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3세의 성공적인 대한민국 정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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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3세의 성공적인 대한민국 정착기
기획 20년간 한국인과 소통하며 나눔의 삶 살아온 이유정 대표를 만나다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4.03.24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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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뉴스 캡처 | 이대표는 지난 여름, 러시아어권 이주민 가족캠프에 식사와 도시락을 지원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남편과 이유정 대표는 함박마을에서 기부와 후원자로 유명하다

선진국이 된 고국, 대한민국으로 돌아오는 동포들이 늘고 있는 반면 꿈에 그리던 고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한국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고려인 3세 이유정씨를 만나보았다.

“24세에 처음 온 한국은 내가 꿈꾸던 나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15세 이상 국내 상주 외국인은 143만명이다.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수도권인데 그중 인천 함박마을에는 주민 1만2천명의 61%인 7천400여명이 외국인이다. 러시아타운이라 불리는 마을은 외국상점 분포도가 40%에 달한다.
이곳에는 내외국인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아 문전성시를 이룬 우즈베키스탄 식당 ‘차이하나’가 있다. 차이하나의 대표 이유정(47)씨는 2008년 귀화한 고려인 3세다. 그가 2015년 함박마을에 처음으로 오픈한 우즈벡 식당에서는 당근 김치 ‘마르코프차’와 기름에 찐 밥 ‘쁠롭’, 잔치국수와 비슷한 ‘국시’ 등 고려인 전통음식을 내놓는다. 
2000년, 당시 24세였던 이유정 대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근로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 3년간 공장에서 일했던 그는 계약이 만료되어 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앓아 누웠다고 한다. 이 대표는 “7월에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한국의 음식과 기후에 적응해버린 몸이 우즈벡의 뜨거운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음식도 소화가 안돼 체중이 20㎏가 빠졌다”며 “무엇보다 한국인들이 베풀어준 사랑과 친절을 잊을 수 없었다. 되돌아갈 방법을 강구하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땅을 다시 밟았다. 꿈만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원도 춘천에서 농사짓는 재혼남과의 성급한 결혼은 4년만에 끝이 났다.
 

우즈베키스탄 음식점 ‘차이하나’ 이유정 대표

안정적 정착 위해 한국어 구사는 필수  

3살짜리 딸과 홀로서기를 시작한 그는 주방 설거지, 휴게소 화장실청소, 러시아어 과외 등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그 와중에도 한국어 공부에 매진해 귀화시험에 합격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이 대표는 “주변에 손을 잡아 준 한국인들이 많았다. 그들이 ‘같이 가자, 같이 먹자. 지금 이 고비를 넘기면 좋은 일이 생길거야’라며 위로해줬기에 죽을 만큼 어렵지는 않았다”며 웃었다. 
그의 삶은 판넬회사를 다니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끈질긴 노력으로 3개월만에 러시아로의 수출길을 열어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고 LH공사에서 아파트를 제공받았다.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출신 남편과 만나 행복한 가정도 이뤘다. 그런데 셋째 아이를 낳을 즈음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러시아의 경제위기로 수출길이 막혔다. 이에 14년만에 춘천을 떠나 인천으로 왔다. 당시 인천엔 한해 평균 900명의 외국인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유정 대표는 “기회의 땅,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언어는 필수다. 센터나 교회, 복지관 어디서든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데도 통역을 돕는 알바생이 많다보니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이 늘고 있어 문제다. 경제적 안정과 자녀교육을 위해 한국어를 꼭 배우고 지역민과 소통하는 자리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 함박마을, 러시아타운 조성 후 지역경제 살아나

이 대표는 함박마을에서 기부와 후원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할랄음식점을 하는 남편, 빵집을 운영하는 동생과 함께 어린이날엔 장애아들에게 선물을 배달하고 크리스마스엔 파티를 열어준다. 어버이날에는 사할린 동포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한다. 주민 체육대회와 지역 어르신 캠프에도 매번 경비와 도시락을 지원한다.
한편 최근 함박마을 내국인 상인들이 ‘무분별한 외국인 상권허가로 내국인 상권이 무너졌다’며 영업보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이유정 대표는 “이 마을은 원래 술집과 노래방이 즐비한 곳이었다. 남동공단과 가천대학교 등에서 온 사람들이 식사 후 2차로 놀러오는 곳이었는데 코로나 2년 반동안 집합금지로 인한 영업중단이 계속되며 상인들이 버티지 못해 마을을 떠났다. 인구감소와 상권침체로 완전히 무너진 곳에 외국인들이 유입되며 활기를 되찾은 곳”이라며 “남편도 17년된 포찻집이 코로나 기간에 문을 닫자 비싼 권리금을 주고 할랄음식점을 오픈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이주민을 적대시하지 않고 동포이자 인격체로 여기고, 러시아타운의 특성을 살려 협력한다면 모두가 상생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송미아 차장대우 miasong@igoodnews.or.kr/ 인천=이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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