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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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룻기 1장 1절 ~ 13절] 2024. 3. 17. 주일 오전예배 설교 - 1005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4.03.24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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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성경은 그냥 평범한 역사 이야기 같지만 그 안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읽은 룻기는 ‘나오미’의 가족들이 고향 베들레헴을 떠나서 먼 나라로 갔다가 남편과 아들 둘을 잃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일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고향 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환난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발걸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때 나오미와 룻처럼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런 뜻을 잘 모르니까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충성하면 괜찮은 줄 아는데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오늘 말씀은 마음이 하나님께 돌아와 주님과 함께 인생을 사는 사람과 교회는 다니지만, 여전히 자기 생각을 따라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모압으로 향하는 엘리멜렉과 나오미 가족<br>
모압으로 향하는 엘리멜렉과 나오미 가족

모압으로 간 나오미

룻기 1장 1절을 보면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었고 그의 아내는 나오미, 두 아들은 말론과 기룐이었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고향을 떠나 모압 지방으로 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게 됩니다. 그 후 남은 두 아들을 ‘룻’과 ‘오르바’라는 모압 여자와 결혼시켰습니다. 하지만 십 년쯤 되었을 때 나오미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남자들은 다 죽고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게 된 것입니다. 이 성경은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향했을 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오미에게 고향 베들레헴의 소식이 들렸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룻기 1:6) 나오미는 이제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오르바는 나오미를 떠났지만 룻은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며 끝까지 나오미를 쫓아 베들레헴으로 함께 돌아온 것입니다.

고통뿐인 삶

종종 목회하다가 교회를 떠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물론 사역을 하다 보면 어려울 때도 많고 힘에 겨울 때도 있습니다. 어떨 때는 밤을 새워가며 설교를 준비했는데 예배 시간에 성도들이 설교를 들으며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정말 저 자신이 원망스럽고 ‘나는 더 이상 목회를 하지 말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것은 정말 작은 어려움인데 목회를 할 때 이보다 더 크고 안타까운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말씀을 떠나 사는 삶은 저주와 고통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사실 내세울 게 별로 없습니다. 다른 분들 설교하는 것을 들어보면 ‘어떻게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말씀을 잘 전할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제 설교는 좀 딱딱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보니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가 베들레헴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준비된 놀라운 은혜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오자마자 하나님이 준비한 놀라운 은혜가 있었습니다.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룻기 1:22) 그들이 베들레헴에 왔을 때 보리를 심는 시기거나 보리 추수가 끝난 시기라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해 보니 이제 막 보리 추수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삭을 줍고, 보리 추수를 거들며 풍족한 양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룻기 2장 3절 말씀입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베들레헴에 수많은 밭이 있는데 룻이 보리를 줍다 우연히 시아버지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에 가게 된 것입니다. 룻이 친족 중에 기업 무를 자를 알아서 일부러 그곳에 간 것이 아닙니다. 보리 베는 자를 따라 이삭을 줍다 보니 우연히 그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건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이런 성경을 읽다 보면 ‘내가 이런 복을 받겠다. 그리고 다음엔 이런 복을 받겠네.’ 하며 나에게 이루어질 복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살아 역사하십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제가 어릴 때는 가난한 시절이라 친구들과 남의 밭에 들어가 감도 따 먹고 사과도 따 먹는 등 도둑질을 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죄를 지을 때마다 부끄럽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과 장로님, 집사님은 모두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했기 때문에 저도 새벽마다 죄를 고백하며 회개 기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죄를 짓고 회개하는 삶을 반복하다가 죄를 사함받는 방법을 찾기 위해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내 죄가 끝이 났다. 우리가 거룩해졌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하나님은 저에게 ‘예수님이 너의 죄를 위해 죽었어. 너는 이제 의로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교회에 가서 ‘나는 의롭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목사님도 장로님도 죄인이라고 하는데 박옥수 네가 뭘 안다고 의롭다고 그래”라며 저를 멀리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다시 보아도 모든 죄가 사해진 것이 너무 분명했습니다. 

찬송가 가사에는

우리는 예배 때 찬송을 부릅니다. “먹보다 더 검은 죄로 물든 이 마음 흰 눈보다 더 희게 깨끗하게 씻겼네~”(새 423, 통 213) 이렇게 찬송가를 부를 때는 죄가 희게 씻어졌다고 했으면서 기도할 때는 “주여~ 죄인입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시니까 참지, 우리 같으면 의인이라 했다가 죄인이라고 하는, 앞뒤가 안 맞는 인간들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순서대로 수없이 읽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위기 4장을 읽는데 속죄 제사를 통해 제사장이 염소에게 죄를 넘기고, 그 염소가 죽으면서 죄가 사해진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여기서 염소는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의롭다고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롬 8:33) 하나님이 저를 보고 의롭다고 하시면 의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거짓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삶속에 담긴 깊은 뜻

성경을 좀 더 읽어보겠습니다.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뉘 소녀냐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찌니라”(룻 2:4~9)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대로 룻과 보아스가 만나게 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가 바로 다윗의 할아버지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잇게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갔을 때 엘리멜렉과 말론, 기룐이 죽고 과부 셋만 남은 것이 그냥 한 사람의 삶속에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침 보리 추수할 때에

사람들은 예수님 믿는 것을 시들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 한두 번 빠질 수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몸이 아프기도 하고, 그렇게 교회와 멀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와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간 뒤 계속 저주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이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을 때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은혜가 가득했습니다. 돌아온 시기가 마침, 보리 추수할 때라 굶지 않게 되었고 보아스의 밭에 우연히 들어가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룻이 베들레헴에 들어갈 때 이런 복을 입게 될 줄 알았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주의 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일을 준비하십니다. 저는 잘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지만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지’ 할 때마다 자고 일어나면 하나님이 다 해결해 놓으신 것을 보았습니다.
한 번은 제가 미국 내슈빌에 있는 큰 교회에서 일요일 오전 말씀을 전하고 숙소에 있었습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저를 만나러 오셨는데 그분은 다리가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목사님, 이 교회는 박 목사님 교회입니다. 언제든지 오십시오”라고 했었습니다. 그분이 한국 월드캠프에 참석하면서 다시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후 얼마나 기뻐하고 감격해하셨는지 모릅니다.

상파울루 대성당에서

작년 2월에는 브라질 상파울루의 대표 성당인 ‘메트로폴리타나 쎄 대성당’ 신부님이 그라시아스합창단 공연과 말씀을 전해달라고 제게 요청하셔서 브라질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가톨릭교회가 우리를 향해 문을 열 줄은 상상치 못했습니다. 공연을 마친 후 신부님과 하루 종일 성경 이야기를 하고 한국으로 왔는데 신부님께서 내년에 다시 말씀을 전해달라고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올해 2월 초, 남미 아프리카 월드캠프 기간에 브라질 쎄 대성당에서 그라시아스합창단이 주최하는 ‘세계 평화 뮤직콘서트’ 공연을 하고 제가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틀에 걸쳐 진행한 공연에 성당 신도와 그리스 정교회, 유대인 공동체, 불교 등 각계 종교 지도자 및 일반인들을  포함 약 4천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까운 사실은 전 세계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하나님이 들으시면 무척 속상하시고 화가 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너는 죄를 지었어. 그렇지만 예수가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 너의 모든 죄가 씻어졌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박옥수 목사의 말도, 대통령의 말도 아니고,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인입니다.
 

모압 VS 베들레헴

마태복음 1장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태복음 첫 장에는 예수님을 낳는 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사는 삶 속에서는 모압 땅이 있고 베들레헴이 있는데 모압은 세상을 말하고 베들레헴은 떡집이라고 해서 교회를 말합니다. 우리가 베들레헴을 떠난다는 것은 예수님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갔는데 모압에서 엘리멜렉이 죽고 그 후 말론과 기룐도 죽고 세 과부만 남았습니다. 그들이 모압 지방에 있을 때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는 보리 추수할 때라 이삭을 주울 수 있었고 룻이 이삭을 줍다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기업 무를 자였던 것입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 나오미가 룻에게 이야기합니다. “룻아, 내가 너로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보리타작하는 그 집이 네 남편의 친족이야. 우리의 기업을 무를 자야. 내가 이르는 대로 하거라.” 룻이 그 시모가 말하는 대로 합니다. 

보아스의 타작마당

룻의 시모 나오미가 말했습니다. “오늘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보아스가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운 것을 알았다가 그 발치 이불을 들고 누워라.”
룻이 나오미의 말을 따라서 보아스의 타작마당에 가서 보아스가 자는 그 발치 이불을 덮고 누웠습니다. 보아스가 자다가 보니 어떤 여자가 자기 발치에 누워 있었습니다. 보아스가 “네가 누구냐?”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어주시옵소서. 당신은 기업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보아스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그 사람이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이행하면 좋고 그 사람이 안하면 내가 반드시 너의 기업 무를 자가 되겠다”라고 약속합니다. 날이 밝아 보아스가 먼저 기업 무를 자에게 “룻이 돌아왔는데 네가 기업을 무를 자가 되겠느냐” “나는 무르기 싫다.” “당신 다음은 나다.” “네가 해라.” 그래서 보아스가 룻과 결혼해서 예수님의 족보를 잇게 되고 예수가 태어나는 귀한 역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br>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야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더 이상 모압이 아니고 베들레헴입니다. 옛날에는 모압 땅에 살았지만 구원을 받으면 베들레헴으로 와야 합니다. 그런데 나오미와 엘리멜렉, 말론, 기룐은 반대로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갔기 때문에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해야 합니다. 룻이 시어머니, 보아스와 마음을 같이 했을 때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을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가운데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여러분,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죄 사함 받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든 농사를 짓든 장사를 하든 다 하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하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저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고 죄가 사해진 걸 깨달았고 그래서 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저를 선교학교로 인도하셔서 그곳에 가서 훈련을 받고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둘 죄 사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선교학교는 해외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와서 설립한 학교인데 저는 2기로 들어가서 30여 명과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중에 나이가 가장 어리고 부족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교회를 떠났고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저같이 연약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전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 죄가 흰눈보다 더 희게 씻겨졌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죄를 많이 지었지만, 하나님이 저를 “의롭다”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우리가 거룩하고 의롭습니다.

우리가 의로워진 이유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 피로 깨끗하게 씻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죄인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을 우리 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죽게 했는데 우리가 의롭다고 말해야 기뻐하십니다.
“나는 의로워요.” “너 죄 안 지었어?” “죄지었어요.” “그런데 왜 의로워?” “예수님이 모든 죄 다 사해 주셨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죄를 안 지어서 의로운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벌을 받으셔서 의로워진 것입니다. 아멘! 아직도 죄인인 사람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때부터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돌보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 2024. 3. 17.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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