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낮추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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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낮추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가져야
마음을 낮춘 다윗 VS 교만했던 압살롬 - 2009 .3.22 주일 낮 예배 - 250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9.05.0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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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사님의 변화

얼마 전에 목사님 한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목사님은 사역에 문제가 많아서 제가 몇 차례 신앙상담을 했는데도, 늘 자기 생각을 따라 사역을 했기 때문에 교회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목사님의 마음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제게 간증을 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사역하는 교회의 한 형제가 자기 어머니가 암으로 거의 다 죽어 가고 있으니 한 번 와서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형제의 아버지는 늘 “네 엄마가 죽으면 장사를 이렇게 치르자”고 했답니다.
하루는 그 목사님이 그 형제의 집을 찾아갔는데, 그 모친이 거의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그저 평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나시기만을 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지금까지 내 생각대로 살았는데 이번에는 내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말씀을 한번 믿어보자’는 마음이 우러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말씀을 마음에서 더듬어가다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는 로마서 8장 11절 말씀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목사님은 ‘내가 볼 때는 이 모친이 지금 죽어 가고 있는데 성경은 죽을 몸도 살린다고 하는구나. 과연 이 모친에게 살아난다는 성경을 전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죽는다는 내 생각을 전해야 할 것인가’ 하는 갈등을 했습니다. 그러다 ‘내 생각 믿고 살다가 다 망했는데 이제는 죽으면 죽었지, 내 생각 따라가지 말고 말씀을 따라 가자’고 마음을 정하고 그 모친에게 말했습니다.
“모친님, ‘나는 죄를 지었으니까 죄인이야’ 하는 자기 생각을 믿지 않고 ‘나는 죄를 지었지만 성경 말씀에는 내 죄가 흰 눈보다 희어졌다고 하네’ 하며 말씀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 모친은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지만 성경에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친이 죽어 간다는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 중 무엇을 믿으시렵니까?”
그 목사님이 전한 말씀을 받아들인 모친이 “내 생각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겠습니다”하며 소망과 믿음을 갖고 기뻐했습니다.

언제 하나님이 일하시는가

며칠 후에 그 목사님이 모친의 집에 다시 찾아갔는데, 얼음장처럼 차던 모친의 발바닥이 따뜻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남편 되는 어르신에게도 복음을 전해 그분이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요즘에는 그 어르신이 “네 어머니 죽거든…” 하던 말이 쑥 들어가고 “네 어머니 낫거든 제주도 가자. 네 어머니 낫거든 뭐 사먹자” 하신 답니다.
전기가 전선을 통해 흐르듯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우리 생각은 항상 하나님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지만 우리는 자신이 죄인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어떤 일을 하라고 하시지만 우리 보기에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과 한마음이 되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1~3)
혼돈스럽고 공허하며 깊은 흑암 속에 있던 땅에 말씀이 임하면서 땅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했습니다. 혼돈과 공허가 물러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서 생명과 사랑, 소망과 기쁨이 가득 찼습니다.

마시멜로 이야기

여러분, 살인하고 도둑질해서 멸망을 당하는 게 아니고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축복받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에 맞든 안 맞든 말씀이 마음에 자리를 잡은 사람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계속 이끌어 가십니다.
IYF 회지 봄호에 보니 마시멜로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 있었습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4살짜리 아이 600명을 대상으로 각 방에 혼자 있도록 하고 마시멜로를 준비한 뒤 “이것을 15분 동안 안 먹고 참으면 15분 뒤에 와서 한 개를 더 줄게”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3명 중에 1명 꼴로 마시멜로를 안 먹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후 마시멜로를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한 학생과 참지 못하고 먹은 학생을 15년 뒤에 다시 조사했답니다. 그랬더니 마시멜로를 안 먹은 아이들은 다 대학에 입학했고 인간관계도 좋았지만, 마시멜로를 먹은 아이들은 대학에 제대로 가지 못했고 빚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대학입학 시험에서도 점수가 215점이나 차이가 났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산다면

제가 어릴 때는 6.25 사변 후 학교와 집이 불타고 저희 반에 점심을 먹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는 먹을 게 적었기 때문에 먹는 것 때문이라도 마음 꺾을 일이 많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잘살고 못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에게 마음 꺾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마음이 점점 높아집니다. 마음이 높아지면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살다보니까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다 될 것으로 믿어 쉽게 생각하고 판단해 버립니다. 그것은 아주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저는 자주 ‘생각을 버려라. 마음을 꺾고 부인해라. 자기 자신을 믿지 마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방법대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부인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등학생인 제 손자에게 당부합니다. “할아버지는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려고 해. 그냥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으면 너도 할아버지 같은 삶을 살게 돼.”
제 손자는 시간에 구애를 받거나 배고프거나 어려워해 본 적이 없으니까 손자가 생활하는 걸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당부합니다. “젓가락질 하는 것, 소리 안 내고 깨끗이 얌전하게 밥 먹는 것을 지금 배우지 않으면 60살이 되어도 못하게 된단다.”

투구 없이 전장에 나간 압살롬

오늘은 압살롬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을 반역해서 군대를 일으켜 왕이 되려고 한 사람이었습니다. 압살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다윗은 도망가고, 몇몇 남은 사람이 압살롬 군대와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성경에 보면 압살롬이 비참하게 패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신복과 마주 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 머리털이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저가 공중에 달리고 그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 나간지라.”(삼하 18:9)
성경을 보니까 압살롬은 머리털이 굉장히 아름다웠고 해마다 깎아 저울에 달면 가장 무거웠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머리털이 윤기 나고 무거운 게 자랑거리였나 봅니다. 머리털은 패션쇼 하러 갈 때는 자랑거리이지만 전투에 나가려면 투구를 써야 되는데, 압살롬은 자랑스러운 머리털을 가리기 싫으니까 투구를 쓰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노새를 타고 달려가다가 상수리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그의 머리털이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렸습니다. 노새는 지나가고 압살롬만 상수리나무에 매달린 거지요. 상식적으로 전쟁터에 나갈 때 머리가 안 걸리도록 단정하게 해야 하지만 압살롬은 자기를 믿는 마음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두 부류의 신앙인

저는 예전에 교회 형제자매들이 결혼하기 전에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상견례 하는 자리에 참석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상견례 자리에 자매 측에서 자매 아버지가 안 오고 자매 삼촌이 대신 왔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 자매의 삼촌은 전화국에서 높은 위치에 있었고, 형제의 아버지는 시골 전화국의 말단 직원이었습니다.
그걸 알게 되면서 자매의 삼촌이 형제 측 사람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면서 이야기하는데 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친아버지 같으면 ‘내 딸의 시아버진데…’ 하며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또 한 번은 자매의 부모님이 안 계셔서 오빠가 대신 왔는데, 상견례가 잘 진행되어 가다가 마지막에 결혼예식을 신랑 측 근처에서 할 것인가, 신부 측 근처에서 할 것인가를 결정하다가 그 오빠가 아주 강하게 자기 의견을 내세우고 말도 함부로 했습니다.
양가 부모님이 상견례를 하는 자리에서 결정된 사항이 제가 볼 때도 신부 아버지에게 섭섭할 것 같아서 “그러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괜찮겠습니까?”라고 했더니 그분은 “목사님, 무슨 말씀 하십니까? 섭섭하다니요. 우리 딸이 시집가는데 괜찮습니다. 그렇게 합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삼촌이나 오빠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해도 아버지의 마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처럼 사람들 가운데도 자존심을 꺾지 않고 삼촌 같은 마음으로 신앙하는 사람이 있고 마음을 꺾어가며 아버지의 마음으로 신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만했던 압살롬의 최후

압살롬은 자신의 군대가 다윗의 군대보다 월등하고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긴 머리털을 자랑해 가면서 놀이하듯이 전쟁을 했습니다. 그는 전쟁을 지휘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 다니면 안 되고 주변에 보좌관이나 장수나 병기 맡은 자가 따라다니면서 위급할 때 그를 도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혼자 전쟁터에 나가서 상수리나무에 머리털이 걸렸는데도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군가 칼로 상수리나무 가지를 땅에 떨어지게 하면 아무 문제도 안 되었겠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까 상수리나무에 머리털이 걸려 버둥거리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높으니까 자신의 생각대로 해도 전쟁을 잘할 줄 알았습니다.
다윗의 신복 중 한 사람이 요압에게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린 것을 고하자 요압이 “너는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않았느냐. 내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요압이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며 압살롬이 있는 곳에 가서 심장을 찔러 버렸습니다. 요압은 군대장관이자만 열 명의 병기 맡은 자가 그를 호위한 데 반해, 압살롬은 왕인데도 혼자 전쟁터에 나갔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올바른 신앙의 자세는

마음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다 잘될 줄 알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안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낮으면 ‘내가 죄 사함을 받았는데 이렇게 해서는 신앙이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니까 잘못된 신앙이 금방 고쳐집니다. 사업이든 직장생활이든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다 보면 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때 ‘좀 놀다가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하면 되지’ 하며 마음에서 그것을 허용하면 놀게 됩니다. 반대로 ‘나는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지금 놀면 안 돼’ 하며 마음에서 노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면 편안하게 놀 수 없게 됩니다.
압살롬은 대충 전쟁해도 이길 것 같고 안 죽고 성공할 것 같은 자신의 마음에 속았습니다. 사단이 자꾸 그 마음을 부추겨서 ‘너는 똑똑하고 능력 있어’ 하는 마음뿐 아니라 ‘예전에도 잘했는데…’ 하며 자신을 믿는 마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우리에게도 ‘내가 언제 한번 시간 내면 금식 잘할 수 있어’ 하며 신앙을 존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온 마음으로 하지도 못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자신을 비운 다윗

다윗은 압살롬과 전혀 달랐습니다. 다윗은 자기 아들에게 쫓겨나면서 자기 마음을 다 비워버렸습니다.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따라오니까 “왜 법궤를 메고 따라 오느냐? 법궤를 메고 성전에 들어가라. 하나님이 나를 다시 왕궁에 오게 하시면 내가 다시 오겠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면 내가 버림을 당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쫓겨 가면서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왕궁에 좋은 신발, 옷, 음식, 가구, 이불도 있었지만 다 버리고 맨발로 나갔습니다. ‘내가 쫓겨나면 왕궁에 다시 못 들어올는지도 몰라’ 하는 생각으로 “신발 좀 튼튼한 거 가져오너라. 다시는 이런 옷 못 입는데 웬만하면 가져가자. 들에 가면 추울지 모르니까 따뜻한 이불도 준비해라” 하지 않고 다 두고 나왔습니다.
그 후 다윗을 따르던 무리들이 거의 압살롬에게 넘어가 압살롬의 군대가 훨씬 많았지만 다윗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불리한 전쟁에서 계속 승리했습니다.

믿음을 배우지 않으면

구원받은 후 ‘은혜’라는 미명 아래 적당히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사단이 ‘나는 구원 받았으니까 천국에 가’ 하며 마음을 높이게 하고, 마음이 높으니까 부족한 점이 있어도 주님 앞에 뉘우치고 고치기보다 ‘에이, 난 믿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어’ 하며 자신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배우지 않고 그냥 교회 생활을 하게 되면 여러분이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거나 주님과 멀어졌을 때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없게 됩니다. 실제로 믿음은 문제와 어려움이 닥칠 때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앞으로 ‘내가 여기서 끝나는구나. 내가 자식을 잃겠구나. 이혼하겠구나’ 하며 여러분에게 아주 큰 어려움이 있을 때, 그런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이 그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십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없다고 대충 지내면 여러분을 넘어뜨리기 위하여 사단이 계략을 세웁니다. 그때 자신을 믿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결국 여러분은 그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게 됩니다.

마음을 낮추시려고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일하십니다. 여러분, 세상을 섭섭하게 해도 주님을 섭섭하게 하면 안 됩니다. 세상과 멀어져도 하나님과 멀어지면 안 됩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대적해도 하나님이 여러분 편에 서 계시면 모든 문제가 정리될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이 여러분을 인정해도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으면 사울이나 압살롬처럼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사단은 오늘 아침에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 봐도 불편할 겁니다. 그리고 말씀을 대충 듣고 넘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마음을 높이는 일을 계속합니다. ‘나는 과거에 사업을 잘했어, 난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했어, 난 철두철미해,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등등 수만 가지 생각을 넣어주어 자신을 믿고 의지하도록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은 여러분 가까이 계시면서 계속해서 마음을 낮추는 일을 하십니다. 잘되던 사업도 부도나게 하시고 교통사고도 당하게 하시고 자식 때문에 이런저런 어려움도 당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몇 년간 고생하면서 겨우 마음이 낮아졌다가 사단의 음성을 듣고 하루아침에 마음이 높아져 신앙을 끝내버리는 경우를 봅니다.

흙덩어리에 불과한데

몇 년 전 아프리카 전도여행 중에 열이 나고 배가 아파서 ‘내가 말라리아에 걸렸구나.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해야겠다. 모레면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한국에는 약이 없으니 말라리아 약을 처방 받아 가야 돼’ 하는 생각으로 자리에 누웠습니다.
잠이 안 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내가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흙이 되겠지. 그러면 누가 내 위에 소변이나 대변을 본들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나를 밟고 춤을 춘들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흙덩어리인 이 몸을 내가 너무 귀히 여겼구나’ 하며 주님 앞에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주님 내일 아침에 병원에 안 가렵니다. 내가 말라리아 걸리면 주님이 아실 거고, 죽는 것도 주님이 허락하셔야 하는데 주님께 맡기겠습니다’ 하고 잠들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저는 요즘 10년 전보다 훨씬 건강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이끄시는 것이 정말 감사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주님을 믿어야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자기 마음의 왕국에 왕이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높은 사람은 예배 참석하는 것, 기도하는 것, 성경 읽는 것, 헌금하는 것, 전도하는 것 등 매사에 힘이 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낮추시고 사단은 우리 마음을 높입니다. 자신이 잘했다는 사단의 말을 받아들이지 말고 ‘나는 무익한 인간이라 주님의 은혜를 입어야 살아. 앞으로 어떤 일을 겪을지 모르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며 마음을 낮추면 주님과 한마음이 되어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이 대신해 주시는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마음을 낮추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만을 바라보았지만 압살롬은 교만해서 자기의 생각만을 따라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어려운 여건에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했지만 압살롬은 좋은 여건에서도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자신을 낮추고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 2009 .3.22 주일 낮 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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