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본 「히스기야」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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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본 「히스기야」 처럼
[열왕기하 18장 13절 ~ 31절] 2009 .3.15 주일 낮 예배 - 249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9.05.0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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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사는 것은

우리가 믿음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면 믿음으로 사는 것은 굉장히 쉽고 평안하고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 믿는 것을 막연하고 부담스러워 보이게 합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할 때는 잘될 것 같은 생각을 줘서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 앞에 나와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세리, 간음한 여자 그리고 강도 등 세상적인 면으로 전혀 길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자기가 선하고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율법사,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는 일을 했습니다.
제가 예전에 장로교회를 다닐 때는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 읽고 선을 행하고 율법을 지키면 천국에 간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열심히 하면 천국에 간다고 믿고 그렇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신앙이 어려운 이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보면 처음에는 잘될 것 같지만 우리 근본이 악하고 더럽기 때문에 우리가 쌓은 선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절대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수영해서 미국까지 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남보다 수영을 잘한다고 해서 수영해서 미국에 가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죽기 십상입니다.
그 사람을 잘 알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네가 수영을 잘하지만 그렇게 해서 미국에 갈 수는 없어. 그러다가 죽을는지 몰라. 네가 포기해야 돼.”
여러분이 온 마음을 다해서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하려고 일 년만 노력해 보면 ‘난 안 되겠다. 내가 율법을 지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며 포기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선을 행하는 것을 포기하고 여러분을 의롭게 해 놓으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되길 원하십니다.
신앙에는 두 단계가 있는데, 그 첫 단계는 열심히 선을 행하고 율법을 지키면 구원받고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고 믿는 단계입니다. 그 단계에서는 신앙이 어렵고 고통스럽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니까요.

율법을 지키려는 마음

십계명을 표면적으로 대하면 지킬 수 있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 27~28)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지 않는 남자나 남자를 보고 음욕을 품지 않는 여자가 지구에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율법을 어긴 겁니다. 율법은 과거, 현재, 미래에 한 번이라도 어기면 다 어긴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해서 천국에 가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속고 있는 겁니다.
오늘날 참 많은 기독교인들이 속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면 흐뭇하고 금식기도하고 봉사하면 만족하는 신앙을 한다면 그것은 자기편에서 만족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의 어떤 것이라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유일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기 때문에 내가 잘한 것과 예수님이 하신 것을 섞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반드시 지옥갈 수밖에 없습니다.

가증한 인간의 善

제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형님이 빈소 만드시는 걸 보고 제가 “아버지는 구원받으시고 하나님 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무엇 하려고 빈소를 만드십니까?”라고 했더니 “내가 아버지한테 불효한 걸 속죄하고 싶은데 이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하는 거니까 날 이해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형님한테 분명히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분명히 구원받고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다른 것은 못해드렸지만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시게 한 것만으로도 저는 효자 자격이 있습니다. 저는 늘 아버지에게 걱정을 끼치는 불효자라고 생각했 는데, 제가 스스로 효자가 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효자 되게 하셨습니다. .”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친구들을 불러 놓고 “나는 은숙이 애비가 믿는 예수 믿고 좋은 나라 가네. 내가 먼저 가서 좋은 자리 잡아 놓을 테니 자네들도 우리 은숙이 애비가 믿는 예수 믿고 하늘나라로 오게”라고 하셨습니다.
‘참깨가 백 번 구르는 것보다 호박이 한 번 구르는 것이 낫다’는 말처럼 우리 자신이 선을 행하는 것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추하고 더럽고 음란하고 가증한 인간이 선을 행하려는 마음은 오히려 ‘나는 선을 행할 수 없다’며 선을 행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보다 더 악한 마음입니다.

자신의 善을 포기할 때

신앙의 두 번째 단계는 나 자신이 선을 행하는 것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와서 나를 선하게 만드는 단계입니다. 나 자신이 선을 행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면 예수님이 내 마음에 오셔서 음란과 거짓이 물러가고 마음이 변화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술을 끊고 도박을 끊고 진실하게 살아야지’ 하고 결심하면 할수록 자꾸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나는 선을 행할 수 없구나’ 하고 포기하는 단계가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세리 삭개오, 간음 중에 잡힌 여자,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던 사마리아 여자, 십자가의 강도 등 자기가 아예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안 사람들이 예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예수님의 은혜를 입지 못했습니다. ‘난 율법을 지켰어. 난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어’ 하며 자기가 볼 때 어느 정도 선을 행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에는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만을 의지해야

‘내가 선을 행하고 율법을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마음이 포기되지 않으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본다고는 하면서도 100% 온전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에게 1억 원을 구하지 못하면 죽는 일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황 장로님에게 부탁하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장로님, 1억 원만 빌려주십시오.”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좀 빌려주십시오.” “안 됩니다. 당신이 예전에 나 무시했잖아요.” “예, 장로님. 그렇지만 좀 도와주십시오.” 침 뱉음을 당하고 따귀를 맞아도 온 마음으로 매달리지 않겠습니까?
신앙은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선을 행하면 될 것 같은 마음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의지해도 온 마음으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내가 사십 일 금식기도를 다섯 번이나 했어. 재산을 다 팔아서 예배당을 지었어’ 하며 자신이 잘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가짜입니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의 간증에는 인간의 의나 선이 다 무시되고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납니다. 참된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고

구원받은 후 믿음의 삶도 그와 똑같습니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방법으로 하면 될 것 같은 마음이 생깁니다.
러시아의 우종기 목사님은 예전에 선교비를 받으면 그것을 전부 장판 밑에 감춰뒀다고 합니다.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해서 어떤 때는 도배지 사는 돈보다 돈으로 도배하는 게 훨씬 싸게 든다고 합니다. 그렇게 돈의 가치가 떨어지니까 달러를 예금해 놓고 은행에 가서 돈을 찾으면 달러가 없어서 안 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금을 하는 건 은행에 돈을 주는 격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언제든지 예금을 찾으면 그 금액만큼 준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은행에 예금을 합니다.
저는 예전에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시 2:8)는 말씀이 좋아 매일 성경을 펴 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시편 2편 8절 말씀대로 구합니다. 제 유업이 땅 끝까지 이르도록 해 주십시오.’ 한참 기도를 하다가 생각해 보니 ‘내 유업이 땅 끝까지 이르면 내가 다스리기나 하겠나? 기도 그만 하자’는 마음이 들어 그 다음부터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한참 후에 다시 그 구절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내 유업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면 그것을 다스리게도 하실 거야’ 하는 마음이 들어 그때부터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저는 대한민국에 저보다 더 큰 부자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계 80개 나라에 우리 콘도(교회)가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가면 한국 음식 먹을 수 있고 잘 수 있고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언제 축복을 받는가

오늘 우리는 히스기야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 시대에 유대가 다 망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아버지가 아세라 신을 섬기면서 여호와를 멀리 떠날 때부터 나라가 망하기 시작한 걸 알고 마음이 아팠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죽자마자 히스기야가 바로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됐으면 부왕이 죽었기 때문에 장례식도 해야 하고 장례식 때 내외귀빈들도 돌아봐야 하고 신하들과 모여서 회의도 해야 하고 관리들을 세우는 등 굉장히 바빴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열조가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망했다. 우리가 흥하게 되는 길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밖에 없다”며 먼저 백성을 모아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성전 문을 열고 정리하는 일을 먼저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라가 부강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축복 받고 자손이 잘된다는 사실을 막연하게 믿지 말고 정확하게 믿고 그 말씀대로 삶에 적용시켜 보십시오. 저는 아들딸을 성경 말씀대로 키우고 교회도 성경 말씀을 따라 이끌었는데, 하나님이 도우시고 일하시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흘러가면

“히스기야 왕 십사 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매”(왕하 18:13) 앗수르 왕 산헤립이 ‘라기스’라는 도시를 쳐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나아가서 “우리가 잘못했으니 우리 성을 치지 마소서.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했더니 산헤립이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내 놓으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지만 은과 금만 주면 해결될 것처럼 보이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방법으로 타협을 했습니다. 그래서 은과 금을 모았지만, 모아도 안 되니까 하나님의 성전 기둥에 있는 금을 벗겼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면 앗수르 왕 산헤립 하나 못 이기랴?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내가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금을 바치려고 하니까 하나님의 전에 있는 금을 벗기지 아니하고는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전에 드린 금을 벗길 수가 있겠습니까?’ 하는 믿음으로 나가야 하는데, 인간적인 방법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계속되고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왕하 18:15)
히스기야가 성전 기둥과 문짝에 붙은 금을 뜯어내면서 가슴이 아팠지만, ‘이거라도 뜯어 주면 우리가 평안하게 잘 살 수 있을 거야’ 하는 기대를 가지고 앗수르 왕에게 주었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수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왕을 치게 하매”(왕하 18:17)
산헤립이 은과 금을 받았으면 돌아가야 하는데, 다 받아 챙기고는 예루살렘을 쳐들어오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랍사게를 예루살렘에 보내 예루살렘과 전쟁을 하기 전에 백성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히스기야에게는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간교한 앗수르 왕의 계략

“랍사게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고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네가 싸울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이제 네가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 왕 바로는 무릇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너희가 혹시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여호화의 산당과 제단을 제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하기를 예루살렘 이 단 앞에서만 숭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그 말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 필을 주리라.” (왕하 18:19~23)
아주 간교한 앗수르 왕 산헤립이 랍사게를 보내 예루살렘과 전쟁을 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무너뜨려 전쟁을 할 만한 의욕을 다 깨뜨리는 심리전을 펼쳤습니다.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가슴이 섬뜩해서 랍사게에게 말했습니다. “청컨대 아람 방언으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의 듣는데 유다 방언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왕하 18:26)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질러 불러 가로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저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로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저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정녕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않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왕하 18:28~31)
백성으로 하여금 전의를 상실하게 하려고 랍사게가 유다방언으로 떠들었습니다. 히스기야가 ‘금을 떼기 전에 여호와의 성전 앞에 기도하는 게 나았을 걸……’ 하며 금과 은을 가져다 준 것을 얼마나 후회했겠습니까?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과 맞붙을 수밖에 없지만 자기 병력으로는 이길 수 없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제 히스기야에게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에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그때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셨습니다.

주님만을 의지할 때

“히스기야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입혀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저희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왕하 19:1~3)
여자가 아기를 해산할 때 많은 힘이 필요한데 산모가 온 힘을 다해도 아기가 나올 듯하면서 안 나오면 ‘이렇게 힘을 써도 안 나오네. 더 이상 아기를 낳을 힘이 없구나. 이제 나는 죽었다’ 하는 절망이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히스기야의 심정이 그와 같았습니다. ‘하나님, 제게 은혜를 베푸시면 살지만 그렇지 않으면 저는 죽습니다’ 하며 하나님 외에 다른 길이 없으니까 온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건축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을 때 “목사님, 이것은 이렇게 하면 됩니다.” “이분에게 맡기면 됩니다” 하며 저에게 말해주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제가 하나님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풀리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이야기에 귀를 막고 히스기야가 한 것처럼 하나님만을 의지했는데, 주님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니

“앗수르 왕이 구스 왕 디르하가가 나와서 더불어 싸우고자 한다 함을 듣고”(왕하 19:9)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하더니 그 신 니스록의 묘에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저를 칼로 쳐 죽이고”(왕하 19:35~37)
결국 천사가 나타나 18만 5천 명을 죽이고 앗수르 왕 산헤립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이 사건이 끝났습니다. 누가 봐도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을 이길 수 없었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니까 하루아침에 송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여러분의 마음을 정돈하십시오. 어떤 일을 두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 외에 다른 길이 없어야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믿게 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정확히 모르고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하면서 인간적인 방법을 찾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자녀, 건강, 노후를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향하여 온 마음으로 달려가면 여러분을 통해서 귀한 열매가 일어나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 2009 .3.15 주일 낮 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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