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면 우리는 작은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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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면 우리는 작은 예수
[누가복음 7장 11절 ~ 17절] 2009 IYF 말레이시아 글로벌캠프 중 1.22 저녁 메시지 - 242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9.04.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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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나환자촌 집회

저는 목사가 된 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감격스럽고 눈물겨워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1979년 나환자촌에 가서 집회했던 때가 잊히지가 않습니다.
그해 12월 말에 어떤 나환자 목사님이 저를 찾아와서 자기 교회에서 집회를 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저에게 점심을 사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굉장히 가난했는데, 그 목사님이 갈비를 사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박 목사님, 꼭 오셔야 합니다. 원래는 공군 군목 한 분이 우리 교회에서 집회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집회를 일주일 앞두고 그 목사님이 바빠서 집회를 못하겠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우리 교회 사람들이 모두 실망하면서 ‘목사가 집회보다 바쁜 일이 뭐가 있어? 우리가 나환자니까 싫어서 안 오는 거지. 우리 문둥이들은 말씀 들을 자격도 없나?’ 하며 굉장히 소란스러웠습니다. 만약 박 목사님도 안 오시면 우리는 진짜 하나님을 원망할 겁니다.”

점점 부담스런 생각이 들어

처음에 저는 그 목사님이 못 오시니까 제가 집회할 수 있게 되어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식사중에 그 목사님이 즐거워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침이 툭툭 튀는 걸 봤습니다. 그분이 나환자라는 게 떠올라 갑자기 갈비 맛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침이 비교적 덜 떨어진 곳에 있는 갈비를 다시 뒤집어 구워서 몇 조각 먹었습니다. 그 좋은 갈비를 두고 오면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집에 돌아왔는데 어떤 목사님이 저한테 말했습니다. “박 목사님, 나환자촌에 가신다면서요?” “예, 가게 되었어요.” “거기 가면 나환자들이 고름이 흐르는 손으로 달걀을 까서 먹으라고 준대요. 그러면 먹을 거예요, 안 먹을 거예요?”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그만해요” 하고 잘라 말했습니다.
집회를 삼 일 앞둔 날 밤에 자다가 일어나 생각했습니다. ‘진짜 고름 묻은 손으로 달걀을 까줄까? 그러면 먹어야 할까?’ 그전에는 그 말을 하는 목사님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일축했는데 점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 가면 잠은 어떻게 잘까? 밥은 어떻게 먹을까? 같이 먹고 같이 자자고 하면 어떻게 하지?’ 제 마음에 슬며시 걱정이 들어왔습니다.

꺼리던 마음이 사라지고

그날 새벽에 일어나서 예배당에서 기도를 했는데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마 26:6)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존귀하신 예수님께서 문둥이 집에 가셨는데, 천하고 못난 나 같은 인간이 뭔데 나환자촌에 가기를 주저하나?’ 그 말씀 한 마디가 제 마음속에 들어와서 제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환자가 따로 있나? 나도 문둥병에 걸리면 나환자야’하는 생각이 들자 나환자에 대해 전혀 꺼려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나환자를 꺼리는 사람인데 이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닌 예수님의 마음이야.’
제가 나환자촌에 집회를 하러 간 그날 밤은 굉장히 추웠습니다. 그날 저녁에 100여 명 되는 교회에서 제가 설교를 했습니다. “죄 사함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손들라”고 했을 때 40~50여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분들을 제가 머무는 방으로 오라고 해서 그날 새벽 1시까지 복음을 전했는데, 거의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고 행복해하는 그때부터 저는 나환자와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들과 같이 먹고, 한 이불을 덮고 자고, 같이 목욕도 하면서 지냈습니다.
 

나환자들의 애환

저는 그들이 나병에 걸리고 난 뒤에 참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환자들은 비율적으로 남자:여자가 5:1이 안 됩니다. 나환자들은 보통 나환자끼리 결혼하는데 많은 남자들이 여자가 없어서 결혼을 못하고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보통 사생아를 아주 어릴 때 데려와서 양아들로 키웁니다. 양아들이 커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하면 자연히 서울이나 대구 등 큰 도시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양아들이 나이가 들면서 지금의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면 여자 친구를 사귀더라도 자기 과거를 숨기고절대 자기 부모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방학이 되었는데도 집에 오지 않고 소식을 끊어 버리거나 심지어 “길에서 나를 만나도 아는 척 하지 마세요”라고 해서 부모들이 울면서 가슴 아파하는 경우도 참 많이 보았습니다.

나환자에게도 평안과 기쁨이

그들이 구원을 받고 한없이 기뻐하는 걸 보며 저는 제가 목사가 된 게 하나님 앞에 감격스럽고 감사했습니다. 그들이 죄악 속에서 고통받다가 구원받고 난 뒤에, 몸은 나환자이지만 마음은 그 병에 매이지 않고 정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환자에게 누가 저런 웃음과 평안, 즐거움을 줄 수 있습니까?
제가 1984년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 온 뒤에도 가끔씩 캄캄한 밤에 우리 집에 와서 밤새도록 성경공부를 한 뒤 새벽에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저도 자주 나환자촌에 찾아가서 그들과 같이 웃고 울면서 주님 앞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 가운데 김광열 장로라는 분이 있었는데, 첫날 저녁에 구원을 받은 후 어린애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분은 그 동네에서 제일 많은 닭을 가지고 있는 부자였는데, 구원받은 후 닭을 절반이나 팔아 돈을 가방에 잔뜩 넣어가지고 다른 나환자 교회의 장로로 있는 자기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이 장로, 자네 교회에서 집회 한번 하게. 우리 교회는 집회하고 나서 많은 은혜를 입었네.” “우리 교회는 돈이 없어서 집회를 못해.” “나는 장로지만 하나님의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고 싶어. 내가 돈을 한 가방 가져왔어. 이걸 가지고 집회를 해. 단 조건이 있어. 박옥수 목사를 강사로 모셔야 돼.” 그분이 집회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다 댔습니다. 그래서 그해에 저는 일곱 교회를 다니며 집회를 했습니다.

강사로 초청받아

제가 아는 나환자 목사님 중에 충무 애조교회 박오근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그곳에서 20년 동안 시무하셨는데, 제가 밀양에서 집회할 때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이 회갑을 맞자 교회에서 회갑 잔치를 준비했지만 그 목사님은 만류하셨습니다. “회갑 준비하지 마라. 나는 그때 어디 여행 갈란다.” “목사님, 목사님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를 위한 잔치인데 왜 그러십니까?”
“날 위해서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지.” “예, 목사님 원대로 하십시오. 우리가 준비할게요.” “나는 육신의 잔치는 하고 싶지 않다. 우리, 박 목사님 모셔다가 영혼의 잔치를 하자”며 여러 교회에 집회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박오근 목사님 회갑 축하기념 집회의 강사로 초청받았습니다.
제가 집회에 가기 위해 대구에서 마산을 거쳐 충무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제 바로 뒤에 앉은 사람들을 봤는데 약간 이상해서 나환자라고 느꼈습니다. 제가 인사를 하면서 어디 가시냐고 물었습니다. 충무 애조교회에서 하는 집회에 가려고 새벽 4시에 안동에서 출발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계속 물었습니다. “혹시 강사가 누구라 하던가요?” “박옥수 목사라고 하던대요.” “혹시 박옥수 목사를 본 적이 있습니까?” “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 보러 가요.” “정말 본 적이 없어요? 거짓말하는 거 같은데요?” “우리가 왜 거짓말을 해요?” “제가 박옥수 목사입니다”라고 했더니 그분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주님이 주신 마음으로

마산에 도착했을 때 점심때가 되어서 제가 식당에 가서 뭘 좀 먹고 가자고 했더니 그분들이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중국집 안으로 제가 먼저 걸어 들어가니까 그분들이 오다가 문 앞에서 멈칫 하며 섰습니다. 그분들이 나환자라서 같이 따라 들어오지 못하는 걸 알았지만 제가 소리쳤습니다. “뭐해요? 빨리 와요.” 그분들이 주저하더니 들어와 앉았습니다. “여기 자장면 곱빼기로 네 개, 그리고 단무지랑 양파 많이 갖다 줘요!” 종업원이 그분들을 약간 이상하게 쳐다보더니 아무 소리 안 하고 자장면 네 그릇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자장면을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물론 제가 큰소리쳤지만 돈은 그분들이 냈습니다. 그분들이 버스를 타고 가면서 감격스러워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과 자장면 먹었다는 건 한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제 아내가 알면 얼마나 부러워할까요?” “목사님, 저는 중국집에 처음 가봤습니다. 자장면이 그렇게 맛있는 줄 몰랐습니다.”

구원받은 후 삶이 달라져

여러분, 저는 이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닌데 예수님이 제 마음에 임하셨습니다. 제가 나환자촌에 갈 때는 나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적합하도록 예수님이 전에 없던 마음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교도소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아프리카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도 하나님이 저에게 그냥 전도하라고 하시지 않고 그에 합당하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책을 출판하거나 방송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저는 구원받기 전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인생을 살던 사람이었는데, 1962년 10월 7일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날은 제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후로 제 삶 속에 있던 많은 절망이 저를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기쁨과 행복이 뭔지 모른 채 소망 없이 살았는데, 예수님이 제 마음에 들어오신 후로 이제 제가 사는 게 아니라 제 안에 주님이 사시면서 제 삶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행복과 평안을 주는 걸 보았습니다.

에이즈 병에 걸린 어떤 청년

저는 작년 11월 중순에 광주에서 집회를 했는데, 어떤 형제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제 아들을 좀 만나 주십시오. 제 아들에게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데려오라고 했더니 오후에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좀 나가 있어요.” “왜 그래? 나 여기 있어도 괜찮아.” “엄마, 좀 나가 있어요. 목사님과 둘이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그 청년의 어머니에게 좀 나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나가자 아들이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일본에서 공부를 했지만 거기서 너무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학점을 얻지 못해 대학을 다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학점이 모자라니까 일본에서는 비자를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국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에 입대하려고 신체검사를 했는데 에이즈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래서 군 생활도 못합니다. 목사님,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너처럼 그렇게 사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께 은혜를 입으려고 나오는 사람은 정말 적다. 에이즈 그거 별것 아니야” 하며 그 청년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청년은 진짜 방탕하게 살았지만 그 뒤로 변화되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작년 11월 말에 미얀마 집회에 가면서 그 청년의 아버지에게 아들을 데려가고 싶다고 전화를 했더니 아버지가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 청년이 미얀마에 가서 굿뉴스코 봉사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을 보더니 자기도 여기서 살면 안 되냐고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저는 그 청년을 보면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저는 IYF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대학생을 만나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IYF를 만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면 옛날처럼 살려고 해도 살 수 없을 겁니다.

아들을 잃은 나인성 과부

저는 오늘 저녁에 나인 성의 과부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 과부는 어린 아들 하나를 데리고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 과부에게는 남편이 죽은 후 아들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그 과부에게 기쁨과 소망, 즐거움과 위로가 있다면 그것은 아들뿐이었습니다. 그 과부에게 아들은 자기 생명과 같았습니다. 아들이 기뻐하면 그 여자도 기뻐하고, 아들이 괴로워하면 그 여자도 괴로워하고, 아들이 즐거워하면 그 여자도 즐거워하면서 그 여자는 아들과 생명이 결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그 과부의 아들이 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그 과부의 마음은 타는 것 같았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내 아들은 살려야 해.’ 하지만 아들이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아들이 죽었을 때, 그 아들은 그 여자의 마음에 있는 소망과 기쁨, 즐거움과 행복 등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저 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 이제 그 여자에게는 눈물과 한숨, 슬픔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진정하려고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상여를 따라가면서 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누가 이런 여자의 마음에 평안과 기쁨, 소망을 줄 수 있습니까? 아무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죽은 아들을 살리시고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눅 7:13~15)
그 여자가 상여 뒤를 따라가는데 갑자기 상여가 멈추었습니다. 예수님이 가까이 오셔서 상여에 손을 대시고 죽은 그 청년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어서 무덤으로 가는 그 길에서 그 청년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시기 때문에 죽은 청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만 살린 것이 아니라 그 과부의 마음에 소망과 기쁨, 행복을 다시 살려주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난 후 그들 마음에 행복과 즐거움이 살아나고 그들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죽었던 그 청년의 몸만 살리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 안에 행복과 평안, 즐거움과 소망을 불러일으켜 다시는 절망이나 슬픔, 고통 속에 살지 않도록 하십니다.
여러분이 오늘 저녁 고통스럽다면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슬프다면 여러분 속에 예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절망스럽다면 예수님과 멀어져서 그렇습니다.

새 마음을 일으키시는 주님

저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어떻게 교회를 이끌어 가야 할지, 어떻게 어려움을 이겨야 할지 몰라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청년을 만나 그를 다시 살리셔서 절망, 두려움, 근심으로 차있던 과부의 마음에 절망 대신 소망을, 슬픔 대신 기쁨을, 불행 대신 행복을 안겨주었던 것처럼 예수님이 저를 만나셔서 제게 새로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이 행복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소망을 주기 전에 여러분 자신이 소망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신 예수님이 오늘 저녁 여러분의 마음에 새 마음을 일으킬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줄 것입니다. 고통을 이길 만한 힘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절망을 이길 충분한 소망을 가져다 줘서 여러분의 삶을 빛나게 하실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즐거움이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불쌍히 여기사”

나인 성의 과부가 절망 속에 있었을 때, 예수님은 그 여자를 찾아가셨습니다. 그 여자가 착하거나 잘나거나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눅 7:13)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를 위해 일하셨습니다.
오늘 저녁 저는 나환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여수 애향원에서 집회를 했었고 소록도에도 한 번 갔습니다. 많은 나환자촌을 다니면서 절망과 고통에 찌들어 있던 그들이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웃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지금 부족하지만 주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면 절망 속에 있는 사람에게 소망을 주고 병든 자에게 참된 평안을 주며 하늘의 소망이 넘치도록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러한 일에 쓰임받도록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우리를 통해 일하시면

한 가지 바람이 더 있다면 오늘 여기에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더 이상 여러분에게서 나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가실 때 여러분이 그들 마음에 평안과 기쁨, 소망을 주는 사람으로 쓰임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는 일에 쓰임을 받기 위하여 땀과 눈물을 흘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통하여 소망을 갖고 평안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통하여 행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여러분을 통하여 하신다면 여러분은 작은 예수 그리스도가 될 줄 믿습니다.

- 2009 IYF 말레이시아 글로벌캠프 중 1.22 저녁 메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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