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사는 복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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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사는 복된 삶
2008.9.14 주일 낮 설교 - 223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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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 어려운 이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지만 신앙생활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단이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못하도록 이끌기 때문입니다. 신앙보다 복되고 좋은 것이 없는데 신앙생활이 어리석고 바보스럽고 어려워 보이게 만든다는 겁니다.
신앙은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신앙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생각해 보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 즉 구원받고 하나님과 하나 되어 주를 위하여 자신을 드리는 일보다 더 좋은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추석이라 조카가 아이들과 함께 찾아왔는데, 제가 아이들에게 베드로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갔는데 그날 밤에는 한 마리도 못 잡았어. 예수님이 오시더니 깊은 데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어. 그가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이었으면 ‘뭐 하러 깊은 데서 잡아. 얕은 데에 그물을 던져도 고기는 잡힐 거야’ 했을 텐데 자기 마음을 꺾고 깊은 데 그물을 던져서 고기를 많이 잡았어.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데 쓰임 받는 훌륭한 지도자가 됐어.”
그리고 “부모님이 하시는 이야기나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생각과 다르지만 유익하다면 하기 싫은 것도 할 줄 알아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 하고 당부했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한번은 우리 교회 형제가 딸아이 돌잔치에 저를 초청해서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고 나니 형제의 삼촌이란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는 “이 신성한 돌잔치에 이단의 괴수를 끌고 왔다”며 혼자 떠들더니 “야, 다 나가자!”고 했습니다. 아무도 안 따라가니까 혼자 나가고 말았습니다.
제가 진리를 전하면서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저도 그 사람 을 뒤따라가서 멱살을 잡고 “당신, 내가 이단인 줄 어떻게 알아? 왜 내가 이단이야?” 하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한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지만 형제의 아버지도 계시고 그 사람은 삼촌이니까 참았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나에 대해 자세히 모르면서 왜 나를 보고 이단이라고 할까?’ 하며 참 싫다는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삶과 저의 삶을 비교해 보면 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해 망하고 실패하는 것을 봤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거의 매주 집회를 인도하는데 46년 동안 단 한 번도 몸이 아파서 집회를 거른 적이 없는 것을 보면서, 이건 정말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마음이 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남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이나 조카 가정이나 아들 가정에 재난이 없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의 신이 우리를 어렵게 하고 핍박할지라도 예수 안에서 사는 삶이 복되고 행복한 거지요.

말씀으로 변화되고

제가 대구에서 사역을 할 때 버스 안내양을 하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버스회사에서 안내양이 버스비를 중간에 가로챈다는 것을 다 아니까 아예 월급을 형편없이 주었습니다. 그 자매도 버스 안내양으로 있으면서 운전수에게 하루 만 원씩 주고 점심 사주고 담배와 장갑도 사주고 자기도 가졌습니다. 쉬는 날에는 테니스 치러 다니면서 버스 안내양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아주 화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이 자매가 구원을 받았는데 구원받고도 여전히 그런 삶을 살다가, 어느 날 말씀이 그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사는 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데 그것을 모르고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구나’ 하며 버스비를 가로채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기 때문에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그 자매에게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찾아 왔습니다.
첫째, 그 자매가 자기와 같이 근무하는 운전기사에게 아무것도 안 사주니까 그 기사가 대놓고 돈 좀 달라고는 못하고 그 자매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브레이크를 밟아서 그 자매가 문에 부딪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차를 계수기 바로 옆이 아니라 100m떨어진 곳에 세워서 그 자매가 막 뛰어가게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고생을 시키는 겁니다.
둘째, 같은 노선과 같은 시간대에 수입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그 자매가 다른 안내양보다 훨씬 많으니까 다른 안내양들이 그 자매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니 그 자매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과 똑같이 흘러간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아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면 그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여러분이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처음에는 세상 방법으로 사는 게 괜찮지만 영적으로 주님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겁니다. 성령이 불편해서 견딜 수 없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흘러갈 수 없습니다.
로마제국 시대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카타콤’이라는 음침한 지하 묘실에 숨어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콜로세움’이라는 원형극장에서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죽음을 당한지 아십니까? 로마는 처음부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지는 않았습니다. 로마는 그 당시에 다신교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서 아무 문제를 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도 신이다. 황제를 신으로 인정하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스무 개가 넘는 신 중에 황제를 더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될 게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유일신 하나님만 섬기니까 황제를 신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 매인 사람이 되면

예전에 제가 장로교 다닐 때 십일조를 드리고 나면 나머지 십 분의 구는 마음대로 써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에는 아무리 십일조를 드렸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방향으로 돈을 쓸 때는 제 마음에 자유가 없습니다.
예전엔 하루에 성경 몇 장만 읽고 기도 몇 번만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저를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십계명이 아닌 성령의 법이 기뻐하지 않는 것을 할 수 없는, 하나님께 매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다른 마음일 때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얽어매는 것 같지만,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되면 전혀 불편하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목나무가 아닙니다. 더욱이 부처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다른 신과 달리, 살아서 우리 마음 안에 역사하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고 연보를 해도 하나님과 교류가 없으면 정상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한마음이 될  것입니다.

성경 속의 믿음의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 아브라함, 요셉, 다윗, 베드로, 요한과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난  뒤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즐기면서 사는데 노아 혼자 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왜 저렇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지?” 하며 노아에게 늘 손가락질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노아의 며느리가 친정아버지 생신이라 친정에 갔는데 친정아버지가 화를 냈습니다. “네 시아버지는 늙어 망령이 들었다고 하자. 젊은 네 남편은 정신 차릴 만한데…. 내가 너 키울 때 험한 일 한번 안 시켰는데, 네가 매일 나무 자르고 톱질하는 것을 보면 속이 상해 미칠 것 같다. 동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정신병자에게 딸 시집보냈다고 해.”
노아의 며느리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가 막혔습니다. “아버지, 그게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비가 오기는 해? 네 시아버지만 올바르게 믿는 사람이야? 훌륭한 목사님들도 괜찮다는데 왜 네 시아버지만 홍수가 난다고 그래? 하나님을 믿어도 누구나 이해하는 하나님을 믿어야지. 왜 너희만 독선적으로 믿어?”
세상 사람들이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면 마음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노아 홍수 때 다 멸망당했습니다. 뉘우치고 울고 통곡해도 그때는 이미 늦었던 겁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1~2)
아브라함 당시에는 도시나 비행장이나 철도나 도로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마을을 떠난다는 것은 너무 암담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은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나안 땅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양과 소를 몰고 들어갈 때 아브라함의 종들은 얼마나 불평했겠습니까? “주인님, 당신의 조카 롯이 가는 저 요단 길에는 벌판과 목초가 있고 물이 많은데 우리는 왜 이런 곳으로 양을 몰아야 합니까?” “가만히 있어. 하나님이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하시는 분이 아니야.”
롯은 소돔과 고모라 성으로 가서 성공하고 잘 될 것 같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나무가 많은 숲 속으로 가서 망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목자들이 양을 칠 때에 평평한 평지에 목초가 많고 물이 많아야 잘 되지 산꼭대기에 올라가 무슨 양을 친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거듭났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판단을 좇아 사는 사람들이 있고, 하나님의 영에 이끌림을 받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이끌림을 받는 사람들은 적은 것이라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길을 가지만, 자기 판단대로 사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좋고 편한 대로 삽니다.
여러분, 제가 조금만 세상과 타협하면 세속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참 많습니다. 기성교회들과 손을 잡고 거듭나지 않은 목사들과 조금만 같이 한다면 비난 받지 않고 존경받는 목사가 되어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는 제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릇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금신상에 절하라!”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고는 육십 규빗이요 광은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도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느부갓네살 왕이 보내어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 모든 관원을 자기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신상의 낙성 예식에 참집하게 하매 이에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신상의 낙성 예식에 참집하여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신상 앞에 서니라 반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가로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 하매”(단 3:1~6)
여러분, 하나님을 왕으로 세우지 않은 사람들 중에 그 신상 앞에 절 안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금신상에 절을 안 하면 풀무에 던져진다는 걸 알지만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왕의 명령을 거부한 유대인들

“그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이여 왕이 명령을 내리사 무릇 사람마다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리어 금신상에게 절할 것이라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도를 다스리게 하신 자이어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8~12절)
그 말을 들은 왕이 화가 났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 오라 명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 온지라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13~15절)
이 사람들은 왕이 세운 방백들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생각하며 “왕이여, 제가 잘못을 했습니다. 이제 절하겠습니다” 할 수 있지만 이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우선 망할 것 같지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16~18절)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 자유롭고 하나님에게 매여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 자유롭고 죄에 매여 삽니다. 순간적으로 볼 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죽을 것 같고 바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 마음이 같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키시고 도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세상의 기독교인들이 가는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제 안에 계신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지 않으시니까요. 때때로 욕도 얻어먹고 어려운 일도 당했지만 하나님이  길을 여시고 도우시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제 앞에 많은 사람이 넘어져도 하나님이 저를 지켜 복되게 하는 것을 보니 정말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시고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더라.”(24~27절)
분명히 풀무불 속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집어넣었습니다. 풀무가 얼마나 뜨겁던지 그들을 매단 군인이 불타 죽어버렸습니다. 왕이 깜짝 놀란 것은 분명 세 사람을 풀무에 던졌는데, 네 사람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 네 번째는 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풀무불 속에서 그들과 같이 지내니까 그 불이 그들을 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면

노아 홍수 때 정말 많은 비가 와서 사람들을 다 쓸어갔지만 하나님이 같이한 노아를 그 홍수가 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지옥에서 구원받아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었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지켜주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과 짝해서 걸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속해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면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다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형식적으로 교회 다니면서 자기 멋대로 사는 세속적인 교인을 본받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사단에게 속한 마음을 가지면 언제 저주가 올는지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께 속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을 예수님 밖에 남겨놓지 말고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여러분 모두를 예수님께 드리면, 예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붙드셔서 복되고 은혜로운 삶이 될 것입니다.  

- 2008.9.14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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