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을 섬기는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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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을 섬기는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 돼야
2008.1.6 주일  낮 설교(요약) - 18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8.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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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구원을 받고

오늘은 제 친구가 얼마 전에   구원받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친구들 모임이 있을 때면 점심이나 같이 먹고 그냥 조용히 있다가 왔는데, 친구들을 한 번씩 만날 때마다 제 속에 있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싶어졌습니다.
어느 날 어떤 친구가 저녁식사를 같이하자고 해서 너댓 명이 모여 식사를 한 뒤, 그 친구의 아파트로 차를 마시러 갔습니다. 그 친구가 “박 목사, 자넬 많이 기다렸어. 우리 집에는 화가 많고 재난이 많은데 우리 집을 위해 축복 기도 좀 해 주게” 하기에 ‘이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기회다’ 싶어서 성경을 펴놓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이 다 마음을 열면서 자기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중 한 친구에게는 제가 쓴  ⌈죄사함⋅거듭남의 비밀⌋을 한 권 줬는데, 그 뒤에 그 친구가 “박 목사, 내가 호텔 택시 운전을 하는데 손님을 기다릴 때마다 이 책을 읽었어. 책을 읽다 보니 너무 신기하게도 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술을 마시려고 하면 옛날에 술 마시고 나쁜 짓 하고 실수한 게 막 떠올라 도저히 마실 수 없어 술을 끊었어”라는 겁니다.
그 친구와 지난 월요일에 수양회를 갔습니다. 다음 날 복음반에 갔다 오더니 “난 죄가 사해졌다는 건 알았지만 죄 사함 받고 나서 또 죄를 지으면 어떡해야 할지 몰랐는데, 여기 와서 확실히 알았다”며 마음을 열고 변한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무척 신기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으면

한번은 어느 회사 회장님에게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분은 우리 교회 목사님이 죄인이라고 하니까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죄인이냐’며 막 화를 내셨다는 분입니다. 그런 분에게 죄인이라는 것을 깨우쳐 줘야 하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였습니다.
제가 죄 사함 받고 거듭나게 된  간증을 그분에게 하니까, “목사님, 젊을 때 아이들이 다 그러는 거지 요. 그건 죄도 아니에요. 죄는 내가 더 많아요” 하시는 겁니다.
6.25 전쟁 당시 보병 소대장으로 있으면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한 전투 중에 자신의 판단 부족으로 자기 부하가 많이 죽게 됐고,  제대 후 아버지 사업을 도와 장로이신 아버지 대신 당신이 거래처 술대접도 하면서 죄를 많이 지었답니다.
그분이 자신의 죄를 깨달으니까 죄사함에 관해 이야기하기가 아주 쉬워졌습니다.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죄가 어떻게 씻어지며 죄가 기억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어떻게 그 죄를 처리했는지를 쭉 이야기했는데, 그분이 너무너무 기뻐하며 감사해 하였습니다.

추락사고 소식을 들은 후

저는 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로 있지만 제가 교회에서 뭔가 하려고 결심이나 노력을 해서 되어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로 일해 주시는 게 정말 신기합니다.
특히, 작년 여름에 문혜진 자매가 가나 예배당 공사 중에 떨어져 척추뼈가 부러졌는데, 수술을 받은 후 지금은 중국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중국에 있는 혜진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혜진아, 너 지금 어떠냐?” “목사님, 저 오늘 걷기 시작했어요.” “뭐야, 걸었어?” “네, 목사님. 처음으로 발을 한 발자국 내디뎠어요.” 골반 쪽에는 힘이 있지만 무릎 쪽에 힘이 없어서 특수 장치를 한 채 한 발자국 떼었다는 겁니다.
혜진이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그날 아침을 아직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새벽에 잠이 안 와서 기도를 드리는데, 제 마음에 꼭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로마서 8장 37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  37)
이 말씀이 제 마음속에 떠오르더니 마치 손바닥만한 구름이 온 하늘을 덮은 것처럼 ‘지금까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났 을 때 사랑하시는 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넉넉히 이겼다! 앞으로 이길 거다!’ 하며 제 마음이 충만하였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일이야!”  

그때부터 우리가 주의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척추를 다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수술을 해야 돼서 병원에 갔는데 요추 1번 뼈가 부러진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의사에게 혜진이의  수술을 맡길 수 없어서 빨리 혜진이를 한국으로 데려오려고 애썼습니다. 아랍 에미리트 항공사를 통해야만 하는데 두바이에서 14시간 머무르는 동안 혜진이가 기다릴 장소를 구할 수 없다고 그 항공사에서 우리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결정한 것이  ‘논스톱으로 독일에 가서 수술을 하자!’였습니다. 가나에서 독일까지 일반 항공료가 한 좌석에 600불인데 혜진이를 눕혀 태워야 하므로 여러 좌석이 필요하여 18,000불이나 지불하고 독일로 갔습니다. 매우 신기하게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그 병원이 전세계에서 척추수술을 제일 잘하는 병원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이건 하나님의 일이다! 내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의사들은 혜진이가 한평생 누워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 한 번도 혜진이가 걷지 못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혜진이는 배꼽 아래의 모든 신경이 마비되어 다리를 찔러도 두드려도 감각이 없는데 중국에서 온 박 교수님에게 ‘복침’을 맞으면서 지금은 신경이 점점 살아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대소변을 자유롭게 못 보지만 그날은 한 발자국을 떼었다는 소식에 제 마음이 정말 감격스럽고 뭉클해졌습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같아져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 모두에게 당신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이루시기를 정말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하거나 성경을 많이 읽고 금식하는 등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마음이 같아져야 합니다.
방송국에서 보내는 방송파와 텔레비전 주파수만 맞으면 그 방송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마음 안에 일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하나되어서 흘러야 합니다. 그때 내가 죄인이든, 무지한 사람이든, 악한 인간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역사가 그 마음에 일어납니다.
그러면 나는 악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나를 선하게 만들고, 나는 가난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서 나를 부유케 하시고, 내 죄는 정말 크지만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들어 와서 나를 깨끗케 하시고, 나는 병든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영이 내게 와서 내 병을 고치는 일을 하십니다.

마음의 경로를 통해서

어느 날, 예수님께서 눈먼 소경을 만났습니다. 눈먼 소경이 예수님에게 말합니다. “주여, 내가 보기를 원합니다.” “네가 믿느냐?” “예,믿습니다.” “믿음대로 되리라.” 그러니까 소경의 눈이 뜨였습니다.
또 한번은 예수님이 길을 가는데, 어떤 여자가 와서 예수님 뒤에서 옷자락을 손으로 만졌습니다. 그 여자는 12년 동안 혈루증 때문에 고통을 받으면서 그 병을 치료하려고 많은 의원을 찾아 다녔지만, 병은 점점 더 심해지고 돈도 다 떨어졌습니다.
그때 그 여자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서 ‘그런 능력의 예수님이라면 가서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내 병이 낫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사람들이 “웬 여자가 저러고 있냐?”고 말해도 상관 않고  막 비집고 들어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손으로 만지는 순간 혈루증에서 깨끗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이 뒤돌아섰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댔느냐?” “사람들이 이렇게 밀려오는데 누가 손을 댔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니야, 어떤 여자가 내 옷자락에 손을 댔어.”
여러분, 무엇이 그 여자의 병을 고쳤습니까? 수돗물은 수도 파이프를 통해서, 전기는 전선을 통해서 들어오듯이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들어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마음 안에서 일을 하려면 ‘마음’의 경로를 통해 들어와야 합니다.

전기는 전선을 통해 흐르듯

이것은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 되는 과정인데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면서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38년 된 병자가 “저는 못 걸어요. 다리가 다 말랐어요. 아무리 해도 안 돼요” 한다면 예수님의 마음과 다른 겁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갈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마음과 일어나 걸어갈 수 없다는 내 마음은 다른 겁니다. 마음이 다르니까 역사가 안 일어납니다.
그러나 ‘난 걸어갈 수 없는데, 정말 다리가 말랐는데, 내 다리는 나무토막과 같은데, 예수님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다면 나는 걸어갈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병자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가 됩니다.
전선이 연결되어 전기가 통하는 것같이 그 연결된 마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가서 38년 된 병자가 걸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일을 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할 때  

여러분, 여기는 지하 2층입니다. 이곳에 전파가 많이 있어서 휴대폰으로 전화하면 전화벨이 울리고 라디오를 틀면 방송이 나오는데 이것은 남산 송신소에서 전파를 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파가 와도 그 전파를 받아들일 수신 장치나 라디오가 없으면 방송을 못 듣고, 전파를 받아들일 전화기가 없으면 전화통화를 못하고, 텔레비전이 없으면 우리는 TV를 보지 못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이 예배당에 가득 차 있지만 여러분과 하나님이 연결되는 통로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일하실 수 없습니다. 사단이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을 붙잡고 주님과 전혀 다른 마음의 세계를 형성해 놨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마음의 세계가 형성되어 있어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고 예수님과 마음을 같이하려 합니다. 그래서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나를 세워놓고 예수님더러 나에게 맞추라면 평생 가도 예수님과 마음이 맞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평생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義’밖에 없어

자신이 참 무익하고 악하고 더러운 인간임을 깨닫고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여러분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그 마음의 연결 통로를 통해서 여러분에게는  평안이나 능력이 없어도 예수님의 평안이나 능력이 여러분의 마음에 흘러 들어갑니다.
자신이 선을 행해서 선한 사람이 되려는 사람은 마치 석유 한 방울도 안 나오는 나라에서 석유를 캐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義’가 내게로 와서 내가 의롭게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행하는 의, 내가 행하는 거룩함은 사람들 보기에 거룩하고 의롭게 보일는지 몰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모두 추합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온전한 ‘義’는 예수 그리스도의  ‘義’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주여, 내가 선지자 노릇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나는 널 몰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자기가 한 것을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義’로 의인 되고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의와 거룩함을 세우려고 합니다. 자기가 기도도 잘하고 선도 잘 행할 때는 하나님께 떳떳하게 나가다가 부부싸움 하고 나서 욕하고 죄를 지으면 너무 부끄러워 하나님께 못 나가는 겁니다. 그는 자기의 의, 자기의 선, 자기의 방법을 버리지 않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거듭나기 전에 저는 제가 선을 행하면 천국 가는 줄 알았습니다. 선을 행하려고 애쓰고,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착해지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제가 요만한 선을 행하면 이만한 악을 행하게 됩니다. 그때 제가 하는 모든 것은 악하고 더럽고 추하고 가증하여 내세울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제 모든 것을 다 버리니까 예수님의 ‘義’가 제 속에 임하고, 제가 예수님의 ‘義’를 가지고 있으니까 하나님 앞에 아주 떳떳하고 당당해졌습니다. 나는 추하고 더럽고 악한데 예수님의 ‘義’를 가지니까 제가 의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나의 추하고 더럽고 악하고 거짓 된 것을 다 싸서 주님께 드리고 대신 예수님의 깨끗함과 거룩함을 믿음으로 내 마음에 받아들였습니다.

두 가지 신앙의 길

신앙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자신이 죄를 안 짓고 의로워져서 천국 가려는 사람이 있고, 자신이 죄악뿐인 걸 깨닫고 자기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義’를 가져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번은 어떤 선장을 만나서 이야기했는데 그분은 천국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제 선실의 침대가 넓은 이유는 파도 치는 방향에 맞추어서 잠을 자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게 어렵게 고생해서 번 돈으로 십일조를 냅니다. 목사님, 제가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그 돈을 내겠습니까?” 그분은 자신이 십일조를 내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하늘나라에 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을 볼 때 너무 불쌍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더럽고 우리는 죄악 덩어리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잘한 게 있어서 그 잘한 것 때문에 예수님의 ‘義’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義’와 선을 받아들이려면 자신의 의와 선을 다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義’와 우리의 의를 섞어서는 절대로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몰라서

마태복음 마지막 부분에 포도원 농부들에 대한 예화가 있습니다. 그 농부들이 마지막에 진멸 당하는데 결국 그들은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자기들에게 세로 내어준 그 마음을 모르고, 주인의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이 자기들 것이 되겠다는 생각 때문에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 마음의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더듬어 보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자기 방법대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사단의 이끌림을 받으면서 우리의 악한 생각을 따라 우리의 방법대로 살아왔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도둑질, 살인, 간음 등의 죄를 짓고 그 죄의 결과를 뉘우쳐야 하는 게 아니라 사단과 같이 살아오면서 우리 생각이 다 더럽고 추한 것을 알고 ‘나 자신’을 벗어버리고 부인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관념, 경험,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들어올 때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에 부딪혀서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 그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드는 신앙

성경을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려면 자기 마음을 꺾어야 하는데 그들은 자기 생각을 안 버리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섬기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에게 절하고 연보하고 기도해도 이런 경우엔 하나님은 안 받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꺾고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게 싫으니까 다른 건 다 해도 마음 꺾는 일은 절대로 안 합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형식적으로 기도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예배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앞에 나오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꺾고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만든 금송아지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금송아지를 웃도록 만들면 내가 춤을 춰도, 죄를 지어도, 살인을 해도 금송아지는 웃습니다. 인간은 그런 식의 하나님을 좋아하니까 하나님과 다른 우상을 섬기면서 자기 마음에 맞는 하나님만을 섬기려고 하는 겁니다.

마구간에서 나신 예수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어떤 모습을 하셨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란 뒤, 어느 날 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 저녁에 잠잘 방이 없었습니다. 여관이 없어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지만 그 이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실 때에도 한 번도 여관에서 주무신 적이 없습니다.
‘저 초라한 나사렛 예수’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에 대해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무것도 없다’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저런 나사렛 시골뜨기가 아니라 더 고상하고 귀한 집에서 더 훌륭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날 메시야를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와 너무 다른 모양으로 초라하고 가난하게 오셨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러나 38년 된 병자나 열두 해 혈루증 걸린 여자, 문둥병자들이나 소망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은혜를 입고 복을 받았습니다.

‘마음의 방’에 주님만 세우고

신앙은 아주 쉬운데 오늘날 우리가 하는 신앙이 어려운 건, 나 자신을 꺾지 않고 신앙생활하려 하고 내가 원하는 나의 기준을 그대로 세워 놓고 거기에 예수님을 맞추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거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셔서 오늘도 여러분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지만 여러분의 기준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금송아지를 섬기는 신앙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마구간에서 나신 이야기는 우리 ‘마음의 방’에 예수님이 오늘 유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의 방, 하나님이 존경받아야 할 그 자리에 하나님 아닌 우리 마음에 맞는 우상이 가득 채워져 예수 그리스도가 거할 자리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여러분이 추하고 악해도 괜찮습니다.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케 하듯이 여러분의 추한 마음을 깨끗케 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듯이 여러분의 영혼을 새롭게 소생시켜 하늘나라가 그 마음에 이루어지는 복된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이제 우상을 섬기고 금송아지를 만드는 일에서 떠나 예수 그리스도만이 여러분 마음에 자리 잡게 되기를 바랍니다.

- 2008.1.6 주일  낮 설교(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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