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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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누가복음 10장 25절 ~ 37절] 2009.5.3 주일 낮 예배 - 256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9.05.14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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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만난 자 이야기

오늘 아침에는 누가복음 10장에 있는 말씀을 단순하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자의 이야기를 평범하게 읽어 보면 ‘내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겠구나’ 하는 일차적인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이 옷이 벗겨진 채 매를 맞아 거의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강도가 그랬으니 이 근처에 강도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업고 오겠습니까? 또다시 강도가 나타나면 여러분도 강도에게 잡혀 그 사람처럼 될 수 있는데, 정말 그 사람을 구원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율법사의 대화

여러분이 월급을 오백만 원 받는다고 합시다. 그런데 아들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느라 돈이 모자라면 다음 달에는 가불한 것 제하고 절약해서 쓰려는 계산을 한 후 회사 경리과를 찾아가서 “이번에 집에 어려운 일이 있는데 다음 달 월급 좀 가불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선을 행하지 못하지만 다음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번에 어쩌다가 잘못을 저질렀지만 실수한 사실을 드러내지 말고 다음 달에 선을 행하면 괜찮겠지’라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한 실수를 숨겨봐야 다음에 또 실수하면 선을 가불할 수 없을 겁니다. 가불해봤자 갚지도 못하니까 아예 ‘나는 안 돼!’ 하는 마음을 가지겠지요.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께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가?

율법사의 물음에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눅 10:30~33) 하며 어떤 사마리아인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이웃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여유 있을 때는 돈을 줄 수 있고 도와줄 수 있겠지만 자신이 어려움에 빠져있는데도 이웃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의 아이와 이웃의 아이가 동시에 입원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 자기 아들을 살리기도 부족한데 자기 아들은 내버려두고 이웃집 아이 치료비를 대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여유 있거나 도울 힘이 있을 때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지만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데도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려고 했기에

아주 오래전에 제 딸아이가 “아빠, 저 마징가제트 운동화 사주세요”라고 해서 “너, 무슨 소리하는 거야. 마징가제트 운동화 신는다고 마징가가 돼?” 하고는 그 운동화를 사줄 만한 돈은 있었지만 싼 운동화를 사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이웃에 형제 한 분이 굉장히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 고이 간직했던 돈을 그분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딸이 오더니 “아빠, 그 집 애도 그 운동화 샀는데 왜 나는 안 사 주세요?”라는 겁니다. 제가 쓸 돈 안 쓰고 모아서 그 형제에게 주었는데, 그 형제는 그 돈으로 자기 딸에게 마징가제트 운동화를 사준 것이었습니다. 그걸 보니 제 마음이 섭섭해지면서 ‘너, 그 따위로 사니까 늘 굶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처럼 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지만 예전에 저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율법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참 어려웠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신앙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굉장히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어도 여러분이 코트를 입었다면 안 추울 겁니다. 그러니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 자신의 실체를 알게 되고

제가 선교학교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어느 날 제 아들이 선교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도 내 아들처럼 대해주고 내 아들도 다른 학생들처럼 대해야 좋은 스승이 된다는 각오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학생들이 성경을 읽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학생들이 발표를 할 때 저는 학생들의 마음 상태를 파악하기 때문에 굉장히 주의 깊게 듣습니다.
그런데 그날 정말 제가 바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발표할 때는 ‘저 녀석 마음 상태가 아주 안 좋구나. 어떻게 저런 시들한 소리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듣고 있다가 제 아들이 발표할 때는 ‘어? 누구야?’ 하며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저는 그전까지 하나님 앞에서 제 아들을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했다고 자신했는데, 그날 후로는 ‘나는 내 아들과 다른 사람을 절대로 똑같이 대할 수 없구나. 나라는 사람은 이렇구나’ 하며 저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을 받아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고 죄를 짓게 된 그때부터 사단은 우리 육(肉)의 세계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육에서 나온 생각들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항상 추하고 더럽고 음란하고 가증하고 악합니다.
저는 가끔 기독교 방송에서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는데, 대부분의 설교가 “선을 행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하나님을 사랑하자”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설교를 들으면 ‘그래, 내가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해야지. 주님을 사랑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려고 애쓰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될 것 같은데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6~7) 성경은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하나님의 법에 절대로 굴복할 수 없다고 명백하게 못 박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율법사가 대화하는 말씀 전체의 흐름을 보면 “너는 절대 선을 행하거나 하나님을 섬기지 못해. 절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할 수 없어”라는 사실을 주님은 깨우쳐 주려고 하신 겁니다.
 

 

마음의 흐름이 막히면

5월 말 서울랜드에서 있을 ‘컬처’를 앞두고 지난 금요일부터 자원봉사자 워크숍을 가졌는데, 제가 학생들에게 정신교육을 하면서 ‘인격’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격이 낮은 사람은 ‘내 말이 옳아. 너는 틀렸어. 너 같은 사람의 말은 들어볼 필요도 없어’ 하며 자기 자신만을 믿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도둑질을 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합니다.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져야 한다는 거지요. 도둑질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진짜 무서운 사람입니다.
만약 남의 아내와 간음을 했다면 괴롭고 미안하고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내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간음했다면 분노가 일어나면서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내가 남의 아내와 간음했다면 그 여자의 남편이 느낄 고통 때문에 가책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지난번에 잡힌 연쇄살인범은 사람을 죽이면서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마음의 흐름이 막혀 남의 마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기 생각의 테두리 안에서만 살 때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자살하기 전에 ‘내가 자살하면 가족이 얼마나 슬퍼하고 괴로워할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면 쉽게 자살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법이나 교육도 아니고 어떤 체제나 돈도 아닌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그림자, 사마리아인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5~36)
여기서 세 사람은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을 말합니다. 제사장은 강도 만난 자를 보고 ‘여기에 강도가 있으니 나도 강도를 만나겠구나. 나라도 살아야지 잘못하면 죽겠다’ 하며 두려워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습니다.
레위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레위인은 그를 구원했습니까? 아닙니다. 레위인도 제사장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사마리아인인데, 이 사람은 강도 만날 걸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강도도 이 사람에게 못 덤볐습니다. 이 사람은 바로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럼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입니까?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입니다. “너도 가서 사마리아인처럼 하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친자식처럼 키운다?

제가 대전에서 사역을 할 때 재혼을 하게 된 한 형제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형제는 딸이 둘 있었는데, 재혼하려는 자매가 저와 형제가 있는 자리에서 그 아이들에게 친엄마처럼 잘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그 자매에게 “자매님, 지금 뭐라고 했어요?”라고 재차 묻자 다시 “목사님, 제가 친엄마처럼 잘해줄게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정색을 하면서 “남의 자식 키우면서 친엄마처럼 해 준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남의 자식에게 친엄마처럼 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제 말에 그 자매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조금 있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딸들 불러놓고 솔직하게 얘기하세요. 나는 친엄마가 아닌 계모이기 때문에 절대로 친엄마처럼 해줄 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살다 보니 너도 불행하게 친엄마 잃고 새 엄마 밑에서 자라게 되었고, 나도 내가 낳지 않은 딸 키우게 된 아픔이 있는데 잘해보자!”라고 말하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저는 교회 안에서 재혼해서 남이 낳은 자식을 키우는 엄마들을 보면 항상 엄마 편을 듭니다. 남의 자식 키우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식은 때리고 욕해도 “엄마~” 하고 웃으며 나오지만, 자기 엄마가 새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백 가지 천 가지 잘해줘도 그건 아무 소용없고 한 가지만 잘 못해도 섭섭해 하기 때문입니다.

더럽고 악한 인간의 모습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마리아인처럼 강도 만난 자를 위하려고 하니까 신앙이 너무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겁니다. 우리는 아담이 범죄한 후에 죄의 자손으로 태어나 늘 추하고 더럽고 음란하고 가증한 마음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저녁 저는 대구에 갔습니다. 대구에 가려면 구미를 지나가야 하는데, 구미에 있는 금오산이 아름다워서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올라가 보니,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산을 내려오려고 다시 케이블카를 탔는데 같이 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진짜 듣기 싫었습니다.
케이블카가 아래까지 내려가는 동안 “좀 조용히 하면 안 돼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참았습니다. 10명 정도가 잔치하고 오면서 금오산에 올라온 모양인데 경치는 아름답고 좋았지만 그 사람들 때문에 분위기가 정말 안 좋았습니다.
인간 속에서 나오는 건 다 더럽고 악하지만 그래도 점잖게 보이기 위해 그것을 다 가리니까 그 정도 유지되는 겁니다. 그런데 마음의 단추를 풀어 버리고 속에 있는 것을 다 드러내면 얼마나 추하고 더럽고 악한지 우리 자신은 잘 모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은

성경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고 했습니다. 말할 수 없이 더럽고 썩어 빠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 예배드릴 때는 진실해 보이고 거룩해 보이는 것뿐입니다.
어떤 집회에서 한번은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카메라를 다루는 형제가 성경을 읽고 있는 어떤 형제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카메라를 그 형제에게 맞춰 놓았습니다. 그 형제는 그것도 모른 채 성경을 읽다가 콧구멍을 후빈 뒤 코딱지를 톡 튕겼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화면에 비춰져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 형제는 자기가 화면에 비취었다는 걸 알고는 카메라 다루는 형제에게 화를 내며 항의했다고 합니다.
잠깐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에게서 더럽고 추하고 음란한 것이 나오는 것을 여러분도 경험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선하고 정직하다고 착각하면 그건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잠시 진실하고 선하고 정직할 수 있겠지만, 그 한때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추하고 악한 게 나 자신인 걸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에게 기대를 갖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쩌다 선을 행했을 때 ‘지난번엔 못했는데 앞으로 잘하면 되겠네’ 하며 사단에게 속아서 자신이 선한 척하면 정말 문제가 됩니다.
나 자신을 버리고
사람은 자기가 여유 있을 때 다른 사람을 좀 도와줄 수 있지만 자기 생명을 버리고 자기를 희생해가면서까지 자기보다 남을 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웃사랑하기를 내 몸처럼 사랑한 사람은 사마리아인뿐입니다.
자신에게 아직 위험이 안 닥쳤으니까 죽어가는 사람을 구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절대로 자신보다 이웃을 더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사마리아인처럼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길 황소가 뒷발로 생쥐를 잡고 나면 그날 몸살을 한다고 합니다. 황소 실력으로는 절대 생쥐를 못 잡는데, 어떻게 해서 발을 내딛다가 생쥐가 밟혀 죽으니까 ‘나는 뒷발로 생쥐를 잡을 수 있구나’ 하면서 몸살이 나도록 뒷발질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확하게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정확하게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좀 더 선해지고 의로워지고 거룩해져서 죄를 씻음 받고 하늘나라 가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버리고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예전에는 자동차 엔진의 성능이 나빠서 5만 킬로미터만 가도 엔진 실린더가 넓어져 공기 압축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자동차에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실린더를 보링해야 합니다. 쇠를 녹이거나 깎은 다음, 실린더 내벽을 다시 만들고 부속품을 교체하는 겁니다.
요즘은 자동차 엔진의 성능이 좋기 때문에 엔진 하나로 100만 킬로미터를 달려도 엔진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엔진이 고장 나서 못 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30년을 타도 괜찮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시작은 좋더라도 나중에는 닳아서 고쳐야 하는 기계와 같지만,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완벽해서 고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선하고 정직하고 의롭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나 자신은 그렇게 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내 마음에 받아들이면 됩니다. 예수님의 의를 가져와야 의롭게 되고, 예수님의 거룩함을 가져와야 거룩하게 되고, 예수님의 사랑을 가져와야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의 은혜를 가져와야 은혜롭게 됩니다.

참된 신앙의 길

누가복음 10장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 선해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근본 마음이 악하고 더럽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십시오. 내 마음은 더럽고 추해서 아무리 고쳐도 안 됩니다. 제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여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예수님의 마음에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오면 남을 위해 살아도 정말 기쁘고 내가 어려워도 기쁩니다.
내 마음을 가지고는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 마음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이것이 참된 신앙이요, 참된 믿음인 줄 믿습니다.

- 2009.5.3 주일 낮 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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