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있는 자와 없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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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있는 자와 없는 자
2008.8.10 주일 낮 설교 - 21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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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변화’

저는 목사가 된 것이 무척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재미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 여행도 하고 관광도 하고 영화도 보지만, 저는 죄에 매여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이 기쁨과 평안을 얻는 것을 보면 정말 행복합니다.
성경 구석구석에 아주 절망적인 상태를 영광스럽게 바꾸는 힘이 들어있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이 변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새들이 노래하고 나비가 춤추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가 돼지우리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다가 아버지 집에 돌아왔을 때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손에 가락지를 끼고 발에 신을 신고 살진 송아지를 먹고 풍악을 울리며 지내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읽은 성경 말씀도 사마리아 성이 아람진에 둘러싸여 기근이 심해지자 자기 자식을 삶아먹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다가 문둥이 네 명으로 말미암아 배불리 먹게되는 이런 변화는 성경에서만 볼 수 있는 영광스러운 변화입니다.

나는 왜 변하지 않을까?

저는 전도도, 설교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구원받은 후 하나님이 제 마음을 바꾸신 뒤로 목회를 하고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나오는 성도들의 삶도 어둠속에 있다가 밝은 빛 가운데로 나와 영광스럽게 변하는 것을 보면 아주 행복합니다.
그런데 어떤 형제 자매들은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구원받은 지 15년 됐지만 전혀 변하지 않았고 하나님 역사가 나타나지 않아요. 저는 정말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하신 것을 믿는데 삶이 왜 이리 무미건조하죠?” 구원을 받았지만 변하지 않는 사람들은 신앙의 과정에서 조금씩 미비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 부분이 바뀌면 누구든지 변화를 입게 됩니다.  
이번 수양회는 처음으로 강릉에서 했습니다. 강릉교회의 문칠식 목사님은 고흥에서 사역할 때도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성도 수는 얼마 안 되는데 예배당을 원래 설계했던 것보다 크게 지어놓고는   열심히 전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들면서 교회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게 버티다 못해 그 내외가 “우리는 안 되는가 보다” 하며 사역을 그만두고 도망가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갈 데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어서 ‘제주도에 가서 관광객 상대로 택시 운전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변화는 마음에서 시작되고

그 내외가 이 귀한 사역을 그만 두고 떠나려고 하니까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문 목사님이 사모님에게 “여보, 우리 그러지 말고 한 달만 더 있어보자. 그래도 사역이 안 되면 그때 떠나자. 한 달 뒤에 떠나도 아무 문제 안 되잖아” 하고 제안했습니다.  
한 달만 사역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지금까지 사역했던 마음과 다른 마음으로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사역을 하면서도 육신의 욕구도 있고 체면도 차렸지만 한 달만 사역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주님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여태까지는 복음을 전해도 구원도 안 받고 설교를 해도 듣는 사람들이 졸았는데, 그 한 달 동안 하나님이 일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받아 교회가 확 달라진 겁니다. 그 후로 문 목사님이 ‘정말 놀랍다. 똑같은 교회, 똑같은 성도인데 내가 주님을 섬기려고 마음을 먹으니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나도 전도하면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설교하면 변화를 받는구나’ 하며 사역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목회를 하기 위해서 ‘나는 기도가 부족해. 성경을 더 알아야 돼. 전도법과 교회 행정을 알아야 돼’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변화의 근본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없어

여러분, 어떤 위치나 환경에 있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변치 않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정말 감사합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 38년 된 병자의 마음에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나는 38년 동안 누워있었어. 난 이제 못 걸어. 이러다 죽을 거야. 진작 죽지 못한 게 한스럽다’ 는 마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병자 마음속에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회 목회자나 형제 자매들 중 구원을 받아도 변치 않는 사람의 특색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들어도 그 말씀이 한 마디도  마음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귀로 듣고 머리로는 다 알지만 말씀이 그 마음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요 8:37)고 말씀하셨는데,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 한 마디가 들어가 자리를 잡으면 그때부터 그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서부터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38년 된 병자의 절망

38년 된 병자가 38년을 지내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겁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지?’ 그 후 동생이 그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동생이 처음에는 ‘우리 형님 불쌍해’ 하는 마음으로 돌봐 주었지만 여러 해가 지나자 짜증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형, 차라리 죽어버려! 형 때문에 우리 가족 다 망했잖아. 난 이제 떠날 거야! 욕해도 상관없어. 이렇게 살기는 싫어!”
가족들이 하나 둘 자기를 떠나갔습니다. 절망스럽습니다. 그렇지만 누워 있으니까 어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에게 꿈속에서조차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한 번 걸어봤으면’ 하는 소원은 가질 수 있지만 걸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져본 적이 있었겠습니까? 남들이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사는 게 행복해 보이지만 자신이 그렇게 살 거라는 소망을 가져본 적이 있었겠느냔 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 날 예수님이 찾아와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말씀은 ‘나는 못 걸어. 나는 안 돼’ 하는 절망 속에 살고 있는 그에게 병이 낫는다는 소망을 밀어 넣어 주는 힘이 들어 있었습니다.  

“일어나 걸어가라”

절망하고 고통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절대 절망하지 않습니다. 어둡고 추한 죄 속에서 미워하고 음란하고 방탕하게 욕망대로 사는 이유는 거기서 자신을 건져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병이나 절망, 어려움에서도 해방시켜 주시고 자유롭게 하십니다.
38년 된 병자가 걸어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라는 생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했을 때 그는 자기 형편만을 말했습니다. “주여 물이 동할 때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 5: 7)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 그 말씀이 그 마음에 들어오자마자 지금까지 어둠과 혼돈, 공허 속에 있던 그 마음이 소용돌이쳤습니다.
‘내가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있을까? 아니야. 안 돼. 내가 어떻게 걸어가? 저 분이 걸어가라고 하잖아. 한 번 걸어가 볼까?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참에 한 번 걸어봤으면 좋겠다. 어휴. 그렇다고 걸을 수 있겠어?’
그러나 다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이제까지 아무도 없었어. 난 일어서서 걷고 싶었잖아. 꿈에서라도 뛰어봤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이제 저분이 나에게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안 된다는 생각을 내쫓아 버렸습니다.  

죄의 가책에서 벗어나

구원받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기 전에는 ‘난 죄 속에 사니까 죽을 때까지 죄인이야’ 하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 내 모든 죄를 흰 눈보다 더 희게 씻었다는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면 소용돌이가 일어납니다. ‘진짜 내가 의로워졌을까? 아니야. 나는 아직 죄가 많아. 내가 죄를 지었는데 그 죄를 어떻게 씻어?’
그러나 말씀을 한 번, 두 번 들으면서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까 내 죄가 사해졌구나’ 하는 마음이 자리를 잡으면 지금까지 가책을 주던 죄의 권세가 떠나 버립니다. 그때부터 성령이 힘 있게 일하게 됩니다.  

아프리카를 향한 소망

내일 저녁에 아프리카 가나 월드캠프 개막식이 시작되는데 대학생 약 4000명 정도 모인다고 합니다. 그 다음 주에 있을 케냐캠프에는 기성교회 목사님들 중에 정식으로 회비를 내고 신청한 사람이 천 명, 대학생들이 1500명입니다.
저는 그곳에 가서 설교만 하고 오는 게 아니라 그들 속에 소망과 믿음, 복음과 그리스도를 심고 오는 겁니다. 아프리카에서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이 태어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 마음에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생각해 보세요.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제 시간, 돈, 생명 등 모든 걸 드려도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니까 하나님이 제 삶에 복 주시고 은혜 베푸시는 것을 봅니다.  

소망을 말씀하시지만

열왕기하 7장에서 아람 군이 사마리아에 쳐들어오자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러자 아람 군은 성문 밖에서 여러 해 동안 진을 치고 기다렸습니다. 사마리아 성 안의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성이 점점 주리면서 급기야는 여자들이 자기 아기를 삶아먹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마리아 성이 극심한 기근 속에 있던 그때도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소망을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왕하 7:1)
얼마나 소망적인 이야기입니까? 아끼고 아끼며 먹다보니 양식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일 이맘때에 양식 값이 천분의 일 정도로 싸진다는 겁니다. 그 말을 믿는다면 당장 집에 있던 양식을 다 꺼내서 나눠먹지 않겠습니까? 즉 그 말씀을 믿는 순간부터 그 집에는 기근이 끝나버립니다.  
엘리사의 말에 왕의 장관이 대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왕하 7:2) 어떻게 굶주린 사마리아 성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합니까? 그건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인간의 계산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왜 믿음이 없는지 아십니까? 인간의 계산 안에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니까 어렵고 힘든 겁니다.  

어느 자매님의 변화

우리 교회에 나오는 한 자매님은 구원받기 전에 혼자서 아기를 키우기 힘들어 뱃속에 있는 아기를 유산시키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의사가 뱃속에 있는 아기가 발로 잘 차는 걸 보면서  축구선수로 키웠으면 좋겠다고 해서 아기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스로 마련한 집을 보증 섰다가 사기를 당했습니다. 그 후 너무 비참하고 괴로워서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어느 날 자살하려고 칼로 손목을 그었는데, 마침 친정아버지가 오셔서 딸이 쓰러져 있는 걸 보고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혈관을 연결했지만 신경이 끊어져서 그때부터 손에 힘을 쓸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우리 교회를 알게 되어 대전도집회에서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들어가자 자매님 마음에 소망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 후 하나님이 많은 빚을 다 정리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팔이 너무 저리고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끊어졌던 신경이 붙었다는 겁니다.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복음만을 전하는 삶

여러분, 하나님은 신경을 붙이는 것도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양식 값을 싸게 만드는 것도 하나님은 쉽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성경 신구약 66권은 전부 소망으로 가득 찬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다보면 절망 속에 있다가도 소망이 생깁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단이라고 비난하고 핍박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힘 있게 복음만을 전하다 제 삶을 끝내려고 합니다. 한평생 자신의 육체만 섬기다가 죽으면 그 육체가 흙이 될 때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주님을 섬기세요. 주님 때문에 욕도 얻어먹고 복음 때문에 어려움도 당해보세요. 주님도 우리 때문에 모욕도 당하고 가시관에 찔리시고 고통도 당하셨는데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사십시오.

누가 말씀을 받아들이는가?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찌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찌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하고”(왕하 7:3~4)
성문 어귀에 앉아 있는 문둥이 네 사람이 얼마나 비참하고 곤고했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이들 속에 역사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굶주려서 서서히 죽어갔을 겁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이 이제껏 한 번도 가지지 못했던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도 계속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생각을 넣어주십니다. 그러면 사단은 우리에게 마치 왕의 장관에게 한 것처럼 “에잇, 말도 안 돼. 미친 소리야” 하는 생각을 넣어줍니다. 그러나 진짜 길이 없고 곤고한 사람은 그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깊이 생각합니다.
네 명의 문둥이들이 아람 군대에 가는 것은 너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문둥이들이라 기분 나쁘다고 아람 군인들이 활을 쏘고 칼로 죽여 버리지 않겠습니까? 사마리아 성문에 머물러 있는 것은 부담이 없지만 굶어죽을 확률이 높고 아람군대에 가서 항복하는 것은 부담은 되지만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부담스러운 일을 넘어보지 않은 사람은 죽어도 부담스러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네 명의 문둥이처럼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아서 발걸음을 내딛을 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문둥이 네 명이 걸어가다 넘어지고 또 걸어가다가 넘어지면서 아람 진을 향해 가는 그 비참하고 힘없는 걸음을 통해 하나님이 놀랍게 일하셔서 사마리아 성을 다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나님만 보고 걸어갔지만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제 마음에 간직하고 걸어가는 모든 걸음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제 앞에 있는 아람 군대 같은 부담을 물리치시고 문둥이들이 풍성한 음식과 금은보화를 보고 가졌던 것처럼 하나님이 예비하신 귀한 것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런 하나님이 계십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적인 것을 많이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도 배워야 합니다.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배우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주는 불신에서 벗어나

먹고 마시고 감추던 문둥이들에게 하나님이 또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찌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왕하 7:9) 이것이 바로 복음 전도입니다.
그러니까 또 왕이 그 말에 반대했습니다. “왕이 밤에 일어나 그 신복들에게 이르되 아람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저희가 우리의 주린 것을 아는 고로 그 진을 떠나서 들에 매복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저희들이 성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사로잡고 성에 들어가겠다 한 것이니라.”(왕하 7:12)
사단은 쉬지 않고 우리에게 불신의 소리를 들려줍니다. 그 말을 들으면 우리는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왕의 장관의 말을 들으면 선지자의 소리가 헛소리처럼 들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 마음이 살아납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마음은 크고 작은 문제 앞에서 소용돌이칠 겁니다. 주님 위해 살면 다 망할 것 같고 자신을 위해 살면 잘 살 것 같은 마음이 들 겁니다. 이제 우리의 생각에서 벗어납시다.

말씀이 마음에 자리 잡으면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열왕기하 7장에 있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 그때부터 말씀이 온갖 어두운 생각을 다 내쫓아 버립니다. 말씀이 없는 사람들은 음란과 교만, 욕망과 쾌락에 빠지지만 말씀이 마음에 있는 사람은 그 말씀이 그를 거룩하고 깨끗한 삶을 살게 합니다.
여러분 모두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어서 오늘은 38년 된 병자 같지만 내일은 뛰어가는 사람이 되고, 오늘은 문둥이 네 명과 같지만 내일은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오늘은 기근에 지쳐 죽어가지만 내일은 소망과 생명 가운데 걸어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뿐 아니라 여러분 주변 사람들이 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 2008.8.10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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