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의지해 적진에 뛰어든「요나단」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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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의지해 적진에 뛰어든「요나단」의 믿음
2008.6.22 주일 낮 설교 - 211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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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사님 이야기

우리 교회에 우리 선교회 목사님이 아닌 다른 교회에서 목회하시던 목사님 한 분이 나오십니다. 그분은 올림픽공원 근처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연세도 많으십니다. 우리가 체조경기장에서 집회를 준비할 때 찾아오셔서 목사님 한 분과 상담하는 가운데, 자신이 목사지만 지금까지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죄 사함의 확신을 얻으셨습니다.
목사님이 죄 사함을 확신하고 난 뒤, 지금까지 잘못된 신앙을 하면서 신도를 잘못 가르쳤다는 마음이 들어 더 이상 목사로 일할 수 없어서 목회를 그만두시고 우리 교회에 나오십니다. 목사가 목회를 그만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부양할 가족도 있으니까요. 특히 사모님은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시니까 남편이 미쳤다고 생각하며 많이 반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충만한 기쁨을 가지고 계십니다. 얼마 전에는 이분이 암에 걸리셨는데 젊은 사람도 견디기 힘든 암과 싸우면서도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답답해하시면서 2주 전에 우리 교회에 오셨는데, 제가 “우리 교회에도 의사들이 있으니 의논해서 수술을 받아야 하면 받고, 치료를 하시라고 목사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만족하시면서 가셨습니다.

허탈하고 허무한 인생

사람들은 암에 걸리면 마음이 무너져 버립니다. 여태까지 평안하다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마음의 평정이 깨져 버립니다. 사업이 부도 나는 등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 어려움에 빠집니다.
사람들이 한평생을 살면서 어려움이나 문제가 없이 마음에 평정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시간이 몇 시간이나 되겠습니까? 사람이 70 평생을 산다고 했을 때 철들 때부터 쉬지 않고 고난과 근심, 염려 속에서 인생을 사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잠시라도 고통을 잊고 취해서 노래라도 한 번 불러보자’는 마음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닙니까?
인간은 너무 약하기 때문에 평탄한 삶을 살아가다가 조그만 문제라도 생기면 벌벌 떱니다. 문제없이 잘되어 가도 ‘앞으로 내게 문제나 어려움이 닥치면 어쩌지’ 하는 생각 때문에 쉼을 얻지 못하고 살얼음판을 걷듯이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큰 소리 치는 것 같고 당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을 근심 속에서 살기 때문에 진정한 즐거움이 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삐뚠 길로 가서 즐거움을 얻어 보려고 애쓰지만 거기에 평안과 행복이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어디서 평안과 행복을 찾지? 얼마나 돈을 모으면 만족할까?’ 하고 방황하다 슬픔과 고통 속에서 한평생이 다 흘러가 버립니다. 예순이 되고 일흔이 가까워오면 ‘내가 이런 인생을 살았는데 남은 것이 무엇인가?’ 하며 허탈하고 허무해 합니다.  

아프리카로 간 여대생

제가 예수님 안에서 만났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저는 대학생을 훈련시켜 아프리카로 해외봉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자기만을 생각하면서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육체의 욕망대로 살던 학생들이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고 아프리카에 갑니다. 그곳에는 물도 부족하고 장티푸스, 말라리아도 있고 벌레도 많아 지내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그 여리고 예쁜 여대생들이 거기 가서 그것들을 다 이겨내는 겁니다.
어제 저는 선교회의 인터넷 방송인 ‘박옥수 목사와 영상교제’ 시간에 가나에서 해외봉사를 하고 있는 여학생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도마뱀이 무섭지 않은지 물어봤더니 그 여학생이 “아니요. 도마뱀 아주 예뻐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가면 잠시도 못 있겠다며 한국 갈 날만 기다리면서 벌벌 떨며 지냅니다. 그러나 그 학생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어려움과 슬픔, 두려움과 죄를 이기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고통과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 인생에서 슬픔이나 고통, 어려운 문제가 없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 두려움과 고통, 어려움이 있어도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는 말씀처럼 그 모든 것을 이기는 겁니다.
애굽에 기근이 와서 다 굶어죽게 되었지만 기근을 이기는 요셉과 함께 있으니까 그 기근은 더 이상 기근이 아니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기근이 와서 다른 사람들은 다 굶어 죽었지만 사르밧 과부는 기근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참된 믿음을 가지면 슬픔이나 고통, 절망에 매이지 않고 그것들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길 만한 힘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면, 여러분이 그것들을 못 이겨도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이 이기실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 2:10)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겁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 병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하고 그 아비에게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사울이 기브아 변경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 머물렀고 함께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의 간줄을 알지 못하니라.”(삼상 14:1~3)
지금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블레셋은 병거가 삼만이고 마병이 육천이고 보병이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다고 사무엘상 13장 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사는 육백 명 가량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누가 봐도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아히야라는 제사장이 거기 있는데 나라가 블레셋에 멸망당하게 되었는데도 아무 일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결혼해서 가정을 가지고, 아파트도 사고, 승용차도 사서 어느 정도 살게 되면 그 삶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과감하게 달려가지 않고 굉장히 소극적인 신앙을 하게 됩니다. 결국 여러분의 자녀나 가정 등 모든 것을 자신이 지키려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목사님이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난 믿음이 없어. 목사님이나 믿음으로 사는 거지’라는 마음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그러다 어려움이 닥쳐 삶의 안정이 다 깨어졌다고 생각되면 그때 비로소 ‘내가 다 망했구나. 내 방법이 없구나. 끝났다’ 하며 믿음으로 살려고 합니다.

한계 상황에 이르고

사무엘상 14장에는 ‘요나단’이라는 왕자가 나옵니다. 왕자는 자기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이지만 나라가 망하면 어떻게 왕이 되겠습니까? 블레셋이 쳐들어오면 도망 다니기 바쁘고, 왕자라는 신분 때문에 적국에 볼모로 잡히면 많은 수모를 겪어야 하는 등 암담한 일이 많았습니다.
적군은 병거가 삼만이고 마병이 육천인데 백성들은 다 도망가고 육백 명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나라를 지키겠습니까? 요나단은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자신의 방법과 지혜, 노력으로 나라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IMF 때 우리나라 중소기업 사장 이만 명이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창의력 있고 발전가능성이 많은 보배 같은 사람들인데,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그들이 자살하기 직전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도를 막으려고 융자를 받다 보니 은행에서 더 이상 대출이 안 되니까 사채에 의지하게 됩니다. 사채는 은행 대출보다 쉽게 받을 수 있지만 이율이 높습니다. 이번만 부도를 막아내면 되겠다 싶어 사채로 이리 저리 부족한 자금을 막다 보니 결국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됩니다. 사채업자들이 돈을 쉽게 빌려주지만 돈을 안 갚으면 고통스럽게 만드니까 자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계셨다면 하나님이 그들 마음에 ‘네 방법 다 끝났지? 이제 내가 한번 해볼게. 이 문제 나에게 맡겨봐. 내가 풀어볼게’라고 하는 음성을 들었을 겁니다.

자기의 틀 안에 갇혀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세상 소리가 더 빨리 들리고, 하나님을 보는 눈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밝습니다. 먹고 싶고 마시고 싶은 육체의 정욕이나 쾌락에 더 강하게 끌려갑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어도 자신의 욕망이나 정욕이 크기 때문에 ‘나는 믿음이 없어. 박 목사님이나 믿음으로 사는 거지. 그래도 난 예배 나가잖아. 앞으로는 십일조도 내기로 했어’라며 나름대로 삶의 기준을 세워놓고 자기의 틀 안에서 사는 겁니다.
자기의 틀 안에서 살 때는 자기가 왕입니다. 예수님은 그 안에서 아무 일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다 세상 것들이 허무하다는 걸 알고 자신이 살아갈 길이 없어 망하게 될 때 절망에 부딪히게 되면서 그 마음이 무너집니다. 자신의 욕망이나 주관이 다 무너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마음에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사단이 ‘너는 머리가 좋잖아. 넌 똑똑하고 잘났잖아’ 하며 자기를 믿는 마음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더 망하기 전에 자신의 방법대로 사는 길을 포기하고 주님 앞에 나옵니다.

신앙은 자신의 생각을 버려야

사무엘상 14장에서 큰 골짜기가 이쪽에 블레셋 군인이 있고 저쪽에는 이스라엘 군이 있는데 요나단이 자기 병기를 든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 14:6)
그가 적국에 잡히면 국가적으로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왕자를 볼모로 잡고 항복하라고 위협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나 그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요나단과 같이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돕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건 너무 무모하고 위험해’라는 생각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생각이 싸우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승리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의 판단과 기준으로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자신의 생각을 빼내고 예수님의 생각을 집어넣는 겁니다.

비행기 조종을 맡기듯

비행기를 조종할 때는 기장, 부기장, 컴퓨터가 필요합니다. 기장이 먼저 승객을 태우고 이륙합니다. 기장은 활주로에서 관제탑의 명령에 따라 고도가 어느 정도 잡힐 때까지 스틱을 잡고 조종합니다.
고도가 안전한 권역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컴퓨터가 비행기를 조종합니다. 컴퓨터에는 목적지까지 가는 프로그램이 다 들어 있습니다. 컴퓨터가 비행기 앞과 뒤, 옆에서 부는 바람의 속도를 계산하면서 조종하고 있으면 기장은 비행기 상태나 주변 환경을 점검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20분 전에 다시 기장이 조종스틱을 잡고 활주로에 착륙합니다.
여러분, 기장이 비행기의 조종을 컴퓨터에 맡기듯이 신앙은 내 삶을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으면 그게 너무 어렵습니다. 사단은 내가 하면 잘될 것 같고 하나님께 맡기면 안 될 것 같고 망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을 넣어 주니까요. 그래서 웬만하면 하나님께 안 맡기고 자신이 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다 요나단처럼 ‘내 방법이 다 망했구나. 내게는 길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그제야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되어 주님이 그 삶 속에서 일하시게 됩니다. 저는 목사로서 여러분을 그 길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길이 망했을 때

하나님이 요나단의 마음에 ‘요나단, 너 적진으로 들어가 봐. 그러면 내가 너를 도울게’ 하는 마음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마음을 일으켜 줘도 자신이 거기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우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전도 잘하면 좋지만 난 잘 안 돼’ 하는 마음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을 겁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자신의 생각을 벗어버리고 자기의 병기 맡은 자에게 “우리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내게 일하실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믿음이지만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고 미친 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실패해서 망했지만 사단은 여러분 마음에 망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느끼지 못하게 해서 ‘그래도 이번에 잘하면 될 거야’라는 막연한 소망을 가지고 자신을 부인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방법대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요나단을 다 망하게 했습니다. ‘내가 내 방법으로 한 것은 멸망과 저주뿐이었어. 이제 내 생각 버리고 망하더라도 하나님께 나를 던져보자’ 하는 마음이 정해지니까 블레셋 군대로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고 저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한 바위는 북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삼상 14:4~5)
이제 믿음의 길로 가려고 하는데 양쪽 골짜기에 큰 바위가 있으니까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적진으로 올라가려고 해도 적군의 발에 차이면 떨어져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 단계에서 자신이 부인된 사람은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음성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제가 구원받을 때 하나님이 저 자신을 버리게 해주셨습니다. 그전에 저는 정말 못 나고 형편없는 사람인데도 제가 똑똑하고 잘난 줄 알고 저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잘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저 자신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붙잡지 아니하시면 저는 지금도 악을 행할 수 있고 돈의 욕망에 빠질 수 있고 교만해질 수 있고 악으로 달려가서 악하게 살 수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예수님 앞엔 아무 문제 없어

여러분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정확히 맡기면 그때부터 예수님이 일을 하시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있든지 문제가 안 됩니다. 더러운 누더기를 입고 굶었던 탕자가 아버지 집에 오면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것처럼, 예수님이 하시면 여러분 자신의 어떤 것도 예수님 앞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순간순간 당신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요나단이 스스로 무모하게 적진에 들어가 엄청난 군인과 싸울 수는 없지만 자기 생각을 따르면 망한다는 것을 아니까 하나님을 믿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망하지 않은 사람은 그게 안 됩니다. 두렵고 부담스럽기 때문에 적진을 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정확히 알면 자신을 부인하는 게 되는데 그때부터 그 삶 전부를 예수 그리스도가 주관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지난 35년을 생각할 때

제가 이번에 세 번째 손자를 얻었는데, 손자를 낳아준 며느리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저는 구원받은 가정에 자녀가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도 말했습니다. “자식 많이 낳아라. 네가 전도 열심히 해서 사람들을 이끄는 것도 좋지만, 네 아들 딸 잘 키워서 귀한 목사 만들면 얼마나 좋겠느냐?”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시아버지 말을 우습게 아는데, 며느리가 제 말을 무시하지 않고 손자를 낳아 주어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35년 전 제가 자식을 낳았을 때와 비교해 보니까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그때는 쌀도, 연탄도, 병원에 갈 택시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35년 동안 하나님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게 하셨습니다.
제 아들이 태어날 때 저는 대구 파동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었는데, 주일에는 형제 자매들이 예배를 드리러 오지만 월요일 아침이 되면 조용했습니다. 저는 예배당 바닥에 조그마한 상을 펴 놓고 성경을 읽었는데, 성경을 읽으면 제 마음이 충만해졌습니다. 주로 창세기․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 등 모세 오경을 읽었는데, 레위기에 나오는 속죄 제사에 대해 깨닫게 되면서 제 마음이 충만해졌습니다.
그 후 1976년에 선교학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도저히 시작할 수 없었지만 주님이 제 마음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두렵고 어렵고 부담스러웠지만 한 발짝 나아가다 보면 주님이 일하시는 게 무척 은혜롭고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주님께 인생을 맡기면

지난 35년을 되돌아보면 마치 비행기 조종사가 조종스틱을 컴퓨터에 넘기듯이, 제가 잡고 있던 제 인생의 스틱을 예수님께 넘기도록 하나님이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고집을 부리면서 제 인생을 제가 쥐고 있다가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망하게 하시면 망하고 흥하게 하시면 흥하겠습니다’ 라는 마음으로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절 보고 미쳤다고도 하고 과대망상증 환자라고도 하고 무지해서 저렇게 정신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확실히 아는 것은, 제 안에 주님이 살아계시고 그분이 제 인생을 잡을 때는 온전하지만 제가 제 인생을 잡을 때는 완전한 것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제 방법으로는 두려워서 살 수가 없다는 겁니다.
제가 강남교회에 온 후 예배당이 철거되려고 하는 위기도 있었지만 저는 한 번도 인간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봤습니다. 어려워도 제 생각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잡혀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아침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주님을 찬송하러 왔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믿습니까? 주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줄을 믿습니까? 주님이 여러분보다 완벽한 줄 믿습니까? 여러분이 하는 게 얼마나 서툽니까? 주님이 여러분 인생 속에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여러분 인생의 운전대를 잡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아침, 주님을 의심하지 마시고 믿음이 없다고 하지 마시고 주님께 여러분의 운전대를 맡기십시오. 사단은 믿음으로 가는 길을 위험하고 불안해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을 갈 때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여러분, 어느 누구도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여러분이 웃을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에 잡힐 수가 있습니다.

- 2008.6.22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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