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을 받아들인「마리아」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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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을 받아들인「마리아」 처럼
2007. 12. 23  주일 낮 설교 (요약) - 186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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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을 맞이하여

연말이 되면 여러 가지 일로 바쁜데, 그 중 하나가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저는 한없는 감사를 느끼는데, 그것은 2000년 전 마구간에 오신 예수님이 제 마음에도 오셨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과 예수님이 오신 후에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최근에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크리스마스 칸타타 순회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여러 도시를 순회 공연했는데, 공연의 마지막 순서에서 제가 짧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칸타타를 관람하면서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저도 기뻤고,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기량이 향상된 것도 참 기뻤습니다.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저에게는 형님이 계셨는데 저는 형님과 저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형님은 저보다 키도 크고 얼굴도 더 잘 생겼습니다. 그리고 대인관계도 좋아서 친구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형님에게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 고향은 경북 선산인데, 박정희 대통령 시대 때 투표를 하면 박정희 대통령 지지율이 83~89% 나오는 데서 형님은 야당인 신민당에 들어가서 정치를 했습니다. 공화당에서 형님더러 오라고 해도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언젠가 정권 바뀌면 보자”며 오랫동안 버티셨습니다. 그러다 결국 공화당으로 옮기셨는데 그 후 얼마 못 가 박정희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형님이 결혼해서 첫째는 딸을 낳고 둘째는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을 낳고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중학교 다닐 때부터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일 년에 네댓 번 경찰서에 잡혀 있는 아들을 데려오곤 했습니다. 경찰 뿐 아니라 검사 판사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한 번은  형님이 김천 검찰청에 있는 아들을 데리러 와서  검사와 이야기를 하면서 울기도 했습니다.

변화된 조카를 보며

형님이 1983년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 해 추석에 제가 고향에 갔을 때 보았던 형님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형님이 벌초 하러 가자고 하셔서 같이 갔는데, 형님이 몸이 불편하다고 하시면서 가만히 앉아계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형님, 제가 볼 때, 형님 몸이 이상한 것 같은데 대구에 오셔서 종합검진을 받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했더니 그때 형님이 “내가 암이었으면 좋겠다. 자식 중에 제대로 되는 놈이 하나도 없으니 살 의욕이 안 난다. 여러 번 자살 하려고 했지만 남의 눈 때문에 자살도 못 하겠다”며 그 마음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 다음날 형님이 대구에 오셔서 경북대병원에서 진찰을 했는데 벌써 간암 3기였습니다. 그 후 형님은 한 달 반 만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형님이 돌아가신 후 늘 사고만 치던 조카를 생각하면서 ‘내가 저 녀석을 어떻게 다스리지? 저 놈이 제 아버지한테 한 것처럼, 나한테 와서 돈 달라고 행패부리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했지만 조카는 제대한 뒤 구원을 받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님이 도우시는 삶

저는 1962년에 구원을 받고 난 뒤 45년이라는 세월을 예수님과 함께 보냈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재앙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제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하신 뒤 제 삶은 예수님 밖에 있을 때와 너무나 달랐습니다.
제가 잘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성실하거나 정직하거나 진실한 것도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천 가지 만 가지 어려운 일을 당해도 예수님이 다 해결해 주십니다. 때때로 제 마음을 보면 형편없지만 사랑하는 예수님이 제 마음을 이끌고 계시는 것을 봅니다.
우리 교회를 붙잡고 있는 분도 저나 다른  목사님들이 아니라, 예수님이시라는 걸 너무나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칸타타를 하는 것, IYF 굿뉴스코 훈련을 통해 대학생들이 구원을 받고 새로워지는 것도 예수님이 가능하게 하신 것입니다.
어제 저녁 영상교제 초대석 시간에 미얀마에서 1년 동안 굿뉴스코 활동을 하고 온 여학생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거기 있는 동안 그 학생은 뎅기열에 걸렸다고 합니다. 뎅기열은 치사율이 90%에 이르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 여학생은 2주 동안 그 병을 앓아서 위험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회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이 학생을 지켜주셨구나!’ 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복을 주신 주님이 감사해서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는 건 백억이나 천억을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저는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제 몸뚱이만한 다이아몬드를 받은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구원받은 후 모든 재앙을 다 맡아주시고, 제 앞에 열린 문을 두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 마음 안에 계신 것이 무척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생명을 다 바쳐서 주님을 섬깁니다. 복 받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복을 많이 주신 게 감사해서입니다.
간음한 여자가 간음하다 잡혀서 돌에 맞아 죽어야 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를 살려주셨는데, 그 여자에게 예수님을 욕하거나 미워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 예수님을 욕하면 그 여자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저를 죽음에서 살려주신 제 생명 되신 분입니다.”
저도 간음한 여자와 똑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가정을 이끌고 자식을 키우고 인생을 살았을까?’ 그러나 예수님이 다 이끌어주시니까 저는 지난 45년 동안 아무 걱정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전쟁을 끝내신 예수님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5~6)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렇게 예언을 했습니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진다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면 전쟁이 끝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오신 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예언했을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에 모신 사람에게는 전쟁이 끝나버린다는 겁니다. 제 마음에 예수님이 오신 뒤 전쟁이 끝나버렸습니다. 평강의 왕이 제 마음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기묘자라, 모사라, 평강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가정이 새로워지고

러시아에 ‘알까제’라는 목사가 있는데 그는 구원받기 전에 마약 중독자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결혼식 전날 멀리서 친척들이 모였는데, 그날 밤에 신부가 도망가 버렸습니다. 친척들이 모이고, 음식도 다 준비했는데, 신부가 도망가 버렸으니까 결혼식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왕에 이렇게 된 바에 아무 처녀나 데리고 와서 임시로  결혼식을 하자고 가족들이 의논을 했습니다.
그날 저녁 길에서 어떤 여자를 데려와서 결혼식을 했습니다. 그 후 그는 그 여자를 한 번도 아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녀처럼 생각하고 살았으니 집안이 늘 불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우종기 선교사님을 만나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받고도 자기 결혼관계를 숨겼지만,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들어가면서 자기 아내에게 큰 죄를 범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니까 아내에게 “당신이 진정한 내 아내인데 그 동안 방탕하게 산 것 진심으로 뉘우친다”고 말하며 아내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목사가 되어 목회도 은혜롭게 잘 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영향력 아래

누가복음 1장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 이야기는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이 태어나는 과정과 똑같습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눅 1:26)
인간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은 후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했던 게 아니라 사단과 마음을 같이 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늘 사단의 영향을 받습니다.
제가 만일 여러분의 약점만 계속 이야기한다면 좋아하시겠습니까? 만일에 우리 형제 가운데 어떤 분이 구원받기 전에 외도를 했다고 해 봅시다. 그 일을 두고 제가 그 형제를 만날 때마다 “형제는 예전에 외도했었잖아”라고 한다면 좋아할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목사님, 이제 들을 만큼 들었습니다. 두 번만 더 들으면 백 번입니다. 제발 그만하세요” 하며 듣기 싫어할 겁니다.
반면에 교회가 어려울 때 그 형제가 도와서 교회가 잘 됐다고 합시다. 제가 만날 때마다 “형제가 그 때 큰일을 해서…”라고 말하면 듣기 좋아할 겁니다. 사람은 나쁜 이야기는 듣기 싫어하고 좋은 이야기만 듣고 싶어합니다. 결국 자기 속에 악한 마음이 있어도 좋은 모습으로만 포장하려고 하니까 자신의 모습을 모르는 겁니다.

말씀 그대로 믿지 않아서

하나님은 여러분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세계로 이끄시는 일을 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세계까지 도달하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 일을 하십니다.
사역도 그러합니다. 사역자들이 처음에 선교학교에 입학하면 “이렇게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구원받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사역자가 되어 막상 그렇게 해 보면 복음 전하는 것도, 사역도 잘 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목회를 하는 사람들은 교인들도 교회에 잘 나오고 삶도 좋아집니다.
저는 오랫동안 사역을 하면서 사역자들을 보면 한눈에 어떻게 사역을 하고 있는지 보입니다. 그러면 제가 권고를 합니다. “자네, 그렇게 해서는 안 되네. 이렇게 해야 될 걸세.” 그러나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역자는 제 말을 안 듣습니다.  
그러다가 1년쯤 지난 뒤에 ‘아, 내가 목사님 이야기를 안 들었구나” 하며 깨닫고 돌이키고 그때부터 목회를 제대로 하는 사역자가 있습니다. 더 둔한 사람은 5년 후에 깨닫게 되고, 더 심한 사람은 10년 후에 깨닫게 됩니다.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지만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그 내용을 참고해서 자신의 생각으로 살지, 말씀 그대로를 믿으며 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경험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를 선포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뜻을 가지고 인간에게 와서 그 뜻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가 선포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할 텐데, 너는 방주를 만들어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로 많은 민족의 아비가 되게 하고 너로 큰 나라를 만들어 네게 복을 내리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모세에게 나타나서도 “내가 너를 애굽에 보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이끌어내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에게는 “내가 너로 왕을 삼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라를 견고케 하고 내 성전을 짓게 하겠다”고 하셨고 ▲베드로에게는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능력이 포함된 ‘말씀’

이처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에게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간의 말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로고스’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그 말씀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선교사가 한국에 왔다고 합시다. “형제, 아프리카에 잘 있다 왔는가?” “예,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이 추운 겨울에 옷을 왜 이렇게 얇게 입었어.” “제가 아프리카에서 살다 보니 두꺼운 옷이 없습니다.”  “이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 가면 별로 안 비싸니까 털 잠바 하나 사 입어.” “예, 고맙습니다.” “ 빨리 가서 사 입지 않고 뭐해?” “예, 알겠습니다.”
제가 그 선교사에게 외투를 사 입으라는 말만 하면 그 말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백화점에 가서 따뜻한 옷을 사 입을 수 있는 돈을 같이 주면 그 말에는 능력이 있는 겁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1~4)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28~34)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네가 아들을 낳을 거다”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처녀가 남자와 결혼을 해서 동침해야 아이를 낳지 남자도 없이 어떻게 아기를 낳습니까?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들었지만 그 말씀과 마리아의 생각은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라고 했습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 한다”는 말은  남자와 동침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기를 낳을 수 있겠냐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하시고, 인간은 인간의 생각을 말합니다.

고정관념을 버린 마리아

여기서 대화가 끝나버리면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게 아닙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라는 말씀의 의미는 이제 남자와 동침해서 아기를 낳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으면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생각에는 그 일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38절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이 우리 마음에 맞지 않습니다. 똑같은 일을 두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과 내 눈으로 보는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 중에 내 생각을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내 생각은 이런데 하나님이 일하시면 이렇게 되겠구나!’하며 믿음이 생깁니다. 마리아도 지금까지 남자와 동침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기를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천사의 말을 듣고,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고는 아기를 낳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남자 없이도 아기를 낳을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38년 된 병자도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 말도 안 돼’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걸을 수 없지만 예수님이 걸어가라고 하시면 걸어갈 수 있겠네’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자리잡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다 사했다는 말씀을 듣지만 여러분은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죄를 짓는데 어떻게 거룩하다고 할 수 있어? 나는 죄인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들으면서 ‘나는 원래 죄인이지만 내 모든 죄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해결했어’ 하고 그대로 믿으면  말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 들어오시고 말씀이 마음에 자리 잡으면 여러분 삶에도 변화가 오게 됩니다.
그때부터 평강의 왕이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모사 되신 예수님이 여러분 곁에 계셔서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 모든 일에 가르침을 주십니다. 영원한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셔서 여러분을 영원히 인도하시는 겁니다.

평강의 왕 ‘예수님’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유대 땅 베들레헴에 있던 여관마다 문을 두드려도 아무도 방을 내어주는 사람이 없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베들레헴 여관마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예수님이 태어나실 방이 없었던 것처럼, 여러분이 여러분의 생각을 내쫓고 마리아처럼 그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예수 그리스도인 그 말씀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7년 성탄을 맞아 여러분 마음 안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 속에 있는 모든 약속이 능력이 되어 이루어지는 걸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두려움과 근심, 어려움과 죄와 싸우지 말고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대신 싸우시도록 맡기십시오. 우리는 예수님께 속했기 때문에 주님이 그렇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복되고 은혜로운 겁니다.
여러분 속에 평강의 왕 되신 예수님이 계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삶에 전쟁과 재앙이 끝나고, 두려움과 고통과 슬픔이 끝나고 주와 함께 기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 2007. 12. 23  주일 낮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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