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안식은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것
상태바
참된 안식은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것
2008.5.4 주일 낮 설교 - 204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05.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성경

오늘날 많은 사람이 사단에게 속아서 자기 생각으로 성경을 읽고 이해하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생명이 있어서 그 말씀이 사람의 마음에 임해 그 사람을 바꾸는 것을 볼 때 무척 감사합니다.
지난주에는 세례자 교육이 있었는데, 어떤 자매와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가 저에게 간증하기를 자기는 2002년에 우리 교회에 나왔지만 그때는 말씀이 마음에 전혀 안 들어와서 그 후로 교회를 나오지 않았답니다.
그러다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몸과 마음이 약해져 직장 생활도 할 수 없고 남자친구와 결혼해서 살 엄두도 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다시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들었는데,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평안하게 잠을 자게 됐다는 겁니다.
그 간증을 들으면서 제 마음이 얼마나 뜨겁든지, 그 자매님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는데 그 말씀이 모든 번민과 두려움, 슬픔과 염려를 제하고 평안을 주셨던 겁니다.

말씀으로 나타나신 예수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1~4)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때부터 말씀이 마음 안에서 일합니다.  말씀이 우리 속에 묵은 죄의 힘과 죄에 대한 가책을 제하고 두려움과 근심을 제하고 평안과 기쁨을 주고 우리를 바꿉니다.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면 그 말씀이 일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술이나 도박을 끊고 간음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사단은 우리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능력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죄와 싸우면 질 수밖에 없는데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 ‘로고스’

오늘 아침에 읽은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병자가 말했습니다.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우리말의 ‘말씀’이 헬라어에는 ‘로고스’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 선생님 등 어른이 한 말을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헬라어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따로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가뭄이 계속될 때 제가  “비야 와라!” 한다고 해서 비가 오지는 않습니다. 제 말에는 그 말을 이루는 능력이 함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 말씀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에게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라” 했을 때 나사로는 일어나 무덤을 나왔습니다.

유대인의 안식일

요한복음 5장 전반부에는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는 이야기가 나오고 9절 이후에는 주님과 유대인들 사이의 갈등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요  5:15~16)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안식일의 개념과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안식일의 개념은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습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정말 유명합니다. 제가 한번은 이스라엘에 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다 무너지고 벽만 남아 있는 그곳에서 유대인들이 통곡했다 해서 ‘통곡의 벽’이라는 곳을 구경했는데, 거기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경비원들이 찍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카메라 셔터 누르는 것도 노동이라는 겁니다.
그때 같이 갔던 형제들이 경비원에게 “당신이 지금 무선 전화기 버튼 누르는 것은 노동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당신도 안식일을 범했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경비원들이 아무 말을 못하자 우리는 이 때다 싶어 사진을 다 찍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지만

유대인 가정에 가면 그릇이 두 종류로 완전히 나누어져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9절에  “염소 새끼를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찌니라” 하는 율법이 있습니다. 그 말씀의 의미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으면 다른 새끼도 어미의 젖을 못 먹고 죽기 때문에 불가피하면 새끼만 삶으라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그걸 열심히 지키려다 보니 염소 새끼를 삶을 때 젖이 한 방울도 들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우유 제품의 그릇에 고기가 같이 섞이면 염소새끼를 어미젖에 삶게 될까 봐, 결국 우유 제품 쓰는 그릇과 고기 제품 쓰는 그릇을  따로 두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은 그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기 때문에 특히 안식일에 예수님이 일하시는 것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에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표면적으로 대할 때와 깊이 알고 대할 때 성경 을 받아들이는 것에 굉장한 차이가 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성경 말씀을 따라 바르게 살았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문(儀文)’과 ‘영(靈)’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 3:6) 이 구절엔 ‘의문’이란 말과 ‘영’이란 말이 있습니다. 의문(儀文)으로 하는 것은 성경의 말 한 자, 한 자에 매여서 신앙생활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영(靈)’으로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려는 의미가 무엇인지, 즉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 구절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과 문자에만 매여 있는 사람은 굉장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문자에 매여 율법을 열심히 지키면서 살려고 하다 보니까 우유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유 제품을 쓰는 그릇 따로 두고, 고기 끓이는 그릇 따로 두었지만 실제로는 예수님과 정반대의 신앙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킨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구약의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양을 잡아서 피를 흘리고, 그 피를 제단 뿔에 바르고 속죄소에 뿌리면 죄가 사해집니다. 그 속죄제의 참뜻은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가 사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 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기 전까진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지만, 본 형상이신 예수님이 오신 뒤에는 다시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안식일은 예수님의 그림자

그렇다면 안식일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엿새 동안 일하시고 제 칠일에 쉬셨으니까 안식일에는 모두 쉬라는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장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했기 때문에 정확한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 해질 때부터 토요일 저녁 해질 때까지입니다. 유대인의 종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게 길을 가다가, 금요일 저녁 해가 지면 “안식일이다!” 하며 짐을 다 벗어도 주인이 아무 말을 못합니다. 율법에는 “뉘 남종이나 뉘 여종이나 뉘 문 안에 유하는 개라도 일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기 전까지 죄의 짐을 지고 고통하고 슬퍼하며 괴로워하다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후로는 죄를 사함받고 참된 쉼을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여기서 안식일은 장차 올 어떤 일의 그림자인데 그 몸, 즉 실체는 그리스도다. 그래서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그림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참된 쉼과 자유가 있고, 평안과 안식이 있다는 걸 설명해 주는 겁니다.
여러분이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그 무거운 죄의 짐이 다 사라져버립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위해 못 박혀 돌아가신 십자가를 바라보면 “내 죄가 심판을 받았으니까 나는 이제 죄인이 아니야. 나는 의롭고 거룩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대구에서 사역할 때 적십자 병원에서 혈액을 다루는 분을 만나 복음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환자들의 피가 모자라면 혈액형을 검사해서 그 환자에게 맞는 피를 수혈합니다.
어느 날 그분과 같이 일하는 간호사가 수혈하는 중간에 환자에게 이상이 있다며 뛰어왔기에 그분이 얼른 달려가서 수혈을 중단시키고 다른 타입의 피를 가져와서 수혈을 했습니다.
환자의 혈액형을 검사해 보니 그분이 A형 환자에게 B형의 피를 수혈한 것이었습니다. 환자는 간신히 살았지만 굉장히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자신이 사람을 죽일 뻔했다는 것을 혼자만 알고는 그 환자를 볼 때마다 늘 미안해하고 송구스러워했습니다. 그 환자가 퇴원한 뒤에도 그 가책에서 벗어나려고 월급 때마다 환자의 집을 찾아가 아무도 몰래 좋은 음식을 배달시키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해도 그 환자에 대한 가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지내다가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죄를 사했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죄에서 벗어나 밝고 기쁘게 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저는 사역을 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이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있다가 예수님을 만난 뒤에 죄의 짐이 벗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모르니까 안식일 지키는 데에만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영적으로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하시니까 “안식일을 범했으니까 죄인이다”라고 예수님을 핍박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정말 바라시는 것은 안식일의 의미를 정확히 깨닫고 메시아를 통해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잘 몰라도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서 일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 5:19)

자기 생각을 따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자기 생각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생각을 비우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배워서 일하셨는데 그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여러분이 성경 말씀을 따라 산다고 하지만 여러분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살면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자기 생각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을 비우면 하나님의 뜻이 보이고 그 뜻을 따라서 나아가면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능력으로 일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만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고 자기의 마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옳게 여기는 부분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선택할 때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이 어떤 종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드는 교회를 선택합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요 5:20) 여러분이 자신을 부인하게 되면 성경을 읽을 때 자신의 생각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의 마음을 이끌어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요 5:21)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기 때문에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도록 하셨고, 심판하게 하시는 등 하나님께서 해야 할 모든 일을 예수님께 다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순수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받으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도 예수님께 주신 능력과 권세를 주셔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여러분이 하게 하실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창고에서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요 5:22)

어떻게 영생을 얻는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참된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이 잘났든 못났든, 똑똑하든 아니든 자기 마음 안에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자신의 생각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자신은 죄를 즐거워합니다. 술 마시고 방탕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하는 데 매력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에 임하면 그런 죄악들이 싫어지고 그 대신 성경 읽는 게 즐겁고 말씀을 전하는 게 행복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않고 영생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율법을 지키거나 40일 금식기도 하는 자, 헌금을 많이 하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그 어떤 것도 영생을 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죄사함을 받아들이면

예수님께서 33년 동안 죄를 짓지 않고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내 모든 죄를 흰 눈보다 더 희게 씻으시고 영생을 주신 사실을 받아들이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도록 예수님이 모든 일을 하셨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아들이면, 내 모든 죄가 사해져야 할 것입니다.
밥을 제공 받으면 배가 부르고 옷을 받으면 따뜻해집니다. 밥을 제공 받았다고 하면서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하고, 옷을 받았다고 하면서 여전히 춥다고 하면 그것은 받지 않은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죄를 사해 주셨는데도 여전히 죄가 있다면 그것은 죄 사함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죄 사함을 받아들이면 십자가에 흘린 그 피만 바라보면서 “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피를 흘렸어. 저기서 내 죄를 담당했어. 내 모든 죄는 사해졌어. 그러면 나는 죄가 없어”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자기 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잘못하고 연약한 자기에게 얽매이지 않고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행하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자유로움을 얻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안식일의 참된 의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외형적인 신앙을 많이 합니다. 성경을 깊이 모른 채 거만한 마음을 가지고 “죄 안 지으면 되지 뭐. 착하게 살고 성경 말씀 듣고 순종하면 되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성경 말씀을 온전히 행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행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받아들여서 예수님으로 깨끗해져야지, 자기 행실로는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율법과 의문에만 매여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고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마다 병자를 고쳤습니다. 병자로 하여금 안식일에 병에서 자유롭게 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병에서 쉬게 해주고 어둠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참된 안식에 들어온 자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히 4:10) 하나님은 어떻게 당신의 일을 쉬셨습니까?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할 일이 없어 쉬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여러분도 자기 일을 쉰다는 것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니에요. 돈도 벌어야 하고, 빚도 갚아야 하고, 아이들 공부도 시켜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아요”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예수님 안에 들어온 사람은 그 모든 것이 내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쉬고, 예수님이 일하십니다. 지난 40여 년 넘게 예수님 안에 살면서 어려운 짐과 고통이 많았지만 저는 쉬었습니다. 제 안에 예수님이 그걸 다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제 죄를 사하신 것만 믿지 말고, 여러분 대신 살아주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여러분 안에 계시면서 여러분의 짐을 지시고,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그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환란과 고통, 어려운 일이 와도 “이제 이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야. 나의 주인은 예수님이야. 나는 이제 쉬어. 예수님의 책임이야” 하며 여러분은 쉬고 예수님께 그 문제를 맡기십시오. 그 사람이 참된 안식에 들어온 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쉬고 예수님이 일하셔서 여러분의 모든 일을 주님이 아름답게 이루시고 은혜롭고 복되게 행하실 줄 믿습니다.

- 2008.5.4 주일 낮 설교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