 몇 번이나 잡혀 죽을 뻔했습니다.
마침내 다윗이 왕이 되고 난 후 어느 날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서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찌어다 저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삼하 1:24)는 애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불러 왕자처럼 대접하자,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영역과 사단의 영역인 두 가지 마음의 영역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역 안에 있으면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되고 하나님 차원의 사고가 형성됩니다. 저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건 내 마음이 아니야. 난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없어’ 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가 참 많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나서 사울에게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었을 텐데, 하나님과 함께하는 동안 하나님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을 점령해서 오히려 사울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가득 찬 요셉의 마음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이 꾼 꿈을 이야기하자 그들은 요셉이 미워서 죽이려고 물 없는 구덩이에 빠뜨렸습니다. 요셉은 마침 지나가던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銀) 이십 개에 팔려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자 오히려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애굽에 팔아넘긴 형들이 원망스럽고 아무 잘못 없는 자기를 감옥에 넣은 보디발의 아내를 생각하면 분한 마음이 들었을 텐데, 감옥 안에서도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자신에게 없는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흘러 받았습니다. 그러자 형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오히려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자와 남자가 결혼을 하면 아기를 낳게 됩니다. 그 아이는 남편으로 말미암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처럼 우리 마음의 세계에서도 예수님과 사랑이 오가면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속에 흘러 들어옵니다. 그러면 이전에 전혀 가져 보지 못했던 예수님 안에 있는 평안, 사랑, 기쁨, 소망이 우리 마음에 생깁니다.

믿음의 선(線)까지 도달해야

여러분이 예수님과 마음을 같이하면 여러분은 지금과 달리 너무나 놀랍게 변하지만, 반대로 여러분이 쾌락이나 욕망에 이끌리면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시가 있고 행동 하나하나, 눈빛 하나하나에 사단의 형상을 담고 살게 됩니다.
저는 47년간 예수님 안에서 살아 왔지만 지금도 예수님이 제 마음을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면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고 범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부를 주님께 드리다가도, 혹시 쾌락이나 죄에 빠질까 두려워집니다. 제가 몇 년 을 더 살다가 죽을는지 모르지만 저는 “박옥수 그 사람, 잘나가더니만 타락했네. 안 그렇더니만 돈에 빠졌네. 교만해졌네”라는 소리를 안 듣고 죽을 자신이 없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 처음엔 마음이 구원의 선까지 도달해야 하듯이, 여러분의 마음이 일단 믿음의 선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주 좋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구원이나 믿음의 선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여러분 마음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열매 맺는 신앙이란

왜 마음으로 신앙을 해야 합니까?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면 외형적으로 교회가 커지고 잘 운영되는 것 같지만, 외형적으로 신앙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 성도들은 마음으로 주님과 가까워지기 어렵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마음으로 연보하는 형제자매님들이 참 많습니다. 그분들의 연보를 통해 많은 복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목사로서 성도에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많이 내게 하는 연보와 마음에서 우러나 드리게 하는 연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드리는 연보는 아무리 많이 해도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연보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에 열매 맺는 신앙을 할 수 없게 합니다.
우선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님께 이끌려야 합니다. 때때로 타락하고 싶고 음란한 마음과 정욕이 일어날 때 내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계신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마음이 음란한 마음과 정욕을 밀어냅니다.
마가복음 11장의 무화과나무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볼 때 하나님을 잘 믿어 괜찮아 보이지만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런 사람들은 저주를 받아 멸망 당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막 11:20)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앞을 지나가시다가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있는지 보기 위하여 갔는데, 열매가 없자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내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내 죄를 사하셨으면 그 죽음이 나를 죄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암술과 수술이 만나 수정되면 열매를 맺는 것처럼 십자가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셨는데도 내게 죄가 남아 있으면 큰 문제이고 그것은 십자가의 열매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우리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의롭게 하기 위한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내 마음에는 죄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열매가 안 맺힌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는 이렇게 되어 갑니다.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믿음의 삶도 그렇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가까이하다 보니까 사울을 미워하는 마음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요셉이 처음엔 자기를 판 형들을 증오했지만 요셉의 마음속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형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받자 더 이상 자기 마음으로 형들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형들을 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이 요셉의 마음에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던 기존의 생각들이 깨뜨려지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을 이끌게 됩니다. 그 마음이 우리 삶 속에 나타나게 되면 그것이 영적인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 동안 다니면서 예수님의 모든 능력을 봤지만 항상 예수님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안타까워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믿음의 세계를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말이 네 마음에 살아서 일하고 있지 않잖아. 네가 바로 열매 없는 그 나무야”라는 말씀을 하고 싶으셨습니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건 내 마음이 아니야. 난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없어’ 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가 참 많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나서 사울에게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었을 텐데, 하나님과 함께하는 동안 하나님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을 점령해서 오히려 사울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연보는

포도나무를 심고 물을 주어 잘 자라면 열매를 맺지만 물을 안 주면 메말라서 열매를 못 맺습니다. 어떤 포도나무는 다른 것보다 초라하지 않으려고 잎만 피우려다가 열매를 소홀히 여겨서 저주를 받습니다. 사람들은 “누구 감사헌금 얼마 했습니다”처럼 자신이 하는 일이 표면적으로 인정받으면 흐뭇해합니다. 그러는 동안 이면적인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마음의 세계는 죽어버립니다. 연보를 할 때는 아무도 모르게 하나님 앞에서 ‘주님, 참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육체를 위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면 그 감사한 마음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예배 드리는 것마저 대단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위해서 나 자신을 다 드려도 부족하다는 마음이 열매로 맺히는 게 아니라, 결국 육체의 욕구가 그 마음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쓰이는 귀한 연보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내가 구원 안 받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참 감사하다’는 주님의 마음이 열매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자라 가면 하나님의 마음이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말씀을 믿고 의심치 않으면

여러분, 육체의 욕구를 따라 육체를 위해 모든 시간을 다 보내고 피곤하다고 기도 안 하는 마음이나 예배 늦게 오는 마음이 여러분 마음에 예수님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 포도나무가 물을 흡수해 정상으로 자라면 꽃이 피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만, 포도나무가 벌레 먹고 메마르면 열매를 못 맺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에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두 제자와 다니실 때 그들이 육체 속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예수님, 무화과나무가 말랐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네가 이 말씀을 믿고 의심치 아니하면 너에게도 열매가 맺어진다. 저 무화과나무처럼 되지 않는다.” 그리고 24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배가 아팠을 때 그냥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믿었습니다. 그러자 아팠던 배가 깨끗하게 낫는 걸 경험했습니다.

사단의 음성을 좇기 때문에

사단은 여러분이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안 될 것처럼, 망할 것처럼 보이는 생각을 계속해서 집어넣습니다. 결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의 말을 듣고 따라가면 안 되고 남편의 말을 들어야 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내 속에서 속삭이는 사단의 음성을 듣고 육체의 쾌락을 좇아가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서 힘을 잃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믿음으로 달려가려고 할 때마다 사단은 마음속에 염려를 주면서 ‘나는 믿음이 없어. 나는 안 될 거야’ 하고 인간적인 마음으로 흘러가게 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걸 알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열매 없이 마음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처럼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여러분 마음속에 살아 역사하지 못하고 자꾸 생각들과 섞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힘 있게 달려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데도 여러분이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 문제 속에서 헤매며 열매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끄는 삶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선교하고 있는 허인수 형제는 백혈병으로 두세 달밖에 못 산다는 진단을 받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말씀을 믿자. 내 병 다 나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서는 ‘그 병이 어떻게 나아, 백혈병인데. 안 나으면 어떻게 할래?’ 하는 사단이 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으로 낫는다는 말씀이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습니다. 결국 허 형제는 병이 깨끗하게 나아서 지금은 선교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예쁘거나 똑똑하지 않아도 남편의 씨를 받으면 아기를 낳습니다. 여러분이 아무것도 못해도 생각을 비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참 많은 사람들이 껍데기 신앙을 하다가 교회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교회 와서 그냥 말씀 한마디라도 들어서 좋다고 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십시오. 잎만 무성한 나무처럼 외형적인 성도의 삶만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이끄는 귀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 2009.9.20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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