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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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2009.4.26 주일 낮 예배 설교 - 255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9.05.0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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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방송국 개국을 앞두고

우리 선교회는 케냐에 방송국을 설립하고 있습니다. 작년 케냐 월드캠프 때 그곳에 있는 김재홍 선교사님이 우리 선교회가 케냐에서 라디오 방송국 허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저한테 했습니다. 우리 선교회의 영상 기술력이 좋기 때문에 제가 김 선교사님에게 라디오 방송 말고 텔레비전 방송 허가를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언론은 정치와 관련된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외국인이 텔레비전 방송 허가를 얻는 것이 쉽지 않은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허가를 받았습니다.
‘KBC’라는 케냐의 국립 중앙 방송국이 있는데 그 방송국에서 아날로그 방식의 방송시설을 디지털 방식으로 옮겨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가진 텔레비전이 아날로그 방식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디지털 수상기를 사도록 하려면 디지털 방송을 하는 방송국이 몇 개 더 있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린 겁니다.
저는 처음에 그냥 카메라 갖다놓고 전파를 쏘면 텔레비전 방송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TV 방송을 시작하려니까 장비비만 해도 10억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인원도 100여 명 가량 필요한데 인건비도 엄청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루 24시간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제가 그것을 미리 알았다면 시작도 안 했을 겁니다. ‘아이고, 내가 왜 이런 일을 시작했지?’ 하며 겁먹을 때도 많지만 제 마음 한 구석에서 ‘케냐 방송에 성공해야 탄자니아, 우간다, 잠비아, 르완다에도 송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교국가에도 성경말씀을…

중요한 것은 아랍권 방송입니다. 이집트, 이라크, 이란 등 아랍권 나라에서는 기독교 방송 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에 2011년에는 그 근교에도 전파를 보내어 복음을 사모하는 회교국가 사람들이 보고 듣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1월 회교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글로벌캠프를 열면서 마라톤을 했는데, 말레이시아 정부에서는 IYF 마라톤대회를 홍보하려고 종착점을 회교의 중앙본부인 대통령 궁으로 잡았습니다.
마라톤대회를 마친 후 제가 학생들을 모아놓고 회교 광장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회교국가에서 목사가 설교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내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했는데 회교 전통 옷을 입은 분들이 상당히 많이 왔습니다. 저는 마음이 약해서 ‘회교 신자들을 앞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복음을 전해야 하나? 혹시 말씀을 듣다가 일어나 고함이라도 지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랍권의 복음화를 위해

그날 저녁, 칸타타를 마치고 말씀을 전하는데 제 마음에 뜨겁게 올라오는 게 있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그렇게 진지하게 말씀 듣는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15분 동안 말씀을 전하려다가 시간을 자꾸 늘렸습니다. 그러면서 밤새도록 말씀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이 만드신 자손들인데, 하나님께서 그 민족이 복음 듣는 것을 간절히 원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복음을 못 듣고 있는데 우리만 이렇게 구원받고 앉아 있어서 되겠습니까?

주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며

어제 케냐에서 방송국 관련 보고서가 왔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천문학적인 장비구입비를 다 채워주셨고 장비를 사서 케냐로 보낼 때 드는 세금도 면제되었습니다. 그리고 케냐 사람을 모집해서 아나운서 교육을 하고 카메라 촬영하고 편집하는 등 뉴스를 제작하는 기술을 하나씩 가르치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만들려면 신앙을 주제로 각본을 쓰는 작가, 탤런트, PD도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앞이 캄캄해지기도 하지만, 어제는 방송예술학교의 학장님이 도와주시겠다며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케냐 방송국은 4층짜리 500평 건물로 지은 케냐교회 3층에 위치해 있는데, 그곳에서 KBC 방송국까지 방송을 보내면 방송국에서 전파를 전국에 쏘아 줍니다. 우리는 방송을 무선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케냐 정부에서는 광케이블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광케이블을 25km나 땅에 묻는다는 것은 엄두가 안 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나중에 알고보니 케냐교회 앞에 이미 광케이블이 묻혀 있어서 100미터만 매설하면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었습니다. 광케이블을 쓰면 무선보다 TV 화질이 훨씬 더 좋고 인터넷도 안정되게 쓸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을 하다가 주님이 도우신 간증을 하려고 하면 감격스러운 마음이 솟구치면서 자주 눈물이 흐릅니다. ‘오는 8월부터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우리 설교를 듣고 구원받겠구나. 주님이 이 일을 기뻐하시는구나.’

“위엣 것을 찾으라”

우리 교회의 장년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성경을 한 장씩 읽고 앞에 나가 발표를 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30명 정도 모였는데 지금은 100명이 훨씬 넘게 모입니다. 어떤 형제의 발표를 들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싶어도 그렇게 말하면 다시 안 나올 것 같아서 꾹 참기도 합니다. 그러나 형제들 마음에 말씀이 조금씩 임하면서 점점 발표하는 내용이 달라지는 걸 보니까 장년회 성경공부가 정말 재미있다는 마음이 듭니다.
어제는 골로새서 3장을 공부했습니다. 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지 않았으면 땅의 것을 찾아도 됩니다. 구원받지 않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려고 해도 찾아지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구원받을 때 천사처럼 날개가 나오거나 완전히 변하면 ‘내가 구원받고 변했으니 하늘나라에 가겠네’ 하는 마음이 들겠지만, 내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깨달아도 변한 것은 없습니다. 구원받았지만 때로 욕망도 생기고 미운 마음이나 더러운 생각, 시기나 음란한 생각이 일어납니다. 마음도 외형도 달라진 게 별로 없습니다.
 

주님이 죄악을 이기게 하시고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구원받은 사람 속에는 예수님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주머니에 넣어놨다가 꺼낼 수 있다거나,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육신의 욕망이나 쾌락을 아무리 이기려고 해도 이길 수 없었는데, 구원받고 나서는 그것이 다 끝나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육체의 정욕을 이겨나가는 겁니다.
구원받기 전에 세상의 정욕과 쾌락이 우리를 끌면 우리는 그냥 끌려갔습니다. 그런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오셔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 나 자신이 정욕이나 쾌락과 싸운다면 또다시 그것에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라는 말은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자신이 죄악과 싸우고 쾌락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죄와 어둠, 악을 이기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긴다는 의미입니다.

사단에게서 예수님에게로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1~3)
에베소서 2장 1절~3절은 구원받기 전 우리의 상태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단을 따랐고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를 받기에 합당하게 살았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4~6)
에베소서 2장 4절~10절은 사단에게 속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속하여 신분이 바뀐 상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함께하는 삶

수십 년 전 제가 대구 파동에서 사역할 때는 가난해서 배가 자주 고팠습니다. 예배당이 중국집 2층에 있었는데, 금식할 때 자장면 볶는 냄새가 올라오면 정말 힘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가난하고 배고프면 다 버리고 떠나지만 예수님이 저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저는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구원받고 키가 더 커졌거나 인물이 더 잘나졌거나 머리가 더 좋아졌거나 착해지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저는 이전의 저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제 손자가 미국에 있는데 제가 미국에 가면 귀여워해 주니까 자기 아버지, 어머니 말을 안 듣습니다. 하도 버릇이 없으니까 제 아들이 “할아버지 가실 날이 2일 남았으니 그때 보자”며 벼릅니다.
한번은 제 손자가 치과에 갔답니다. 이를 빼려고 의사가 와서 마취주사를 놓으려고 하니까 아빠를 불렀습니다. 그래도 안 되니까 “빨리 할아버지 불러주세요”라고 했답니다. 제 손자는 제가 가면 다 된다고 믿으니까요.
여러분, 어려움을 당할 때 제 손자처럼 “예수님, 불러주세요”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저는 구원받기 전에 소망 없이, 기쁨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구원받기 직전에 소년 기술하사관에 지원했는데, 거기라도 가면 미국 유학 등의 특전이 있으니까 소망이 있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앞니가 부러져 신체검사에서 떨어졌습니다. 이를 치료하고 지원하면 되는데 치료할 돈도 없었습니다. 군대에서 불합격되니까 모든 소망이 다 무너졌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잘난 인간인 줄 알았는데, 그때 비로소 정말 형편없는 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962년 10월 7일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전의 저와 그 후의 저는 달라진 게 전혀 없지만 그 후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잘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돈 한 푼 없이 수양회를 해야 했습니다. 장소대여비, 식사비 등 돈 한 푼 없으니 ‘수양회를 할까 말까’ 마음에서 수없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일을 할 땐 어렵지만 그러다가 사람들이 구원받는 걸 보면 소망이 넘쳤습니다.
한번은 형제자매들이 500명 정도 모였는데 수양회 할 장소가 없었습니다. 어렵게 빌려 놓으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수양회 시작하는 날 나가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비참해서 울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형제자매들 앞에서는 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수양회를 통해 변화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를 악물고 우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우리 수양관을 지었습니다.

‘루고’ 파라과이 대통령을 만나

저는 지난 2월에 파라과이 대통령을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구원받고 난 뒤, 예전에 신부였던 시절에 생긴 아들이 있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자 “나도 대통령과 같이 지냈다”며 고백한 여자가 세 명이나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런 고백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 수 있었지만,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 진짜 용기 있는 분이다. 하나님이 도우시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고 나면 몸에 날개가 돋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과 얼굴이 닮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욕망과 정욕이 있고, 쾌락과 음란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계십니다.
예전의 자신을 생각하면서 그냥 그 속에 빠져 ‘에이, 난 죄를 못 이겨’ 하지 말고 ‘사단아, 나는 음란한 마음을 못 이겨. 그러나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은 이길 수 있어. 예수님이 나를 건져냈기 때문에 난 육신의 쾌락이나 정욕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야.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기는 거야’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신앙입니다.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우리를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난한 자 같으나 가난한 자가 아닙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무명한 자가 아닙니다. 연약한 자 같으나 연약한 자가 아닙니다. 부족한 자 같으나 부족한 자가 아닙니다.
예전에 제가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예수님이 제 마음에 오신 후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수양회, 선교학교, IYF, 방송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은 일어났지만 형편을 보면서 ‘내가 무슨 방송을 해. 내가 어떻게 IYF를 운영해?’ 하며 안 되겠다고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마음이 뜨겁게 일어나서 하다 보니 모든 일이 정말 은혜롭게 되었습니다. 제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 사단 아래서 육체와 마음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진노의 자녀로 살았지만 구원받은 후에는 그리스도와 하나입니다. 이젠 여러분 자신의 실력을 보지 말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발걸음을 진행해 가십시오. ‘내가 무슨 전도를 해, 나는 못해. 하지만 내 안에는 그리스도가 계시니 내가 입만 열면 그리스도가 하실 거야’ 하는 마음이 믿음입니다.
내가 전도를 잘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나는 할 말이 없지만 예수님을 믿고 입을 열면 그때부터 주님이 이끌어 가기 시작하십니다. 하지만 ‘난 못해’ 하고 주저앉으면 한평생 못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하는 연보

하나님께 연보를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연보 많이 내는 교회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방송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을 믿음으로 이끌고 싶습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교회는 한 달에 10만 원을 한 계좌로 해서 해외선교 후원금을 작정했습니다. 돈 많은 사람에게 10만 원은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몇 만 원의 여유도 없을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10만 원은 자신이 한 달 써야 할 돈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1년 후 선교비를 드린 형제자매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연보를 드릴 때가 드리지 않을 때보다 더 부유했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가 김천에서 사역할 때 제 아내는 손님이 올 때 겁을 가장 많이 냈습니다. 우리끼리 있으면 굶어도 문제가 안 되지만, 손님이 계시는데도 굶으면 곤란하잖아요. 그런데 손님이 올 때마다 음식이 생기는 걸 경험하면서 제 아내와 종종 “요즘 먹을 것도 없는데 혹시 손님 안 오시나?”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후로는 손님이 우리 집에 와서 음식을 먹고 간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손님 덕분에 우리가 먹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주님과 함께라면 돈 없어도 살겠다 싶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믿어

“그러므로”, 즉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므로 우리는 주를 위해 살게 됩니다. 여러분 안에 주님이 계시니까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이라도 못한다고 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도우실 것을 믿는 마음으로 병자를 만나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십시오. 귀신들린 자를 만나면 내 안의 예수님을 믿는 마음으로 “사단아, 물러가라”며 큰소리로 기도하십시오.
사람을 만나면 여러분은 복음을 전하지 못하지만 여러분 안에 있는 주님이 복음 전하는 걸 도와주실 걸 믿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말씀을 펴고 이야기를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의 일이 있을 때마다 물질로 참여해 보세요.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지를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넘치게 연보를 드려 축복받는 형제자매들이 많지만 아직까지도 주님을 믿지 못해서 연보하는 데 주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삶 속에서 하나님께 먼저 드린 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시는 것을 보면 그 다음에 더 많은 연보를 드리면서 부유해질 겁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데 그런 일들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모르지만, 부딪쳐 보면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일하시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살면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어떤 문제라도 주님이 도우시고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그냥 평안하게 자녀 낳고 살 게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살게 되길 바랍니다.
형제님이나 자매님 모두 영어를 배우십시오. 할아버지, 할머니도 늙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회갑 때 돈 얻어 비행기 표 사서 아프리카에 가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복음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힘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마음도 주십니다. 복음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의 집에는 우환과 문제가 생기고 돈 쓸 일이 생기지만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사고나 병원에 입원할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를 위해 살면 한없는 은혜와 복이 임하고 평강과 은총이 넘칠 줄 믿습니다.

- 2009.4.26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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