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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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신 이유
[요한복음 11장 17절 ~ 44절] 2023. 11. 26. 주일 오전예배 설교 - 990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3.12.0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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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마음의 세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마음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너무 달라서 성경 속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 결코 들어 볼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 성경 속에 나타난 마음의 세계를 통해 우리 마음의 상태를 비춰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나사로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예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마음은 전혀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꼭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다니 마을에는 마르다와 마리아, 그들의 오빠인 나사로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죽지 않을 줄 알았던 오빠가 덜컥 죽고 예수님께서는 오빠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뒤에야 베다니 마을에 오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

예수님이 베다니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러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우리 오빠가 병들었을 때 예수님이 오셨으면 살았을 텐데, 그때 오시지 않고 죽은 지 나흘 뒤에 오셨어’ 하며 너무나 속상하고 섭섭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마르다는 속상함을 뒤로 하고 예수님을 맞이하러 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마르다의 마음도 동생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죽어가는 오빠는 고칠 수 있지만 이미 죽은 오빠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섭섭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를 만나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하지만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산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만일 마르다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하신 예수님의 마음과 같았다면 “예수님, 우리 오빠가 산다고 그러셨나요?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오빠가 살아나겠네요!”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생각

이제 마리아가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마리아도 마찬가지로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통분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어디 두었느냐”라고 말씀하신 후 마르다, 마리아와 함께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 앞에서 “돌을 옮겨 놓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빠가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나?’라는 생각에 잡혀서 “네 오라비가 살리라” 하신 말씀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다는 돌을 옮겨 놓으라는 말씀을 듣고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빠가 살아있을 때까지는 예수님을 기대하다가 죽고 썩어 냄새나니까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릴 수 없다고 포기한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도 해결하시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믿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믿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에게 ‘나는 이해할 수 없고 내가 볼 때 불가능하지만 전능한 예수님이라면 가능해!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얼마든지 오빠를 살리실 수 있어’라며 믿음을 갖길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차원에서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당신이 해결하실 수 있다는 것을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도 보여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오빠도 살릴 수 있다는 예수님의 영역까지 그들 생각의 역량이 커지도록 일하신 것입니다. 저는 수십 년 동안 예수님을 믿으면서 불가능했던 일들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이 해결해주셨습니다. 지금은 어떤 불가능한 일을 만나도 ‘예수님이면 해결해 주신다’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김천에서 전셋집을 얻을 때

저는 군 제대 후 압곡동에 있다가 김천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 수중에 돈이 3천 원 정도 있었습니다. 김천에서 전셋집을 얻으려고 알아보니 7만 원이었습니다. 김천 시내를 위에서부터 걸어 내려오면서 하나님께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 저기는 다방이 있네요. 저기는 양품점이 있네요. 저기는 서점이 있네요. 세상의 신들도 자기 사람에게 건물을 주는데 하나님, 제가 복음을 전하는데 건물을 안 주십니까? 건물을 주십시오.’ 예수님이 사람이라면 ‘준다. 안준다. 내일 준다’라고 말할 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이제 제가 주님을 어느 정도 믿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날 김천에 가서 집을 찾아보다가 압곡동으로 돌아오는 길에 외국인 한 분을 만났습니다. 제 영어 실력이나 그분의 한국어 실력이 비슷했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저는 영국에서 온 앤더슨 선교사입니다.” “지금 어디 가세요?” “여행 중입니다.” “전도 여행입니까?” “그냥 여행입니다.” 그때 저는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여행을 다닌다는 말에 화가 나서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복음은 안 전하고 여행을 다닌다고요? 우리나라에 당신 같은 사람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묵묵히 제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습니다. 저는 버스에서 내려 압곡동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려고 매표소로 갔는데 앤더슨 선교사님이 저와 같이 있고 싶다며 하룻밤 재워달라고 해서 함께 압곡동으로 갔습니다.

영국 선교사와의 만남

제가 사는 압곡동에는 수도 시설이 없어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그냥 드렸는데 선교사님이 그 물을 마시고 배탈이 나서 밤새도록 고생했습니다. 그렇게 며칠 지나고 나아지자 “나는 많은 사역자를 만났지만 당신처럼 사는 사람을 처음 봤다. 당신의 삶을 배우고 싶다. 일 년만 당신하고 같이 살면 안 되겠냐”라며 아주 간곡히 부탁해서 함께 살기로 했습니다. 
약 일주일 뒤에 선교사님이 압곡동으로 찾아왔습니다. “미스터 박, 김천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돈을 주셨어요.” 그 선교사님이 집을 구하고 저와 같이 지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 년 동안 그분과 복음의 일을 같이하다가 그분이 다른 선교지로 떠나시면서 제게 집을 주고 가셨습니다. 저는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나거나 집을 얻는 일, 음식을 먹는 일 등 모두가 주님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자주 굶고 어려웠지만

제가 선교학교를 마치고 경남 합천의 압곡동이란 곳에서 복음을 전할 때 자주 굶고 어려웠지만 ‘내가 여기서 굶어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안 하도록 하신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만일 그런 생각이 들었으면 전 아마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왔을 것입니다. 손 자매님이 구원을 받아 며칠 만에 식사를 했던 일, 전도가는 길에 산딸기를 배부르게 먹여 주셨던 일, 산에 먹을 것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일 등 그곳에서 사는 동안 제가 계속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삶을 살게 되면서 돈에 관한 생각이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돈과 물질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념들을 다 뽑아 버리시고, 믿음으로 사는 삶을 알려주셨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서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 가셔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고 마르다는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 돼 썩어 냄새나는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관념이나 주관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죄 사함은 행위와 상관없어 

한국에서 저를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우리는 더 이상 죄가 없다. 죄인이 아니다’라고 설교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대부분 ‘우리는 죄인이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주일마다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비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셨고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완벽히 씻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것이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는 일에 실패하셨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라며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의롭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 사함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습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이미 이루신 사실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 우리 죄를 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해외에서 복음을 전하며

저는 해외에 나가면 현지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분들이 제 설교를 듣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눈이 동그래지십니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죄를 지었으면 죄인인데 저 박 목사는 자신을 의인이라고 하네?’라는 표정이 보입니다. 그러면 그분들에게 “여러분,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까?”라고 물어봅니다. 모든 분이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셨지요” 하며 대답합니다. 그럼, 제가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우리 죄를 사하셨습니까? 못 사하셨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 그분들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우리 죄를 사하셨다’라고 말하려니 그동안 죄인이라고 가르쳤던 것이 잘못된 일이 되고, ‘우리 죄를 못 사하셨다’라고 말하려니 예수님이 실패했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레위기의 속죄 제사에서부터 성경에 기록된 죄 사함에 대한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면 참 많은 분이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고 예수님이  모든 죄를 사하신 사실을 받아들이고 죄 사함을 받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어주셔서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는 말씀을 믿기 어렵습니까? 정말 쉽고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셨고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저는 전 세계를 다니며 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가톨릭 대성당에서

지난 2월에는 남미 선교방문으로 브라질을 방문하였습니다. 상파울루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신부님이 한국과 브라질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그라시아스 합창단 공연과 함께 말씀을 전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저는 1500명이 모인 대성당에서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공연한 후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얼마 뒤 그 신부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브라질에 꼭 다시 와서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내년 2월에는 이틀 동안 말씀을 전해달라며 이미 교황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았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 신부님은 저를 만나서 복음을 들은 후 구원을 받고 좋아하셨습니다.
이번 11월에는 남부아프리카 9개국 선교 방문을 통해 정상 면담과 기독교 지도자 포럼이 있었습니다. 말라위 차퀘라 대통령은 신학자 출신으로, ‘하나님의 성회(Assembly of God)’에서 오랫동안 사역하신 분입니다. 작년에 처음 만났을 때 속죄 제사를 통해 복음을 전했는데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이번에는 저를 대통령궁으로 초청해서 갔는데 오랜 친구를 만난듯이 저와 일행을 반겨주셨습니다. 
술주정뱅이 남편을 둔 부인

몇 년 전 진주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이 있어 공연을 마치고 합천교회로 가게 되었습니다. 밤이 늦었지만 제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합천교회 형제자매님들이 모였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모임을 마쳤는데 한 부인 자매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도저히 남편과 못 살겠습니다. 23년 전에 결혼했는데 한 3년 지나면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밥도 안 먹고 술만 마십니다.”  
그 부인이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안방과 거실에 술병들이 뒹구는데 그것을 치울 때마다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울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자매님, 울지 말고 남편을 데리고 오세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말씀대로 온전하다고 믿은 뒤

다음날 새벽에 그 부인이 남편과 함께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그분에게서 술 냄새가 풀풀 풍겼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히브리서 10장 14절의 말씀을 읽어드렸습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제가 말씀을 읽은 후 “형제님은 온전합니까?”라고 물었더니 형제님이 “온전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형제님, 성경에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온전하다고 되어 있네요.” “그럼, 형제님의 생각이 맞아요? 성경 말씀이 맞아요?” “성경 말씀이 맞지요.” “그래요. 형제님이 온전한 게 맞지요?” “아니요,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 형제님은 자신을 볼 때 온전하지 않으니까 자기 생각을 따라 온전하지 않다고 말한 것입니다. “형제님, 성경에서 온전하다고 했으면 온전한 게 맞지 않습니까?” “예.” “그럼, 형제님은 온전하지요?” “아뇨, 온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형제님과 약 20분 정도 입씨름을 했습니다. 
결국 형제님께서 “예. 목사님, 저는 온전합니다”라며 말씀을 받아들이셨습니다. 형제님은 말씀대로 온전하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습관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소주 한 병을 꺼내려는데 문득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동안 술을 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모두 실패하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을 온전하게 하신 사실을 믿게 되면서 술병의 뚜껑을 열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얼마 후 그분은 선교학교에 입학해서 훈련받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인간의 생각과 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는 차원과 예수님의 차원은 다릅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악을 저지르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하셨다면 우리가 의로운 게 맞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죄인이라고 했으면 죄인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씻어서 하나님이 나에게 의롭다고 했기 때문에 난 의로운 거야!’라고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8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라며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생각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었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가 가진 어두움과 죄를 물리치십니다.
 

주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 마음이 같아지길 가장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과 같은 위치에 세워 주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으면 예수님과 같은 마음이 되고, 예수님과 똑같이 말할 때 예수님이 우리 속에 역사하십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을 보면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 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볼 때는 오빠가 썩어 냄새가 나서 못 살아날 것 같지만 나는 살린다. 앞으로 이런 일 있다고 근심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나를 의지해라”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죄를 짓고 악을 행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셨으면 ‘의롭다’라고 믿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하나가 되면 그때부터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고 하나님의 큰 능력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영광스러운 삶이 될 줄 믿습니다.
- 2023. 11. 26.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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