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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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의 믿음
[사도행전 3장 1절 ~ 10절] 2024. 2. 11. 주일 오전예배 설교 - 1000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4.02.1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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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맞이하면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설 연휴로 고향에 가신 형제자매들이 많지만 우리가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이 살아 계시는데 우리는 그 예수님을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우리가 갖지 못한 마음의 세계와 은혜, 기쁨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아주 귀한 일들을 하셨습니다.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사랑과 그분이 나타내신 역사는 우리 인간의 사랑이나 능력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영을 받으니까 그들을 통해 예수님의 역사가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너무나 신비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공부를 많이 했거나 성경을 이론적으로 많이 알아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처음 읽을 때는 잘 모르지만 한 번, 두 번, 세 번 점점 읽다 보면 ‘예수님의 마음은 이렇구나’ 하며 예수님의 마음이 보입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의 마음은 이런데 왜 내 마음은 예수님과 다르지. 왜 나는 인간적이지. 왜 난 세상을 좋아하지’라며 갈등하다가 ‘나도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싶다’라며 우리 마음이 변합니다. 
 

성전 미문에 있는 앉은뱅이

오늘 읽은 사도행전 3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갔다가 성전 미문에서 손을 벌리며 구걸하고 있는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베드로가 처음에는 ‘저 거지는 머리가 좋아. 성전 앞에서 구걸하니까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이 거지를 못 본 척할 수 없어서 모두 돈 주고 가네’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기분이 좋다면 동전이라도 던져주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계신다면 앉은뱅이를 고쳐주실 거야.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소경의 눈도 뜨게 하셨어. 그런데 왜 나는 못하지?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데. 내 생각은 예수님의 생각과 너무 다르구나. 그럼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마음과 같아지지? 지금까지 나는 자신을 잘나고 똑똑한 줄 알았는데 정말 아무것도 아니네.’ 이것은 성경에 없는 이야기인데 베드로의 마음이 이렇게 흘러갔으리라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

또한 베드로는 ‘오늘은 그냥 가자. 나는 아직 영적으로 어리니 다음에 하자’라며 매일 성전 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로 인해 성전에갈 때마다 그를 보면서 갈등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베드로의 생각을 이기니까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라면 얼마든지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있어. 오늘은 앉은뱅이를 일으켜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마침 그날 한 사람이 앉은뱅이를 성전 문에 업어다 주고 가자 앉은뱅이는 구걸하려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지나가면서 또 갈등했습니다. ‘오늘 일으킬까? 내일 할까? 아니야, 오늘 해야 하는데. 못 일으키면 어떡하지? 창피하잖아. 오늘은 동전이나 주고 그냥 지나가자.’ 
여러분, 베드로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으면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과 같아집니다. 그날 베드로는 ‘예수님은 앉은뱅이를 못 일으키면 어쩌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 그렇다면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니까 지금 한번 앉은뱅이에게 일어나라고 해볼까? 성경에는 믿음대로 된다고 했는데’라며 그의 마음속에 주님의 마음이 들어와서 일을 하니까 예수님이 살리신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자라는 시기

베드로가 처음부터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내가 예수님은 아니잖아. 어떡하지?’ 하다가 “우리를 보라” 하며 외치니까 앉은뱅이가 쳐다봤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했습니다. 
앉은뱅이가 베드로에게 요구하는 것은 돈인데 그에게 돈은 없어도 더 좋은 예수님이 있으니까 그는 ‘그냥 예수님을 줘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그때 “에이 안돼” 하고 그냥 지나갔다면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을 텐데 ‘이번에 하자. 하나님이 역사해’라며 그의 마음을 바꾼 것입니다. 그가 처음에는 갈등했지만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데 왜 못해?’라면서 그의 마음을 바꾸니까 믿음으로 외칠 수 있었습니다.

천국이냐 vs 지옥이냐

우리가 처음부터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교회를 한두 번 나오면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구나. 그럼 내 죄가 사해지고 없네’라고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 부분에서는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결정하는  차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가 사해져서 하늘나라 갈 수 있어’라는 부분이 처음엔 의심스럽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어떤 계기로든 믿음을 갖게 됩니다. ‘내가 죄 사함을 받았어. 내가 깨끗하고 의로운 게 맞아’ 한다면 우리 마음에 성령이 들어오고,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서 살아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그럼 이 일도 예수님이 하시겠네’ 하며 믿음을 갖게 됩니다. 

복음을 전했던 한 청년의 발언

여러분, 오래전 일인데 제가 선교 학교를 마치고 지역 교회에서 전도를 다녔습니다. 당시 교회에 나오는 아주 착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보통 그 청년은 남이 얘기하면 다 받아들였습니다. 하루는 그와 마주 앉아서 오후 내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날 청년이 구원을 안 받고 갔는데 이튿날 예배 시간에 간증하러 나왔습니다. 제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복음을 듣고 집에 가는 길에 구원받았다’라는 간증을 기대했는데 그 형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옥수 형제가 얘기할 때는 골치 아파서 아무것도 모르겠던데 집에 가는 길에 다른 형제를 만나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어요.” 먼 옛날이야기라서 자세히 기억나진 않는데 저는 그 청년 형제를 쳐다보기도 싫고 ‘어떻게 사람 속을 이렇게 짓밟을 수 있나’라며 서운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처음부터 성경 말씀이 그대로 믿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의 생각이 하나도 포함되지 않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우리가 듣고 마음에 받아들이고 믿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셨다.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이 잘못된 것을 깨달았을 때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생각을 이기고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남미 및 아프리카 월드캠프

지난 1월 28일부터 2월 11일까지 페루, 우루과이, 브라질, 토고에서 기독교지도자포럼(CLF) 및 월드캠프가 진행되었습니다. 가톨릭 신부님 초청으로 브라질 메트로폴리타나 쎄 대성당에서 4천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토고 국립극장에는 3천 석의 객석과 극장 앞 광장에 천막을 설치해 7천 명을 수용해서 총 1만여 명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의 마음과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말씀이 진리니까 받아들이게 됩니다. 처음에는 내 생각과 안 맞지만 내 생각을 무시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마음이 똑같아질 때 정확하게 예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고 말씀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성경에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가 그 사실을 믿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내 죄가 사해졌구나’ 하며 이론으로만 알다가 어느 날 우리 마음에서 그 말씀이 믿어질 때 성령의 역사하심을 보게 됩니다. 

내 발에 딱 맞는 구두

예전에 어떤 분에게 저녁 늦게까지 말씀을 전하고 그 집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발을 씻으려고 양말을 벗었는데 제 발이 새까맸습니다. ‘아침에 씻은 발인데 왜 이렇게 새까맣지?’ 하며 얼른 씻고 신발을 보니 구두 밑바닥에 구멍이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 구두 한 켤레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며칠 후 장팔리 교회에서 사역할 때 있었던 고등학생이 군 장교로 임관했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소포를 보냈습니다. 그가 군대에서 새 구두가 나왔는데 본인은 구두가 있고, 제 생각이 났다는 것입니다. “목사님께 구두를 드리려는데 발 치수를 몰라서 고민하다가 기도하며 보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소포 상자를 풀면서 ‘내가 구두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이 신발, 내 발에 딱 맞겠다. 그 형제는 내 발 치수를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구두를 꺼내서 신어 보니 정말 제 발에 꼭 맞았습니다. 
그 후 제가 결혼하기 위해 장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장모님은 동생이 예수를 믿는데 직장이 없어 고생하는 것을 보며 걱정하셨답니다. 제게 “지금까지 혼자 몸일 때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았다. 앞으로 결혼하면 식구가 늘어나는데 어떻게 살겠는가?”라고 물어보셨습니다. “하나님이 제 손과 발이 몇 개인지 잘 아십니다. 그래서 양말이나 장갑, 구두를 달라고 했을 때 한 짝만 주시지 않고 꼭 두 짝을 주셨습니다. 지금까지는 저 혼자만 먹이셨지만 결혼하면 둘이 되고 아이를 낳으면 셋, 넷이 되니까 하나님이 다 아시고 주실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해서 장모님의 결혼 면접에 합격했습니다.

집에 양식이 떨어졌을 때

제가 대구에서 사역할 때 다음날이 설 명절이라 장모님이 오셨는데 집에 양식이 다 떨어져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날 아침 일찍 대구 역으로 전도를 나갔다가 버스비가 없어 걸어서 저녁 늦게 돌아왔습니다. 아내 눈치를 보니 굶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밤이 늦어 가족들이 온종일 굶은 채 잠을 자려고 하는데 우리 교회 한 자매님이 찾아왔습니다. 아내와 한참 이야기하다 돌아갔는데 아내는 봉투를 하나 들고 왔습니다. 
대학 교수였던 그 자매님은 시댁을 가려고 짐정리를 한 후 늦은 밤에 혼자 기도하는데 ‘네가 박 목사에게 주려고 한 돈 지금 갖다 줘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하나님, 저는 목사님 집도 몰라요. 내일 아침에 드리겠습니다.’ ‘아니, 지금 갖다 줘라.’ 자꾸 이런 생각이 나서 우리 집을 찾아 나섰는데 길에서 우연히 교회 형제님을 만나서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날 밤 10시가 지났지만 음식을 사다가 온 가족이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 속에 살아 일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하나님을 경험하다 보면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죄인에서 의인이 되는 과정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안다고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우리 죄가 사해진 것이 확실하게 믿어질 때, 우리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이것은 죄인이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과정입니다. 구원은 꿈을 꾸거나 성령의 불을 받는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마음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세상의 많은 것에 끌려다니다 보면 혼돈스러워집니다. 구원을 받고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하나님이 내게도 역사하시겠구나’ 하며 믿음이 생깁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죄의 문제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내 죄가 사해졌구나. 나는 의롭다. 나는 거룩하다. 나는 깨끗하다’라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그 어떤 문제와 모든 질병을 이길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이 사실 하나만도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예전처럼 피하지 않고 자꾸 부딪치다 보면 하나님을 믿는 기회가 생깁니다. 그렇게 형편과 전혀 다른 말씀이 믿어지고 그 믿음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하면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베드로가 처음에는 앉은뱅이를 보고 ‘예수님이니까 그를 고치시지, 나는 예수님도 아닌데’ 하고 피하다가 성령이 충만해지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하며 그를 일으켰습니다. 우리도 해보는 겁니다. 이렇게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딜 때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도전하다 보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도 ‘이 사람은 구원을 받겠구나’ 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변화되는 것은 인간의 말재간이나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믿음으로 도전하다 보면

최근에 우리 선교회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서 정말 깜짝 놀랄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몇 년 지나지 않아 전 세계로 우리 선교회가 복음을 전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놀라워합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복음이 잘 전해지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되면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아서 더 이상 좋을 게 없고, 안 되면 구원을 못 받는 것인데 실망할 것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전하면 됩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니까 내가 믿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거라는 마음으로 도전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고 내 죄를 사했습니다. 하나님이 내 속에 역사하길 원하십니다’라는 믿음의 단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복음을 전할 때 가장 어려운 일

복음을 전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은 하는데 뭔가 좀 애매한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이 종종 “목사님, 저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았다고 기뻐하며 간증합니다. 저는 하나도 기쁘지 않고 별 감정도 없는데 제가 죄 사함을 받은 게 아니면 어떡해요?”라며 고민합니다. 그럴 경우 그에게 “제가 죄 사함을 받았는데 좀 의심이 가요”라고 말하도록 권하십시요. 그러면 주변에 목회자나 형제자매들이 “그럴 수 있어요. 다시 설명해 줄게요” 하면서 다시 복음을 전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내가 죄 사함을 받은 게 아닌 것 같은데 부끄러워. 그냥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하자’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됩니다. 이럴 경우 “목사님, 제가 죄 사함을 받은 줄 알았는데 요즘 죄 사함을 받은 것을 의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지혜로운 것입니다. 다시 복음을 들어보면 새롭고 분명하게 구원을 확신하게 됩니다. 

사단이 주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못 믿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은 거짓말을 안 하십니다.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신 것은 실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부인해야 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없습니다. 예수님이 완벽하게 내 죄를 씻기 위해 일하셔서 죄가 씻어진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인간보다 훨씬 지혜로워서 사람들 마음속에 별별 생각을 넣어줍니다. 다른 사람은 다 구원받아도 나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을 넣어서 두렵게 합니다. 그럴 때 ‘사단아, 물러가라. 난 네 말 안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거야’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나아가면 그 믿음을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고 믿음이 점점 자라기 시작합니다. 

믿음이란 어렵지 않아

여러분, 믿음이 어렵습니까? 쉽습니다. 우리 도전합시다. 하루에 한 번씩 도전하세요. 설령 또 해도 안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을 잘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도전하다 보면 분명히 하나님이 내 속에서 일하시는 그 역사를 알 수가 있고 느낄 수가 있고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도 역사하시네. 하나님이 내게 역사하신다면 나는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단지 ‘내가 안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을 버리고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인데 하나님이면 돼’라고 믿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역사하십니다. “난 믿음 없다. 내 속에 역사 안 한다.” 이런 말 절대 하지 마세요. 그것은 사단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저도 하겠습니다.” 그 믿음으로 달려 나가서 하나님의 귀한 일에 쓰임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하나님으로 사는 법을 시작해 봅시다. 이렇게 우리가 일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시면 놀라운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 2024. 2. 11.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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