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의 위치는 과연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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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의 위치는 과연 어디인가?
2008.6.29 주일 낮 설교 - 212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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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와 그의 아내

옛날에 어떤 선비가 살았습니다. 선비가 과거에 급제해서 관직을 얻으면 살기가 좋지만, 열심히 글공부를 해도 벼슬을 얻지 못해 어렵게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비의 아내가 들에 가서 보리 이삭을 주워 말려서 가을까지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은 일찍 보리 이삭을 주우러 가야 해요. 주워온 이삭이 젖어 있어서 마당에 멍석을 펴 놓고 보리를 말릴 테니, 갑자기 소나기가 오면 당신이 마당에 있는 보리를 가마니에 담아 뜰에 올려 주세요.” 남편이 알겠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들에서 한참 이삭을 줍고 있는데 검은 구름이 몰려오면서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아내는 ‘마당에 널어놓은 보리를 남편이 담아 놓았을까?’ 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아무리 책만 읽지만 그렇게 부탁했으니까 보리를 담아서 뜰에 옮겨 놨으리라’고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걱정스러워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대문에 들어서자 멍석 위에 널어놓은 보리가 다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아내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회복할 수 없는 관계

방문을 확 열어젖히니까 남편이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순간 ‘내가 이런 남자하고 살다니!’하는 마음이 들어 아내는 너무 속상했습니다. ‘어렵게 이삭을 주워서 남편을 섬기려고 하는데 비 올 때라도 그것 좀 젖지 않게 옮겨주면 안 돼?’ 아내는 정말 답답하고 남편이 한심스러웠습니다.
아내가 “당신이 가서 이삭 한 번 주워봐! 어떻게 주운 이삭인데! 우린 이제 뭘 먹고 살 거야?” 하며 땅을 치고 울었지만, 남편은 그제야 문을 열고 나와서 “비가 왔나?”라고 하는 겁니다. 선비의 아내는 “내가 고생하며 보리 이삭도 주웠지만 소망이 없어. 이제 당신하고는 더 못 살겠어” 하며 남편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나중에 선비가 열심히 공부해서 장원 급제하여 그 고을의 원님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원님 앞에서 나졸들이 나팔을 불고 깃대를 들고 원님은 말을 타고 화려하게 부임을 했습니다. 그러나 선비의 아내는 여전히 이삭을 줍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선비가 “나를 버리고 가더니 여전히 그 신세를 면치 못하였구나”라고 했습니다. 선비의 아내가 자기 남편이 고을 원님이 되어서 돌아온 걸 보고 큰 절을 올렸습니다. “무슨 일이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잘못했는 데 저를 받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자 원님이 물을 한 동이 이고 오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얼른 깨끗한 물을 한 동이 이고 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물을 땅에 부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을 땅에 부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물을 다시 물동이에 떠 담으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어떻게 엎지른 물을 다시 떠 담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자 원님은 “너와 내 사이가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다”라고 했답니다.

서로 조금씩 이해하면

여러분, 부부가 살다 보면 늘 마음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남편은 ‘저 사람은 남편을 뭘로 아는 거야’ 하며 아내가 자기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아내가 미워지기도 합니다. 아내도 ‘우리 남편은 왜 저래?’ 하며 마음에 들지 않아 남편을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배우자가 자기 마음에 꼭 든다고 해서 평화롭게 사는 게 아닙니다. 부부가 살면서 마음이 맞을 때도 있고 안 맞을 때도 있고, 그러다 싸울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부딪혀 가면서 마음이 점점 가까워지는 거지요.
그런데 어떤 시점에 이르러 ‘이 사람하고는 더 이상은 못 살겠다!’ 하는 마음이 들면 기도해야 합니다. 사단이 가정을 깨뜨리려고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겁니다. 가정이 깨져 부부가 이혼하면 아이들이 죄악에 끌려 다니기가 쉬워집니다. 여러분, 가정은 총 들고 지키는 게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는 생리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조금씩 이해하면 정말 좋은 사이가 됩니다.

다윗을 버린 미갈

오늘은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아내였던 미갈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사울 왕과 그의 딸 미갈은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될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죽이고 자기 아들이 왕이 되게 하여 왕위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때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다고 하니까 사울이 다윗에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어려운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블레셋 사람의 양피 일백을 가져오면 내가 딸을 주겠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이고 양피 일백을 가져다가 사울의 딸 미갈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니까 다윗이 궁 안에 있을 수가 없어 블레셋으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미갈은 장차 자기 남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알았지만 혼자 지내게 되어 너무 외로웠습니다. ‘그래도 내 남편인데 기다려야지. 하나님이 왕으로 삼으신다고 했는데 언젠가 왕이 되어 올 거야. 그러면 나는 영광스럽게 왕비가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외로움을 달랬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미갈은 결정했습니다. ‘왕비가 안 돼도 좋아. 나를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어. 다윗이 왕이 된다고는 하지만 왕이 될 것 같지가 않아. 외국에 가서 소식도 없는 걸 보니 죽었을지도 몰라. 나는 그냥 평범한 남자와 살고 싶어.’ 사울 왕이 그 마음을 알고 미갈을 발디엘이라는 남자와 결혼시켰습니다. 다윗이 아직 살아있는데 미갈은 다윗을 버리고 발디엘과 살게 되었습니다.

“미갈을 내게로 데려오라”

사울 왕이 죽은 후, 나라가 이스라엘과 유다로 나뉘어져 사울 왕의 아들 이스보셋은 이스라엘 왕이 되었고 다윗은 유다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보셋에게는 군대장관 아브넬이 있었는데, 그가 다윗과 언약을 세워 이스라엘 전부를 다윗에게 다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좋다. 내가 한 나라의 왕인데 내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 네가 나를 만나려면 무조건 내 아내 미갈을 내게로 데리고 오너라.”
미갈이 아기를 낳아 아이 재롱에 정신없이 지내고 있는데 밖에서 “어명이다. 미갈은 밖으로 나와라”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구세요? 무슨 일인데요?” “왕 다윗이 너를 부르신다.”
그 말에 미갈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윗이 살아있는데도 다윗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아기 낳고 살고 있는 나를 뭐라고 변명할까?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 다윗이 미갈을 데리고 왔지만 미갈은 죽을 때까지 아기를 못 낳았습니다. 미갈을 궁에 데려다 놓기만 한 것입니다.

자신을 세우고 높이는 삶

하나님은 미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교회를 다니지만 남편 되시는 예수님과 마음이 멀다는 것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를 주목하십니다.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마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
사단은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를 세우고 잘되고 싶은 마음을 주어 하나님을 떠나버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보다 자신의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을 높이고 위하는 삶에 집착해 하나님을 거스르며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구원받기 전까지 악하고 더럽고 추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도둑질, 거짓말뿐만 아니라 무슨 짓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세우고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사단에게 속은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자녀를 주님께 맡기고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내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믿기 전에 ‘회개’를 해야 합니다. 회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율법을 지키고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세계에서 예수님의 세계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이 자신을 믿는 상태에서 벗어나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와 있는 동안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니까 내가 나 자신을 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고 복되고 은혜로운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헌금도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여전히 자신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아직까지 예수님과 하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나를 지키고 돌봐야 하고 내 가정을 위하여야 합니다.
저도 입으로는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하면서도 늘 제가 주인이 되어 자식도 제가 반듯하게 키우려고 애썼지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정확하게 깨닫고 난 뒤부터는 제 아이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우리 부부가 지방으로 집회를 가면 늘 집에 아이들만 남겨놓고 다녔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우리 아이들을 키워주시는 것을 보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저는 예전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단에게 속아서, 저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면 망할 것 같고 안 될 것 같고 어려울 것 같은 생각에 잡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보다 사단이 넣어주는 생각을 믿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과 다른 방법으로 살았습니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여리고의 백성으로 있다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가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정탐꾼을 숨긴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여리고에 속해서 여리고 왕을 섬겼고 여리고를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여리고를 떠나 이스라엘 나라에 속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았으면, 이스라엘의 정탐꾼이 왔을 때 고발해야 하는데 이스라엘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정탐꾼을 숨겨주고 보호해 주었습니다.
모압 여인 룻도 저주받은 땅 모압을 떠나 양식이 풍족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처럼 다윗의 아내 미갈도 하나님의 그림자인 다윗을 떠나 세상으로 갔지만 기생 라합처럼, 모압 여인 룻처럼 돌아와야 합니다.  

내 마음의 위치는

여러분, 신앙의 세계는 마음의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해 죽으신 것을 믿지만, 여러분 마음의 위치가 자신에게 있느냐 아니면 예수님께 있느냐를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자신 편에 서 있으면 생각하는 것, 먹는 것, 일하는 것 모두 자신을 위해서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편에 서 있으면 모든 일 앞에서 예수님과 복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구원받은 후 자기 자신이 악하고 더럽고 추한 것을 느끼고 지금까지 살아온 결과가 죄 짓는 일밖에 없었다는 걸 알면 자신을 포기하고 그 마음이 예수님께로 옮겨지게 됩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떠나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면, 여러분은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아름답고 복되게 지키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요셉이 감옥에 갔지만 하나님은 그를 감옥에서 벗어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에게는 처자가 있던 시글락이 다 불타는 시련이 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이스라엘 왕이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전부 하나님이 지키시고 이끌어 가십니다.

가족을 구원으로 이끄시고

저는 구원받은 후 저의 형님과 저를 자주 비교해 보았습니다. 형님에게는 재앙과 병, 어려운 문제가 많았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것들이 똑같이 닥쳐오지만 주님이 중간에서 막아주시기 때문에 재앙이나 환란, 어려움을 겪어 본 적이 없습니다. 형님은 제게 자주 “옥수야, 나는 네가 참 부럽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을 보면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의 맏아들이 예전에는 말썽을 많이 부렸는데, 이제는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습니다. 제 동생도 구원받고 선교사가 되어서 LA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일본에 사는 사촌 동생들의 마음도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게 무척 신기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을 잘 모릅니다. 여러분이 화가 나도 웃으면 저는 기쁜 줄 알고, 여러분이 속으로 즐겁지만 겉으로 화를 내면 저는 화난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의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보십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성경 읽고 헌금을 해도 그 마음이 자신 편에 있어서 자신을 믿고 지키고 세우려고 한다면 그는 아직까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았지만 재앙을 만나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마음의 위치가 자신에게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세워져야

룻이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온 것은 자기 보기에 좋은 세계를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베들레헴에 속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세우고 위하는 삶에서 예수님께로 옮겨온 것입니다. 룻이 모압에서 돌아온 그때부터 하나님이 그 삶을 지키시고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룻이 우연히 이삭을 주우러 갔는데 보아스의 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보아스가 와서 룻을 보고는 “내 딸아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여기서 이삭을 주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환들에게는 “이삭을 줍기 좋도록 떨어뜨려라”고 명했습니다. 다른 곳에서 이삭을 주우면 하루 종일 허리가 아프도록 쳐다봐도 곡식 한 알 떨어진 곳이 없는데, 보아스의 밭에는 줍기 좋도록 흘려놓으니까 금방 한 푸대를 채웠습니다.
그 후에는 하나님이 룻으로 하여금 타작마당에 가도록 해서 보아스에게서 많은 곡식을 얻게 하시고 결국 그의 아내가 되게 하셨습니다. 룻의 삶에서 보아스는 하나님의 축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자기 자신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 망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높이 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망하지 않는 세계는 단 하나, 하나님의 세계밖에 없습니다. 미갈이 다윗 왕과 같이 사는 것처럼 여러분이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로 다 들어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교회를 떠난 어떤 형제

제가 예전에 알던 한 형제는 일곱 가지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살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한 채로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살던 경남 합천의 압곡동이라는 곳에 서 구원받은 자매님을 통해 복음을 듣고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형제가 구원받은 후 정말 기뻐하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기 위해 선교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복음 전하는 것보다 어떤 자매랑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지기에 제가 “자네 멋대로 살면서 어떻게 복음 전도자가 되겠나!” 하고 야단쳤더니 그 형제가 화를 내면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 후 미국 시카고로 이민을 가서 그 자매와 결혼해서 살았습니다. 제가 한번은 시카고에 가서 그 형제 내외를 찾아갔는데, 저를 반가워하고 한국 수양회에도 참석하면서 교회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를 세우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욕망을 좇은 삶의 결과

얼마 전에 그 형제가 세상을 떠났는데, 병이 들어 아내에게 쫓겨나서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가 죽기 전에 집에서 쫓겨나 어떤 기도원에서 지냈는데, 기도원에 있는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내가 구원이라는 놀라운 복을 받았지만, 그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해 미국에 와서 살면 잘 살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병들자 아내가 추운 겨울인데도 아주 냉정하게 내쫓았어요.”
그 형제 이야기를 듣고 저는 너무 슬펐습니다. 불과 2~3년 전 마산에서 집회할 때 그 형제가 참석해 눈물을 흘리며 간증을 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겠다고 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형제는 미국에 돌아가서 마음이 변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욕망을 따라 살아간 겁니다.

예수님을 떠나 망하게 해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이 자신 편에 있는 동안에는 사단이 얼마든지 여러분을 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으면 재앙과 저주가 와도 그것은 여러분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문제가 됩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자신의 욕망을 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을 무너뜨리고 예수님 안에 들어가서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는 사람은 지금은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사단이 그를 유혹해서 예수님을 떠나 망하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와서 망한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위하는 세계를 계속 만들어 가게 하는 것입니다.
미갈은 사울을 피해 망명한 다윗을 기다리면서 생각했습니다. ‘내 남편이 왕이 된다고 하지만 나는 싫어. 다 늙어서 왕이 되면 뭐해? 왕이 아니어도 좋으니 평범한 남자하고 같이 살고 싶어.’ 그 마음이 다윗에게서 떠나게 되었고 결국 비참하게 인생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속하면

거듭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만을 섬기며 살면 주님이 여러분 모두를 지키셔서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탕자가 아무리 배고파도 아버지를 떠나 있으면 아버지가 그를 배불릴 수 없지만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면 복을 받는 것처럼, 이 시간 이후로 여러분의 마음이 자신의 영역에서 떠나서 예수님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면 무슨 일을 만나든지 주님이 복되게 하실 겁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아침 자신을 정확하게 저울질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 안에 있습니까?
사단에게 속지 말고 여러분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 안에 속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과 여러분이 하나가 되기 때문에 어떤 재앙과 어려움이 오든지 예수님이 맡으실 겁니다. 예수님 안에 속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 2008.6.29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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