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성경 말씀을 믿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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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성경 말씀을 믿어야
[요한복음 13장 1절 ~ 11절] 2024. 2. 18. 주일 오전예배 설교 - 1001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4.02.25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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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발을 씻기신 이유

안녕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늘 예수님과 지냈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천 년 전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본 적도 없으니 예수님의 마음과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당시 제자들은 앞으로도 예수님과 함께할 것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예수님은 얼마 뒤에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떠나고 나면 제자들은 어떻게 살까? 다 집으로 도망가거나 나를 부인할까? 믿음의 삶을 살까?’라는 많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려고 했는지 잘 모르지만,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긴다는 말은 어느 나라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사실 더러운 우리의 몸을 씻으시려고 했다면 예수님은 더러운 우리의 머리도, 몸도, 손도 씻겨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만 씻기시고 베드로 앞에 섰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그러자 베드로가 금방 마음이 바뀌어 제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베드로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에는 항상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과 마음을 알게 되면 예수님과 마음이 가까워지면서 ‘잘해야겠다. 열심히 믿어야겠다’라는 결심을 하지 않아도 말씀을 믿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발을 씻기시는 일 앞에 ‘예수님이 왜 우리를 씻기시려고 하지? 아, 예수님이 곧 떠나시려는 구나. 그래서 우리 발을 씻기시고 싶으신 거구나’ 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없어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죄를 어떻게 사함 받는지 알지 못한 채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오늘날 한국의 많은 목회자가 ‘우리는 죄인’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냥 평범하게 ‘우리가 죄를 지었으니 죄인이다’라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헛된 것이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면 더 이상 우리는 죄인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누가 발을 씻겼습니까? 예수님이 씻겼습니다. 이처럼 우리 스스로는 자신의 죄는 물론이고 남의 죄도 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씻길 수 있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이 복음을 전하신 분도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 하면 됩니다. 

故 존 아타밀스 가나 대통령

2012년 가나 월드캠프 개막식에 가나 영부인께서 오셔서 축하 메시지를 전해 주셨습니다. 보통 영부인들은 바쁘셔서 축하 메시지를 전하고 가시는데 그 영부인께서는 행사가 마칠 때까지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개막식이 마치자 영부인께서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지금 대통령이 굉장히 위독하신데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영부인과 함께 대통령 궁으로 갔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긴 의자에 거의 누운 것과 다름없이 계셨는데 보기에도 병이 아주 깊어 보였습니다. 그분이 바로 故 존 아타밀스 가나 대통령이셨습니다. 대통령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치료를 받고 있지만 병세가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면서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까? 많이 살아야 5일, 아니면 오늘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저는 가나에서 믿음이 제일 좋은 대통령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저에게는 죄가 있습니다. 죄가 있으면 지옥에 가는데 그것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죄에 대한 판결문

교회에서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어서 신앙심이 좋다고 존경받는 분들도 죽음 앞에 서면 죄 때문에 벌벌 떨며 고통스러워합니다. 죄 사함을 정확히 받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대통령께 물었습니다. “대통령께서 죄인인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죄를 지었으니까, 죄인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가나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자기 죄에 대해 스스로 판결합니까? 죄에 대한 판결은 판사가 합니다. 이처럼 대통령님의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아, 그러네요.” “하나님이 대통령님의 죄에 대해 어떻게 판결하셨는지 보고 싶습니까?” “그게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을 펴서 보여드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말씀이 대통령님의 죄에 대한 판결문입니다. 대통령님은 죄를 지었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대통령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대통령님의 모든 죄가 씻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대통령님께 의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통령님이 너무나 놀라워하시며 그날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브라질 대성당에서 

작년 2월에 브라질 상파울루의 대표 성당인 ‘메트로폴리타나 쎄 대성당’ 신부님이 그라시아스합창단 공연과 말씀을 전해달라고 제게 요청하셔서 브라질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가톨릭교회가 우리를 향해 문을 열 줄은 상상치 못했습니다. 공연을 마친 후 한국으로 왔는데 신부님께서 내년에 다시 말씀을 전해달라고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금년 2월 초, 남미 아프리카 월드캠프 기간에 브라질쎄 대성당에서 그라시아스합창단이 주최하는 ‘세계 평화 뮤직콘서트’ 공연을 하고 제가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틀에 걸쳐 진행한 공연에 성당 신도와 그리스 정교회, 유대인 공동체, 불교 등 각계 종교 지도자 및 일반 관광객들을 합쳐서 4천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신부님에게 복음을 전하며

제가 쎄 대성당 신부님을 만났을 때 다음과 같이 죄 사함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자신이 죄를 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그 죄를 사하는 일은 예수님이 하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죄를 사해라가 아니라 죄 사함을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해 놓았다. 그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 흘리신 후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도둑질했을 때 그 죄를 우리가 용서해서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모든 사람이 지은 죄를 보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죄 사함을 얻은 자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우리 죄를 못 씻었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실패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명백하게 죄를 씻었습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 1:18)라는 말씀처럼 죄 씻었다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사하려고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힐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날 신부님이 죄 사함을 받으신 후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를 ‘의롭다’ 했기 때문에

여러분, 성경에서 로마서 3장 23, 24절은 우리에게 “너는 죄를 지었어. 그러나 내 아들 예수가 네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 모든 죄가 씻어졌어. 너는 깨끗해. 거룩해. 의로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이 “주여, 죄인입니다. 이 죄인을 용서해주시옵소서” 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눈물이 죄를 사하는데 도움이 안 되고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셨어. 그럼, 내 죄가 씻어진 거야’라며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의롭지 않은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롭다’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면 우리는 의롭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이 사실을 발견한 뒤 그날부터 ‘나는 의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에서 따돌림을 당해

제가 어릴 때 가난한 시절이라 친구들과 남의 밭에 들어가 밀을 꺾어 먹거나 사과를 따 먹고 살구도 따 먹는 등 도둑질을 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도둑질이 죄라는 것을 알았지만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점점 죄 때문에 지옥에 갈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지옥 가기는 너무 싫었고 죄를 지을 때마다 부끄럽고 고통스러워서 새벽마다 죄를 고백하며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죄를 짓고 회개하는 삶을 반복하다가 죄를 사함 받는 방법을 찾기 위해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1962년 10월 7일 성경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피가 내 모든 죄를 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다니던 장로교회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성가대 연습이 있었는데 하루는 제가 연습을 마치고 앞에 나가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가량 지나자 교회에서 점점 저를 따돌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주일예배에 참석했는데 목사님이 광고 시간에 “박옥수 선생은 주일에 차를 탔기 때문에 수찬정지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목사님께 “목사님, 수찬정지가 뭡니까?”라고 묻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성찬식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장로님이나 목사님도 죄인이라고 하는데 저 혼자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니까 문제가 된 것입니다. 

속죄 제사의 양과 염소는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과 장로님, 집사님은 모두 우리가 죄인이라고 가르치고 죄를 회개하면 사해진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하나님, 오늘 또 남의 집 밀을 꺾었습니다. 남의 밭에 들어가 사과를 따 먹었습니다’ 하며 회개했는데 여전히 제 마음은 죄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죄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순으로 신구약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위기 4장을 읽는데 죄를 사하는 속죄 제사에 대해 설명한 것을 발견한 후 제 신앙에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레위기 4장의 속죄 제사에는 제사장, 이스라엘 회중, 족장, 그리고 평민이 죄를 지었을 때 죄를 씻는 네 가지 제사법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평민의 제사법을 보면,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레 4:27~29)라고 했습니다. 여기 제사장이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계속 성경을 읽다 보니 레위기 16장 21절에 염소를 죽이기 전에 제사장이 안수하는 이유가 잘 나와 있었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 찌니.” 제사장이 안수를 통해 염소에게 죄를 넘기고 그 염소가 죽으면서 죄가 사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서 양과 염소는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했습니다.

전쟁 후 한국교회의 실상

 영국의 웩(WEC)선교회 회장이었던 ‘놀만 그랍(Norman p.Grubb)’은 1950년대 중반 일본 도쿄에 왔다가 우연히 공항에서 세계청소년선교 전도자를 만나 그의 권유로 한국에 들렀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한국은 6.25전쟁 이후 영적 부흥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거듭나 복된 삶을 살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기 때문에 한국 선교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구 주암산기도원에서 말씀을 전할 때 거듭난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자 수 천명의 사람 중 서너 명만이 손을 들었다가 눈치를 보며 내렸습니다. 그는 충격을 받고 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케이스 글라스 선교사

그분이 가서 케이스 글라스(kays Glass 한국 이름 길기수) 선교사를 한국에 보냈습니다. 제가 선산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였는데 그는 중학교에서 영어도 가르쳐 저하고 가깝게 지냈습니다. 하루는 선교사님이 전도하려고 전단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오늘 시장에 전도하러 갈 때 따라가도 됩니까?” 그분이 가만히 계시다가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 죄 사함을 받았습니까?” “예? 죄 사함이요?”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죄 사함을 받으라고 하겠습니까?” 그때 저는 난생처음 받은 질문으로 제 신앙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내 열심으로 죄를 사함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죄를 사해놓은 사실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해놓으셨습니다. 

술주정뱅이였던 남편이  

한번은 진주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마치고 합천 교회에 갔습니다. 그곳에 가니 밤 10시쯤 되어서 말씀을 전하고 마쳤는데 젊은 부인이 울면서 “목사님! 남편하고 더는 못 살겠어요. 23년 전 결혼했는데 결혼할 때는 남편이 술을 안 마셨는데 이후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 종일 술만 마셔서 이제는 도저히 그 남자하고 못 살겠어요.” 그래서 “내일 아침에 남편 데려오세요”라고 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남편이 왔는데 술을 이미 많이 먹고 왔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4절의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를 거룩하게 했는데 이 거룩함이 성경은 영원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형제님은 거룩합니까?” “아니요 안 거룩합니다. 매일 술을 마시는데 뭐가 거룩해요.” “이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거룩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형제님을 영원히 온전하고 거룩하게 했습니다. 형제님 말이 맞습니까? 예수님 말씀이 맞습니까?” “예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룩하지 않습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형제님이 드디어 “저도 거룩합니다”라고 말한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튿날, 그가 잠에서 일어나서 술을 먹으려고 한 사발 따랐는데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매일 술만 마시던 사람인데 그날부터 술이 딱 끊어졌습니다. 그런 이후 우리 신학교에 들어와서 지금은 작은 교회의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을 통해 사람이 변화되는 것을 보면 너무 행복합니다.
 

성경 말씀을 믿고 사는 삶

신앙을 한다는 것은 교회에 예배드리러 왔다 갔다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사한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의 추하고 더러운 모든 죄를 눈과 같이 희게 씻어 주셨습니다. 찬송가에 “너희 죄 사해주사 기억 아니하시네”(새255 통 187)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죄를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다른 이야기를 믿지 말고 성경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이 제자들 발을 씻기려고 했을 때 베드로가 가로막자 예수님이 씻음 받은 사람은 발만 씻어도 족하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다 씻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늘나라 가기에 손끝만큼도 부족함이 없이 완벽하게 깨끗하게 다 씻으신 겁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 안에 역사하셔서 은혜롭고 복된 삶을 살게 하십니다. 
- 2024. 2. 18.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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