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나아가야
상태바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나아가야
형편에 매였던 사울 VS 하나님을 의지했던 요나단 - 2009.1.18 주일 낮 설교 - 241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9.04.26 2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믿음을 경험하는 한 해

여러분, 저는 지난주에도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이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열두 번 정도 믿음을 경험하면 2009년말에는 믿음이 굉장히 성숙해져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절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09년 한 해 우리 강남교회 형제자매들이 모두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인도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원래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 주셨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물질적인 것, 예를 들어서 구두나 양복이 없을 때, 여비나 음식이 없을 때 하나님이 분명하게 일하시면서 믿음으로 그러한 것들을 얻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전세금을 모두 잃고

1969년에 저는 김천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20만 원으로 전세를 얻었습니다. 집을 얻기 전에 아버지께서 “너, 집 얻을 때 조심해야 한다. 은행에 대출이 많이 있는 집을 전세로 얻으면 나중에 은행에 넘어가서 돈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셨습니다. “너,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계약하지 말고 나한테 말해라. 내가 그 집 등기부등본을 열람해 볼 테니 괜찮으면 계약하거라.”
그때는 제가 조금 건방졌습니다. “아버지, 제가 어린애입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며 큰소리치고 계약을 했는데, 은행에 넘어가기 직전에 있는 집을 계약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까 동네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하고 있어서 나가 봤더니 우리 집 주인이 은행에 집을 다 넘기고 야반도주를 했다는 겁니다. 그 후 은행 지점장님이 찾아와서 저에게 “이 집은 오늘부터 은행 것이니 집을 비워줘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집을 비워주고 다른 집에 이사 가야 하는데 돈이 한 푼도 없어서 정말 난감했습니다.

집을 비워야 하는데…

저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먼저 집 주인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괘씸하고 분해서 경찰서에 찾아가 제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도망간 사람을 잡는다는 게 너무 막막했습니다. 그해 가을부터 시작해서 다음해 봄까지 지점장님이 틈틈이 찾아와서 집을 내놓아야 한다고 하니 단돈 만 원도 없는 저는 정말 암담했습니다.
‘하나님, 하늘나라에 가면 황금보석 찬란한 제 집이 있을 텐데 저는 거기서 살 때 문패 없어도 좋고, 담장 무너져도 좋으니까 그거 떼어다가 집 한 채 지어주십시오’ 하면서 하나님께 항의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 다리 밑에 천막 쳐놓고 “하나님 아들이 사는 집”이라고 써 붙이면 하나님이 망신당하겠지요. 망신 안 당하시려면 집 주세요’ 하며 억지도 부렸다가 기도도해 보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나가려는데 지점장님이 오셨습니다. 제가 “지점장님, 미안하지만 아직 이사 갈 준비가 안 되어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집회에 가야 합니다” 했더니 그분이 저를 따라오셔서 대구 가는 버스를 같이 탔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지점장님한테 제가 예수 믿는다는 말을 안 했습니다. 불리하면 억지를 부리려고 했는데 예수 믿는다고 하면 억지 부리기 곤란하잖아요. 그때 제게 ‘이 문제를 주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다면 주님을 말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점장님,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우리 주인한테 보고를 소상히 드렸지만 아직 주인으로부터 기별이 없습니다.” “박형, 주인이 계셨어요? 그분이 누구며 어디 계십니까?” “하늘나라 계시는 예수님입니다” 하면서 그동안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도우셨는지 차근차근 말했습니다. 그분은 “박형, 나는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좀 더 열심히 기도해서 빨리 해결해 주길 바랍니다” 하고는 왜관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저는 늘 집회 다니느라 바빴는데 한 번씩 집에 오면 집 문제 때문에 마음이 눌렸습니다. 별별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기도했지만 기도하고 난 후에 인간적인 방법을 찾느라 눈을 이리저리 굴렸는데, 그때는 다른 것들에 대해 눈이 감기고 귀가 막히면서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계속 기도하다 보니 기도만 하지 말고 집을 구하러 나가보자는 생각이 들어 집을 구하러 나갔는데, 얼마 안 가서 이층집이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한 달 후, 그날 아침에도 기도를 하다가 그전에 봤던 그 집이 어떠냐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하나님의 음성 같았습니다. ̒값도 싸고 위치가 좋아서 이미 나갔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가보니 세놓는다는 안내 표지가 아직 붙어 있었습니다. 문을 열어 보니 아이들밖에 없어서 저녁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극적으로 집을 얻고

저는 하나님께서 이 집을 주시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주인한테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도시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러 왔습니다만, 시민 한 사람이 제게 해를 끼쳤습니다. 20만 원 전세 든 집을 은행에 넘기고 도망가서 저는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이 집을 주실 것 같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 집을 저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집 주인이 5분 동안 눈을 감고 생각하시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시내 지좌교회의 장로올시다. 하나님이 국도변에 이렇게 큰 건물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쓰신다는데 어떻게 거절하겠습니까? 쓰십시오.”
제 과거를 돌아보면 인간적인 면으로 전혀 불가능한 일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된 경우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가 처음부터 믿음이 있었다기보다 그 일들을 두고 하나님께 기도는 했지만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발버둥쳤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실패하고 다른 길이 없을 때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면 그때마다 하나님이 정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사울이 승리한 까닭은

사무엘상에는 사울 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암나귀를 찾으러 나갔다가 사무엘을 만나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왕이 되었지만 여전히 들에 나가 일을 했습니다.
그 후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에 쳐들어왔는데 야베스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우리와 언약하자. 그러면 우리가 당신을 섬기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나하스는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하리라”고 하며 이스라엘을 모욕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울이 화가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암몬사람과 전쟁을 했습니다. 암몬 사람 나하스는 전쟁에 익숙한 왕이었지만, 사울은 왕이 된 지 얼마 안 되었고 왕이 된 뒤에도 여전히 농사를 짓던 사람이라 군인을 다스려본 경험도 없었지만 하나님이 사울과 함께하셔서 승리하게 해주셨습니다.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삼상 10:6~7) 사울이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될 때 사무엘이 한 말인데 이 말처럼 사울이 암몬 사람과 싸울 때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년에 이스라엘 사람 삼천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산에 있게 하고 일천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삼상 13:1~2) 처음엔 사울에게 군사가 없었지만 왕권이 굳어지면서 그가 이끄는 군인이 생겼습니다.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사울의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가증히 여김이 되었다 함을 듣고 길갈로 모여 사울을 좇으니라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여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서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은 떨더라.”(삼상 13:3~7)
사울의 군인들은 몇 천 명에 불과한데 블레셋 군인들은 병거가 삼만, 마병이 육천, 보병이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에게 자기 힘을 키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쟁하는 법을 가르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힘입어 전쟁에 나가면 분명히 승리할 수 있지만 형편만 보고 하나님을 보는 눈이 없으니까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의와 거룩함으로

여러분, 우리 교회와 다른 교회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한국의 참 많은 교회에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못 박혀 죽으셨다고 하면서도 죄를 씻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우리의 죄가 씻어진 것을 믿는 믿음을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의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내 행실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와 거룩함이 내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과 영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겁니다.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우리의 힘이 아닌,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힘으로 문제를 처리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있는 사람에게 임하실 수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모든 죄를 눈처럼 희게 씻으시고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로 말미암아 사느냐 아니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느냐가 신앙의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해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삼상 13:8) 사울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는 걸 믿지 못하고 적은 군인으로 전쟁하는 게 부담스러우니까 전쟁은 하지 않고 사무엘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레를 기다려도 사무엘이 오지 않고 백성들이 흩어지니까 사울은 번제만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왔습니다.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삼상 13:10) 사무엘이 번제 드리는 것을 보고 사울을 꾸짖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데 왜 제사만 드리고 있습니까?” 제사 드리는 게 나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을 것 같으니까 자꾸 제사만 드리고 있는 걸 꾸짖었던 겁니다.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삼상 13:12~13)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건 우리의 마음도 이렇다는 걸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서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한 백성을 계수하니 육백 명 가량이라.”(삼상 13:15) 사울은 사무엘이 와서 자신을 도와줄 줄 알았는데 전혀 도와주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내가 가거든 믿음으로 한번 부딪쳐 봐!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실 거야”라는 뜻이지요. 그뿐 아니라 군사들도 다 떠나고 육백 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그들과 함께한 백성은 베냐민 게바에 있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진 쳤더니 노략군들이 삼 대로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나와서 한 대는 오브라 길로 말미암아 수알 땅에 이르렀고 한 대는 벧호론 길로 향하였고 한 대는 광야를 향한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지경 길로 향하였더라.”(삼상 13:16~18) 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노략군을 보내 자꾸 괴롭혔습니다.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어졌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온 이스라엘 사람이 각기 보습(농기구)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무딘 날을 날카롭게 만들다) 블레셋 사람에게로 내려갔었는데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으니라 블레셋 사람의 부대가 나와서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삼상 13:19~23) 하나님은 계속해서 사울에게 어려움을 주면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가서 부딪쳐. 내가 너를 도와줄게. 인간적인 방법을 쓰면 계속 어려운 거야” 하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에서 벗어나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당신을 나타내시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못 믿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고 하니까 담대하지 못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이런저런 어려움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어떤 일을 하는 데는 아주 서툴고 경험이 없는 반면 인간의 방법으로 일을 하는 데는 익숙합니다. 가능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방법이나 능력으로 돈도 벌고 일을 처리하려고 하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새끼 독수리는 둥지 안에서 어미 독수리가 물어다 주는 것만 먹고 살려고 하지 나는 법을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에게 ‘내가 너에게 먹을 것을 갖다 줄 수는 있어.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네가 나는 거야. 너도 나처럼 날아서 먹이를 취해야 돼. 둥지에서 나와, 위험하지 않아. 날아봐’ 하며 나는 법을 가르칩니다. 우리도 새끼 독수리처럼 믿음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냥 내 방법으로 비비적거리며 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요나단의 믿음

오늘 읽은 사무엘상 14장을 보면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마음에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요나단은 왕자로서 나라가 다 망한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왕이지만 군인들이 다 도망가고 육백 명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을 본 요나단이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내가 이렇게 앉아있나? 적진에 가보자, 하나님이 일하실 거다’라는 생각이 들자 병기 든 자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블레셋 사람이 보이도록 있다가 블레셋 사람이 올라오라 하면 올라가자. 하나님이 도우실 표징이다.”
그들이 굴에서 나오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야, 이리 올라와.” 요나단이 “하나님이 우리를 붙이시나보다. 올라가자” 하며 양쪽에 있는 큰 바위산 두 개를 잡고 올라가려니까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하나님이 계셔, 승리케 하실 거야’ 하며 붙잡고 올라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땅이 진동하더니 블레셋 사람이 벌벌 떨면서 쓰러지는데 그들이 칼로 블레셋 사람을 스무 명이나 죽였습니다.

버림받은 사울

하나님은 만져지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여러분 안에 계신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달려갈 때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셔서 역사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믿음으로 이끌었지만 사울이 믿음이 아닌 인간적인 방법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하나님은 결국 사울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선택하시고는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부분에 합한 자입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달려갔습니다. 골리앗 앞에서도 “하나님이 너를 오늘 죽이게 할 거야” 하며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었기 때문에 담대했습니다.

믿음으로 담대하게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처럼 담대하게 사십시오. 내 안에 주님이 계시는 걸 믿는 마음으로 행하십시오.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여러분의 힘이나 지혜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내 안에 계신 주님이 해결하실 것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고 실수가 많지만 주님이 우리 안에 살아서 능력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자신을 보면서 두려워하고 주저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일하십니다. 그걸 올 한 해 동안 열두 번만 경험하면 여러분은 어떤 문제가 일어나든지 믿음으로 담대하게 행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근심이 있습니까? 더 이상 근심과 사귀지 마십시오. ‘난 근심과 안 사귈 거야. 근심은 예수님이 다 책임지실거야. 예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난 승리자야’ 하는 믿음으로 살 때 여러분은 세계만방을 복음으로 채우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 2009.1.18 주일 낮 설교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