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바라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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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바라보아야
2008.12.7 주일 낮 설교 - 235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9.04.2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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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남편이…

만일 여러분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술주정뱅이이거나 매일 일은 안 하고 놀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대전에서 목회할 때 안 믿는 남편과 사는 자매들이 저에게 와서 자기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며 남편의 뒤를 캐려고 온 신경을 거기에 쓰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전화국에 가서 남편의 통화 기록을 조회하고 심지어는 사설탐정을 시켜 남편의 뒤를 밟기도 합니다.
남편이 직장 생활 하지 않고 놀기만 하면 아내는 답답하고 화나고 짜증나니까 남편이 성실하게 살도록 강요하게 됩니다. 남편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까 강요한는 아내 때문에 지쳐 버립니다.
제가 때로 이런 가정문제 때문에 남편이나 아내와 상담을 해보면 아내가 남편을 이해할 여지가 너무 적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남편이 정상적인 삶을 못 살고 밤낮 놀고 술만 마시면 아내는 ‘왜 저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하고 답답해하지만, 남편의 입장에서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편과 거리가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충분히 이해해야

만일 여러분의 남편이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면서 걷는다고 합시다. 그런데 여러분이 “오늘 모임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절뚝거리지 말고 제대로 걸어요”라고 하면 남편이 어떡하겠습니까?
다리를 다쳐서 절뚝거리거나 앞을 보지 못해 더듬는 것은 정신적으로 자신이 잘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것과 같은 장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가 그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남편을 독려해서 남편으로 하여금 그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가 아버지 집에서 돈을 10억 쯤 가지고 나가서 창기와 놀면서 1억 정도 쓴 뒤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 속에 빠져있으면 ‘9억 밖에 안 남았네. 이제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각오하지만 돈이 다 바닥날 때까지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삼손의 비밀을 알아내라

저는 오늘 새벽에 삼손에 관한 성경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이 태어나기 전부터 삼손을 선택했습니다. 삼손은 자라면서 굉장히 큰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성경은 삼손의 삶을 통해서 삼손 속에 하나님의 강한 힘과 육신의 강한 힘이 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삼손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삼손의 이야기가 어쩌면 나나 우리 교회 성도의 이야기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어 조용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께 쓰임 받아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일천 명을 죽이는 큰일을 했지만 육신의 욕망, 특히 들릴라라는 여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해 그에게 비참하게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들릴라에게 말했습니다. “삼손의 큰 힘이 어디에서 나는지 알아내라. 그러면 내가 은 일천 일백을 네게 주리라.” 들릴라는 그 은을 탐냈기 때문에 삼손을 졸랐습니다. “삼손이여, 그대의 힘이 어디에서 나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삼손이 비밀을 말하지 않고 새 동아줄로, 푸른 칡으로 자신을 묶으면 힘이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거짓말 몇 번 하면 그 여자가 넘어갈 줄 알았지만 그 여자는 은 일천 일백을 얻기 위해서 집요하게 그 사실을 알아내려고 했기 때문에 삼손은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삼손과 다윗을 택한 이유는

하나님이 삼손을 선택한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뒤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통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이 복을 주고 아름다운 나라를 이끄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온 뒤 성전을 지으려고 했지만 국론이 분열되어 지을 수 없었습니다. 외부의 적들이 이스라엘을 점령해서 나라가 어지러울 때 첫 번째로 나라를 통일한 사람이 삼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웠지만 여자에게 발목이 잡혀서 그 일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선택한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원래 목동이었는데, 하나님은 삼손과 달리 다윗에게는 힘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스라엘을 통일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연약한 자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자기 옆에 선지자를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없었기 때문에

다윗이 어릴 때는 사무엘 선지자, 왕이 된 후에는 나단 선지자, 늙었을 때는 갓 선지자가 다윗의 신앙을 지도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와 동침한 후 아기가 생긴 것을 숨기려고 우리아를 죽이는 죄를 지었을 때, 나단 선지자가 그 죄를 신랄하게 책망한 후 그 죄를 사함받고 다시 기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의 관계를 연결시켜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나이가 들어 백성들을 계수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백성의 수는 중요하지 않은데 자기 위치를 높이고 싶어서 백성을 계수하다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갓 선지자가 나타나서 그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힘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지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들릴라가 삼손에게 “그대의 힘이 어디서 나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당신의 힘의 근원을 이야기해 주세요” 하고 졸랐을 때 “삼손이여, 지금 무엇을 하느뇨?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받은 자가 어찌 생명을 노략질하려는 여자에게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가!” 하고 책망하는 하나님의 종이 있었다면, 삼손은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삼손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 빠져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처참하게 죽고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교만으로 죄에 빠져

제가 대구에서 사역할 때 자주 우리 교회 한 형제와 심방을 같이 갔습니다. 그 형제는 저를 목사라고 잘 따라주었는데, 어느 날 그 형제에게 복음 전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형제, 오늘부터 복음 전하는 법을 가르쳐 줄 테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 전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봐” 하면서 같이 복음 전하러 다녔습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거의 구원받을 즈음 “미안하지만 제가 지금 좀 바빠서 이 형제가 대신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그 형제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구원받자 그 형제가 정말 기뻐했습니다.
몇 번 그러다가 그 후에는 그 형제가 처음부터 복음을 전해 구원받은 사람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안에 제가 복음을 전해 구원받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형제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럴 즈음에 선교학교가 시작되었는데 그 형제가 선교학교에 들어와서 복음 전도자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형제의 마음이 높아지면서 태만해지고 죄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형제를 불러서 권고했더니 형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 형제가 매우 겸손하게 이야기해서 제가 오히려 미안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난 뒤에 그 형제가 또 죄에 빠졌습니다. 다시 그 형제를 불러서 애원하듯 말했습니다. “형제, 그러면 복음전도자 못 돼. 왜 그렇게 마음이 높아? 그런 마음 가지고 어떻게 복음 전도를 하나? 그만 두어라.” 결국 그 형제는 복음전도자의 길을 접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강하게 성령의 이끌림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만, 얼마든지 죄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육신의 소욕 때문에

우리교회 형제자매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은 후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았을 겁니다. 그러나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기 때문에 여러분이 믿음으로 달려가려고 하면 사단은 여러분을 속여 육신의 소욕대로 끌어 가려고 합니다. 결국 삼손처럼 여러분을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해서 신앙을 할 수 없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성경이 정말 신비로운 것은 하나님이 로마서 7장의 사도 바울의 간증을 통해 그런 우리의 모습을 명백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함이니라”(롬 7:11~13)는 말씀이 있습니다.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해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또는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함이니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죄가 숨겨지기보다 드러나기를 원하셨다는 뜻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간음을 했다고 하면 대부분은 ‘간음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마음먹은 다음부터 간음을 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간음을 이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가 죄로 드러나게 하기 위하여 ‘네가 간음을 한 게 아니라 네 안에 있는 죄가 너를 간음하도록 만들고 있는 거야’ 하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쉽게 말해 여러분이 감기에 걸렸는데 아무런 증세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감기에 걸려서 열이 나면 ‘내가 왜 열이 나지? 아, 감기에 걸려서 열이 나는구나’ 하며 감기가 드러나야 된다는 겁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20) 나는 죄를 짓기 싫은데도 죄를 지으면 그건 내가 죄를 짓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가 죄를 짓는 것이라면 내가 원할 때 하고 원하지 않을 때 안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내가 원치 않는데도 한다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심히 죄 되게 하기 위하여 죄를 범하게 내버려 두십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오늘날 교회를 다니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예전에 수원 교도소의 교화위원으로 활동할 때 재소자들을 보면, 그들은 죄를 짓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죄를 안 지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 출소하면 또 죄를 짓게 됩니다. 어떤 죄에 한 번 빠져버리면 죄를 안 지으려고 발버둥 친다고 해서 거기서 벗어나는 게 아닙니다.
저는 IYF 대학생에게 “너, 왜 도박을 해? 도박하지 마. 왜 술을 마셔? 술 마시지 마”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도박하는 사람에게 도박하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도박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게임 중독에 빠진 사람에게 게임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는 게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모르고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지만 자식이나 남편은 거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에 빠지면 정상적인 상태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서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지금 자신이 죽느냐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뒷전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롬 7:22)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롬 7:23)는 말씀처럼 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서 나를 죄 아래로 끌고 갔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게 하는 실체는?

내가 선을 행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법이 와서 선을 행하려는 마음과 싸워서 오히려 죄를 범하도록 끌고 갔다면 그 법이 내 마음을 이긴 겁니다. 요한복음 8장의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어느 날 간음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남편이 있는 여잔데 간음하면 안 되지. 간음하다 잡히면 돌에 맞아 죽는데 안 돼, 안 돼!’
죄의 법이 와서 그 여자의 마음의 법과 싸웠습니다. ‘그래도 간음해.’ ‘안 되는데.’ ‘해!’ ‘나 안 할 거야.’ 그 여자의 마음의 법이 점점 약해졌습니다. ‘해~! 무슨 소리야?’ 여자의 마음이 죄의 법에 지면 그때부터 죄가 그 여자를 끌고 갑니다. 그 여자는 아무 힘없이 끌려갑니다. 표면적으로는 그 여자가 간음한 것 같지만, 실제는 죄의 법 아래에서 끌려 다닌 겁니다.
그것을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구도 죄의 법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죄를 이길 수 없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기 전에는 자신이 선을 행해서 구원받으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선을 행하려는 것이 무익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선을 행하려는 것을 포기했을 겁니다.
하나님은 죄로 심히 죄 되게 하고 죄가 죄로 드러나게 하셔서 ‘도둑질하고 간음하고 게임에 빠져 내 멋대로 살도록 끌고 가는 게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죄구나. 내가 이 죄와 싸우면 나는 질 수밖에 없어. 예수님이 아니면 여기서 나를 건져낼 수가 없어’ 하는 결론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죄와 싸우다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롬 7:24) 하는 탄식을 하게 됩니다.
이제 로마서 8장에 들어오면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와 범죄했을 때 나단 선지자가 나타나서 죄를 꾸짖고 정리하게 해서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윗이 늙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했을 때는 갓 선지자가 나타나서, 그 죄를 다 씻고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선지자는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고 난 뒤 육신의 욕망이나 정욕에 빠지거나 범죄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노력한다고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간음한 여자가 간음하다 잡혀서 어떤 방법도 없을 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그 입에만 기대를 두었던 것처럼, 우리의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두고 그분만 바라보고 의지할 때 예수님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건져주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죄에서 벗어나려면

여러분, 혹시 남모르게 죄를 지은 적이 있습니까? 처음에는 그것을 숨기고 싶고 더 안 지으려고 애쓰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죄를 안 지으려고 하면 점점 더 깊이 죄에 빠집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하고 난 뒤 그것을 숨기려다 우리아를 죽이는 죄에 깊이 빠져들 듯 우리는 죄에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심히 죄 되게 해서 ‘넌 죄를 못 이겨’ 하시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만드시고 그분을 바라봤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주십니다.
여러분, 저는 참 많은 사람들이 죄에서 고통하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목사님, 저는 구원을 받았는데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구원을 받았는데 이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같이 자기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믿지 않는 남편과 사는 자매님들이 계시다면 남편이 도박을 하거나 잘못을 했을 때 여러분이 말로 남편을 고치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 남편이 죄에 사로잡혀 그렇구나. 나도 죄에 사로잡혔을 때 저랬지.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죄를 이기시니까 하나님이 우리 남편을 그 죄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겠구나’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그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겁니다.

죄를 이기시는 예수님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4) 우리가 자신을 믿는 마음에서 벗어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의지했을 때, 하나님 앞에 선한 부분에 부족함이 없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도록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저는 지난번 광주집회 때 어떤 청년을 만나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죄를 짓고 악을 행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너는 죄를 이길 수 없어. 하나님을 바라 봐” 그리고 제가 복음을 전했더니 구원을 받고 기뻐했습니다. 그 후 미얀마 집회도 같이 가면서 변화되는 걸 보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구원받고 나서 실수하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자신이 거기서 돌이키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아무리 노력해도 점점 더 깊이 죄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이기는 예수님이 여러분을 죄에서 건져주시도록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이 나를 거기서 건지셨다는 믿음을 갖게 될 때 여러분은 놀랍게 변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밝아지고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해지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삶이 될 것입니다.
- 2008.12.7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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