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처럼 불가능한 일을 하게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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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처럼 불가능한 일을 하게 하시고­
[마가복음 6장 35절 ~ 44절] 2024. 2. 25. 주일 오전예배 설교 - 1002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4.03.0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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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코 귀국 발표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마가복음 6장에 나오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이 축사하셔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읽을 때면 ‘말이 안 돼, 이런 일이 진짜 가능해? 어떻게 작은 도시락 하나로 그 많은 무리가 먹고도 남아’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사는 동안 은혜를 입으면 우리 삶에서도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같은 참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지난 1년 동안 해외에서 봉사한 대학생들이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어떻게 노래도 잘하고 연극도 잘할까?’ 싶을 정도로 새롭게 변화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이 100일 때, 우리가 100의 일을 하는 것은 힘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1,000이나 10,000의 일을 해야 한다면 힘들다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라면 문제는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과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어느 것 하나라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해결되지 않은 게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런 문제들이 모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아름답게 정리 된 것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오늘 읽은 마가복음 6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서 말했습니다.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 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막 6:35~36)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셨습니다. 그곳에 일이십 명도 아니고 몇 천 명이 있으니까 그들이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일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그것을 축사하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한계 안에서는 도저히 계산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계산과 우리의 계산이 똑같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

여러분, 우리에게는 인간 이상의 힘과 방법, 권능을 가진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게 하십니다. 한 번씩 우리가 병들었다든지, 돈이 떨어졌다든지, 자기 힘으로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어려운 때를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그럴 때 바로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살아서 일을 하십니다. 정말 불가능한 일인데 그것들을 놀랍게 이끌어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면 동일하게 예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동안 우리 선교회를 통해 전 세계에 복음 전하는 일을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젊은 학생들을 교육하는 일에 대해 고민했는데 제 개인의 지혜가 아닌 예수님의 힘과 능력이 국제청소년연합(IYF)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지금도 그때와 똑같이 우리 속에 살아서 역사한다는 것이 너무 신기합니다. 

IYF의 설립 배경

IYF는 2001년에 설립됐는데, 그 설립 배경은 이렇습니다. 제가 1995년 미국 LA교회를 갔을 때 어느 날 LA에 사는 한 부인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부인의 아들, ‘앤디’는 15세부터 마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들의 주머니에 권총이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너무 두려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과 함께 앉아서 이야기했습니다. “앤디야, 너는 나의 전부야. 나는 여러 번 죽고 싶었어. 내가 죽지 못한 것은 너 때문이야. 나는 너밖에 아무 소망이 없어. 네가 죽으면 나도 죽을 거야. 그런데 너, 왜 이러니?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안돼? 공부 좀 하면 안돼?” “엄마, 이러지 마. 나는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냐. 나,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죽고 싶어.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내 마음대로 안돼. 그런데 왜 엄마까지 날 괴롭혀. 차라리 죽어버릴까 보다.” 그 부인은 더 이상 아들과 할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찾아와 아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한국에 살고, 앤디는 LA에 있는데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었습니다. 

‘앤디’의 삶이 변하고

그 후 부인이 저를 세 번째 찾아와 엉엉 울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아들이 저녁에 늦도록 들어오지 않으면 총격전을 벌여서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정말 슬퍼요. 목사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부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만일 당신의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갈 수 있다면 제가 가르쳐 보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래서 앤디를 한국에 있는 저희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머리카락은 무지개 색깔이고, 다 떨어진 청바지를 엉덩이 중간에 걸치고 다녔습니다. “앤디야, 바지 내려오겠다.” “목사님, 괜찮아요.” 물론 한국에서는 마약은 하지 못했습니다. 생전에 못 보던 특별한 손님이 우리 집 식구가 되었습니다. 저는 앤디를 야단치기보다 틈틈이 성경을 중심으로 마음의 세계를 이야기했습니다. 어느 날 앤디가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옷을 단정하게 입고 머리도 깔끔하게 깎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지금 앤디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사업하고 있는데 한 번씩 전화 통화를 하면서 “목사님, 저는 그때가 너무 그리워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서 죄 사함을 받았을 때, ‘예수님, 나 같은 더러운 인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구나’ 하며 그 사랑을 느끼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

몇 년 전 진주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마치고 합천교회로 가게 되었습니다. 밤이 늦었지만 제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합천교회 형제자매님들이 모였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모임을 마쳤는데 한 부인 자매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도저히 남편과 못 살겠습니다. 23년 전에 결혼했는데 한 3년 지나면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밥도 안 먹고 술만 마십니다.” 그 부인이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방안에 술병들이 뒹구는데 그것을 치울 때마다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울며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자매님, 울지 말고 남편을 데리고 오세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그 부인이 남편과 함께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그분에게서 술 냄새가 풀풀 풍겼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히브리서 10장 14절의 말씀을 읽어드렸습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제가 말씀을 읽은 후 “형제님은 온전합니까?”라고 물었더니 형제님이 “온전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형제님, 성경에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온전하다고 되어 있네요.” “그럼, 형제님의 생각이 맞아요? 성경 말씀이 맞아요?” “성경 말씀이 맞지요.” “그래요. 형제님이 온전한 게 맞지요?” “아니요, 온전하지 않습니다.”

온전케 하셨기 때문에

그 형제님은 자신을 볼 때 온전하지 않으니까 자기 생각을 따라 온전하지 않다고 말한 것입니다. 제가 다시 말했습니다. “형제님, 성경에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 죽으셨고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했다고 했습니다.” 마침내 그 형제님이 “내가 온전하다. 허허허” 하며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습관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소주 한 병을 꺼내려는데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술을 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됐는데 예수님이 자신을 온전하게 하신 사실을 믿으면서부터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얼마 후 그분은 선교학교에 입학해서 훈련받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부부가 너무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상파울루 쎄 대성당에서

작년 2월에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신부님이 그라시아스합창단 공연과 말씀을 전해달라고 제게 요청하셔서 브라질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말씀 시간에 복음을 전했는데 그 신부님께서 죄 사함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으로 왔는데 신부님께서 교황청의 승인을 받았으니 상파울루 주변에 계신 70명의 신부들을 대상으로 내년에도 다시 말씀을 전해달라고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금년 2월 초에 다시 브라질을 방문했습니다. 말씀을 전하러 이분이 계시는 상파울루의 대표 성당인 ‘메트로폴리타나 쎄 대성당’에 갔는데 70명이 아니라 신부님들과 성도들, 각계 종교 지도자 등 2천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다음 날은 3천 명이 모였고 자리가 없어 많이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피 흘려 돌아가시며 우리 죄가 씻어졌다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기 사진에 보시면 사람들이 손을 든 모습이 보이실 것입니다. 이분들이 왜 손을 드신지 아십니까? 제가 말씀을 전한 후 죄 사함을 확신하시는 분들은 손을 들라고 하니까 이렇게 많은 분들이 손을 든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현실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까? 예, 내 죄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럼 내 죄가 씻어진 것입니까? 씻어지지 않은 것입니까? 이 부분이 한국의 교회와 제가 다른 부분입니다. 한국의 교회 대부분이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맞지만 죄인이라고 합니다. 일반 성도들뿐 아니라 장로님, 목사님도 다 죄인이라고 하며 예배 때도 “주여, 내 죄를 용서해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합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를 위해 열심히 충성하고, 헌금을 많이 해도 한 평생 죄인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우리 죄가 눈과 같이 희게 씻어졌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저는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 죄를 다 씻으셨는데도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죽음을 헛된 것으로 돌리는 모욕적인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학교 앞 문방구 주인

제가 어릴 적 아버지 친구 한 분이 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 공책이 필요합니다. 돈 좀 주세요.” 아버지가 “지금은 돈이 없다. 그 문방구 하는 아빠 친구에게 가서 공책을 달라고 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문방구에 갔습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 그래. 뭐가 필요해서 왔니?” “제가 공책이 필요한데 아버지가 아저씨께 말씀드리고 공책 한 권 가져가면 된다고 했어요.” “그래, 가져가라.” 그렇게 하면 우리 아버지가 나중에 그 친구 분에게 외상값을 갚았습니다. 
그 뒤로 또 아버지에게 공책 살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지난번에 공책 값 갚으면서 만원을 주고 왔다. 문방구 아저씨에게 이야기하고 가져가면 된다.” 이렇게 저는 한 번도 노트 값이나 연필 값을 낸 적이 없지만 늘 공책과 연필을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가 내야 될 값을 대신 갚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우리 죄의 값을 다 치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한 일이 없지만 예수님의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내 죄가 사해졌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의(義)를 이루는 것이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롬 3:23~24)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죄를 지었어. 그런데 그 죄에 대한 형벌을 예수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면서 대신 받으면서 네 죄가 다 사해졌어. 너는 아무 일 한 것 없이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분이 계십니까? 어떤 분은 “목사님, 우리가 또 죄를 짓잖아요”라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또 지은 죄도 다 사했습니다. 하나도 안 남기고 영원히 사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교인들에게 ‘우리는 죄인이다’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면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든지 불문하고 의롭다고 믿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러 나오셨을 때 요한이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하며 말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레위기 속죄 제사에서 양이나 염소의 머리에 안수할 때 죄가 건너가듯이 요한의 세례를 통해 세상의 모든 죄가 예수님에게로 건너갔습니다. 
이튿날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세상 모든 죄가 예수님에게 건너갔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모든 죄의 값을 치르고 죄를 사하는 일을 끝마쳤습니다. 

‘의롭다’라는 말의 뜻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성경에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도 목회자들이 여전히 죄인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매일 죄를 지으니까 내가 죄인인 것이 당연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어 열심히 교회에 헌금하다 죽을 때가 됩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 당당한 것이 아니라 벌벌 떱니다. 왜요?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하늘나라에 갈 수 없으니까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롬 3:24) 여기서 ‘의롭다’라는 말은 예수님이 죄를 다 씻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주면서 “네 죄를 사한 것의 증표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더 이상 죄인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위해 죽으셨고 그때 내 죄가 사해졌다. 이제 의인이다’ 이렇게 믿으시고 하늘나라에 가는 귀한 일꾼이 되길 바랍니다.

에스와티니 국왕과의 만남

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제 우리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분들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또 각국 대통령도 죄 사함을 많이 받으십니다. 오늘 에스와티니 국왕 왕실에서 일하시는 비서관이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에스와티니 국왕님도 제가 복음을 전해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에스와티니로 해외 봉사활동을 간 음악학교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학생들이 국립 대학교 졸업식에 가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국왕이 그 노래를 듣고 행사를 마친 후 그 학생들을 부르셨습니다. 그 학생들이 국왕께 “우리 IYF 설립자 목사님이 열흘 뒤에 이 나라 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에스와티니  공항에 도착한 날 한 장관이 저를  데리고 국왕에게 갔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사는 삶

저는 국왕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씻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에 이 세상 모든 죄를 영원히 씻으셨습니다. 그때 국왕님의 죄도 씻어진 겁니다. 그래서 의롭습니다.” 국왕께서 말씀을 듣고 기뻐하시며 “아멘!”이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와서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하시고 좋은 땅을 줄 테니 IYF센터도 짓고, 예배당도 건축하고 병원도 건축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제가 그 뒤로 에스와티니에 가서 집회를 했는데 2천 명의 목회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이 제 설교를 듣고 “우리도 굿뉴스 미션에 속하자. 설교가 성경적이다”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그 목회자들이 우리 선교회가 운영하는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함께 복음을 전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여러분, 이제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모든 죄를 사했다는 사실을 전합시다. 가족들이 모두 구원받으면 정말 행복하고, 모든 사람이 죄 사함을 받으면 평화로운 나라가 될 것입니다. 
- 2024. 2. 25.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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