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믿는 자 vs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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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믿는 자 vs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
2008.9.21 주일 낮 설교 - 224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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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이니까 신앙이 쉽지”

저는 신앙은 참 쉽고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신앙이 쉽고 재미있다고 하는 제 마음의 세계로 이끌려 오지 않고 ‘목사님이니까 그렇지. 신앙이 어떻게 쉬워요? 신앙은 어렵고 힘들어요!’라는 생각을 합니다. 피아노 연주나 운전 등 다른 일에는 자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신앙에 자신 있어요”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떤 위치를 넘어서면 그때 삶이 달라지고 변화되는 것을 저는 많이 봅니다. 제가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이 저를 도우시는 것을 경험할 때 신앙이 정말 쉽고 재미있다는 걸 느낍니다.

구원받은 후 놀라운 변화가

저는 얼마 전 어떤 자매로부터 구원받고 난 뒤 하나님이 일하신 간증을 들었는데, 제 마음이 정말 뜨거워졌습니다. 그 자매는 지난 5월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어려움 당했던 이야기를 다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집이 날아가고 빚이 1억5천이나 있었는데, 그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루에 잠을 10분 정도밖에 못 잤답니다.
하루는 자살하려고 손목을 칼로 12번이나 그었는데,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그 자매를 친정아버지가 와서 발견하고는 병원으로 옮겨 살게 되었답니다. 그 후로는 손목의 신경이 끊어져서 하던 미용 일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구원받고 난 뒤부터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구원받은 그날 2시간이나 잠을 잤고 요즘은 하루 7시간씩 잔다고 합니다. 또 얼마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1억5천이나 되는 빚을 갚게 되었다는 간증을 들었는데, 제가 눈물이 나서 다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전에 다쳤던 손목이 너무 저리고 아파서 병원에 가보니까 의사들이 깜짝 놀라면서 기적적으로 신경이 살아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매 손에 힘이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정도의 힘이면 장작을 패도 되겠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위치에 따라

마가복음 6장에서 예수님이 고향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저 사람에게 있는 저런 지혜와 권능이 어디에서 났느냐?” 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중 몇 사람이 “저 사람은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 목수였어. 동생들이 우리 동네에 있잖아” 하면서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 다음 성경에는 예수님이 거기에서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마음이 있고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는 마음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아주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추운 겨울에 양지바른 곳에 가면 따뜻하고 응달에 가면 추운 것처럼 마음의 세계가 어떤 위치에 도달하면 여러분 속에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모든 게 쉬워지지만 여러분이 그 마음의 위치에 도달하기 전에는 자신이 죄를 이겨야 하고 열심히 성경 읽고 기도하고 전도해야 하니까 신앙이 굉장히 어렵고 부담스럽고 힘겨워지는 겁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난 금요일에는 주한 코스타리카 대사님으로부터 과테말라,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등 중미 5개 나라가 스페인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독립기념일 행사를 한다고 저와 도 장로님이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파라과이 대사님을 만났습니다. 파라과이는 남미니까 파라과이 대사님은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오셨습니다.
파라과이 대통령이 몇 달 전 우리나라에 왔을 때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공연을 하고 제가 복음을 전한 적이 있는데, 대사님이 저에게 파라과이 대통령과 우리나라 총리의 회동이 뉴욕에서 25일에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도 성경세미나 때문에 21일 뉴욕 간다고 했더니 그분이 “그런 이야기 왜 안 했어요? 이번에 가면 대통령 꼭 만나세요” 하며 UN 직원을 통해 만남을 주선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사님 딸이 IYF 부설 대안학교인 링컨스쿨에 다니고 있는데, 그곳 학생들이 준비한 ‘난타’ 공연도 마련하면 어떻겠냐고 덧붙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저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지금까지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제가 어떤 일 앞에서도 담대하고 감사합니다. 반면 자신이 신앙을 잘하려고 애쓰는 형제 자매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에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는 우리 마음의 세계를 정확하게 그린 내용입니다. 결론적으로 바리새인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는 말씀처럼 의롭다 함을 받고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한국에 많은 기독교인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주님이 주신 의를 받아들인 성도가 되어서 주와 같이 동행하며 기뻐하고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주님이 의를 주셨는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 죄 속에 얽매여서 죄악 된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를 주셨는데 받는 사람이 있고 받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그 의를 받아들이고 또 어떤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그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음성 vs 하나님의 음성

여러분이 교회에 나가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 읽고 율법 지키고 착하게 살면 하나님이 하늘나라에 보내주시고 복을 주실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진짜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 조상 아담이 뱀에게 유혹을 받을 때 아담에게는 두 가지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음성이고 또 하나는 사단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지만 뱀은 “네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 같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음성 중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단의 음성을 받아들였습니다. 다르게 말을 하면 사단의 말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믿으면 그 사람이 하는 말도 마음에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믿지 못하면 그 사람의 말도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아담은 불행하게도 뱀의 말을 들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뱀의 말을 마음에 받아들인 겁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사단과 한마음이 되었기 때문에 사단이 어떤 생각을 일으키면 그게 자기 생각인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사단이 일으켜주는 생각을 따라서 살고 있습니다.

사단이 넣어준 생각을 따르면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값을 감추고는 자신이 드린 것이 전부라고 속였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3~4절)라고 했습니다.
아나니아가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습니다. 땅값을 감추고자 하는마음은 사단이 넣어준 생각이기 때문에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을 보면 “사단이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가룟 유다 마음에 예수를 팔아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갔습니다. 유다는 그것이 자기 생각인 줄 알았지만 성경은 사단이 그 마음을 넣어주었다고 했습니다.
유다는 사단이 넣어준 마음을 따라 예수님을 팔았고 예수님을 판 것에 대해 뉘우치며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예수님을 판 것에 대해 뉘우치고 돌이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단에게 속아서 사단이 넣어준 그 말을 따랐던 것을 깨닫고 거기서 벗어나는 회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유다는 그 사실을 정확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판 것이 드러났을 때 ‘내가 어쩌다가 예수를 팔았지? 내가 미쳤지’ 하는마음으로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얻었노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잘못된 유다의 회개

유다가 예수님을 판 것도 회개해야 했지만 ‘사단이 나를 속이니까 그 음성을 따라 예수를 팔았구나. 다시는 사단의 말을 들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회개를 했어야 합니다. 사단은 다시 유다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예수님을 팔았으니팔았으니까 너는 저주를 받을 거야.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자살해.” 유다는 예수님을 판 가책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사단이 죽으라고 하니깐 사단의 말을 듣고 목매달아 자살해버렸습니다. 사단의 속셈을 알지 못했던 겁니다.
사단은 여러분에게 뭐라고 합니까? ‘네가 선한 일을 하고 율법을 지키고 기도를 열심히 하면 신앙이 좋아지고 달라질 거야.’ 정말 많은 기독교인들이 선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렇게 살지못합니다.
불에 데면 뜨겁고 바늘에 찔리면 아프고 말라리아에 걸리면 열이 나고 떨리고 구토를 하게 됩니다. 만약 말라리아에 걸렸는데도 아무렇지 않다면 말라리아에 걸린지도 모르고 죽을 겁니다. 그러나 열이 나고 고통스러운 것을 깨달으면 ‘왜 열이 나지? 혹시 말라리아 아닌가?’ 하며 약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처럼 여러분에게 죄악 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악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거짓말했을 때 ‘내가 죄를 지었네’ 하고 뉘우치며 죄를 안 지으려고 발버둥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둑질하게 하는 사단의 정체를 발견해서 그것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정체를 발견해야

세상에 태어날 때 지식이나 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나름대로의 주관과 철학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여러분의 I.Q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200 되는 분 있습니까? 만약 사단의 I.Q를 재어본다면 100만이 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사단이 인간으로 하여금 나쁜 것을 좋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금광을 찾는 사람들은 강가의 모래를 유리병에 넣어 흔들어서 비춰봅니다. 그리고 모래 속에 금가루가 어느 정도 굵으냐에 따라 금광의 위치를 계산합니다. 금가루가 가는 것은 금광에서부터 멀리까지 떠내려 왔고 굵은 것은 가까운 데서 떠내려 왔기 때문입니다.
않습니다. 음란이나 거짓된 마음이 여러분을 사로잡을 때, 그 마음의 정체가 어디서 출발한 것인지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생기는 죄악 된 마음이 자신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하면 부끄럽게 여기면서 자꾸 숨기려고 하겠지만, 그 마음이 사단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처음에는 잘될 것 같지만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습니다.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제가 대전에 있을 때, 귀신들린 어떤 부인이 기도를 받으러 왔습니다. 아래층 빈방에 그 부인이 있었는데 제가 틈틈이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제 앞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만 울음을 그치라고 해도 계속 서럽게 울었습니다.
며칠 후 그분의 얼굴이 좋아지는 걸 보고 제가 그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날 그렇게 울었어요?” 사단이 ‘너는 구원을 못 받아 지옥에 갈 거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어. 길 가다가 트럭에 뛰어들어. 그러면 죽어’라고 하는데 죽기가 싫어서 그렇게 울었다고 합니다.
자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자살하는 게 아니라 사단이 집요하게 죽으라는 음성을 들려주면서 괴롭히니까 ‘그래, 죽을게’ 하면서 죽어버립니다. 사단이 우리를 끌고 다니면서 인생을 다 망쳐놓고 마지막에는 구원받을 기회가 생길까봐 빨리 죽게 합니다. 그래서 귀신들린 사람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사람에게 물어보면 죽으라는 음성을 듣는다고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사 55:6~7) 여러분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 자체가 사단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그 마음 안에 있으면 절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 생각 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회개’입니다.

자신을 믿는 마음에서 벗어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10~12)
바리새인은 토색, 불의, 간음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거짓말도 하지 않았나요? 미워하지도 않았나요? 율법을 잘 지켰습니까? 아닙니다.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자기가 잘한 것만 들추어냈습니다.
여러분이 죄를 안 짓고 선만 행하기도 어렵지만, 선한 것 하나 없이 악만 행하기는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기준에는 똑같은데 자기 기준으로 볼 때 선한 것, 잘한 것만 생각하니까 자신이 굉장히 선한 사람이라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신앙생활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은 자기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기 위하여 자신을 믿는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처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기 때문에” 자신을 믿는 마음이 무너져 내려야 하는 겁니다. 반면에 사단은 자신을 믿는 마음을 계속 부추깁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어느 날 디엘 무디가 설교를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는데, 어떤 자매님이 다가왔습니다. “무디 선생님, 오늘 설교가 정말 은혜로웠습니다.” “자매님, 한발 늦었습니다.” “아니, 뭐가요?” “자매님 오시기 전에 사단이 벌써 나한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매님이 사단보다 한발 늦었습니다.”
무디는 자신이 설교를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사단의 음성이구나. 이거 들으면 안 되겠다. 내가 잘한 게 아니구나’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자매가 그 이야기를 할 때도 ‘이건 진짜 사단의 음성이야’ 하며 분별했던 겁니다.
무디가 사단의 음성을 그냥 듣고 ‘내가 진짜 유명한 설교자가 됐네’ 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그것은 이미 자기 마음이 왕이 된 것입니다. 무디가 그렇게 능력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은혜로운 설교를 하고 난 뒤에도 그것은 자기가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걸 배웠습니다. ‘박옥수’라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사단이 바리새인의 마음을 높여놓으니까 “나는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며 자신을 믿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완전히 사단의 종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 속에 절대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어떻게 했습니까?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 18:13) 세리는 자기 자신을 정확히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를 보니 근본이 더럽고 추한 인간이니까 선을 행한다고 해도 악한 마음에서 나온 선, 진리를 행한다고 해도 악한 마음에서 나온 진리이기 때문에 결국 멸망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자신을 부인(否認)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넣어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게 하시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자기를 믿기 때문에 예수님의 의를 받아들이지 않아 하나님이 그에게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자기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받아들였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그 속에 살아 역사했습니다.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니까 예수님의 의가 세리의 의가 되어 예수님의 거룩함, 평안, 기쁨,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사단에게 속아 ‘내가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단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서 일하실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게 여러분의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이 되고 예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에 정말 기쁘고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 2008.9.21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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