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赦)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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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赦)해져
2008.5.11 주일 낮 설교 - 205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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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YF 영어말하기대회

어제는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IYF 중․고․대학생 영어말하기대회가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김성훈 목사님 딸 주애도 나갔는데, 대회에 나가기 전에 제 조언도 들으면서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주애가 예선을 통과하고 결선에 올라가게 돼서 상당히 기대를 했습니다. 대상은 못 받아도 2등이나 3등 정도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제 아침 일찍 대회에 나간다고 하기에 제가 다시 한 번 불러서 연습해 보라고 했더니 정말 차분히 잘했습니다. 저는 인터넷방송으로 대회를 지켜봤는데, 주애가 누구보다 잘하는 것 같아 기대하면서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3등과 2등을 발표해도 주애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1등일까?’ 생각했지만 1등도 아니었습니다. 대상이 남아 있으니까 ‘주애가 대상을 타는구나. 하긴 내가 봐도 주애가 제일 잘하는 것 같아’ 하고 생각하니 무척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대상도 다른 학생이 타자 너무 허무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애가 연습할 때는 시간이 늘 20초 정도 남았답니다. 그래서  “너, 너무 빨리 했어. 차분하게 천천히 해” 하는 말을 들었던 걸 생각하고 천천히 했는데, 시간이 초과되는 바람에 점수가 깎여 등수에도 못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주애가 와서 울기에  “주애야, 울지 마. 다음에 또 나가면 되잖아” 하며 달랬습니다.
주일 아침에 손자와 주애를 앉혀 놓고 말씀을 전하면서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하는 베드로전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주애에게 설명했습니다. “세상에 법이 있지만, 법을 집행하는 자가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나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지는 않아. 네가 부당하게 이익을 볼 때도 있고, 손해를 볼 때도 있어. 앞으로 네가 사회생활 하면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남에게 인정 못 받는 일도 있을 텐데, 그럴 때마다 참아야 해.”
제가 영어말하기대회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너는 영어말하기대회에서 잘 했지만, 시간을 어겨 등수에 들지 못한 건 억울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야. 그런 일을 만났을 때 네 마음에서 그걸 이기는 힘을 얻어야 해. 안 그러면, 너는 남들에게 짜증내고 불평하는 사람이 되고, 네 마음은 불만으로 가득 찰 거야.”

불만으로 가득 찬 마음

제가 대학생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그 마음에 부모, 사회, 친구, 선생님에 대해 불만이 가득 차 있는 학생을 보게 됩니다. 그 학생은 얼마나 불행하고 고통스럽겠습니까? 그 마음은 성격을 형성하는데 상당히 나쁘게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종종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가 47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무척 사랑하셨기 때문에 돌아가신 후에도 많이 그리워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하셨지만, 우리는 어린 나이에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아버지께 새 장가 드시라고 중매 서는 분이 여러 분 계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아버지가 어린 저희들을 불러 놓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내가 복이 없어서, 너희 어머니 같이 좋은 사람을 잃었다. 누가 중매를 해서 결혼하면 좋겠다고 하지만, 사람 마음을 아는 것이 너무 어렵다. 지금은 좋지만, 그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너희를 아껴주고 위해 줄지 그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결심을 했다. 고생스럽겠지만 재혼 안 하고 너희들과 같이 살기로 했다.”
사려 깊은 아버지는 우리를 그렇게 깊이 사랑하셨지만, 저는 철이 없어서 아버지께 반항하는 마음이 참 많았습니다.

사람을 이끄는 어떤 힘

지금 돌이켜 보면,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많은 경험을 토대로 한 옳은 말씀인데도, 저는 늘 반항하고 버릇없이 대들면서 아버지를 거슬렸습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 아들을 낳고 손자를 보니까 그때 제가 왜 그렇게 미련하고 거만했던지…. 지금이라도 아버지 산소에 가서 “아버지, 일어나셔서 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제가 미련하고 어리석었습니다’ 하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문득 일어납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의 마음이 곱고 부드럽게만 흘러가는 게 아니라, 때때로 거스르고 대적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삶을 어그러뜨려서 당하지 않아도 되는 불행과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걸 봅니다.  
여러분,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면서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살고 싶은 도시에 살 수 있고, 원하는 학교에 다닐 수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2~3)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 들어오기 전에 즉, 구원받기 전에는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사단’을 가리킵니다.  ‘사단’은 인간을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이끌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스르고, 하나님의 마음을 믿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잘 몰랐지만 목사가 되어 성경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본 지금은 ‘저 사람은 지금 사단의 이끌림을 받고 있어’라는 마음이 들면서 그 사실이 환하게 보입니다.
2004년 월드캠프 때 미국에서 온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여학생의 어머니는 어렵게 비행기 표를 마련해서 그 딸을 월드캠프에 보냈습니다. 1, 2주 일정이 끝나고 3주차는 대덕수련원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그날 아침에 그 학생의 담당교사로부터 그 학생이 도중에 돌아가려고 한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학생과 만났습니다.
“너 왜 돌아가려고 하니?” “목사님, 난 여기서 단 1초도 있기 싫어요.” “IYF 월드캠프에 전 세계 학생들이 참석하고 싶어도 회비나 비행기 표가 없어서 못 오지만, 너는 어머니가 어려운 가운데 비행기 표도 마련해 줬는데 이해가 안 돼.” “어쨌든 저는 1초도 있기 싫어요.” “이번 주는 대덕에서 보내야 돼.” “목사님, 저 절대 거기 안 가요. 죽어도 안 갈 거예요!”

마음을 돌이키고

저는 그 학생의 마음을 악한 영이 잡고 있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너 생각해 봐라. 월드캠프에 다들 오고 싶어 하는데, 네가 싫어하는 이유가 뭔지 말해 봐. 이유가 없다면 악한 영이 싫다는 마음을 네 속에 넣어 준 거야. 지금 그 마음을 따라가면 안 돼.”
그래도 가겠다고 해서 타일렀습니다. “그러면 3일 동안만 있을래?” “딱 3일이에요.” “그래, 3일만 있거라.” “목사님, 약속했어요.” “그래, 약속하자.” “정말 3일만 있다가 집에 돌아갈 거예요.” “네가 지금이라도 간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3일만 있어다오.”
그 후 담임교사에게 그 학생이 어떤지 물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3일이 지나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3일 째 저녁에 제가 설교를 마쳤는데, 어떤 귀신들린 여학생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지나가는 학생들 머리에 손을 얹고  “내가 네 죄를 사하노라. 내가 너를 구원하노라” 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그 학생이 그 모습을 보면서 ‘내 생각을 따라가면 나도 저렇게 미치는가 보다’ 하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 내려놓고 엉엉 울면서 그날 구원을 받았습니다.

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여러분도 살다 보면 자신의 마음과 다른 어떤 마음이 여러분을 갑자기 분노케 하고 과격하게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고 뭔가를 때려 부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저도 구원받기 전에 ‘에이, 전쟁이 일어나서 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충동이 여러분의 마음을 끌어가서 하나님 말씀을 못 듣게 하거나 예수님을 못 믿게 합니다. 사람들은 병이 생기면 벌벌 떨면서 고치려고 하지만, 마음에 그런 충동이 일어날 때 그걸 고치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교도소의 교화위원으로 있는 동안 재소자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들과 친해져서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되면 저는 그들에게 무슨 죄를 지어 교도소에 들어 왔는지 물어 봅니다. “형제, 형제는 죄명이 뭐야.” “살인에다 살인미수입니다.” “형제가 사람을 죽였어? 내가 볼 때 형제는 성격이 부드러워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일 것 같은데….”
죄를 범하고 교도소에 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목사님, 그 날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꼭 무언가에 씌워서 끌려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내 마음을 끌고 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옳은 생각도 버려야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도,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는 것도, 풍랑을 잠잠케 하는 것도,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것도 봤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팔 수 있었겠습니까?
요한복음 13장 2절에는 마귀가 가룟 유다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단이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라고 시켜서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는데, 그 후에 사단은 가룟 유다에게 “너, 예수님 팔았으니까 저주 받을 거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살해 버려!”라고 속삭였습니다. 결국 그는 목을 매어 자살했습니다.
사단은 여러분이 옳다고 여기는 생각을 통해서도 여러분을 속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그걸 버리지 못합니다. 사단이 옳다는 생각을 하나 던져주면 그것 때문에 어리석게 서로 싸웁니다.
이사야 55장에서는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좋은 생각이 아니라 나쁜 생각을 버리라고 했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번역본의 성경을 찾아봐도 생각을 버리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악한 생각뿐 아니라 합리적이고 옳은 것처럼 보이는 생각도 버리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계시한 ‘이사야서’

이사야는 유대나라의 웃시야부터,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까지  네 명의 왕이 즉위해 있을 때 있었던 선지자였습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을 섬기는 왕이었기 때문에 이사야는 웃시야 가까이 있으면서 행복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웃시야 왕이 죽었습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그 해에 이사야 6장을 기록했습니다.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사 6:1~2)
그 후 요담 왕이 나라를 다스렸고, 그 후에는 아하스가 나라를 다스렸는데 그때 나라가 거의 다 망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다시 왕이 되면서 이사야와 함께 나라가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백성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야가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는데, 환상 중에서 어떤 사람이 가시관을 쓰고 피를 흘리면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형상이었습니다. 얼른 그걸 기록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계시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1~2)

볼품없었던 예수님의 형상

제가 대전에 있을 때 어떤 화가가 예수님과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을 그려서 제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걸 예쁘게 표구해서 대덕수양관에 걸어 놓았는데, 습기가 차서 표구된 그림 주변이 얼룩덜룩해져 다시 우리 집 거실에 걸어 놓았습니다.
그 그림이 제 마음에 드는 이유는 보통 화가가 예수님의 얼굴을 인자하고 자비하게 그리지만, 그 화가는 예수님의 얼굴을 성경적으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인자하시고 고상하시고 자비로운 그런 얼굴을 가졌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잘 생기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 어느 누가 봐도 하나님의 아들처럼 보이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사 53:3)

대신 심판을 받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에는 무슨 죄를 지었든지 심판을 거쳐야만 죄가 사해집니다. 심판을 하지 않으면 그 죄가 언젠가 우리를 멸망으로 끌어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죄를 짓습니다. 사단이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을 거스르도록 이끌어가기 때문에 누구나 죄 속에 깊이 빠져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지 않을 수 없어서 노아 홍수 때에도 심판했고, 소돔과 고모라 성도 심판했고, 그 후에도 심판을 계속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심판 받는 모습을 보시면서 너무 처참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 인간 대신 심판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 계획을 아브라함 때도 이야기하셨고 대대로 내려오면서 말씀하셨는데, 특히 이사야 53장에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3절)

죄의 심판이 끝나고  

이사야는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 사람인데,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700년 후에 예수님이 오셔서 어떻게 하실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4~5절)
2000년 전 갈보리 십자가에 예수님이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가 받아야 될 죄의 형벌과 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고난과 저주를 마감한 곳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시면서 우리의 고난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죄인인 우리의 모든 죄가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6절) 여러분이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통해 내렸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심판이 거기서 끝났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11절) 이사야는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계시 받은 그대로 기록했고, 700년이 지난 뒤인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직접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여러분이 받아야 할 저주와 멸망을 끝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사단은 ‘그렇지만 너 또 죄 지으면 죄인이잖아’ 하며 얄팍한 속임수에 넘어가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또 죄를 지을 것을 아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려 죄를 씻었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 우리가 태어나서 늙어 죽을 때까지 받을 심판을 끝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매일 아침 교회에 와서 “하나님, 이 더러운 죄인을 용서해주십시오” 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믿지 않는 결과입니다. 성경은 이미 “네 죄에 대한 심판은 끝났어” 하고 이야기하지만 사단은 성경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겸손한 죄인?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봉사도 하고 연보도 해야겠지요. 그러나 그 모든 걸 다 해도 예수님께서 날 위해 심판 받으신 것을 믿지 않으면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실수하고 범죄할지라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이사야가 말한 대로 우리의 죄는 예수님께로 건너갔고, 우리 죄에 대한 값은 이미 치렀다는 사실을 마음에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 죄의 심판이 끝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못 박혔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사단은 ‘네가 죄를 지었는데 네가 죄가 없다고 해도 돼? 겸손하게 죄인이라고 해야지’라고 속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귀한 보혈로 우리 죄를 눈처럼 희게 씻었지만 아직도 죄 속에 빠져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 안에 새로운 사람으로

사랑하는 강남교회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더 이상 사단에게 속지 맙시다. 모든 죄의 심판은 십자가에서 끝났습니다. 영원한 속죄가 이뤄졌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의롭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때 여러분 속에 하나님이 힘있게 역사 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리시고, 가시관에 찔리시는 고통을 당하신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죄가 씻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살았습니다. 우리가 사단의 음성에 속지 말고 하나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히 살 때 여러분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힘있게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 2008.5.11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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