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 전부를 하나님께 맡길 때
상태바
우리 인생 전부를 하나님께 맡길 때
[요한복음 9장 13절 ~ 35절] 2009.7.26 주일예배 설교 - 26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9.08.08 13: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목사로서 행복한 삶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목사로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합니다. 저는 자주 “백 번을 죽었다가 살아나도 목사가 되고 싶다. 목사라서 참 행복하고 즐겁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목사가 된 것도 감사하지만 강남교회의 목사가 된 것이 더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장로님이 열 분 계십니다. 장로님 중에 고영복 장 로님은 지금 아프리카에서 방송국을 건립하는 데 필요한 미장 일을 하고 계십니다. 현지 형제들에 게 미장을 가르쳐 주셔서 아프리카의 첫 미장 기술자가 6명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지역교회에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예전에 제가 장로교회에 다닐 때 장로님과 목사님이 싸우는 것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장로님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정신을 차리면 목사님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목사님을 나쁘게 말했습니다. 목사님도 장로님에 님에 대해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강남교회 목사로 있으면서 장로님들과 싸우지 않는 것이 아주 행복합니다. 저보다 나이 많은 장로님들도 계시고 나이 적은 장로님들도 계시는데, 한 가족처럼 지내는 것이 참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 선교회의 몇 몇 목회자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목회자들에게 바라는 것

한번은 우리 교회 목사님 한 분이 자기 아들이 육군 장교로 임관해 저에게 인사를 시키러 왔는데 그 아들이 나간 뒤에 그 목사님을 야단쳤습니다. “장교가 나빠서가 아니야. 자네가 은혜로운 목회를 하면 아들이 목사가 좋다고 느껴 다른 직업을 갖기보다 목사가 되려고 했을 텐데 자네가 그렇지 않으니까 아들이 직업군인 되려고 한 거 아니냐”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목회자들에게 “나같이 살아라. 정말 행복하다. 내가 목회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느냐! 하나님이 나를 돕는 것이 은혜로워 보이지 않느냐! 왜 그렇게 사느냐”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제가 성경을 보니까 다윗도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사람이고 사울도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축복을 받은 반면, 사울은 결국 저주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이 세운 제자이고 가룟 유다도 예수님이 세운 제자였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허물이 있었고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보면 가룟 유다는 저주를 받았지만 베드로는 한없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는가, 구원받은 사람들을 하나님이 왜 돕지 않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내가 보는 형편은 이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 하나님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나님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시길 원하실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 어떠하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저를 도우시길 원하신다면 그 일은 해결된다고 믿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과 제 마음이 하나가 되어 그 일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제 안에서 놀랍게 일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참 감사했습니다.

똑같이 택함을 받았지만

베드로도 가룟 유다도 똑같이 예수님이 선택한 제자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주님의 능력을 보았고 가룟 유다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가룟 유다와 다른 점은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난 뒤 ‘내가 나를 믿은 게 잘못되었구나. 나를 가장 위하는 길은 주님의 손에 나를 맡기는 것이구나!’ 하고 자기 생각을 비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해서 여러분 속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아 거듭난 사람인데 왜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일하시지 않습니까?
구원을 받았으면 예수님이 내 죄만 사해주신 것이 아니라 내 인생 전부를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란 자신에게 닥친 어떠한 문제든지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맡기면 안될 것 같아 그 문제를 자기 손에 쥐고 염려합니다. 그런 사람들 속에 하나님은 일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인생을 맡겨야

목사님이나 선교사님 중에 교회 일이나 자기 인생, 가정 일 등 모든 것을 하나님 손에 맡긴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그 속에 역사하셔서 정말 평안하고 자유롭게 일하고 복되게 사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만 가지 어려움 속에서 혼자 그 짐을 다 짊어지고 염려하다가 결국 안 되니까 인간적인 방법을 쓰면서 점점 더 어려움 속에 빠져들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은 우리 속에 살아서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내가 이 문제를 정확하게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분명히 해결해 주실 거야’ 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단은 우리가 믿음으로 달려갈 때 ‘아이고, 그러다 안 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을 줍니다. 그 두려움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나는 조금 부족하고 실수도 하고 때로는 범죄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기 때문에 내 일을 맡으셔서 해결해 주실 거야’ 하고 자신에게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다윗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사울도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어려운 일이 닥칠 때,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지 않을 것 같아 늘 인간적인 방법으로 처리해 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계시는데 하나님이 도우실 거야,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거야’ 하고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내 노후도 주님의 손에

여러분, 구원받은 후 여러분의 죄를 사하여 주신 예수님께 자신의 인생 전부를 맡기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면 그때부터 여러분이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것은 여러분의 문제가 아닌 예수님의 문제가 되기 때문에 주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저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단 하나, 구원받은 후 제 인생 전부를 주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랬더니 제 인생이 아주 편해졌습니다. 환갑이 지나니까 ‘살 만큼 살았으니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 기왕 죽을 바에야 복음을 위해서 살다가 죽자. 부지런히 뛰어다니다 죽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해외 나갈 일도 많고 집회 다닐 일도 굉장히 많습니다. 이번 주는 여름캠프에 참석하고 다음 주는 아프리카에 가서 3주 동안 월드캠프를 합니다. 아프리카에 다녀와서는 몽골과 필리핀에도 가야 합니다. 또 가을에는 LA와 뉴욕 집회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제가 제 노후를 준비하는 것과 하나님이 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은 비교가 안 됩니다. 자식 키우는 부모님들 잘 들어보십시오. 여러분이 자식들을 위해서 아무리 잘해줘도 완벽하게는 못합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완벽합니다. 여러분이 노후를 위해 아파트를 사놓을 수 있고 돈을 모아둘 수 있지만 완벽하게는 안됩니다. 주님이 하셔야 완벽합니다.
 

사단의 계략

오늘 아침 우리는 요한복음 9장 말씀을 읽었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구원받고 나니까 사단이 ‘아뿔사! 저 인간 구원 못 받게 했는데도 구원받았구나. 그 대신 예수님과 갈라 놓아야지’ 하는 계략을 꾸몄습니다.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요 9:8~10)
사람들의 질문에 소경이 이러이러하게 눈이 떠졌다는 대답을 했다면 그들은 그냥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경은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요 9:11)고 대답했습니다.
사단의 입장에서 보면 이 사람은 예수님에 의해 눈을 떴기 때문에 예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이 사람처럼 눈을 뜨면 예수님이 고맙고 감사하며,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단은 이런 관계를 갈라놓는 일을 합니다.

참된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이번에 일본에 있는 제 사촌 동생 내외가 와서 말씀을 듣고 구원받았는데, 처음 동생 내외가 한국에 왔을 때 우리 선교회에 대해 오해하고는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몰랐답니다. 그런데 와서 보고는 자신들이 생각한 것과 달라 놀라워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와서 참된 믿음을 가지면 복을 받을까봐 사단이 그렇게 하는 겁니다.
소경 되었던 사람이 “예수라는 사람이 진흙을 눈에 발라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해서 씻었더니 밝게 되었다”고 하니까 사단 이 예수님과의 관계를 끊게 하려고 뭐라고 합니까?
“저희가 가로되 그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저희가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요 9:12~16)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지만 문제를 일으켜서 소경되었던 자를 어렵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정확히 믿으면

여러분, 예수님을 자신의 수단으로 여겨 자기에게 유익하면 예수님을 믿고 손해 보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굉장히 지혜로운 것 같지만 예수님이 그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기 때문에 주님은 그런 사람들 속에 절대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당장은 잘되는 것 같지만 재난이 닥치거나 병이 생기거나 문제가 일어날 때 하나님의 도움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대충 아는 사람들, 성경을 대충 알고 죄 사함 받았다는 사실만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귀함을 모릅니다. 그냥 돈이 좋고 자기 생각이 좋고 자기 방법이 좋으니까 예수님을 위해 자기 전부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것이 내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제 자식들을 두고 하나님 앞에 자주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 아들을 복되게 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아버지지만 저는 제 아들을 복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을 제 손에서 놨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제 아들을 이끄는 걸 정확히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크고 어려운 환난과 고통을 만날 때 하나님이 저와 하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제게 누군가 백 억, 천 억을 준다 해도 저는 그것을 하나님과 바꿀 수 없습니다. 제 몸뚱아리만한 다이아몬드를 준다고 해도 저는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 생명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그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 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요 9:18~22)
소경 되었던 자의 부모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내쫓기로 결정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자기 아들의 눈을 예수님이 뜨게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다고 발뺌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고맙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에 대해 정정당당히 이야기하지 못하고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삶

이번에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제주 국제음악제에서 대상을 받아 상금 2천만 원을 저에게 가져 왔습니다. 합창단 형제자매들은 굉장히 가난하고 어렵게 살기 때문에 그들에게 2천만 원이면 큰 돈인데, 그 돈을 아프리카 방송국 일에 쓰게 해달라고 해서 제가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라시아스 합창단을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연보를 해도 하나님이 주실 줄 믿어야 연보하고도 편안하지, 빼앗긴다고 생각하면 아까워서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겁니다.
사단은 눈먼 소경의 부모가 예수님과 가까워질까봐 거리를 멀게 해서 부모들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이야기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소경 되었던 자가 예수님 앞에 서니까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타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하나될 때

요한복음 9장은 구원받은 후 우리를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사단의 계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경의 부모는 유대교에 서 출교 당할까봐 예수님을 부인하였지만 소경 되었던 자는 감사해서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소경 되었던 자가 하나님의 지혜로 말하니까 서기관들이 그 앞에서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걸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처럼 우리도 주님과 한마음이 되면 달라집니다. 우리에게 없던 지혜와 방법이 생깁니다. 우리에게 없던 능력과 재물이 생깁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과 마음을 함께한 사람 중에 복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 많은 사람들이 형식적인 교인은 되지만 마음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아직까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축복할 수 없는 것이 매우 가슴 아픕니다.

축복으로 채워지고

“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요 9:26~27)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요 9:30~33)
하나님이 이 사람을 아주 지혜롭게 하셨습니다.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닌데, 예수님 편에 서서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니까 예수님의 지혜로 서기관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 되면 예수님의 지혜가 내 지혜가 됩니다. 예수님의 능력도 내 능력이 됩니다. 예수님의 기쁨도 내 기쁨이 됩니다. 예수님의 평안도 내 평안이 됩니다. 그런데 참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작은 소유 때문에 예수님과 하나 되기를 싫어합니다. ‘자기 세계’라는 담을 쌓아 놓고 그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음껏 축복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요 9:34) 서기관들이 지위는 높고 많이 배웠지만 이 사람의 말을 못 당하니까 내쫓아버렸습니다.

내 전부를 하나님께 드려야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요 9:35) 그들이 소경 되었던 자를 쫓아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이 그를 찾아가 만나 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때문에 세상을 잃으면 세상보다 더 큰 하나님을 얻게 되고 예수님 때문에 재물을 잃으면 그보다 더 큰 하나님의 재물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평안을 잃으면 하나님의 참된 평안이 여러분 속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어리석게도 사단에게 속아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틈을 두고 우리 세계를 지키고 있다면 하나님이 마음껏 축복할 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죽었고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다면 예수님의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과 풍성하심이 여러분에게 임해서 이 세상 누구도 갖지 못한 은혜와 복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 2009.7.26 주일예배 설교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