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 안에 있는 등대 - 등잔 7개의 진정한 의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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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안에 있는 등대 - 등잔 7개의 진정한 의미는 -
2008.6.1 주일 낮 설교 - 20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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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를 마치며 감사가 넘쳐

이번에 IYF 대학생들이 ‘2008 Culture(세계문화체험박람회)’를  금요일부터 주일까지 과천 서울랜드에서 진행했습니다. 학생들이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다가 봉사하려고 모이긴 했지만 어떻게 할 줄 몰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경 말씀을 전하자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들어가면서 학생들의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지고 잔잔해지면서 기쁘게 봉사하는 것을 볼 때 매우 좋았습니다. 서울랜드 사장님도 학생들이 봉사하는 모습이 정말 좋다고 하시면서 토요일 오전에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놀이기구를 타게 해 주셨습니다.
학생들이 학교를 다녀야 하기 때문에 컬처 준비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아 날짜를 줄여서 교육을 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밤 한두 시까지 공연을 연습하고 부스를 꾸미다가 잠깐 자고 일어나 봉사했는데, 그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습니다.
저는 다들 우리 딸이나 아들 같다는  마음이 들면서 이런 일을 한평생 하고 싶어졌습니다. 저녁에는 저와 면담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면담을 했는데, 교회 다니는 학생들도 있긴 하지만 신앙을 갖지 않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는 것을 보며 참 행복하고 기뻤습니다.

“나를 버리실지도 몰라”

사람들은 ‘박 목사님은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읽을 거야. 부부싸움도 안 하고 정말 진실할 거야’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저 자신을 보면 ‘내가 정말 하나님의 종인가’ 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제가 저를 보면 부끄럽고 부족한 것도 많은데 ‘내가 어떻게 목사가 되었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몇 년 전에는 제가 하나님 앞에 너무 불성실하고 충성스럽지 못하고 멋대로 사는 사람인 걸 발견하고는 ‘이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을 하나님이 왜 사랑하시겠나? 젊은 목사님들이 저렇게 귀하게 일하는 걸 보니 이제 곧 나를 버리실 거야’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을 대전도집회를 하면서 ‘이번이 마지막 대전도집회인지도 몰라.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하나님이 다시 세우시겠나?’ 했지만 그해 겨울수양회에 다시 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같이 연약한 사람을 왜 안 버리시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해 봄 대전도집회에서 또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기도하고 성경 읽고 전도하고 성실한 나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를 받으신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정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성막 안에 있는 등대

저는 오늘 아침에 출애굽기 25장 성막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성막의 외형을 살펴보면 문과 세마포로 둘러싸인 담이 보입니다. 그 안에는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성소 안에는 금으로 만든 등대가 있고 그 맞은편에는 떡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쪽에는 향단이 있습니다. 성소 안쪽에는 지성소가 있고 거기에는 법궤가 있는데, 법궤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성소 안에 있는 ‘등대’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등대는 정금으로 만들었습니다. 등대 가운데는 밑판이 있고, 그 위에 줄기가 있고 가지 여섯이 있습니다. 가지는 가운데 줄기를 중심으로 양쪽에 셋씩 있기 때문에 그 끝에 등잔이 모두 일곱 개 있습니다. 그리고 여섯 가지를 위해 꽃받침이 있게 하되 줄기와 이어지는 부분에 꽃받침이 세 개씩 있습니다.
등대는 정금 한 달란트를 가지고 쳐서 만들라고 했는데, 그것은 망치로 때려서 만든다는 것이지요. 둥그런 금을 큰 망치로 때려서 가지와 꽃을 쳐 내고 가지 여섯 개와 줄기 끝에 살구꽃 형상의 등잔을 만든 것이 등대입니다.

성경 속 숫자의 의미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가지 여섯을 등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그 세 가지는 이편으로 나오고 그 세 가지는 저편으로 나오게 하며”(출 25:31~32)
여러분, 등잔이 모두 몇 개입니까? 줄기가 있고 줄기 꼭대기에 등잔이 있기 때문에 가지가 양쪽으로 세 개씩 여섯 개가 있으니 전부 합해서 일곱 개가 있습니다. 이 대목은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성경 말씀 속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숫자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3’은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4’는 고난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40일 동안 광야 길을 행했다고 합니다.
‘5’는 ‘은혜’를 나타내는데 값없이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오순절 날 제자들이 값없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가 고침받은 베데스다 연못에는 행각 다섯이 있었습니다.
‘6’은 ‘인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에 가셨을 때, 포도주가 모자랐는데, 거기에 돌 항아리 여섯 개가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666’이 나옵니다. 그리고 다니엘서에는 신상의 높이가 60규빗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7’은 ‘완전’을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등대의 여섯 가지는 인간을 나타내고 그 가지 여섯 개가 예수님과 합해서 ‘7’이 되었을 때, 온전하게 된다는 걸 의미하고 있습니다.

나는 형편없지만

제가 저 자신을 보면 처음부터 삐뚠 사람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 이렇게 살면 안 돼.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야지!’ 하고 마음을 정하지만 잘되지 않습니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자꾸 미끄러지는 차입니다. 그런 차를 타고 다니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저 자신을 냉정하게 분석해 보면 감정이 좋을 때는 웬만한 것도 잘 받아들이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잘못했더라도 그냥 넘어갑니다. 반대로 제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조그마한 흠이라도 있으면 따지려고 합니다. 공정하지도, 정확하지도, 옳지도 않은 저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걸 보면 ‘내가 너무 형편없는 인간이구나.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목사가 되어 주님의 일을 해. 하나님이 나를 버리실 거야’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막 안에 있는 등대를 살펴보면 가지가 여섯 개이지만 가운데 있는 줄기와 합하니까 일곱 개가 되어 완전해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무리 추하고 더럽고 악한 인간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합해지면 빛을 나타내는 등대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방탕하게 살던 학생들이

굿뉴스코 단원으로 해외봉사를 다녀와서 IYF 활동을 하는 학생들 중에는 예전에 진짜 방탕하게 살았던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게임방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부모에게 고통과 슬픔을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추하고 음란하고 가증하고 방탕하고 교만한 인간인 그들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신 후에 그들이 정말 놀랍게 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 중에 군대 갔던 60여 명이 이번에 컬처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함께하고 싶어 부대장에게 사정해서 이번 컬처 기간에 휴가를 나왔습니다. 그들이 아프리카 노래를 하니까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박수치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감사했습니다.
특히 그들 중에는 우리 선교회의 목사님 아들인 ‘세 악당’이 있었는데, 예전에는 ‘나는 왜 목사 아들로 태어나서 술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고 세상을 즐기지도 못하나?’ 하며 원망하고 삐뚠 길로 나갔던 아이들입니다.
2006년 하와이 월드캠프 기간이었습니다. 제가 화장실에서 몇 몇 녀석이 토하는 것을 보았는데, 술을 마셨기 때문에 토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붙잡고 물었습니다.  “너희들, 술 마셨지?” “예.” “언제 마셨냐?” “어제 저녁 개막식 시작할 때 빠져나가 밤새도록 마셨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하기는커녕 매우 당당하고 뻔뻔스러웠습니다.  “너희는 아버지 이름을 더럽히고 IYF의 명예를 실추시켰기 때문에 특별관리 대상이야!” 하면서 그 다음부터는 특별관리 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회개를

그 후 그들이 아프리카로 해외봉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한 아이가 말라리아에 걸려 다 토하고 죽도 못 먹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상태로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자 ‘내가 이제 죽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를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목사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 걱정만 끼치고 교회를 대적하다가 죽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자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살고 싶습니다. 저를 살려 주십시오. 지금까지는 제 멋대로 살았지만 저를 한 번만 불쌍히 여겨 살려 주십시오.’
엉엉 울면서 회개하고 기도했지만 병이 나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점점 몸이 가라앉으면서 이제는 화장실에 갈 힘도 없었습니다. 말라리아에 걸려 설사가 나면 화장실로 급히 뛰어가도 도착하기 전에 속옷이 젖어버립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옷도 자주 빨지 못해 냄새가 나는데 자신을 보니 너무 비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얼굴 한 번 보고 아버지한테 잘못했다고 한마디 하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비록 약하지만

그날 저녁 지쳐 쓰러져 자고 이튿날 아침이 되자 힘이 좀 생겼습니다. 현지교회 사모님이 죽을 쑤어 주었지만 입이 써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튿날에는 반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설사가 멎으면서 병이 낫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 왜 저를 사랑하십니까? 왜 저를 도우시고 고쳐주십니까?’ 하면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동안 아버지 근심 시키고, 교회 목사님들 대적하고, 어떻게 하면 기쁜소식선교회를 괴롭힐까 연구하던 그 아이의 마음이 변한 겁니다.
이번에 컬처에 참여하려고 군대에서 휴가 나온 그들을 보니 무척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더럽고 추하고 악하고 음란하고 거짓되지만 예수님과 하나가 될 때 온전해지고 완벽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은 거룩하지만 우리는 추하다. 예수님은 진실하지만 우리는 거짓되다. 예수님은 강하지만 우리는 약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등대를 그려 보았습니다. 정금으로 만든 등대줄기가 깨끗하므로 거기서 나온 가지도 그렇습니다. 예전에 우리는 추하고 더럽고 악한 생활을 했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서 온전하고 거룩하고 완벽하게 되었다는 것을 성경은 등대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마음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출 25:31) 가지는 정금으로 만든 밑판에서 나왔습니다. 큰 금덩어리를 때려 줄기를 만든 다음 가지를 쳐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작은 망치로 두들겨 가면서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결되는 꽃을 만들면 등대가 완성됩니다.
등대의 여섯 가지가 밑판 원 줄기에서 나온 것처럼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인이라는 믿음은 우리의 마음이 아니라, 예수님께로부터 나온 거룩한 마음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생각하면 우리는 추하고 더러운 죄인이지 의인이라고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이 주신 마음을 받으면 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생각을 가지고 보면 항아리에 채운 물을 보고 포도주라고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받으면 포도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자기 생각을 가지고는 걸어갈 수 없지만 예수님이 주신 마음으로는 걸어갈 수 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올라가다가 넘어졌지만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는 예수님의 음성에 이끌림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하고 거룩해졌습니다.

한 덩이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 추하고 연약해 보입니다. 하나님이 버리실 것만 같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우리는 이미 죽었고,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육체에서는 아직도 추하고 더러운 생각이 나오기는 하지만 장차 이 육체를 벗고 영광스러운 몸이 될 것입니다. 결국 한 덩이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을 받고 믿음 안에 서 있으면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하지 않아도 서서히 변하고 새로워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부산에서 집회를 했는데, 어떤 부인이 상담을 하려고 찾아왔습니다. 그 부인은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분이었지만 제가 속죄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자기는 늘 죄인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제가 “성경에는 뭐라고 되어 있는가? 자신의 생각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것인가? 자신의 생각을 따라 행할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생각을 따라 행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그 부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지요. 예수님의 판단을  따라야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그 부인처럼 성경을 믿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변하게 됩니다.  

심장이식 수술을 한 것처럼

제가 대전에서 사역할 때 우리 교회 청년 자매 중에는 신장이 나빠서 사흘에 한 번씩 투석을 해야 하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나이 드신 그 자매님의 부모님은 ‘내가 죽으면 저 딸이 어떻게 될까?’ 하는 마음 때문에 딸이 투석하러 가는 걸 보면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청주에 사는 젊은 부인이 자신의 신장 하나를 떼어 주겠다고 제의해 왔습니다.
드디어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의사가 두 사람을 침대에 눕혀놓고 자매의 몸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신장을 잘라내고, 그 부인의 신장을 이식하고 혈관을 꿰맸습니다. 수술을 하고 한 시간쯤 지난 후에 의사가 물 100cc를 주면서 마시라고 했습니다.
신장은 우리 몸 속에 있는 피를 걸러서 오줌으로 만드는 일을 하는데, 화장실 가면서 감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 자매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변을 보는 게 얼마나 감사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소변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신장이 부지런히 피 속에 있는 불순물을 걸러서 오줌을 만들어 방광으로 내보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두 시간이 지난 뒤에 그 자매가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엄마!” “왜?” “엄마, 오줌 마려워요.” 그 자매는 자기 신장으로 도저히 소변을 못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것을 끊어내고, 어떤 젊은 부인의 신장을 자기 몸 안에 받아들여서 피를 걸러 소변을 만들어 낸 겁니다. 오줌 마렵다는 딸의 말을 듣고, 그 자매의 부모가 병원 복도에서 부둥켜안고 춤을 췄다고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면

마찬가지로 추하고 더럽고 악하고 음란한 우리 마음을 잘라내고 예수님의 마음을 이식해야 합니다. 마음은 어떻게 잘라냅니까?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이식한다는 것은 내 생각을 믿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면 그때부터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눈으로 자신을 보지 않고 예수님의 눈으로 보게 되고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씻어져서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습니다. 자신을 죄인이라고 느끼든지, 사형수라고 느끼든지 상관없이 예수님께서 내 죄를 사해서 의롭다고 하시면 그걸 받아들이는 겁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심장이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하늘나라 들어가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이 온전케 했다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복음의 등대가 되어

자, 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생각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죄인으로 여겼지만 예수님이 의롭다고 하시면 내 생각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의인임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는 걸을 수 없지만 예수님이 걸어가라고 하시면 내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걸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는 물이지만 예수님이 포도주라고 하시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포도주로 믿고 떠다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나는 ‘6’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7’이 되기 때문에 그때부터 내가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만약 등대의 왼쪽 가지는 더럽고, 오른쪽 가지는 깨끗하다면 그 등대는 더럽습니까, 깨끗합니까? 예, 더럽습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이기 때문에 내가 더럽고 악하다면 예수님도 더럽고 악하다는 말이 됩니다. 전에는 우리가 더럽고 악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빛을 비추는 등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등대로 만들어졌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과 하나 된 우리

우리와 예수님은 하나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유하면 우리도 부유하고, 예수님이 거룩하면 우리도 거룩하고, 예수님이 진실하면 우리도 진실하고, 예수님이 사랑이 있으면 우리도 사랑이 있고, 예수님이 능력이 있으면 우리도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육체 안에 살고 있지만, 우리 마음으로 살지 않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신장이 떨어져나가고 새 신장을 이식해서 사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으로 살지 않고 예수님의 생각으로 살면 여러분은 ‘작은 예수’가 되어서 이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거룩함이 우리에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을 다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등대의 여섯 가지가 줄기와 합해 일곱으로 온전하게 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내 모든 죄를 다 사하셨다고 믿는 순간, 그 피로 내가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면 예수님이 거룩한 것처럼 여러분도 거룩하다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정말 강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강하다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지혜로운 것처럼 여러분도 지혜롭다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사단을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사단을 이깁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죽음을 이깁니다. 예수님이 죄를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죄를 이깁니다. 우리는 작은 예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 2008.6.1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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