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를 의롭다 하신 말씀을 믿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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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를 의롭다 하신 말씀을 믿어야
[히브리서  10장 1절 ~ 18절] 2024. 1. 28. 주일 오전예배 설교 - 999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4.02.03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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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나오는 인간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히브리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10장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자세하게 풀어드리려고 합니다. 어떤 분은 히브리서가 어렵다고 하시는데 자기 기준으로는 타인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성경도 인간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자기 기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주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과 한마음이 됩니다. 이것은 신앙을 할 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고, 인간은 죄를 지어 멸망을 당해야 하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하려면 죄가 없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아무리 죄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회개하고 발버둥 쳐도 죄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회개의 참된 의미

성경에는 죄를 지은 인간이 있고 그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인간 스스로 죄를 사할 수 있었다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인간은 손끝만 한 죄도 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죄는 누가 사할 수 있습니까? 네,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를 사할 능력과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회개하면 죄가 사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회개하고 죄 사함을 얻으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회개하면 죄가 사해진다’가 아니고 회개를 먼저하고 그 뒤에 죄 사함을 얻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단지 ‘제가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비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돌이키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죄 사함을 믿고 얻으라는 의미입니다. 이 죄 사함은 나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하고 회개해도 죄는 씻을 수 없습니다.

누가 운전을 잘 해야 하나

어느 날 저와 아내가 자동차를 탔습니다. 제가 운전을 했습니다. 그러면 목적지까지 갈 때 누가 운전을 잘해야 합니까? 아내가 잘해야 합니까? 사실 아내가 잘하는 일이 있는데 자동차를 타면 바로 코를 골면서 잠을 자는 것입니다. 아내가 콧노래를 하든, 무엇을 하든지 간에 목적지까지 가는 데에 그 행위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운전하는 사람은 아내가 아니고 저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수고, 그 어떤 것으로도 죄를 사함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첫 번째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 넘기는 일을 하셨습니다. 두 번째로는 예수님이 그 죄를 사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 일은 어떤 일이지요? 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면 우리 죄는 사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죄에 대한 형벌을 받아

마태복음 3장 1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 이르러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할 때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하고 거부하자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 세상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은 이제 하늘나라에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왜요? 죄가 예수님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셔야만 했기 때문에 로마 군인들에 의해 갈보리 산으로 끌려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리며 돌아가실 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바로 “다 이루었다”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즉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는 일을 다 마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죄에 대한 형벌이 십자가에서 다 치러졌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죄 사함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한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누가 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십자가에서 받으시면서 죄를 깨끗이 씻으셨습니다. 

심장이 가장 안 좋았을 때

예전에 제 심장이 가장 안 좋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해 미국 뉴욕과 페루에서 집회가 있었는데 뉴욕집회는 겨우 마쳤지만, 몸이 너무 좋지 않아 페루를 가야 할지 말지 아내와 의논했습니다. 의논 끝에 죽더라도 복음을 전하다 죽자는 마음으로 페루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렇게 페루에 도착해 설교하기 위해 단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다가 멎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지하에 있는 선수대기실 벤치에 한참을 누웠다가 올라와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당시 집회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저를 보고 페루 형제자매들이 ‘아, 이제 박옥수 목사님을 보는 것이 마지막이구나’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심장뿐만 아니라 몸이 너무나 건강해졌습니다. 

브라질 대성당에서 복음을

오늘 예배를 마치면 저는 LA로 갑니다. LA에 도착하면 아침 8시쯤 돼서 주일 낮 예배를 또 한번 드리고 바로 남미로 가서 기독교지도자연합(CLF) 모임과 월드캠프를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브라질 상파울루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신부님이 다른 70여명의 신부님들을 초청해 주셔서 제가 그분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작년 2월에 남미를 방문했을 때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신부님이 그라시아스합창단 공연과 함께 제게 말씀을 전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저는 가톨릭교회가 우리를 향해 문을 열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행사 당일 큰 성당에 1500명 이상 되는 분들이 참석해 그라시아스합창단의 음악을 듣고 말씀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며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께서 메일을 보내셨는데 전해준 말씀에 대해 감사와 기쁨을 표하며 올해 다시 브라질을 방문해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이처럼 지금 전 세계가 우리 기쁜소식선교회를 향해 문을 열고 있습니다.
 

율법은 참 형상이 아니므로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 10장을 읽었습니다. 1절을 보시면,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 10:1) 여기서 율법이 그림자이고 참 형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십계명과 같이 무엇을 지키라는 것도 율법이고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처럼 제사법도 율법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에서 말하는 율법은 제사법, 특히 속죄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속죄제가 참 형상이 아니라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 속죄 제사를 드린 것인데 그 제사로는 죄가 온전히 씻어지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 죄를 모두 씻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는 이론이 아닌 사실

2절,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여기서 ‘그렇지 아니하면’이란 죄가 씻어졌다면 다시 제사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속죄 제사는 죄를 깨닫게 하고 그 죄를 사하는 하나의 형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구약의 제사를 따라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하는데 그것으로는 죄가 사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써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기록된 성경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이론입니까? 사실입니까?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었습니까? 못 씻었습니까? 성경은 사실이며 예수님이 우리 모든 죄를 씻었는데 여전히 “주여,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제사가 필요해

3절과 4절,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구약 시대에 속죄 제사는 죄를 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인데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이 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죄를 생각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5절과 6절,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제사를 지내도 인간들은 또 죄를 짓고 죄인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라는 존칭어는 귀한 분이 오셨다는 말로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영원한 제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준비했습니다. 
7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여기서 두루마리 책은 성경을 말합니다. 이사야 53장을 보면 율법에 기록된 속죄 제사가 아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영원히 씻으실 것을 미리 예언한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1~6)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죄가 예수님께 다 건너갔습니다. 구약시대에 양으로 드린 속죄 제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우리 죄를 사할 것을 나타내는 그림자입니다. 양과 염소가 죄를 건네받아 사망으로 죄의 값을 치르듯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상 죄를 건네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를 끝내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죄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제사를 드린 이유

8절,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이런 제사는 우리의 죄를 사하지는 못 했다는 것입니다. 9절,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양이나 염소를 드리는 제사로는 모든 죄를 사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첫 것을 폐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는 둘째 것을 세우셨습니다. 10절,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해졌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럼 우리가 뭘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게 하면서 우리가 거룩해졌다면 “내 죄가 사해졌네. 난 의롭네. 내가 거룩해졌네!” 하고 믿으면 됩니다.
11절과 12절,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을 영원한 제사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사하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14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여러분, 우리를 죄에서 온전케 하는 것은 행위가 아닙니다. 오직 자신의 몸을 제물로 삼아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예수님이 우리를 영원히 거룩하고 온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의롭다 하신 이를 믿어야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거나 회개하거나 눈물을 흘려서 우리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죄의 대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예, 우리는 모두 의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목회자들이 똑같은 성경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는 죄인이다’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저는 성경 말씀에 기록된 대로 ‘우리는 의인이다’라고 가르칩니다. 

죽음 앞에 죄인으로 서는 사람

얼마 전 돌아가신 대형교회 유명한 목사님이 “내가 꿈에 지옥에 갔었다. 그런데 회개를 하니까 천국에 가더라”라고 설교했습니다. 지옥에 갔는데 회개를 하니 천국에 갔다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그것보다 한 평생 목회를 하며 말씀을 전했던 목사님이 죽음 앞에 섰을 때 죄인이었다는 것은 너무나 불행한 일입니다.
기성교회의 수많은 장로님, 집사님들이 복을 받고 천국에 가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해 물질도 드리고 몸도 드리면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죽음 앞에서 죄인으로 서게 된다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죄를 사했다는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이단이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못하게 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하나님을 대적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을 때, 내가 받아야 할 죄의 벌을 예수님이 다 받으셔서 우리가 영원히 거룩하게 된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이번에도 여러 나라 방문하면서 또 많은 목회자를 모아 놓고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많은 분이 죄 사함 받고 거듭날 수 있도록 여러분이 같이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며 사는 복된 삶

저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을 보고 내 죄가 확실하게 씻어졌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하나님이 저와 동행하시면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시고 놀랍게 역사하셔서 해마다 수많은 나라에서 캠프와 성경세미나를 합니다. 이렇게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여러분들도 가족을 위해, 가까운 이웃을 위해 기도하면서 한 분 한 분에게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 죄를 사했는지 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 가족이, 이웃이, 대한민국이, 전 세계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귀하고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 2024. 1. 28.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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