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예수님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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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예수님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2008.1.23 호주 글로벌캠프 저녁 설교 - 191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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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표현한 요한복음

요한복음은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그린 성경입니다. 여러분은 엑스레이로 자신의 위장이나 갈비뼈는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 여러분의 마음을 읽어 본 적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마음이 외롭거나 두렵거나 슬픈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여러분의 마음에 어둠이 비췹니까?
그 까닭을 성경은 우리에게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그냥 성경을 읽을 때는 재미없는 책이라 생각하여 잠이 올지 모르지만, 읽다 보면 ‘이건 진짜 내 마음과 같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놀랍게 변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은 두 가지의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 가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 가셔서 성전 안에 있는 소와 양과 비둘기를 내쫓은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하나님이 이 지구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마음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과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두 개의 건물을 그리셨습니다. 그 두 건물은 인간의 두 마음입니다. 갈릴리 가나에 있는 혼인 잔칫집에는 기쁨의 소리가 넘쳐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사람의 마음을 그린 것입니다. 반대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은 예수님이 없는 사람의 마음을 그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난 뒤

저는 1962년에 예수님을 마음에 모셨습니다. 제가 너무 추하고 더럽고 못났기 때문에 마음을 열면 다른 사람이 제 마음의 더러움과 부족함을 보고 다 저를 멸시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닫고 잘나고 기쁘고 착하고 행복한 척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정말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예수님을 만나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가 추하고 더럽고 연약하고 부족한 걸 알면서도 저를 멸시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셨습니다. 꼭꼭 닫혔던 제 마음을 예수님이 여신 뒤에 제 마음은 가볍고 행복하고 기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삶 속에 소망이 넘쳤습니다.
저는 소망 없이 사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오늘이 어려워도 내일이 오늘보다 좋아질 수 있다면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면으로 봐도 내일이 오늘보다 좋아질 가망이 없는 저에게 ‘소망’이란 것은 단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고 난 뒤 사랑과 기쁨,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그것을 맛보고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무척 감사합니다.

주님을 소개하는 삶

그 이후로 저는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가 누구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임하면 그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대구에서 사역을 할 때 우리 교회에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여학생이 어느 날 학교  친구를 데려왔습니다. 제가 그 여학생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 여학생이 구원을 받고 무척 기뻐하면서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날 그 여학생이 자기가 나가는 교회의 학생회 회장이라면서 남학생을 한 명 데려왔는데, 그 학생에게 또 복음을 전해서 그 남학생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후 그 남학생이 저에게 구원받기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얼마 전 기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느 날 밤에 자고 있는데 어머니가 깨우면서 아버지의 영혼을 절로 보내자고 해서 절에 따라갔습니다. 그곳에 모인 친척들이 불상 앞에 모두 절을 했습니다. 그는 “엄마, 난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절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어느새 다들 허리를 굽히고 절을 하기 시작하자 자기도 할 수 없이 따라서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불상에게 절한 그 죄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음에 들어오신 이후에는, 불상 앞에서 절한 악하고 더러운 죄를 주님이 다 씻어주었기 때문에 그가 죄에서 벗어나 기뻐하면서 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변화된 한 부인

2주 전에 저는 김천의 대덕수양관에서 한 주간 수양회 저녁말씀을 전했는데, 어느 장로교회 목사님의 아내를 만나 신앙상담을 했습니다. 그 당시 그 부인은 많은 고통과 괴로움 때문에 하룻밤에 잠을 15분밖에 자지 못하는 상태라 정신이 굉장히 약해져 있었습니다. 그 부인을 그냥 두면 며칠 가지 않아서 귀신들리겠다는 생각이 들어 설교를 마치고 그 부인과 상담을 했습니다.
저는 그 부인에게 열심히 기도를 하거나 성경을 읽거나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부인은 벌써 깊은 죄 속에서 갈등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 부인에게 예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셨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부인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다시 만났을 때 저는 어제 저녁에 잠을 좀 잤는지 물었습니다. 그 부인은 굉장히 평안한 얼굴로 “목사님, 어제 저녁에 세 시간이나 잠을 잤는데, 무척 깊고 달게 잤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며칠 후에 그 남편인 목사님이 찾아와서는 변화된 부인을 보고 제게 무척 고마워했습니다.

사단의 생각을 따라가면

몇 해 전 수양회에서 어떤 귀신들린 부인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사단은 우리를 귀신들리게 하려고 처음부터 계획을 세워서 우리를 이끌어 가는데, 제일 먼저 아무 생각 없이 육신의 욕망을 따라서 살도록 이끌어 갑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단순하게 사단이 주는 생각에 잡혀 욕망이나 정욕이나 쾌락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다 보면 문제에 부닥치고 어려움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굉장히 많은 번민을 하게 되고 마음도 점점 약해집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에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며칠 동안 계속 고민하다 보면 마음이 굉장히 약해집니다. 마음이 약해지면 매사가 귀찮아집니다. 그때 사단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럴 때 모든 게 귀찮으니까  “될 대로 돼라” 하고 사단을 받아들이면  귀신들리게 됩니다.  
제가 그 귀신들린 부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인은 머리를 흔들면서 기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부인을 따라다니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귀신에게서 벗어나

기도를 하면서 그 부인과 가족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ʻ이런 여자를 아내로 데리고 있는 남편의 마음은 어떨까? 다른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가 따뜻하게 맞아주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는데, 엄마가 미쳐있는 모습을 보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ʼ 그런 생각이 들자 그날 하나님 앞에 더욱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부인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린 다음 월요일에 다시 대덕수양관에 올라갔는데, 그 부인이 전처럼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잠잠하게 기둥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부인 곁에 가서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 부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남편과 아이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구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난 뒤에는 수양회의 이런저런 일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수양회 마지막 날에 제 옆에서 주무시던 다른 목사님이 저한테 “목사님, 우리 교회에서 귀신들린 분이 왔는데, 귀신이 떠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라고 해서 그 부인이 생각났습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생겼는지 물었더니 바로 제가 기도했던 그 부인이었습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말에 그 부인을 보고 싶었지만 다들 자고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그 부인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부인이 옷을 깨끗하게 입고 주일에 교회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오시면 하나님은 우리를 누르고 있는 무거운 짐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에 평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에 생기가 솟아나기 시작하면서 소망과 기쁨이 일어납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을 생각해 보면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포도주가 모자랐지만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있는 사람과 예수님이 없는 사람의 차이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예수님이 그의 주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자기의 능력으로 일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히면 금방 넘어지고 좌절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구원을 받고 10년이 지나서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예전의 제가 아닌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육신의 욕망에 끌려 다녔지만 어느 누구도 거기서 저를 해방시켜 줄 자가 없어서 육신의 종 된 삶을 살았습니다. 제가 걸어간 발자취에는 많은 어려움과 문제, 고통과 절망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제가 저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구원의 의미

저는 많은 대학생에게 십계명을 지키고 주기도문을 외우고 사도신경을 외우는 기독교인이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 없이는 여러분이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에 매이면 여러분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지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지옥에 가지 않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오면 다 구원받고 천국 간다고 참 많은 사람을 속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고 헌금하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그러면 구원을 받는 거라고 속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의 죄를 눈처럼 희게 씻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죄를 씻을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힘을 입어서 죄에서 해방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시지 아니하면 어떤 인생의 문제가 닥치든지 자신이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이 무슨 일을 만나든지 여러분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문제가 됩니다.
저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돕는 걸 봅니다. 저희가 굿뉴스코로 많은 대학생들을 전세계로 보내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든지 하나님이 그들을 지키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요한복음 2장에는 두 개의 집이 있는데, 또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성전은 밖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소와 양과 비둘기가 똥과 오줌을 싸고 소리를 지르는 더럽고 시끄럽고 어두침침한 장소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마음에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그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성전의 겉모양처럼 화려하고 멋져 보이지만 그 속에는 소와 양이 소리를 지르고 비둘기가 날개를 퍼덕이고 똥과 오줌을 싸듯이, 그 마음속은 죄로 말미암아 갖가지 악하고 추한 것으로 더러워지고 어두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나아만 장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아만 장군은 지위, 권세, 능력, 부 등 인간이 가지기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왕하 5:1)고 하셨습니다.  
나아만은 군대 장관으로서 화려한 군복을 입고 훈장을 차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무척  화려하지만, 그 옷을 벗겨보면 문둥병으로 몸이 썩어 들어가 고름이 나오고 악한 냄새가 나는 모양을 성경은 그렸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사람의 마음은 겉으로는 깨끗하고 진실하고 선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갖가지 더러운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여러분, 누가 우리 인간의 마음을 압니까?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져 있는 것을 정확하게 아셨지만 주님은 추하고 더러운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우리 마음 안에 들어와 사시기 위하여, 우리의 더러운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피를 흘리고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시면서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들어와 거하시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는 정말 더럽고 추한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깨끗합니다. 죄를 짓지 않아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저를 깨끗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가 얼마나 깨끗한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제 안에 거하시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칫집처럼 제 안에 예수님이 계시니까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평안과 기쁨, 행복이 제 마음에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굿뉴스코 학생 대부분이 다 그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건 제가 하는 게 아닙니다. IYF를 통해 그냥 예수님을 소개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들어가시면서 하나님이 놀랍게 그들을 바꾸셨습니다.

구원받은 후 울음을

제가 지리산에서 집회할 때였습니다. 오전, 오후로 말씀을 전했는데, 오후 쉬는 시간에 제가 있는 텐트에 많은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이 와서 신앙상담을 했습니다.
상담을 다 마치고 저녁 먹을 때가 가까워 바람을 쐬려고 일어서는데, 아주 젊은 부인이 찾아와서 또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사했는지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10장 17절에 있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그 말씀을 읽어줬는데 그 부인이 갑자기 바닥에 푹 엎드러지더니 소리를 내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부인이 왜 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부인이 어깨를 들먹거리며 한참 울기에 제가 좀 그만 울라고 했지만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고 한참 있다 들어갔는데 그때까지 울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시 그만 울라고 했더니 그 부인이 울음을 멈추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잠시 행복했지만

그 부인은 중학생 때 어머니를 잃어 새엄마가 생겼는데, 새엄마도 자기와 나이가 같은 딸을 데리고 왔답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두 사람이 다 중학교에 다닐 형편이 못되어 자기는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새엄마가 데리고 온 딸은 학교를 못 다녔습니다. 자기 딸을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는 새엄마의 마음을 알고 나니 그냥 집에 있다가는 새엄마한테 미움을 받을 것 같아서 공납금을 가지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마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사창가의 포주가 중학생밖에 안 된 그 어린 여학생을 잡아서 사창가로 데려갔습니다. 아무 소망 없이 창녀로 여러 해를 보내던 중 거기서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자기 같은 더러운 창녀를 사랑해 주는 남자가 너무 고마워서 그 남자와 사랑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가 찾아와서는 아무 말도 말고 그냥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나환자촌이었습니다. 그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시부모가 나환자이긴 했지만 그 부인을 무척 아껴주었습니다. 그 부인은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기억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그 행복이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시부모들이 아기를 많이 기다렸지만 결혼한 지 2년이 지나도 아기를 갖지 못하자,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그 여자가 창녀였기 때문에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소문이 동네에 다 퍼졌습니다. 그 이후 아무도 자기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사랑스러워하던 시부모도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그 부인이 우물가에 무얼 씻으러 가면 여자들이 모여 있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부인이 돌아가면 갑자기 “와” 하고 웃었습니다.
그 부인은 여러 번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내 과거를 지울 수만 있다면….’ 그때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도 다른 사람들이 갈 때 떳떳이 가는 게 아니었습니다. 예배가 한참 시작된 후 뒤에 가서 살짝 앉아 있다가 예배를 마치기 전에 나오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 부인이 교회에 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리산 집회에 와서 그날 저에게 복음을 들었습니다.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듣고 그 부인은 굉장히 기뻤습니다. 자기가  과거에 지은 죄 때문에 누구한테도 얼굴을 들 수 없었는데, 예수님은 그 죄를 기억지 않으시고 눈처럼 희게 씻었다고 하니 무척 행복해 했습니다. 그 뒤 저는 한 번도 그 부인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변화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

몇 달 후 그 영천교회에 가서 집회를 했는데, 설교를 마친 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섞여 나가던 중 누군가 제 소매를 당겼습니다. 쳐다보니 몇 달 전 지리산 집회에서 복음을 전했던 그 부인이었습니다. 그 부인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저녁에 처음으로 제 남편이 교회에 왔어요.”
그 얼굴에는 더 이상 어두운 그늘이 없습니다. 그 얼굴은 천사처럼 빛나고 있었고, 그 눈빛에는 소망이 가득 차 있었고, 그 마음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치 지우개로 칠판에 있는 글씨를 지우듯이 주님이 그 부인의 모든 더러운 삶을 지우셨습니다.  “이제 나는 너의 죄, 너의 악, 너의 과거를 기억지 않아. 이제 다 씻어지고 지워졌어.” 그 말 한마디가 그 여자의 마음에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 후 다시는 그 부인을 만나지 못했지만 지금도 주님 안에서 기뻐하며 살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가 살인강도든 도둑이든 창녀든 누구든지 소망을 얻고 새 삶을 얻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 2008.1.23 호주 글로벌캠프 저녁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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