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과 ‘말씀’ 중 어느 것을 믿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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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과 ‘말씀’ 중 어느 것을 믿을 것인가?
- 2008.7.20 주일 낮 설교 - 215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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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에 시달리던 어떤 부인

며칠 전 광주에 있는 어떤 부인 자매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을 찾아뵙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겠습니다.” “자매님, 제가 조금 바쁜데 서울에 오지 마시고 20일 광주 음악회 때 내려갈 테니까 그때 만나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면 목사님께 저녁 식사를 대접해도 될까요?” “그것은 광주교회 목사님과 의논해 보아야 합니다.”
자매님은 저를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시지만 저는 누군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매님을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했더니 자매님이 지난 겨울수양회 때 저와 상담했다고 해서 그제야 기억이 났습니다.
그 자매님은 구원받기 전에 고민, 두려움, 죄책감 때문에 밤에 잠을 단 10분도 자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분을 만났을 때도 너무 초조하고 불안해해서 ‘이분은 잘못하면 정신병원에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귀신 들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분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어떻게 죄를 사했고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는지를 전할 때 저도 감사했고 그 자매님도 무척 기뻐했습니다.

게임중독증인 여대생

다음날 그 자매님이 다시 저를 찾아와서 “목사님, 어젯밤에는 잠을 정말 잘 잤습니다. 시계를 보니 제가 두 시간이나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하며 구원을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전화를 해서 저를 만나러 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저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제가 구원받고 몸이 아주 건강해져서 요즘에는 직장을 나갑니다” 하며 은혜로운 간증을 했습니다.
그저께는 대전에서 제 아들과  같이 차를 타고 왔는데, 제 아들이 게임중독에 빠져 있다가 구원받은 여대생에 대해 간증을 했습니다. 그 여대생은 평일에는 18시간,  휴일에는 거의 24시간을 했답니다. 어쩔 때는 40시간 동안 안 자고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자장면 시켜 먹어가면서 게임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자신이 게임을 그만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만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번 IYF 월드캠프에 참가해서 게임에 서 헤어나올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구원을 받았답니다. 그 후 피우던 담배도 싫어지는 걸 보니 앞으로 게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교회에 나오시면서 근심이나 염려, 문제가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속에 행하시는 일이 아주 크기 때문에 거룩하고 전능하신 주님과 함께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복음서에서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이 일어나도 예수님과 함께 있으니 주님이 그 풍랑을 잠잠케 했습니다. 오천 명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도 예수님이 함께 있으니 주님이 먹이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는 돌에 맞아 죽는 것 외엔 다른 길이 없었지만 예수님을 만나 죽음에서 벗어났습니다. 눈 먼 소경도, 나사로도 예수님을 만났을 때 달라졌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유대 땅에 태어나셔서 33년 동안 일하신 그대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여러분에게 닥치는 어떤 문제든 그것은 여러분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문제가 됩니다.

필요한 돈을 마련해 주시고

저는 20여 년 전 서울에 와서 목회를 하면서도 가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돈 드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어떤 목사님이 한양대병원에 입원했는데 제가 입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저희 처형이 그 병원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형에게 “병원비 내야 되지 않아요?”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처형이 돈 있으면 내면 좋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사택을 옮겨야 하는데 전세가가 올라서 500만 원 정도가 필요했습니다. 또 성북교회를 개척하면서 300만 원 정도, 천안교회 예배당을 옮기는 데 350만 원 정도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 100만 원도 큰돈인데 큰돈을 써야 할 일이 한꺼번에 닥치니까 너무 힘겹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처형에게 “하나님이 저에게 큰돈 쓸 일을 자꾸 만드시는 걸 보니 저도 이제 큰돈을 써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한 달 후 제주도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 새 사택으로 옮기는 날이라 그곳으로 바로 갔더니, 형제 자매님들이 모여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재정 맡은 형제님을 만나자마자 그 많은 돈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 물었더니 “다 되었습니다”라고만 했습니다. 다시 “그 돈이 어떻게 다 마련되었어요?” 하고 물었지만 “다 되었습니다”라고만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많은 돈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이 그 엄청난 돈을 마련해 주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난하다는 마음에서 벗어나

그러다가 제가 고린도후서 6장 10절에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는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요, 가난한 자 같은데 모든 사람을 부요하게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며 그 구절을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가난한 자가 아닌데 가난하게 보이고 근심하는 자가 아닌데 근심하는 자 같이 보인다는 뜻이었습니다. ‘아, 내가 가난한 자가 아니구나.’ 그러고 나서 지난날을 돌아보니까 교회에서 크고 작은 일을 할 때마다 돈이 없어서 못한 적이 없었고 하나님이 모든 일을 축복하시고 도우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성경말씀이 저를 가난하다는 마음에서 벗어나게 해주셨습니다. 그전에는 늘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의 일이든 복음의 일이든 소극적이었는데 ‘나는 가난한 자가 아니라 모든 것을 가진 자구나’ 하는 사실을 마음에서 믿어버렸습니다.
그 다음부터 제가 하는 일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수양관 땅을 사게 되었습니다. 많은 돈이 필요했지만 하나님이 형제 자매님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연보하게 하셨습니다.

어느 것을 믿을 것인가?

저는 구원받기 전에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나는 죄인이야. 나는 죄가 많아. 나 빼고 누가 죄인이겠어’ 하며 저 자신이 죄인이라고 철두철미하게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원받고 성경을 보니까 성경 곳곳에서 제가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를 친히 의롭다고 하시는 겁니다. ‘나는 더러운 인간인데 하나님이 나보고 거룩하다고 하시네. 나는 악한 인간인데 하나님이 나를 성도라고 하시네. 그러면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지? 내 생각을 믿을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에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나는 가난하고 전도도 못하고 믿음도 없고….’ 저는 늘 제 생각을 믿었던 겁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뒤에 참 감사한 것은 제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너무 다르다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생각이 전부 틀린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보니까 제 마음이 변화되면서 그때부터 성령이 제게 크게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일하시기 위해 여러분이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고 성경 읽는 등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러분이 가진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꾸는 게 중요합니다.  

겸손한 죄인(?)

여러분, 우리 선교회를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이단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의인’이라고 하니까 이단이라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나는 죽을 때까지 죄인임을 밝혀두는 바니라” 하고 글까지 썼더라고요. 자기 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죄인임을 밝혀둔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양심적이고 겸손하게 들립니까? 저도 구원받기 전에는 그것이 양심적이고 겸손하고 온유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거듭난 뒤 제일 처음 우리 누님에게 거듭났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누님이 하는 첫 마디가 “너 큰일 났다. 신앙을 하면 할수록 겸손해져야 하는데 네가 감히 의인이라고? 그런 교만한 말이 어디 있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생각이고 성경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면 의로운 거지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공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값없이 의롭게 되어

제가 어느 교도관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분은 자신이 죄인이라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교도관님은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서 죄인이 되는 것입니까? 도둑질하고 살인한다고 죄인이 됩니까? 아닙니다. 판사가 죄인이라고 판단해야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교도소에 가면 재판하기 전의 미결수들은 큰 소리를 칩니다. “우리는 죄인이 아니야. 다만 여기에 갇혀있을 뿐이야. 재판을 받아 판사가 판결을 내릴 때까지 우리는 죄인이 아니야.” 그래서 재판을 받지 않은 미결수들은 머리를 깎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판사가 판결을 내리면 그때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10여 년 전에 지존파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람을 납치했는데 그 중 어떤 여자에게 남자친구를 쏴 죽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쏴 죽인 일이 있습니다. 그때 그 여자는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신앙은 이처럼 자신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다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법정에서 판사가 무죄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죄인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밝혀둡니다!” 한다면 그것은 정말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두 가지만 알면 굉장히 쉽습니다. 첫째, 자기 생각과 판단, 경험 등은 나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단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 생각을 따라가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둘째, 내 생각이 어떠하든지 그것이 틀렸다는 걸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믿을 때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다윗과 므비보셋

오늘 우리는 사무엘하 9장의 므비보셋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사울의 손자이고 요나단의 아들입니다. 므비보셋이 왕의 손자로 있다가 왕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모의 손에 이끌려 도망가다가 유모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두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다리가 부러졌으면 병원 등에 가서 치료하면 되는데 유모는 ‘이 아이가 사울 왕의 손자라는 것을 알면 분명히 죽일 거야. 다윗이 왕이 되었으니 그냥 안 둘 거야’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안 들킬 만한 곳을 찾아갔는데, 그곳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이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 요나단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지만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는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이때 요나단이 있었으면 같이 국사를 이끌어 나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참, 요나단이 결혼을 했으니 아들이 있었을 텐데…. 한번 찾아봐야지!’ 그래서 시바라고 하는 사울의 신하를 찾아 물었습니다.
“사울의 집에 혹시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려고 한다.”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입니다.” “뭐? 요나단의 아들이 있었어? 그가 어디에 있느냐?”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습니다.” “당장 가서 불러와라.”

요나단을 인하여

신하들이 다윗 왕의 명령을 받고 수레를 갖추어서 로드발 암미엘의 집에 갔습니다. “어명이다. 므비보셋은 당장 밖으로 나오너라!” 그 말을 들은 므비보셋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여기 숨어있는 걸 다윗 왕이 알았으면 나를 그냥 두지 않을 건데, 어떻게 알고 사람을 보내 나를 데리러 왔을까? 차라리 여기서 자결해 버릴까?’
다윗 왕에게 나가려고 하니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밖에 나가보니 군인들이 뜻밖에 창과 칼을 가지고 온 게 아니라 마차를 가지고 온 것이었습니다. “어명이니 므비보셋은 이 수레에 오르시오!” 므비보셋을 태운 수레는 다윗 왕궁 앞에 섰습니다.
므비보셋이 너무 놀라서 왕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네가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냐?” “예, 왕이여. 종이 그러하옵나이다.” “므비보셋이여,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겠다.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어라.” 므비보셋은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미움을 이기고

다윗이 사울의 후손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 미움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게 하십니다. 누가 마음을 지배하느냐에 따라 미움이 사랑을 이길 수도 있고, 사랑이 미움을 이길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그 마음을 이끌고 다니는 사람은 미워할 조건이 있어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므비보셋은 ‘나는 사울의 손자야. 우리 조부가 다윗을 죽이려고 했어. 이제 다윗이 왕이 되었으니 분명히 우리 가족을 멸할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다윗의 마음 안에는 사랑이 미움을 이겼기 때문에 사랑이 지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마음 안에 미움이 있느냐 사랑이 있느냐, 소망이 있느냐 절망이 있느냐, 기쁨이 있느냐 슬픔이 있느냐는 중요한 것입니다. 슬픈 영이 있는 사람은 슬픈 것을 찾습니다. 기쁜 영이 있는 사람은 백 가지 천 가지 슬픈 일이 있어도 기쁜 것만 발견하고 기뻐합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미워할 사람이 있어도 사랑할 조건만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림자, 다윗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움을 만나면 ‘이건 고통스러운 일이니까 고통스러워하는 거야. 당신도 이런 일 당하면 고통스러워할 거야’라고 합니다. 그러나 고통의 영이 지배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게 눈에 보이는 거지, 기쁨의 영이 마음을 지배하면 고통이 있어도 기뻐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아냅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남들이 생각할 때 다윗이 므비보셋을 미워하고 죽일 것 같았지만 죽이지 않고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왕자인 자기 아들처럼 예루살렘의 왕궁에서 매일 같이 먹도록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자신을 판단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실수와 허물이 많아. 죄가 많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는지 몰라’ 여러분이 무엇을 잘해서 구원받았습니까? 아닙니다.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죄인이 되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을 수 있는 조건은 죄인인 것 외에 다른 조건은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이 정확하게 죄인이 되면 정확하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역사하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이 열심히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복

여러분, 우리는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고, 수없이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를 전혀 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죄를 이기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예수님은 천국을 가야 하고, 우리는 멸망을 당해야 하지만, 이제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당신의 삶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으셨는데,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 넘어갔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죄가 예수님께 건너가는 순간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와서 우리가 거룩함을 입고 의로움을 얻은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예수님을 죄인으로 보듯이, 예수님의 의 때문에 우리를 의롭게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복을 받고 은혜를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 속에 역사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때 ‘내가 좀더 열심히 기도하면, 충성하면, 선한 일을 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이런저런 복을 주실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알고 보면 우리가 잘하고 못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예수님 때문에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약속을 마음으로 믿을 때

여러분, 오늘 그 약속을 마음에 믿으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됩니다. 그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천 가지 만 가지 돕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이 ‘목사님이니까 그렇지’ 하는 생각을 한다면 저는 정말 안타깝습니다. 사단은 안 될 것 같은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 해서 성경을 못 믿게 만듭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믿으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달라지고, 믿음이 생기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게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생각대로 살았던 삶을 다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모든 것이 달라질 겁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의 생각, 주관, 관념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되기를 바랍니다.

- 2008.7.20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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