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교만함 vs 다윗의 겸비함 어떤 삶을 따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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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교만함 vs 다윗의 겸비함 어떤 삶을 따를 것인가?
[사무엘상 15장 1절 ~ 23절] 2009.7.12 주일예배 설교 - 266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9.07.3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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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회개’의 의미

우리의 판단이나 결심, 노력이나 지혜로 살던 삶에서 벗어나 어느 날 ‘내 지혜는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내 판단이 잘못됐으니 내 판단대로 살면 안 되겠구나.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판단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쪽으로 마음을 돌이키는 것을 성경에서는 ‘회개’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주님, 내가 도둑질했습니다. 간음했습니다. 살인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육신의 욕망에 매이고 사단의 속임수에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머리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신의 판단이 아무리 옳아 보일지라도 자신의 판단대로 살면 망한다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 앞에서도 내 판단을 버리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사단에게 속아 얼마든지 잘못된 길로 가면서도 내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인도를 받으면

요한복음 9장을 읽어보면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소경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장미꽃이 예쁘다거나 하늘이 푸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른 채 구걸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경은 인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혼자서 실로암 못으로 더듬더듬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길도 모르지만 예수님이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고 하신 말씀만 따라 그곳에 가서 자기 얼굴을 물로 씻었을 때 눈이 떠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삶을 인도해 주었던 것입니다.
동일하게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사울이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올라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결정과 판단으로 살았는데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는 주님의 말씀이 사울을 일으켜서 성으로 들어가도록 이끌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도 사단은 계속해서 ‘구원을 받았으니까 하늘나라 가겠네. 나는 주일예배에 참석했어. 기도를 열심히 했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렸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잘 하고 있는 거야’ 하며 사람마다 각기 다른 기준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영적인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정확한 저울에 달아야

복싱 타이틀 매치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체중조절입니다. 복싱에는 체급이 있는데 정확하게 체중을 재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연습하던 체육관의 저울이 맞는지 안 맞는지 자주 점검해 봐야 합니다. 타이틀 매치에서는 계체량을 경기가 있는 당일 아침에 하는데, 계체량에서 자신의 체중이 체급제한 중량보다 조금이라도 많 다면 그 선수는 그 체급에서 경기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연습하는 체육관의 저울이 정확한지 자주 맞춰봐야 하는 것처럼 내가 하는 판단이나 결정이 성경에 맞는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를 계속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내 나름대로의 신앙이나 결정이 아닌,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신앙을 하지 아니하면 진정한 신앙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제 주위에는 구원받고 기뻐하며 즐거워했던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들 가운데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그들은 신앙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구원받았으니까 됐다”며 자기 생각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삶과 사울의 삶

우리가 다윗의 삶과 사울의 삶을 살펴보면 그들의 삶은 아주 다릅니다. 다윗은 구원받은 후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았고 그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찾거나 구하지도 바라지도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울을 쓸 수 없었습니다.
사울의 삶을 살펴보면, 사울이 왕이 된 후 겸비하여 암몬 사람 나하스를 점령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 자기 생각대로 흘러갔습니다.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삼상 15:7~9) 아무리 구원을 받았어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일정한 수준의 믿음에 도달하게 되면 굉장히 기쁘고 즐겁고 복된 신앙을 할 수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신앙생활이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그때 자기 신앙의 기준이 잘못된 부분을 정확히 알고 고치면 괜찮은데 ‘이 정도면 됐다’라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성령이 충만했던 사도행전 시대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도 사단이 역사해서 그들이 저주받았고, 예수님이 직접 세운 열두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도 사단에게 이끌려 예수님을 팔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어도 사단에게 시험을 받아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나는 구원받았어. 이런 은혜를 입었어. 하나님이 내 속에 역사하시는데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라는 마음을 일으켜서 우리를 태만하고 느긋하게 만들어서 사단이 주는 기준대로 살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나 하나님의 기준을 무시한 채 자기 나름대로 신앙의 세계를 걸어가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뭔가 했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해서 하나님의 정확한 기준이 흐려지도록 만듭니다.

신앙도 정확히 배워야

예배당 공사를 할 때 목수들을 쓰다 보면 하루에 십만 원 받는 목수가 있고 십오만 원 받는 목수도 있습니다. 콘크리트 계단을 만들기 위해서 목수가 먼저 나무로 계단을 짜면 거기에 콘크리트를 붓고 돌을 깔기 위해 석수가 와서 일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석수가 와서 “이것을 계단이라고 짰느냐?”며 투덜거렸습니다. 계단 폭이 넓었다 좁았다, 높았다 낮았다 해서 돌을 깔려고 하니까 너무 힘든 겁니다. 그런데 어떤 계단은 자로 재었을 때 높이, 넓이, 길이가 딱딱 맞아서 돌을 그대로 가져다 올려놓으면 되니까 아주 잘 짰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로 처음에 신앙을 대충 배운 사람은 한 평생 신앙이 어렵고 자신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앙을 정확하게 배운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행 13:22)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다른 사람에게 없는 특별한 기술이나 영적인 눈을 가진 자가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판단을 하지 않고 매사에 하나님이 이 일을 기뻐하시는지, 이것을 원하시는지를 정확하게 물어보고 모든 일을 했습니다.
 

 

 

자기 생각을 따라간 결과

오늘날 서울시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기준은 다 다릅니다. 교회 다니면서 그냥 주일 예배 한번 참석하고 자기 생각대로 살면서 ‘그래도 나는 이 장로보다 나아. 이 장로는 술 마시는데 난 그래도 술은 안 마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그들은 신앙을 정확하게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15장 3절에서 하나님은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하시며 ‘남기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9절의 “사울은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에서 ‘남기고’란 말이 나옵니다. 사무엘이 “내 귀에 들리는 이 양의 소리는 무슨 소리며 이 소의 소리는 무엇이냐”고 하자 사울은 “소와 양 중에서 기름진 것을 진멸하지 않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남겨 놓지 않았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울은 뭐가 잘못되었느냐며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것이 아니라 거역한 것으로 악하고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은 결국 사울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따라야

신앙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내 죄를 모두 사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성막에서 제사장이 속죄제를 드릴 때 속죄제물인 양에게 내 모든 죄가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사함 받게 하는 복음을 대충 알고는 ‘내가 도둑질 안 하고 간음 안 하면 잘하는 거겠지. 이렇게 신앙하면 됐다’는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구원받았다고 할지라도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신앙은 안 됩니다. 회개라는 것은 자기가 볼 때 옳을지라도 자기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판단이나 경험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말씀이 자기의 삶을 이끌고 도와주어야 신앙이 되는 것이지, 성경을 대충 알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신앙은 형식적인 신앙에 불과합니다. 그런 신앙 속에서는 하나님은 절대로 살아 일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방백을 의지하기보다는 1990년에 제가 대전한밭교회로 사역지를 옮겼을 때 대지 등기이전이 안 되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 당시 대전은 투기지역이라서 땅을 살 때 토지거래 허가를 받아야하는데, 대전 서구청은 한밭교회가 과거에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건축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등기이전 허가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등기이전을 빨리 받아야 선교센터를 짓고 선교학교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참 난감했습니다. 그때 장 장로님이 대전서 청 총무과장으로 있어서 이분이 얼굴만 내비쳐도 모든 일이 잘 될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하려고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려는데, 제 마음에 “방백을 의지하는 것보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낫다”는 말씀이 떠올라 도저히 전화할 수 없어서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이제 그분을 통해서 일하려는 마음을 다 버려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진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무척 막연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장로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게 낫다는 말씀이 제게 있어서 결국 그분에게 한 번도 부탁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일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깨우쳐 주시고

저는 목사지만 제 속에서 나오는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무척 다르다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얼마 전 요한복음 8장 1절의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라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저는 별로 사치도 안 하고 평범하게 살지만 부족함 없이 살 따름인데 일부러 잘 살려고 하지도 않으니까 그냥 이렇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라는 말씀이 제 마음을 사로잡아서 그 말씀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 앞 구절에는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다 저녁때가 되면 다 각각 자기 집으로 갔지만, 예수님은 집이 없어서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능히 집 한 채, 방 한 칸 얻고 나귀 한 마리 타고 다니실 위치가 되셨을 텐데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주님을 생각하니제 자신이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 몸을 천히 여기셔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시고 어려움을 겪으시고 굶으시고 주무시지 못하고 매를 맞으시고 가시관을 쓰셨지만, 우리는 자신을 위하는 부분에 발달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성령과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지 않으면 영적 감각이 없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 앞에 어떤 잘못을 했는지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각자의 관점이 달라서

사울은 교만했기 때문에 “가서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이 남기지 말라고 하셨구나. 하나도 남기면 안 되지’라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을 받아들여 자기 보기에 좋은 것은 남기고 안 좋은 것만 멸했습니다. 이런 자기생각 때문에 사울은 하나님과 같이 일할 수 없는 사람이 된겁니다.
모르면 하나님을 찾아 그분께 묻고, 성경을 읽고 깨달으면서 내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말씀은 뭐라고 하는지를 찾아서 자신의 생각이 성경 말씀과 다르다는 걸 정확히 알면 절대로 그 생각대로 살지 않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놀 때 마루에서 떨어질까봐 조심하는 것과 10층 아파트에서 떨어질까봐 조심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관점을 가지고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사단이 우리에게 죄를 짓도록 하기 전에 ‘나중에 믿음이 자라면 몰라도 지금은 이럴 수밖에 없어’라는 마음을 넣어 주어서 큰 가책 없이 죄를 짓게 합니다. 사단의 음성만 듣고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을 듣지 못할 때는 ‘조금 부족하기는 하지만 내가 뭘 그렇게 못했는데’ 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정확한 말씀의 터 위에

제가 대구에서 선교학생으로 있을 때 많은 청년들이 구원받은 후 “이 복음이 귀하니까 복음과 주를 위해서 우리 생명을 바치자”라며 주를 위해 살기를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 중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몇 명 없고 다 자기 욕망대로 죄 속에 빠져 들어 갔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정확히 모르고 자기 생각을 따라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우리 속에 일어나는 생각대로 일하는데, 그것이 사단이주는 생각인 걸 정확히 알고 성경을 찾아 읽다보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깨우쳐 주십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구나. 내게 있는 두려움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인데, 난 두려움을 아무 생각 없이 내 마음 안에 넣어두었구나.’
우리는 하나님이 정말 미워하시는 것을 자기 속에 넣어 두고 살면서도 마음에 거리낌 없이 신앙생활 잘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모든 죄와 병도 이기신 주님

제가 비엔나 월드캠프에서 돌아와 보니 이진실 학생이 제 휴대폰에 “목사님, 딱딱하던 암 덩어리가 이제 말랑말랑해졌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원자력병원에 있을 당시 진실이 부모님이 병원 측에서 수술하라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기에, 전문의인 문 장로님께 연락해 보라고 했습니다. 문 장로님이 CT 사진을 보고는 골반과 척추로 암이 다 전이되어 수술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진실이에게 “만일 항암치료나 수술로 나을 수 있다면 거기에 기대를 두겠지만, 이제 수술도 항암치료도 못하니까 하나님만 기대하고 얼마나 좋으냐”고 하자, 제 말을 받아들이고 몸이 좋아져 퇴원해서 부산에 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산에 가서 얼마 있다가 진실이가 너무 아프다며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진실아, 형편이 아닌 예수님만 바라봐. 네가 믿음으로 병이 나아도 사단은 안 나은 것처럼 보이게 해서 너를 넘어뜨리려 해. 그런 형편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만을 바라봐”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토요일은 아프리카 의료봉사자 모임 때문에 부산에 내려 갔다가 진실이를 만났습니다. 진실이는 골반 전체에 암이 퍼져서 앉지 못하고 침대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한쪽 엉덩이가 부어서 돌같이 딱딱한 걸 보고 제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진실이를 낫게 해주십시오. 진실이의 모든 죄와 병을 예수님이 대신하시지 않았습니까?” 감사하게도 진실이가 제 말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가지는 걸 보았습니다.

모두 작은 예수가 되어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겉은 자기 몸이지만 그 안에 예수님이 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가 원하는 대로 자기를 이끄시도록 자신을 드리는 것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이 그 일을 하려고 하면 주님이 일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사울처럼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 생각과 방법대로 살다가 결국 비참하게 버림을 받는 삶을 살겠습니까, 아니면 오늘부터 겸비한 마음으로 자기 생각을 다 버리고 주님을 찾고 주님께 묻고 배워서 이제 내가 아닌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이 일하시도록 살겠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살아 일하신다면 앞으로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예수님의 문제가 되고 여러분의 생각, 주관, 결심으로 살지 않는 작은 예수가 되어서이 세상을 밝게 비출 빛으로 살게 될 줄 믿습니다.

- 2009.7.12 주일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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