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 서울수복의 주인공 윌리엄 해밀턴 쇼의 고귀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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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8 서울수복의 주인공 윌리엄 해밀턴 쇼의 고귀한 삶
기획 하버드대 학업을 포기하고 6.25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쇼 대위를 재조명하다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3.09.23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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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모습 2. 쇼 대위의 아내와 두 아들 3. 쇼대위의 군생활 사진

1950년 9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수도를 되찾은 날이다. 6.25전쟁 당시 한반도가 공산화될 위기에서 많은 군인들의 용기와 희생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가져왔다. 이에 기억해야 할 용사들 중 미 해군 故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를 살펴보았다.

6.25전쟁 소식 듣자 가족들 남겨두고 한국행

지난 5월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6.25전쟁 전사자 중 하버드대 졸업생 18명을 기리며 추모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하버드대 연설에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하버드인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1922~1950) 대위를 언급했고 그 자리에 참석한 쇼 대위의 며느리와 손자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해 깊이 감사드린다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성장 배경은 특별하다. 1922년 미국인 선교사 윌리엄 얼 쇼의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 외국인고교를 졸업했다. 1939년에는 미국 웨슬리언 대학교에 입학했으며 졸업 후에는 주아니타 로빈손 양과 결혼했다. 이후 해군에 입대하여 장교 훈련과정을 마쳤고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가 1948년 한국으로 돌아와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며 한국해안경비대 창설에 기여했다. 
1949년 그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중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쇼 대위는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책임과 학위를 끝내야겠다는 열망으로 많은 갈등을 겪었지만 결국 가족들을 처가에 맡기고 한국으로 향했다. 쇼 대위가 자신의 결심을 적어 부모님께 보낸 편지에는 ‘아버지, 어머니! 지금 한국 국민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피 흘리고 있는데 제가 이를 외면한 채 전쟁이 끝난 후 한국에 선교사로 간다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부디 이 자식의 결심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제72주기 추모식(2022.9.22) 
사진제공/(사)대한민국해군협회
 

서울탈환작전 중 29세에 장렬하게 전사

미 해군에 복귀해 6.25전쟁에 참전한 쇼 대위는 한국어와 한국지리에 능통했기 때문에 곧바로 맥아더 장군의 최측근 참모로 임명되어 인천상륙작전 수행에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1950년 9월 15일 새벽, 맥아더 장군은 기함 맥킨리를 필두로 인천해안을 강타하며 상륙작전을 개시해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이뤄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리에 완수되었기 때문에 쇼 대위의 임무도 사실상 끝났다. 하지만 그는 다시 자원했고 미 해병대 5연대의 정보장교로 배속되어 서울탈환작전에 직접 참가했다. 
9월 21일 5연대 3대대 1소대 윌리암손 중위의 판초에서 같이 밤을 새우고 22일 아침 미 해병 7연대의 서울 접근을 위해 서울 서북방지역 녹번리에 진입하는 순간,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북한군 매복조에 저격당하고 말았다. 피아간의 총격은 2시간이나 지속됐으며 해병구조대가 쇼 대위를 구조했을 때 그의 온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서울 탈환을 일주일 앞둔 1950년 9월 22일, 한국 땅을 밟은 지 7일 만에 29세의 나이로 장렬하게 전사한 것이다.  

쇼 대위의 희생정신 제대로 기억되어야 

(사)대한민국해군협회는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추모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956년 쇼 대위의 기념비를 세우면서 시작된 추모사업은 동상건립, 추모공원 조성, 그리고 매년 9월 22일 쇼 대위의 추모식으로 이어져 올해도 지난 22일 은평구 평화공원의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동상 앞에서 치러졌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쇼 대위 유가족들의 행보다. 쇼 대위의 아내는 남편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하버드대 박사과정을 마친 뒤 이화여대 교수로, 세브란스병원 자원봉사자로 여생을 바쳤으며 아들과 며느리도 한미학술교류에 힘쓰며 한국 사랑을 실천하고 있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사)대한민국해군협회 배성한(64) 사무총장은 “사실 쇼 대위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는 한국인들이 많다. 이미 제대한 군인이었지만 다시 자원해 6.25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쇼 대위의 희생정신이 더 많은 한국인에게 알려지고 그의 업적과 진가가 제대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향후 다양한 추모사업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정연 차장대우 jyko@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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