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닥친 문제 앞에 두려움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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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닥친 문제 앞에 두려움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을 때
2008.3.2 주일 낮 설교 (요약) - 195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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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장 ‘야이로’ 이야기

저는 말씀을 전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는 오늘 누구에게 말씀을 전했는가? 모든 성도들은 아니더라도 한 명이라도 내 설교를 듣고 믿음을 가졌는가?’ 그러면서 청중 전체가 아닌 한 사람을 생각하며 설교해야겠다는 마음을 자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야이로에대한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교회 형제 자매들이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야이로처럼 예수님을 만나 그 문제에서 벗어나서 기쁨을 가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마음을 가져 보았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야이로에 대한 말씀을 읽어보면 야이로가 믿음을 가지게 되는 방법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 딸이 아프거나 죽게 된 경우라도 예수님이 여러분 마음에 분명히 살아계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씀과 연결지어 생각해 보십시오.

말씀은 알고 있지만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 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막 5:21) 예수님은 야이로가 있는 도시가 아닌 바다 건너편 거라사 지방에 계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달리 회당은 각 지역마다 만들어서 안식일에 말씀을 듣는 곳이기 때문에 회당장인 야이로는 말씀을 수없이 들었을 겁니다. 그는 막연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실제로 믿음을 적용하는 삶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많은 말씀을 들으면서 이해는 하지만 그 말씀이 실제로 우리 마음에 살아 일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학교에서는 과학 실험을 하는데, 학생들은 실험을 통해 알고 있는 이론을 실제로 경험해 봅니다. 예를 들어 산소와 수소가 합쳐지면 물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물을 분해해서 산소와 수소로 나눠보기도 하고 산소와 수소를 결합하여 다시 물이 되는 과정을 실험해 보면 그 이론을 더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론적으로 모든 죄가 사해졌고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다 압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면 내가 이런 저런 일을 당할 때 예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야이로처럼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해결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제가 여러분 앞에서 성경말씀을 전할 때 여러분 중에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목사님의 의견이지 성경은 안 그런 것 같습니다” 하며 성경을 거부할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알고 있지만 왜 성경이 여러분 안에 살아서 역사하지 않습니까?
아담과 하와 이후에 인간들은 ‘자기’라는 마음의 테두리를 형성하고 있고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어미독수리가 새끼독수리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둥지에서 벗어나게 하듯이, 하나님은 자기 생각과 관념 속에 머물러 있는 우리를 이끌어 내는 일을 하십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66권 전체를 통해 인간 생각의 바탕에는 사단이 작용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거기서 이끌어내어 하나님의 영향 아래 두려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야이로의 무남독녀 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딸이 아프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 생각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의사가 치료하면 낫겠지. 약을 먹이면 낫겠지’ 하며 자기 주관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한계를 느낀 후

광주교회에 나오는 전홍준 형제님은 아주 유명한 외과의사였지만 지금은 대체의학자로 변신했습니다. 전 형제님이 지난달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뒤 환자들이 계속 몰려들어서 이제는 몇 번 전화를 해도 통화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분은 ‘신의 손’이라고 일컬을 만큼 외과 수술을 잘하는 스승 밑에서 전수 받아서 많은 환자들을 성공적으로 수술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암에 걸린 환자들이 오면 아무 망설임 없이 수술했는데, 수술을 한 후 항암치료를 하면 호전되는 것 같다가도  몇 년 후에 재발해 죽는 것을 여러 번 보면서 의술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답니다.
그러다 외국 가서 쑥뜸을 배우면서 ‘항암치료 외에 다른 방법으로 치료할 수 없는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대체의학으로 눈을 돌렸는데 이제는 그 방면에서 권위자가 되었습니다.
목사인 저도 한계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 설교를 듣고 기뻐하고 변화되면 참 좋지만, 때로는 어떻게 예수님이 죄를 사해주는지 마음을 쏟아서 말씀을 전해도 말씀을 듣는 분이 “앞으로 죄 사함을 받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면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자꾸 보여 주십니다. 내 힘으로 안 되니까, 그 이상인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게 되고

야이로는 회당장으로서 부족함 없이 살았기 때문에 자기의 마음을 꺾거나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을 구할 일이 없었습니다.  외동딸이 아팠을 때도 처음부터 예수님을 찾았겠습니까? 그냥 좋은 약 쓰면 얼마 지나 나을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병이 점점 심해져서 아이가 죽어가고 있었을 때 야이로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부딪히게 하면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십니다. 쉽게 말해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만나면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하지만, 자신의 방법과 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는 하나님을 향하여 눈이 뜨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테두리 안에 갇혀있을 때는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이론밖에 안 되고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찾게 하기 위하여 어려움과 고난을 주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세계에 부딪히게 하십니다. 그때 자신의 생각의 세계를 벗어나서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만난 ‘야이로’

야이로는 자기 딸이 죽어 가는데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부지런히 예수님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그때 마침 예수님이 바다에서 건너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닷가의 많은 무리 앞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있는데 야이로가 찾아왔습니다.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막 5:22~23)
야이로는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간절하게 일어났습니다. “내 딸이 다 죽어 가는데 머리 위에 손을 얹으셔서 낫게 해주십시오.” 딸이 다 죽어 가지만 길이 없었는데 예수님이 건너 오셨고 그의 딸을 살려주시겠다고 야이로와 같이 가시려고 했기 때문에 그는 무척 기뻤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가시면 우리 딸을 고쳐주시겠구나.  집에 빨리 갔으면 좋겠다.’
여러분, 신앙의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성령만 역사하지 않고 사단도 일을 합니다. 사단은 모든 사람들에게 절망적인 조건을 주어서 예수님을 믿어도 소용이 없는 것처럼, 안 될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마음을 계속 넣어 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일어났다가도 사단이 주는 마음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방법

여러분,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을 버려야 일을 하십니다. 여러분, 거듭난 목사나 거듭나지 않은 목사나 똑같은 성경을 가지고 설교를 합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목사들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설교를 들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열심히 충성하고 기도하고 성경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런 마음들이 일어나면 며칠 동안은 율법을 지키는 것 같고 신앙생활 잘하는 것 같다가도 얼마 못 가서 그 마음이 무너지면 점점 더 나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은 뒤 죄의 유혹에 빠졌을 때,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오셔서 죄의 유혹을 이기게 해 주셔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고, 인간의 노력으로 벗어나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려고 해본 사람들은 몇 번을 시도해도 안 되는 것을 보면서 ‘나로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자신을 포기하고 예수님께 전적으로 맡기게 됩니다. 그러면 애쓰지 않아도 거기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거듭난 교회의 목회자는 마음에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불러일으키고, 거듭나지 아니한 목사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불러일으킵니다.

믿음의 세계로 이끄시려고

만일 불신 없이 믿음만 있는 사람들끼리 도시를 이루어 산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 것입니다. 남이 하는 말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집을 자물쇠로 채우거나 문을 잠그거나 자신을 숨기는 일 없이 서로 마음을 여는, 지금과는 너무 다른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이 세상을 믿음을 갖기 어려운 곳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믿음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의 테두리 안에서자기 자신만을 믿고, 하나님의 세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우리를 거기서 이끌어 내기 위해 자신의 노력과 수고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히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젊을 때는 ‘내가 남들과 경쟁하면 1등은 못해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어’라며 자기를 믿는 마음으로 살다가 나이가 들면서 작은 것 하나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나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그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형성됩니다.

말씀이 능력이 되어

전홍준 형제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은 의학으로 암환자를 수술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암환자를 수술했다고 하면 웃게 되는 시대가 온다는 겁니다. 수술보다 발달된 다른 치료법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알고 있는 그 방법 안에서만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테두리를 벗어나면 하나님께는 무한한 방법과 능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라는 생각의 테두리를 벗어나 하나님과 연결되어 모든 일을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이런저런 일에 부딪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걸 잘 모릅니다.
이제까지 야이로는 웬만한 일은 회당 안에서 다 해결했었는데, 병든 딸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회당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전하지만, 능력은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과 가까워지면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힘이 되어줍니다.  

딸의 죽음을 들은 후

야이로는 예수님을 모시고 가면서 무척 기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시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시면서 “누가 내 몸에 손을 댔느냐?”고 물었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이 빨리 집에 가서 딸을 살려주기를 원했기 때문에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지나가시면 되는데 옷에 손 좀 댔다고 왜 저러실까?’라는 마음을 가졌을 겁니다.  
그 사이 한 여자가 나와서 자신이 열두 해 동안 혈루증에 걸렸는데,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더니 그 병이 다 나았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성경은 몇 줄로 표현되어 있지만 그 여자의 간증이 얼마나 길었겠습니까? 열두 해 동안 병살이 했던 것, 어떤 병원에 갔더니 나을 것 같더니 낫지 않았다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야이로의 마음은 괴로웠습니다. ‘예수님도 알았다고 하시고 가면 되는데 다 듣고 계시네.’ 그 여자의 간증이 다 끝나고 예수님이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실 때 사람들이 야이로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그 이야기를 들은 야이로의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절망하고 포기하게 하여

저는 오늘 아침에 이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들으면 신앙이 금방 다 될 것 같을 겁니다. 그러나 사단은 여러분에게 안 될 것 같은 절망을 줍니다. 야이로의 하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당신 딸이 죽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을 모시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 때가 참 많을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안 된다고 선을 그어버리지 않습니까? ‘내 딸이 죽었어. 이제 끝이야. 예수님이 가도 별 볼일 없어’라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참 많은 사람들이 복 받을 위치에 왔다가 거기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단이 노리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사단이 ‘믿어도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을 넣어줍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라고 한 말은 ‘선생님이 와도 안 됩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어렵거나 절망적인 일이 있을 때, 사단이 ‘이건 안 되겠구나. 망하겠구나. 끝이구나!’라는 마음을 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마음에 이끌림을 받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 포기하지 말고, ‘나는 안 될 것처럼 보이는데 주님, 당신도 그렇습니까?’ 하고 물으며 주의 음성을 기다려 보십시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때 예수님이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라는 하인들의 음성을 들었지만 ‘주님이 날보고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시는구나! 내겐 길이 없으니 주님의 말씀대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해야겠구나!’ 하며 주의 음성을 듣고 그 마음을 예수님께로 옮겼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사단이 ‘이건 말도 안 돼. 불가능한 일이야.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어?’라는 마음을 일으켜 줍니다. 저도 복음을 전하다 어려움이 닥치면 사단이 ‘될 일이 따로 있지. 이건 안 돼’라는 음성을 들려줍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복음의 일을 포기하고 그만 둬야하는데 ‘주님, 주님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이 도우셔도 안 되겠습니까?’ 하고 주님을 구할 때 주님은 전혀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야이로가 ‘주님이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만 한번 믿어보자’ 하며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까지 예수님을 모시고 계속 갔습니다. 이 단계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불가능하더라도

야이로는 주님이 처음에 바다를 건너오셨고 자기 딸을 고쳐주기를 간구했을 때 예수님이 같이 가시는 걸 보면서 모든 일이 다 잘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곧 가는 도중에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발을 내딛으면 다 잘되어 가다가도 어느 시점이 되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를 믿는 믿음으로 달려가지 못하도록 사단이 중간에서 포기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 믿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을 지금도 우리 속에서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성도들이 안 된다고 포기하고 믿음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여러분이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고 다 망한 것 같을 때 여러분은 그냥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 저는 다 망했습니다. 안 될 것 같습니다. 내 생각은 그렇지만 하나님, 당신의 생각도 그렇습니까? 내게 말씀을 보여 주십시오. 내게도 길을 열어주십시오. 당신이 내게 말하는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하며 하나님께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당신의 딸은 죽었어요. 안 돼요”라고 하지만 주님은 “아니야 두려워하지 마. 내가 있어. 믿기만 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의 음성을 들어야

우리 선교회 안에도 어려워만 보이고 안 될 것 같은 일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정말 어떤 때는 ‘IYF 글로벌캠프를 이렇게 힘들게 해야 하나? 굿뉴스코 활동에도 어려움이 많은데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 마하나임대학교에 어려운 일도 생기고 돈도 많이 드는데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대전도집회도 그렇고…’라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굿뉴스코를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을 만납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인도 오리사에서는 힌두교무장단체 때문에 굿뉴스코 단원들 열 명이 죽을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제 가슴을 얼마나 졸였는지 모릅니다. 가나에서 굿뉴스코 활동을 하다가 척추를 다친 문혜진 자매도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 일을 만나면 ‘진짜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 하며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주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주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야이로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 문 앞까지 왔다가 돌아가실 뻔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해서 집 문 앞까지 오신 예수님을 돌려보냈습니까? 여러분,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사단의 음성을 듣지 말고 ‘하나님,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보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은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야이로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고 우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딸이 살아나서 큰 기쁨과 영광을 안겨주는 걸 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어려움이 있어서 안 될 것 같은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갈 때 야이로에게 딸이 살아나는 기쁨을 주신 것처럼 우리 가정도 주님이 일으키시고, 내 마음의 평안도 일으키셔 능력으로 일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 2008.3.2 주일 낮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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