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큰 사랑’을 깨닫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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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큰 사랑’을 깨닫는다면
2008.7.13 주일 낮 설교 - 214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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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여러분, 저는 신앙생활이 정말 쉽다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저는 구원받고 46년이라는 세월을 예수님 안에서 보내면서 제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삶과 제 삶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만일 여러분 자신의 삶을 둘로 나눌 수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육신의 쾌락을 따라 사는 삶과 믿음으로 사는 삶의 결과를 10년 후에 비교해 보면 굉장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겁니다.
신문 기자들이 저와 인터뷰를 하고 나면 이런 질문을 종종 합니다. “목사님이 만약 목사가 안 되었으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저는 저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예수님 없이 인생을 살았더라면 내가 욕망이나 정욕을 이길 수 있었겠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최근에는 체중이 자꾸 늘어나서 절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입던 바지도 전부 1인치씩 넓혔을 정도니까요. ‘난 이제 배가 너무 나왔으니까 음식을 적게 먹어야 해’라고 자주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밥상 앞에 앉으면 그런 생각이 다 없어지고 음식이 맛있기만 한 겁니다. 다 먹고 숟가락을 놓으면서 그제야 “내가 너무 많이 먹었구나” 하고 후회를 합니다.  식욕조차 이기지 못하는 제가 예수님이 없이 인생을 살았더라면 틀림없이 저는 많은 욕망에 끌려 다녔을 겁니다.
만약 예수님이 제 욕망과 정욕을 이기게 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아마 술주정뱅이가 되었을 겁니다. 우리 아버지도 술을 좋아하셨고 형님도 그랬으니까 저도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았을 겁니다.

쉽게 믿음을 배우도록

저는 화를 자주 내고 욕망과 쾌락으로 흘러가는 사람이지만 구원받은 후 전에 제게 없었던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저는 유혹과 두려움, 고통을 못 이기지만 예수님은 그것들을 이기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제 안에 계셔서 쾌락과  욕망으로 가는 길을 다 막아주셨습니다.
여러분, 모든 일을 자신이 이겨내는 것과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셔서 이겨내는 것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참 놀라운 것은 구원을 받은 후에 예수님이 제 마음에 들어와 저를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쉽게 가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신앙에 마음을 조금만 기울이면 여러분의 삶이 믿음으로 달라질 겁니다. 나이가 적든 많든, 많이  배웠든 배우지 못했든, 얼마든지 구원받고 믿음으로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신앙을 하기 전에 먼저‘회개’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사단은 오늘 이 시대 사람들의 마음이 회개에서 떠나 자신의 생각 속에서 살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의 세계를 생소하고 어렵게 생각합니다.

포도원 주인과 농부들

오늘 아침에는 마태복음 21장을 읽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있었는데 그 주인은 포도원을 잘 가꾸었습니다.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원을 산울로 둘렀습니다. 그리고 포도원에 망대를 높다랗게 세워서 보기 좋게 했고 포도즙을 짜는 구유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습니다.
농부들이 포도원을 얻고 나니 무척 좋았습니다. 손을 조금만 쓰면 포도 농사가 잘 되니까 그걸 따서 즙을 짜 팔았습니다. 그것으로 돈을 벌다 보니 농부들의 삶이 윤택해졌습니다. 먹고 입는 게 달라졌습니다.
포도원의 농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들이 성실하게 일했으면 자기 농장이 있었겠지요. 그들은 성실한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농장도 없었고, 먹고 살 길도 없이 정말 어렵고 비참하게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그들을 사랑해서 좋은 포도원을 만들어 세를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주인의 은혜를 알았다면

어느 날 주인이 농부들에게 종을 보냈습니다. “여기가 포도원 맞죠?” “당신은 어디서 왔소?” “예, 저는 포도원 주인님의 세를 받으러 왔습니다.” 그때 농부들이 ‘내가 비참하게 살았는데 주인이 포도원을 주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먼 길 오시느라 목마를 텐데 어서 들어오셔서 포도주 한 잔 하십시오. 우리 주인은 평안하십니까?” 하고 주인의 안부를 물었을 겁니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아도 주인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늘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아내는 영양실조에 걸렸고 아이들은 병들었지만, 치료할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거지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인님이 우리에게 포도원을 주신 그 날부터 우리는 주인님 덕에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라고 했겠지요.
이런 말도 덧붙였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님께 드리려고 맏물 포도를 따서 포도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세를 걷으러 올까 봐 포도주를 팔아서 돈을 준비해 놨습니다. 이것은 주인님과 약속한 세금입니다. 주인님이 우리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고맙다고 전해주시고 앞으로도 우리가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교만한 농부들

농부들에게 교만한 마음이 생기자 주인의 포도원인데도 자기의 포도원처럼 여겼습니다. 어느 날 주인의 종이 세를 받아야 한다고 하니까 화가 났습니다. 주인이 보낸 종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 그 종들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네가 나한테 세를 받으러 왔다면서 왜 이렇게 거만해.” “제가 뭘 거만하게 했습니까?” “이 자식이 안 되겠네. 말대꾸하는 거 봐.”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네가 지금 나한테 말대꾸했잖아. 말로 하니까 안 되겠네?” 하면서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이놈의 자식, 매 맞을 짓을 해놓고. 이런 놈들은 때려 죽여야 돼.”
생각이 부족한 사람은 감사하고 행복한 위치에 머물 수 있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행복할 만한 일에도 행복하지 않고 감사할 만한 일에도 감사하지 않고 기쁜 일도 기쁘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들이 귀한지 모르니까 마음이 거기에 머물지 못하고 떠나 버립니다.  ‘내가 2,3년 전만 해도 어려웠었는데 포도원 주인님 덕분에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네. 행복하고 감사하다. 내 것을 다 드려도 아깝지가 않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 한국 사람들은 1년에 8조 원이나 되는 음식을 쓰레기로 버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잘 사는데도 우리는 정말 감사하고 기뻐합니까? 그렇지 못한 이유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주 아프리카에 가는데 한번은 제 손자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제 손자 또래의  아이가 쓰레기 더미에서 혼자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는 에이즈로 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아이는 어디서 잠을 자고 밥은 어디서 먹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너무 굶주려서 비쩍 말라서 갈비뼈가 앙상하고 배만 볼록하게 나와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배부르게 먹고 버리기까지 합니다. 여러분은 좋은 음식을 먹고 배부른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합니까? 사람들이 깊게 생각하지 않고 욕망을 따라 더 맛있는 거 먹고 싶고 더 좋은 걸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감사보다 불평이 많아지는 겁니다. 생각이 부족할 때 쉽게 화가 나고 불평하고 속상해 합니다. 지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여러분이 행복할지라도 지금보다 더 큰 욕구를 가지면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한 달에 300만 원을 번다고 생각해 봅시다. 100만 원 버는 사람에 비하면 너무나 부유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1000만 원 버는 사람을 보면 ‘나는 이것밖에 벌지 못하니까 너무 불행해’라고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겁니다.

긍휼을 베푼 포도원 주인

요즘 청년들의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부딪히며 사는 겁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산 결과를 피해갈 수 있는데도 육신의 욕망과 정욕을 따라 사는 겁니다. 감사한 줄도, 행복한 줄도, 잘 사는 줄도, 부유한 줄도 모르고 더 좋은 것을 요구하면서 늘 불평 가운데 사는 겁니다.
포도원 농부들은 모든 것을 자기 것인 양 지내다가 주인이 보낸 종이 세금을 받으러 오니까 화를 내면서 종을 때려 죽였습니다. 종을 때려죽였으면 주인이 당장 군인들을 데리고 와서 그 포도원을 정벌하겠지만 마태복음 21장을 읽어보면 주인은 또 다른 종을 보냈습니다. 농부들이 그들마저 때려죽이자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자기 아들을 보냈습니다.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마 21:37)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 한 가지는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자로 재고 저울로 달거나 상상하기에는 너무 크신 분이라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저울로 달거나 자로 재거나 상상해서는 안 됩니다.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에게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주인이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내는 의미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농부들이 주인이 베푸는 은혜를 입는 관계를 갖게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여러분, ‘사랑한다’는 것에는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들의 사랑과 다릅니다. 만약 제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마음을 쏟았는데 그 사람에게 아무 반응이 없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계속 사랑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반응이 없다면 ‘에이, 관둬라. 저 아니면 사람이 없나?’ 하는 마음을 가질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분이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을 죽였지만 다시 기회를 주셔서 또 다른 종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죽였습니다. 우리 같으면 ‘이제 이들에게 인간 대접을 해서는 안 돼. 전부 진멸시켜야 돼’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 아들을 보내면 공경할지 몰라’ 하시면서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여러분,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을 공경하면 주인이 그들을 용서하고 다시 포도농장에서 일을 하게 하는 등 좋은 관계 맺기를 원했지만 농부들은 그런 주인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다른 것보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안다면, 그 하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농부들이 몰랐던 두 가지 사실

여러분, 포도원 농부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가 어쩌다 보니까 주인의 종을 죽였어. 에이, 기왕 엎지러진 물이야. 지금 우리가 용서를 구하고 잘못했다고 해도 주인은 우리를 미워하고 멸망시킬 거야. 그러니까 다 죽여 버리자” 하며 점점 주인을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농부들이 모르는 사실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자기들이 행한 일의 결과를 몰랐고 ▲둘째 주인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주인의 아들을 죽였을 때 농부들은 ‘포도원 주인의 아들이 죽으면 상속자가 없으니까 우리 것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어느 주인이 자기 아들을 죽인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뺏기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자기 군대를 이끌고 가서 다 진멸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또 아들을 보낸 주인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아들을 보낸 주인의 마음은 지금이라도 그들이 뉘우치고 아들을 공경하고 따르면,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도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주인의 마음을 모르니까 그들은 ‘주인이 우리를 어차피 미워할 거야. 어차피 우리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하는 식으로 마음이 흘러갔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마음의 세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왜 불행하게 사는가?

우리 교회의 박문택 변호사가 자신이 맡았던 사건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세 친구가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빚이 천만 원 있었습니다. 천만 원 정도 빚진다는 것은 살다보면 큰 문제도 아닌데, 어느 날 그들이 빚을 어떻게 갚을지 생각하다가 여대생을 잡아서 죽이고 돈을 뺏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대생들을 잡아서 죽였는데 거기서 얻은 돈이 100만  원 정도였답니다.
그들이 잡힌 후 박 형제가 그들의 변호사가 되어 접견을 했는데  마지막에 그들이 부탁이 있다면서 가지고 있던 돈 40만원을 뺏기지 않게 해달라고 했답니다. 박 형제가 그 말을 듣고 너무 기가 막혔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죽여서 이제 큰 형벌을 받을 것인데도 그 몇 십 만원에 마음이 머물러 있었다는 겁니다.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눈앞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런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제가 대학생들에게 마음의 세계를 가르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도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만약 ‘내가 여대생을 죽이고 잡히면 징역을 살 건데…’ 하는 생각을 해보면 불행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생각이 부족했던 농부들

여러분, 이 포도원 농부들의 이야기도 이와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화가 나서 종들을 때리다가도 생각을 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겁니다.
“우리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주인이 우리에게 잘했는데, 주인이 우리에게 보낸 종을 이렇게 해서 되겠냐? 우리가 종을 때려 죽였는데 왜 이랬지? 주인이 이제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내는구나. 주인이 아들을 보냈다는 건 우리를 용서할 마음이 있다는 이야기야. 주인의 마음을 조금 더 알아보고 생각해보자. 분명히 주인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하는 것 같다. 부담스럽지만 주인의 아들에게 용서를 빌자. 회개하고 주인에게로 돌아가자. 우리 주인은 군대도 많은데,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그 군인이 와서 우리를 멸하고 우리 아이들을 다 죽이면 어떻게 되지?”
이렇게 그들이 조금만 생각을 했더라면 절대로 그런 화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입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부동산 전문가가 되어서 집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라도 집을 사는 사람은 참 많습니다. 집을 사기 위해서 부동산 전문가들에게 듣고 알아보고 물어보면 되니까요. 또 신문이나 TV 등을 통해 정보를 얻어서 집을 삽니다. 집을 한 채 사고 나면 어느 정도 부동산에 대해 지식이 커집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들이 ‘우리가 주인의 종을 죽였으니 주인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이번에 아들을 보냈으니 정말 기회다.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자, 그러면 은혜를 입을지도 몰라’ 하며 자신들이 행한 결과를 미리 생각했더라면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고 은혜를 구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여러분, 오늘 이 시대 사람들은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용서와 은혜를 구할 줄 모르고 ‘그냥 부딪치지. 죽으면 죽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그 은혜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은혜를 주시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백만 원 벌면 천만 원짜리의 삶을 살고 싶어 하고, 천만 원 벌면 일 억짜리의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못해서 불평스럽고 원망하면서 더 잘 살고 싶으니까 도둑질을 하고, 사기를 치다 교도소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도둑질한 사람은 자신이 다시 도둑질하면 안 잡힐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다른 사람은 잡혀도 자기는 안 잡힐 것 같고 다른 사람은 실패해도 자기는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아무 근거 없는 그런 생각 속에 마음이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여러분, 예수님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분이 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지. 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죽임을 당하셨는지. 그분은 우리를 용서하고 받으실 모든 준비를 하시고 계속해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을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 멋대로 살다가 비참한 일에 처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 형제 자매들에게 참 감사한 것은 주님의 그 은혜를 알기 때문에 삶이 어려우면서도 주를 사랑하고 주를 위하여 물질을 드리고 봉사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유익을 계산하지 않고 주님께 젊음과 물질, 생명을 드립니다. 그런 마음들이 우리를 복되고 은혜롭게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깊이 생각한다면

우리는 오늘 마태복음 21장에 나오는 농부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농부들은 생각이 부족해서 주인에 대한 감사를 그 마음에서 잊어버렸습니다.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절대 감사하지 않고 감사보다 불평을 먹고 삽니다.
주의 은혜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밥 한 끼 먹는 걸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좋은 나라에 사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옷을 입고, 건강하게 사는 걸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욕구보다 감사가 커야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 다 드려도 부족할 정도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내 생명을 바쳐도 부족할 정도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 때 여러분과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가 될 것입니다.
농부들은 그들에게 닥칠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고 주인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마음을 모르고 자신에게 닥칠 결과를 모른다면 함부로, 생각나는 대로, 마음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한다면 주님의 은혜를 입고 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 2008.7.13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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