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의 음성이 아닌 예수님의 음성을 받아들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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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음성이 아닌 예수님의 음성을 받아들여야
2008.7.6 주일 낮 설교 - 213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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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軍) 훈련소 시절

저는 1965년 군에 입대해서 대구 50사단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그때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교회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훈련소에는 여러 중대가 있고 장병들이 굉장히 많은 큰 사단이었기 때문에 사령부에 교회와 군목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우리가 입소식 할 때 “신의 가호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한 마디 한 후로는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주일 날 예배에 가면 군종병 서너 명이 계속해서 찬송을 부르다가 서로 설교하지 않으려고 미적거립니다. 그러다 한 사람이 나와서 “혹시 여러분 가운데 사회에서 전도사님 하셨던 분 계시면 나와서 말씀 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면 제가 총알같이 나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거기서 6주 교육받을 동안 월급만 못 받았지 제가 군목 노릇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설교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힘들다고 하면서 부담스러워하지만 저는 말씀 전하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많아

제가 결혼한 지 10년 되었을 때 김성훈 목사님의 부모님께서 저희 부부를 초대했습니다. “목사님, 제발 3일만 전주에 오세요”라고 간곡하게 말씀하셔서 저희 부부가 전주에 가게 되었습니다.
김 목사 부모님은 제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당시에 빌리기 힘든 승용차를 준비해서 내장산 구경을 하도록 스케줄을 짜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날 우리는 비만 쫄쫄 맞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이틀 동안 말씀을 전하지 않았더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김 목사님 부모님에게  “제발 형제 자매님들 여기로 오시라고 해서 말씀 전하게 해 주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날 저녁 말씀을 전하고 나니까 제 마음이 무척 평안하고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제가 설교를 잘한다거나 제 설교가 은혜롭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하신 일이 참 많기 때문에 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습니다.
제가 구원받기 전 19년 동안 교회를 다녀 보았지만 저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구원받은 후에는 변하려고 노력하거나 애쓰지 않았는데도 변하더라는 겁니다.
그전에는 바르게 살면서 죄 안 지으려고 했지만 죄악 된 삶에서 떠나지 못했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 죄를 회개하는 일만 계속했는데, 거듭난 뒤에 제 삶이 정말 달라졌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려고 노력해 본 적이 없는데도 하나님이 저를 인도하시는 게 정말 감사했습니다.

담대해진 모세

하나님이 어느 날 모세를 불렀습니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부담스럽고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서 부딪치니까 모세 속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일하시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애굽 왕 바로 앞에 와서 고개를 숙이면서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출 5:3) 하다가 나중에는 당당하게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지경을 칠찌라”(출 8:1~2)며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구원받고 난 뒤에 성경 속에 숨겨진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만 아니라 제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셨어. 나는 이렇게 할 수 없어.̓ 비뚤고 추하고 거짓된 제 성품과 예수님의 마음이 비교되면서 제 길을 접고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쉽고 평안한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굿뉴스코 학생들의 변화

지난주에는 내년에 전세계로 굿뉴스코 봉사활동을 나갈 대학생 1000여 명이 대덕수련원에 모여 4일 동안 교육을 받았는데, 제가 주 강사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학생들 중에는 전에 교회를 다녔던 학생도 있고 교회를 전혀 안 다녔던 학생도 있는데 마지막 날에 시험을 보았습니다.
어제 제가 학생들의 시험 결과를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학생들이 말씀을 분명하게 듣고 구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걸 보니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이것은 제가 한 일이 아니라는 게 분명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부모와 거의 원수처럼 지내던 학생들도 있는데 구원받은 후 부모님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보는 부모들의 마음이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저는 어리석고 못나고 연약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은 온전하고 거룩하신 분이니까 대학생들이 변화받아 전세계에 복음을 들고 나갈 것을 생각할 때 제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사단에게 속하여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1~3)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들도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들의 삶의 목표는 육체와 마음의 욕구에 있습니다.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전도를 하고 연보를 해도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들의 마음은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따르기 때문에 진노의 자녀인 것입니다.
제가 대구에서 사역할 때 어떤 여대생이 우리 교회에 왔는데, 자기는 서울에서 온 에클레시아 합창단 단원이라는 것을 굉장히 강조했습니다. 그 여학생은 우리 교회에서 찬양을 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그 학생에게 찬양을 시키면 그 학생이 굉장히 기뻐하겠지만 거듭나기는 더 어려워지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엡 2:2) 이 구절에서 ‘그 가운데’는 어디를 말하는 겁니까?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마귀의 종으로 그 가운데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가운데 있으면 도둑질하기 싫어도 도둑질하게 되고 거짓말하기 싫어도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악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여러분이 바다 한가운데 빠지면 물 먹기 싫어도 물을 자꾸 먹게 되고 허우적거리기 싫어도 허우적거리게 되고 땅을 밟으려고 해도 밟히지 않는 상황과 같은 경우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4~6) 1~3절은 우리가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 가운데 거했다고 했고, 4~10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중에 예수님이 나팔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신다고 생각해 봅시다. 생각만 해도 즐거울 겁니다. 올 겨울에 우리 교회 형제 자매들 중에 기름 값 인상 때문에 난방을 하기 어려운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주님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시면 그 문제는 다 끝나버리잖아요.
저는 쉰 살이 되었을 때 앞으로 10년만 더 살거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에서 모든 걸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아직 안 죽고 살고 있지만 예순이 지나니까 언제 죽어도 평안하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시면 집세 걱정, 양식 걱정 안 해도 되고 기름 값이 올라가도 ‘기름 값아 올라라! 나도 올라간다!’ 하면서 모든 문제가 끝날 겁니다.

두 부류로 나눠지고

주님이 다시 오시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질 겁니다. 예수님의 피로 분명히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공중에서 예수님과 함께 끌려 올라갈 겁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마음이 예수님과 하나가 안 된 사람은 끌려 올라가지 못할 겁니다. 만일 오늘 주님이 오셨는데 여러분이 들림받지 못하고 남는다면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만사를 제쳐 놓고 구원을 받는 건데!’ 하며 굉장히 암담할 겁니다.
재일 동포 중에는 일본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일본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일본말 잘하는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을 정확하게 구분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을 떠나 사단과 마음을 같이하면서 인류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사단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 속에서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진실하게 살려고 거룩하게 살려고 애써도 되지 않습니다. 변화될 수 없고 믿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목사들이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자고 하지만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나환자촌 집회를 앞두고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4~6)
저는 1980년에 처음으로 나환자촌에 가서 집회를 했습니다. 제가 나환자촌에 집회를 가려고 하니까 우리 교회 목사님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환자촌에 가면 나환자들이 목사님을 시험해 봐요.” “어떻게요?” 하고 물어보니까 “고름이 묻은 손을 가지고 달걀을 까서 먹으라고 준다는데 목사님은 드실 거예요?” 하기에 제가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야단을 쳤습니다.
집회 3일 전 새벽에 잠이 깼는데 ‘진짜 나에게 달걀을 줄까? 그걸 꼭 먹어야 하나?’ 생각하니 도저히 못 먹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밥은 어떻게 먹고 잠은 어떻게 잘 건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기도를 했어요.
한참 기도를 드리는데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하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존귀하신 예수님께서 문둥이 집에 들어가셨는데 나처럼 천하고 못난 인간이 나환자촌에 가는데 주저할 것이 있으랴.’
제게 조금 전까지 없던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나환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야. 나도 나병에 걸리면 나환자야’ 하는 생각이 드니까 그때부터는 나환자를 끌어안고 입을 맞춰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나환자들이 거의 다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나환자들과 같이 먹고 같이 한 이불을 덮고 자고 같이 목욕해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제가 목욕을 하다가 저를 초청한 목사님 속옷도 있기에 같이 빨았더니 그 목사님이 오시더니 “문둥이 것도 빱니까?” 하며 우셨습니다.
나중에 나환자들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박 목사님, 솔직히 얘기 하세요. 우리는 다 알고 있으니까.” “무엇을 이야기하라는 거예요?” “괜찮으니까 이야기하세요. 이야기 할 때가 되었어요.” 저도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목사님, 나환자 맞지요?” 하는 겁니다. 제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환자는 3년 지나봐야 안다면서요. 지금은 몰라요. 3년 지난 다음에 가르쳐 줄게요.” 나병환자를 향한 마음은 진짜 제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사단의 마음을 받아들이면 아무리 선하려고 해도 마음 안에 악이 일어나기 때문에 죄악 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으면 습관을 따라 육으로 흘러가다가도 순간순간 그리스도가 새 마음을 주시기 때문에 밝고 거룩하고 의롭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내가 얼마나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속했느냐, 아니면 악한 영에게 속했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여러분, 미국에 가려면 무엇을 잘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행 비행기를 타면 누구나 갈 수 있습니다. 노아 홍수 시대에는 아무리 악해도 노아의 방주 안에 있으면 구원받지만 아무리 선해도 방주 밖에 있으면 저주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악해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은혜를 입습니다. 아무리 선해도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멸망을 당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 마음에 들어오신 이후에 에베소서 2장을 읽으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1~3절은 사단에게 속해서 저주받고 멸망받는 이야기이고, 4~10절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서 구원받고 천국 가는 이야기입니다. 1~3절의 저주받고 심판받을 사람이 무엇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복을 누리겠습니까? 그것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 때문입니다.

고통을 축복으로 바꾸시며

저는 로마서 8장을 읽을 때마다 소망스럽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중략)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어느 누구도 예수님과 제 사이를 끊어놓을 수 없습니다. 제가 가는 그 어디에도 예수님이 함께 있고, 제가 당하는 그 어떤 고통과 절망도 예수님이 함께하십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문제나 고통, 슬픔이 없어서가 아니라 저와 함께하신 예수님이 그 모든 것을 축복으로 바꿔주셨습니다.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고”

창세기 40장에서 술 맡은 관원장이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는데 그 즙을 짜서 바로에게 드렸노라”고 말했습니다. 그 구절이 저에게 축복이 되었습니다.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다는 말은 내가 포도나무 뒤에 있다는 말입니다. 포도나무는 예수님을 가리키는데 내가 예수님 뒤에 있으니까 두려움이 와도 예수님을 넘어와야 하는 겁니다. 저는 구원받고 46년 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절망과 슬픔, 두려움이 제게 다가왔지만 제 앞에 계신 예수님이 그것들을 다 떨어뜨려 버리셨습니다.
제가 강남교회로 온 뒤 예배당 문제가 어려웠지만 저는 예수님 뒤에 있었습니다. 제 앞에 부담이 오지만 그리스도가 제 앞에 있었습니다. 문혜진 자매가 허리를 다쳤을 때도 그게 처음엔 제 가슴에 와 닿았지만 금방 예수님 뒤로 피했습니다. IYF도, 마하나임대학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사랑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은혜를 나타내시려고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 2:7)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는데 그것을 여러 세대에 나타내셨다고 했습니다. ‘박옥수 목사를 봐라. 하나님이 박옥수 목사처럼 못난 인간에게 얼마나 큰 자비를 베풀었느냐’ 하는 것을 대대로 나타내시기를 원하신다는 겁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여기에 물이 한 컵 있는데 이 물은 입으로 마시면 됩니다. 그러면 조금 전에 컵에 있던 물이 제 안에 들어오는 겁니다. 만일 컵 안에 독이 있는데 그걸 마셨다면 독이 제 안에 들어오겠지요. 영양제를 마시면 영양제가 작용하겠지요.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아, 그렇구나’ 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십니다.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주여, 내 마음에 들어오시옵소서” 하고 영접기도를 수없이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영접하는 게 아닌데도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마음 안에 살아서 일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값없이 죄를 사하시고

아담이 뱀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받아들였더니 뱀의 마음이 아담 속에 살아 일했습니다. 이제는 사단 밑에 있던 그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은혜’는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의 죄를 값없이 사해주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무 대가도 안 받으시고 여러분의 죄를 다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죄가 있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 다 건너갔는데,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내 죄가 예수님께 건너갔네, 나는 죄가 없네, 예수님이 내 죄를 인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네, 내 죄가 씻어졌네’ 하고 그 사실을 단순히 받아들이면 여러분 마음 안에 예수님의 말씀이 거하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믿음’이라는 것은 그냥 열심히 기도하고 연보하고 전도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값없이 사랑하셔서 내 죄를 씻어주셨구나. 예수님의 은혜로 십자가에서 내 모든 죄를 다 사하셨구나’ 하고   마음에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면

에베소서 2장에서 아담은 어떻게 해서 사단에게 속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뱀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서 하나님처럼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단의 음성을 저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마음에 받아들이면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에베소서 2장 4~6절처럼 이끌어 가신다는 겁니다.
10절에는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새로 만들어서 예전의 우리와 다른 삶을 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주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역사하셔서 여러분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 2008.7.6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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