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아하시야왕이 저주를 받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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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아하시야왕이 저주를 받은 이유는
[열왕기하 1장 1절 ~ 16절] 2023. 10. 1. 주일 오전예배 설교 - 982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3.10.0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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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을 보내며

여러분, 추석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제 고향은 선산인데 추석에 저도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선산교회에 들러 형제자매님들과 신앙 상담도 하고 족구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아하시야의 마음이 현저히 다른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아하시야의 부모는 아합왕과 이세벨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을 끼친 왕과 왕비였습니다. 아버지였던 아합이 죽고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하시야왕이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많이 다쳤습니다. 병이 깊어지자 신하에게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을 찾아가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그는 하나님이 아닌 에그론의 신에게 물어보게 한 것입니다.
 

아하시야왕과 엘리야 선지자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아하시야왕이 보낸 신하들을 길에서 만나 이야기했습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찌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이 말을 듣고 신하들이 왕에게 돌아가자 왕이 어찌해서 돌아왔는지 물었습니다. 신하들은 엘리야가 전한 말을 왕에게 고했습니다. 그러자 아하시야왕이 말했습니다.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고한 그 사람의 모양이 어떠하더냐.”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왕은 그가 디셉 사람 엘리야인 것을 알고 그를 데려오라고 오십부장과 오십인을 보냈습니다. 열왕기하 1장은 이렇게 아하시야왕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의뢰하면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하시야왕은 부모님이 하나님을 대적했고 자기도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아서 하나님께 나아가도 은혜를 베푸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어보려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입니다. 만일 아하시야왕이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벌을 받는 것 같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 병을 낫게 해주십시오’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심장병에서 낫게 된 과정

예전에 제가 젊었을 때 여기저기 건강이 무척 안 좋았습니다. 특히 대전에서 사역할 때 심장이 얼마나 안 좋은지 당시 8층짜리 대전 선교센터 건물을 짓고 있었는데 가슴이 너무 떨려서 공사장 인부들을 올려다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10년은 살 수 있겠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놀랍게도 하나님이 제 심장을 완전히 고쳐주셨습니다. 충북 영동의 송호 솔밭에서 여름수양회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온종일 바쁜 일정을 마치고 잠을 자려고 누워 그날의 일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행본부에서 주일학교 장소까지 500m쯤 되는 거리인데 그 더운 여름에 뜨거운 햇볕 아래서 맨발로 네 번이나 왕복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하루에 
4㎞를 걸을 수 있었다면 이제 내 심장이 다 나았네’라며 하나님이 낫게 하신 것을 믿고 조깅을 시작했습니다. 수양회를 마치고 교회 옆에 있는 고등학교 운동장을 매일 아침 뛰었습니다. 그 후 가벼운 운동화를 하나 사서 해외 집회에 갔을 때도 계속 뛰니까 심장이 좋아졌습니다.
제가 죄 사함을 받은 뒤에 하나님이 저를 인도하시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놀랍습니다. 지금은 제가 나이가 들었지만 오히려 젊을 때보다 몸이 더 건강한 것 같습니다. 제가 몸이 아프고 어려울 때 다른 길이 없어서 하나님께 구하고 의지했을 뿐인데 하나님은 저를 항상 도와주셨습니다. 

실수하고 범죄했을 때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무언가 잘해서 상 받을 자격이 있을 때 복을 받으러 나오라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렵고 곤고할 때, 실수하고 범죄 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와라.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풀게.” 그러나 아하시야는 아버지 아합왕과 어머니 이세벨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믿는 사람을 핍박했으니까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서 “이 병을 좀 낫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신하들을 보냈고 이것을 안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어려움을 당한 아하시야에게 은혜를 베풀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부모님과 자신의 연약함을 보며 하나님이 자신을 돕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고 하나님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헌금하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선한 일 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 제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해야 하나님이 잘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반대로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악 된 삶을 살다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이 외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열왕기하 1장의 말씀은 우리의 그런 생각이 하나님의 마음과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죄 속에서 방황하다가

저는 죄 속에서 방황하다가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어려서부터 가난한 시절을 지내며 배고플 때면 친구들과 남의 집 사과나 감을 따 먹고 거짓말도 자주 했습니다. 당시 저는 잘난 게 없어서 이야기할 때 약간 거짓말을 보탰습니다. 그러면 말하기도 좋고 듣기도 좋았습니다. 저는 그런 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1년 정도 지나니 거짓말이 줄줄 나왔습니다. 
그러던 1962년, “머리털보다도 더 많던 내 죄가 눈보다 더 희어졌네~♪”(찬송가 208, 새찬송 289)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그렇게 많던 저의 죄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두 사하셨다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그 전에는 제가 열심히 회개 기도 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해야 죄가 씻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죄를 씻는 것은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셔야 씻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죄를 지었는데, 저의 죄가 예수님께 건너갔고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죄의 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십자가의 피로 이미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죄가 사해지는 방법

이것이 레위기 4장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레위기 4장에는 죄를 사하는 네 가지 속죄 제사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 둘째, 이스라엘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 셋째, 족장이 죄를 지었을 때 넷째, 평민이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저는 평민이라고 생각해서 평민의 속죄 제사를 자세히 읽었습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레 4:27~29)
제가 가장 궁금하게 여겼던 것은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는 부분입니다. 보통 목사나 장로가 될 때 안수하는데 왜 염소에게 안수하는지 안수의 의미를 성경에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가 레위기 16장 21절에 잘 나와 있었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 찌니.” 그리고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만나는 마태복음 3장과 연결됩니다.

요단강에서 베푼 세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요단강으로 오셨을 때 그곳에서 요한은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세례를 달라고 머리를 숙이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말리며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 3:14) 하자 예수님이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베푼 세례는 세상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 건너가는 안수의 과정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을 보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고 이튿날 예수님이 자기에게 나아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우리 죄가 예수님께 건너간 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돌아가심으로 모든 죄가 완벽하게 사해진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열심히 기도하고, 회개하고, 착한 일을 해야 죄를 씻을 수 있을 것처럼 우리를 속입니다.  

우리 모습 그대로 나아가야

아하시야왕은 죄 있는 모습 그대로, 악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은혜와 긍휼을 입으면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잘한 것을 가지고 나아가려니까 하나님께 갈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서도 아하시야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한 것에 대해 상 주기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연약하고 잘못하는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고자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십일조하고 충성하며 열심히 노력한 것을 다 끌어 모아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저는 죄를 지은 것밖에 없는 더러운 죄인입니다. 제가 행한 것으로는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 죄를 담당시키셨습니다. 저는 십자가에서 제 모든 죄가 씻어진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면 됩니다.

자신이 악하다는 생각에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제가 착한 일을 했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내가 선을 행하고, 헌금하고, 전도한 것 말고 예수님이 하신 것을 들고 가길 바랍니다. 저는 복음 전도를 시작한 지 오래됐고, 이곳 강남교회에서 사역한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해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한 그 무엇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아하시야는 무엇을 몰랐습니까? 하나님은 연약하고 부족한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하시야에게 복을 베풀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악하다는 생각에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갔고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부족하고 연약해도

우리는 인간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도 하나님 기준에 합당할 만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하신 일들은 너무나 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렇게 이야기하실 것 같습니다. “⃝⃝아, 너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없어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갔더냐?”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이나 부족함, 그 모든 것을 덮으시며 복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을 받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갖춘 하나님이 계시는데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내 아버지 아합은 너무 많은 죄를 지었어. 나도 하나님께 죄를 짓고 다락 난간에서 떨어진 거야. 하나님은 날 안 좋아하셔. 날 돕지 않으실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가장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분인데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요? 그리고 은혜를 베풀지 않으신다고요?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똥 싸고, 토하고, 아플 때에도 부모는 아이를 정말 사랑합니다. 아이가 똑똑하고 잘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해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에서

지난 2월에 남미 선교방문으로 브라질을 방문하였습니다. 상파울루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신부님이 한국과 브라질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그라시아스 합창단 공연과 함께 말씀을 전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저는 1500명의 관객이 모인 대성당에서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공연한 후 말씀을 전했습니다. 
가톨릭이 우리 선교회를 향해 문을 열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얼마 뒤 그 신부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전한 말씀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전해 주시면서 브라질에 꼭 다시 와서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내년 2월에는 이틀 동안 말씀을 전해달라며 이미 교황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았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 신부님은 저를 만나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으신 후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아하시야왕

여러분, 아하시야왕이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이를 계기로 ‘내가 아하시야와 좀 가까워졌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아하시야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 제 아버지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악을 행했고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 앞에 제가 나왔습니다.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며 은혜를 구했다면 그는 병에서 나았을 것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이 아닌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그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입을 기회였는데 그것을 밀어내고 저주를 끌어당겨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만이 아니라 종들도 함께 죽는 비참한 일을 당했습니다. 
이 열왕기하 1장은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 은혜를 준비해 놓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버리고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는 것을 너무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하시야왕 이야기의 교훈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성경 말씀은 아하시야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어려울 때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제가 이번에 실수해서 이런 잘못을 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병이 들었는데 몸을 낫게 해주시면 제가 하나님을 섬기고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구해야 합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 모두 아하시야왕에 대한 이 말씀을 통해 교훈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악할 때가 언제였습니까? 가장 어려울 때가 언제였습니까? 그리고 가장 추할 때가 언제였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모든 걸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 죄와 절망에서 건지며, 멸망에서 건지기 위하여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어떤 병에 걸렸어도, 그리고 아무리 큰 악을 행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실 준비를 하시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헌금을 많이 하고, 봉사나 착한 일을 많이 해서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돈을 주고 물건을 사듯이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행한 선(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긍휼만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은혜와 긍휼 앞에 나아가면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탕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탕자는 아버지와 함께 있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분깃을 달라고 하여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먼 나라에 가서 그가 한 일은 허랑방탕하여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허비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탕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소를 잡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동안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다가 탕자가 돌아오자 자신의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면서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도 탕자 같은 사람입니다. 절대 뭔가 잘해서 복을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이 한없는 은혜와 축복을 베푸실 줄 믿습니다. 
- 2023. 10. 1.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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